조선시대 도둑과 같은 일반 범죄를 수사하여 범인을 체포하던 관청. 줄여서 포청(捕廳) 이라고도 한다. 성종(成宗) 때 공식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이 있었다. 좌 · 우 두 포도청의 우두머리는 종2품(從二品)의 무관인 포도대장(捕盜大將)이었고, 그 아래에 정6품(正六品)의 종사관(從事官) 3명, 포도부장(捕盜部將) 4명, 무료부장(無料部長) 26명, 가설부장(加說部將) 12명, 그리고 다수의 포도군사(捕盜軍士, 일명 捕卒)와 교외도장군사(郊外都掌軍士) 31명이 있었다. 좌포도청은 한성부(漢城府) 중부의 정선방(貞善坊, 현재의 서울시 종로구 勸農洞과 臥龍洞 일대)에, 우포도청은 중부의 서린방(瑞麟坊, 현재의 서울시 종로구 瑞麟洞 일대)에 위치해 있었고, 또 포도대장의 사택(私宅) 근처에는 포도부장들의 공무를 보던 사관청(仕官廳)이 있었다. 포도부장은 사관청에서 공무를 집행하였고 순찰시에는 통부(通符)[죄인을 체포할 때에 제시하는 증명, 현재의 영장과 같은 구실을 함]를 차고 포졸들을 거느리고 성내(城內)를 순찰했는데 포졸들은 묶는 오라를 차고 다니다가 범인을 체포할 때면 이것으로 범인을 포박, 압송하였다. 그러나 일반 범죄의 수사 이외에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면 천주교인의 체포, 수사도 담당하였다. 양 포도청에서 범죄의 전례(前例)를 기록해 놓은 ≪좌포청등록≫(左捕廳謄錄)과 ≪우포청등록≫(右捕廳謄錄)에는 일반 범죄에 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사료로서 이용된다. 포도청은 1894년 갑오개혁 때 좌 · 우 포도청이 하나로 통합되어 경무청(警務廳)으로 되었다.
포도주 [한] 葡萄酒 [라] vinum [영] wine
포도즙을 발효시켜 만든 포도주는 구약 · 신약시대를 거쳐 교회의 중요한 음식물의 하나로 취급된다. 구약시대에는 번제(燔祭)의 희생제물과 함께 하느님께 바쳐졌었고, 과월절 식사에 중요한 식품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치유제(治癒劑)로 사용되기도 했다(1디모 5:23, 루가 10:34). 한편 최후의 만찬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도주를 들고 사례하신 후 포도주를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흘리는 자신의 피”라고 말씀하신 후부터 포도주는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의 상징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이 맺는 새롭고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미사 때 포도주를 축성하여 나눠 마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다.
교회의 전례규정에 따르면 포도주는 축성됨으로써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한다. 이 때 축성되는 포도주는 이물질(異物質)이 섞이지 않은 순순한 포도로 빚어 발효, 산화시킨 것으로 소량의 물(포도주와 물의 비율은 2대 1)을 섞은 것이 사용된다. 포도주에 물을 섞는 데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인 물과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인 포도주를 혼합함으로써 인류와 하느님 사이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아가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 위로 흐르는 피와 물로도 암시된다. 그리스도의 단성론(單性論)을 주장하는 아르메니아 교회에서는 포도주에 물을 섞지 않는다.
한편 포도주를 빚는 포도는 성서에서 비유의 대상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포도밭은 하느님의 교회로, 포도나무는 그리스도로, 포도덩굴은 그리스도교 신자들로 비유되는 것이 보통이다.
포도부장 [한] 捕盜部將 [관련] 포도청
조선시대 포도청(捕盜廳)의 한 벼슬. 포교(捕校), 또는 포도군관(捕盜軍官)으로도 불렸다. 포도부장은 좌 · 우 포도청에 각각 4명이 있었는데 그 위의 직급으로는 종사관(從事官), 포도대장(捕盜大將)이, 밑의 직급으로는 무료부장(無料部將), 가설부장(加說部將), 포도군사(捕盜軍士) 등이 있었다. 포도부장은 평상시에는 포도대장의 사택(私宅) 근처에 설치되어 있던 사관청(仕官廳)에서 공무를 집행했고, 순찰시에는 통부(通符)[죄인을 체포할 때 제시하는 증명, 오늘날의 영장과 같은 구실을 함]를 차고 포졸들을 거느리고 도성 안팎을 순찰하며 죄인을 체포하였다. (⇒) 포도청
포도대장 [한] 捕盜大將 [관련] 포도부장 포도청
조선시대 포도청의 으뜸벼슬. 종2품(從二品)의 무관직으로 일명 포장(捕將)으로 불렸다. 좌 · 우 포도청에 각각 1명씩 있었으며 한성부(漢城府)의 좌윤(左尹) · 우윤(右尹)을 역임한 자 중에서 임명하였다. 포도대장의 밑에는 종사관(從事官) 3명, 포도부장 4명, 무료부장(無料部將) 26명, 가설부장(加說部將) 12명, 그리고 다수의 포졸들이 있었고, 포도대장의 사택(私宅) 가까이에는 사관청(仕官廳)이 설치되어 있어 포도부장들이 이곳에서 공무를 집행하였다. (⇒) 포도청, 포도부장
포도군사 [한] 浦盜軍士 [관련] 포도청
조선시대 포도청(捕盜廳)의 최하급 군졸로서 일반적으로 포졸(捕卒)로 불렸다. 이들은 붉은 오라를 차고 다니다가 죄인을 잡아 결박하였다. (⇒) 포도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