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비훈몽 [한] 取譬訓蒙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저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조톨리(Zottoli, 중국명 晁德菈, 1826∼1902). 상 · 중 · 하 3권(卷) 3책(冊)으로 1870년 상해(上海)의 자모당(慈母堂)에서 간행되었다. 서명(書名) ‘취비훈몽’(取譬訓蒙)[우매함을 깨우쳐 깨달음을 얻음이라는 뜻]이 가리키듯 천주교의 주요 교리와 내용을 밝힌 호교서로 문답(問答)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101장(張) 분량의 상권에는 신망애삼덕, 천주교의 주요교리, 사도신경 등의 해설이 30장(張)으로 나뉘어 실려 있고, 112장(張) 분량의 중권에는 천주십계, 사죄, 천주경, 성모송 등의 해설이 실려 있으며, 마지막 127장(張) 분량의 하권에는 성사(聖事)에 대한 모든 해설이 40장(張)으로 나뉘어 실려있다.

이 책은 간행 직후 조선에 전해져 한글로 번역 필사되어 널리 읽혔는데 한글 필사본은 한문본의 체제와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른 것으로 현재 한국교회사 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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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결례 첨례 [한] 取潔禮瞻禮 [관련] 성모취결례

⇒ 성모취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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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결례 [한] 取潔禮 [라] benedictio mulieris post partum [관련] 성모취결례

산후 임산부 축복식. ≪한불자전≫에 나오는 말. 모세의 율법에 다르면, 임산부는 출산 후 40일만에 성전에 나아가 몸을 청결히 하는 의식을 거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 율법에 따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나간 것(루가 2:22)에 따라 교회는 임산부의 출산 후 취결례를 행한다. 교회의 견해에 의하면, 취결례는 청결히 하는 의식이 아니라, 교회의 규칙에 따라 결혼하여 자녀를 두게 된 어머니만이 받을 수 있는 축복과 감사의 의식이다(1859년 6월 18일 예부성성령). 독일에서는 이미 9세기에 일반적으로 시행되었고, 12세기 이후 법제화되었다. 현재 교회에 따라 여러 가지 정식이 있지만, 보통 어머니와 아들을 함께 축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세에는 주임신부의 특권이었지만 현재는 모든 신부가 다 할 수 있다. (⇒) 성모취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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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본당 [한] 忠州本堂

1945년 11월 15일 장호원본당에서 분할 창설된 본당. 주보는 성 요셉. 충주는 1928년 장호원본당에 소속된 공소로부터 발전된 곳이다. 충주공소는 1936 야현리(冶峴里)에 3,300평의 대지를 마련, 교우인 표 토마스가 사재 1,200원을 내놓아 18평의 강당을 세웠는데 그 당시 충주에는 옹기촌인 성터지기[城址]와 연수동(連守洞)에도 공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아무튼 충주본당이 처음 설정되었을 때, 관할지역은 충주(중원), 음성(감곡, 무극, 생극 제외) 및 괴산군 일대였다.

1945년 본당이 설정되면서 유영근(兪榮根. 요한)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 33평의 사제관을 짓고 1952년 8월에는 그 전 공소강당이던 성당을 7평 더 증축하였다. 1953년에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관할이 되어 10월 1일 미국인 보어(J.W. Borer. 玉保乙) 신부가 부임하여 이듬해에 성당 25평을 다시 증축. 52평으로 늘리고, 1955년 3월에는 성심 농맹아(聾盲啞)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그의 재임 중 교세의 확장으로 1957년 5월 주덕본당을 분할시켰다. 그 뒤 충주본당은 1960년 2월 충주 제2의 성당인 지곡본당을 분할하고, 이름도 바꾸어 ‘야현(冶峴)본당’이 되었다. 그 해에 맹인학교는 지곡본당으로 이전하고, 1963년에는 수녀원과 농아학교 기숙사를 신축하였다. 미국인 더간(M. Duggan, 강덕권) 신부가 재임 중인 1964년 12월 4일, 149평의 현대식 성당을 축성하는 한편 104평의 사제관도 지었다. 1968년 3월 해성 유치원을 설립하고, 1971년 9월에는 충주 제3의 본당인 목행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이 본당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녀 3명이 파견되어 있고, 윤병훈(尹秉勳, 베드로) 신부가 현재 주임을 맡고 있으며, 신자총수는 3,394명이다.

이 본당에서 사목하였던 주임신부는 다음과 같다. 초대 유영근, 2대 정원진(鄭元鎭, 루가), 3대 구전회(具田會, 바르톨로메오), 4대 이태준(李泰俊, 야고보), 5대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6대 미국인 보어, 7대 미국인 레일리(P. Reilly, 宋), 8대 미국인 더간, 9대 미국인 킨(A. Keane, 김인선), 10대 미국인 주노, 11대 경덕수(慶德秀, 레오), 12대 김병철(金炳喆, 베네딕토), 13대 이한구(李漢求, 라우렌시오), 14대 김광명(金光明, 아우구스티노) 신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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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한] 出埃及記 [라] Liber Exodus

구약성서 중 모세 오경(五經)의 제2서. exodus는 탈출(脫出)을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첫머리의 구절이 “이것이 이름이다”로 되어 있어 ‘이름’이라 부른다. 민수기(民數記)의 ‘수’와 대조적이다. 출애굽기란 책명은 그리스어역 성서와 한역(漢譯)성서(19:1)에 따라 보충한 것이다. 이 책의 전반(前半)이 이집트 탈출기록이니까 그런대로 적당한 명칭이라 하겠다.

1, 목적 : 전반의 탈출이야기에서는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를 서술하고 후반에서는 그 하느님이 주신 율법(律法)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면 조상들에 대한 하느님의 계약의 실현으로서의 구원의 성업(聖業)과 그 계약에 의해 요구되는 율법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 율법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十誡命)은 하느님이 하신 일에 대한 회고에서 시작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20:2).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거듭 상기해 오던 사건이었다(시편 78, 80, 81, 105, 114, 136). 그리고 하느님의 그 성업은 하느님 이름의 계시를 출발점으로 해서(3:13-18), 하느님의 모세에 대한 명령과 도우심에 의해 수행되었던 것이다.

2. 내용 : 창세기의 뒤를 이어 받아서 이 책은 이집트에 이주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고난에 관한 서술에서 시작하여 그들의 구원자로 선택된 모세의 어린 시절과 소명(召命), 이집트에서의 재난, 그것으로부터의 탈출, 홍해(紅海)를 건너 황야를 가로질러서 마침내 시나이산에 도착하기까지의 편력(1-19)을 기록하고 있다. 후반(後半)에서 그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십계명(20:1-17)과 ≪계약의 서≫(20:22-23:33)로 불리는 것 외에 장막(帳幕)건설의 상세한 지시가 내려지고 있다(25:1-31:18, 35:1-40:33). 한편 34장 14절에서 28절에 걸쳐 계약경신의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도 별도자료에 의한 십계명일 것이라고 일컬어져, 전자(前者)를 윤리적 십계명, 후자를 제의적(祭儀的) 십계명으로 구별짓고 있다. 전체 내용을 대별(大別)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집트로부터 시나이산까지(1-18장), ㉮ 이집트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 (1:1-4:31), ㉯ 파라오와의 교섭(5:1-11:10), ㉰ 이집트로부터 황야로(12:1-18:27), ② 시나이산에서(19-40장), ㉮ 시나이산과 율법의 수여(19:1-24:18, 32:1-34:35), ㉯ 장막에 관한 지시와 건설(25:1-31:18, 35:1-40:38).

3. 문제점 : ① 이 책이 중요한 점에서 통일적이다. 저서가 모세냐, 아니면 여러 원전을 바탕으로 편집된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모세 5경≫, 모세의 십계명 및 ≪계약의 서≫의 연대(年代), 고대 동방 율법과의 관계, 그리고 전례율법의 연대가 문제가 되고 있다. ② 역사적인 검토에 있어서는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인의 제재, 그 박해, 모세 자신의 사실성(事實性) 및 그 유년시절, 이주자수, 시나이산에서의 계약 등이 대상이 된다. 나일강 지방에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체류했다는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전승적 통설에 반대하며 그것을 여러 부족의 일부에 불과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비평가들도 민족의 압박, 모세의 유년시절 및 그 활동 기록이 최소한 그 중핵에 있어서는 사실(史實)과 같다는 것을 점차 인정하게 되었다. 시나이산상의 계약은 바빌론 유수(幽囚)로서 전제되었고, 이스라엘인 역시 판관시대 및 열왕시대 초기에 야훼에 대해 특수관계를 가졌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③ 지리적 문제점은 홍해를 건넌 장소, 시나이산 및 사막의 여러 지점이다. ④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은 출애굽기 2장 23절 이하에 의하면 다년간 통치한 이집트왕의 사망 직후에 결행된 것이다. 그보다 더 정확한 일시(日時)는 성서의 연대기록, 하비리(Chabiri) 문제, 이스라엘의 기둥, 시나이산의 비문(碑文)이 열쇠가 되고 있다. 열왕기 상 6장 1절에 따르면, 이 탈출은 솔로몬의 성전(聖殿)의 건립(기원전 968년)보다 48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집트왕 투트모시스(Thutmosis) 3세(기원전 1504∼1450)를 유일하고도 주된 박해자로 보고, 아메노피스(Amenophis) 2세(기원전 1451∼1426)를 탈출시의 왕으로 보고, 이스라엘인에 의한 팔레스티나 정복을 하비리와 결부시키고 있다. 이와는 달리 람세스(Ramses) 2세(기원전 1312∼1246)를 박해자로, 메렌프타(Merenptah, 기원전 1246∼1239)를 탈출시의 왕으로 보고, 탈출은 그의 통치 제2년에 있었다고 하는 설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 출애굽기에서 암시되고 있는 정정(政情)은 이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4. 가치 : 이스라엘 종교가 그 기초를 두었다고 할 수 있는 모세의 인물과 가르침을 알기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 탈출사건을 검토하기 위해서 이 책은 없어서는 안 되는 문헌이다. 그 특이한 신관(神觀)과 율법을 연구하는 데도 근본자료가 될 뿐 아니라 역대의 제사(祭司) 제도를 알기 위한 귀중한 문헌이다. (沈勇燮)

[참고문헌] S.R. Driver, The Book of Exodus, The Cambridge Bible, 1911 / A.H. McNeile, The Book of Exodus, Westminster Commentaries, 1908 / G. Beer Exodus mit einem Beitrag von kurt Galling, 1939 / W.A. Albright, 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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