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본당 [한] 春川本堂

춘천교구 소속 본당으로서 현재는 춘천교구 주교좌인 축림동본당(竹林洞本堂)이며, 본당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춘천에 본당이 설립된 것은 1891년에 영세, 1895년 곰실(현 春城郡 新東面 古隱里)에 정착한 신자 엄주언(嚴柱彦, 마르티노)의 노력에 힘입은 바 컸다. 그는 곰실을 중심으로 전교하면서 1899년 원주에 있던 드브레(Devred, 兪) 신부와 첫 접촉을 갖고 곰실을 방문토록 하였다. 그러나 그 뒤 1920년까지도 이곳에는 본당신부가 상주(常住)하지 못한 채 풍수원본당 관할 아래 있었다. 그러다가 1920년 1920년 9월 18일 갓 서품된 김유룡(金裕龍, 필립보) 신부가 풍수원본당 주임인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보좌로 임명되어 본당 관내이던 춘천지방을 맡아보게 됨으로써 춘천본당이 설립되었다. 김유룡 신부가 처음 부임한 곳은 150여명의 교우들이 살고 있던 곰실(당시는 春川郡 東內面 古隱里)로서 당시 관할공소는 춘천군에 1개, 인제군에 2개 양구군에 3개, 홍천군에 4개, 화천군에 4개 등을 비롯하여 14개가 있었다. 그 뒤 1928년 춘천읍 내 약사리(藥司里, 일명 약사리 고개로 현재의 竹林洞임) 418번지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1929년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가 용산신학교에서 2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한옥(韓屋)을 구입, 성당으로 개축하였는데, 당시 신자수는 600여명이었다. 이기준 신부는 또한 강원도 도지사의 도움을 얻어 성당 부설 유치원도 설립하였다. 1931년에는 개성본당(開城本堂)에서 3대(1932∼1934)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였고, 1933년 1월에는 새 신부인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 신부가 보좌신부로 부임하였고 그 뒤에는 4대(1934∼1935) 주임신부로서 사목하였다. 춘천본당은 서울교구에 속해 있다가 1939년 춘천지목구가 설립되자, 1940년 12월 8일 춘천교구에 편입되었는데, 1937년경 신자수는 1,165명이었다. 4대 조인원 신부 이후 역대 본당신부는 다음과 같다. 5대(1935∼1938) 유영근(兪榮根, 요한) 신부, 6대(1938∼1940) 퀸란(Quinlan, 具) 신부, 7대(1940∼1941년) 매리난(Marinan, 梅) 신부, 8대(1941∼1942) 도일(Doyle, 都) 신부, 9대(1942∼1943) 김학용(金學用, 시몬) 신부, 10대(1943∼1945) 신성우(申聖雨, 마르코) 신부, 11대(1945∼1947) 조응환(曺應煥, 다테오) 신부, 12대(1947∼1948) 갤라거(Gallagher, 葛) 신부, 13대(1948∼1951) 헤이워드(Hayward, 吳) 신부, 14대(1951∼1953) 커머포드(Comerford, 孔) 신부, 15대(1953∼1954) 조응환 신부, 16대(1958∼1965) 맥마흔(MaMahon, 安) 신부, 17대(1969∼1974) 방영구(方永求, 실베스텔) 신부, 18대(1974∼1982) 이응현(李應鉉, 테오도로) 신부, 현재는 19대(1982∼현재) 전세권(全世權, 바오로) 신부로서 신자수는 3,289명이며, 관할공소는 강촌 · 후동 · 추곡의 3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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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한] 春川敎區

강원도 춘천을 중심으로 한 일원을 관할하는 교구. 1939년 4월 25일 서울교구로부터 분할, 독립되어 지목구로 설정되었고 아일랜드의 성 골룸바노 전교회에서 이 지방의 포교사업을 전담하였다. 이듬해 12월 8일에 이 전교회의 퀸란(Thomas Quinlan, 具仁蘭) 신부가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춘천교구의 기반을 다지는 데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日帝)는 점차 교회까지 탄압하게 되어 퀸란 교구장을 비롯하여 성 골룸바노회 출신 선교사들을 모두 감금하였으므로 1942∼1945년까지 서울교구의 노기남(盧基南) 주교가 춘천교구장을 겸임하였다.

8.15광복 후 퀸란 교구장은 다시 교구장직에 복귀하였으나, 1950년 6. 25동란으로 이번에는 공산군에게 납치되어 죽음의 감금생활을 강요당하는 고난을 겪어야만 하였다. 다행히 3년만에 석방되어, 본국인 아일랜드를 거쳐 다시 한국에 돌아와 주한 교황사절 서리직을 겸하게 되었다.

1955년 9월 20일에 춘천교구가 대목구로 승격되자 퀸란 교구장은 그해 12월에 명동(明洞) 대성당에서 주교성성식을 가졌고, 1962년 3월 10일에는 한국 가톨릭 교계제도 설정에 따라 정식교구가 되어 7월 26일 퀸란 주교의 촥좌식이 주교좌 성당인 춘천시 죽림동본당에서 거행되었다.

1966년 퀸란 주교가 70세의 고령으로 은퇴하자, 그 해 2월 12일 스튜어트(Thomas Stewart, 朴) 신부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5월 1일 주교 성성식을 가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춘천교구의 관할지역은 강원도(江原道)의 춘천(春川), 강릉(江陵), 속초(束草), 동해(東海)의 4개 시(市)와 철원(鐵原), 화천(華川), 홍성(洪城), 홍천(洪川), 평창(平昌), 명주(溟州), 양양(襄陽), 인제(麟蹄), 고성(高城), 양구(楊口)의 10개 군(郡)이며, 1983년 말 교세는 다음과 같다.

신자수 4만 1,840명, 본당수 32개소, 공소 95개소, 한국인 신부 31명, 외국인 신부 7명, 한국인 수사 2명, 외국인 수사 2명, 수녀 33명, 외국인 수녀 15명, 남자수도단체 3개, 여자수도단체 8개, 병원 1, 양로원 2, 나병수용소 1, 유치원 15, 주일학교 32개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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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소재 [한] 春季小齋 [관련] 단식재 사계 사계의 재

사계소재(四季小齋) 중 봄에 지키던 소재로 사순절(四旬節) 제1주 후의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에 시켰다. 지금은 폐지되었다. (⇒) 단식재, 사계, 사계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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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 [한] 春季 [관련] 춘계소재

사계(四季) 중 봄에 지켜야 하는 재의 시기. (⇒) 춘계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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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표 [한] 祝日表 [라] calendarium [영] calendar [관련] 교회력

교회에서 기념해야 할 대축일, 축일, 기념일 등을 날짜순으로 기록한 표(表). 축일표의 기원은 수교자들의 기념제를 지내기 위해 초대교회 신자들이 작성한 순교록(殉敎錄, matyrologium)으로, 이 순교록에 의거하여 순교자들의 명단을 날짜별로 재배열하여 교회 기념일을 첨가한 것이 축일표이다. 축일표는 당시 세속의 책력과 함께 교회력(敎會歷)의 기초가 되었다. 한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축일표를 첨례표(瞻禮表)라고 불러왔는데,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의 관변측 기록인 ≪사학징의≫(邪學懲義)에 <주년첨례> · <주년첨례주일공경> · <첨례단> · <제성첨례> · <예수성탄> 등의 한글역 축일표류가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미 교회창설 직후부터 축일표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866년의 축일표 <병인년첨례표>(丙寅年瞻禮表)가 현존해 있고, <병인년첨례표>와 같은 양식으로 된 1889년의 축일표 <기축년첨례표>(己丑年瞻禮表)가 ≪조선서지≫(朝鮮書誌, Biblographie Coreenne)에 설명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1866년부터 매년 축일표가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22년부터는 기존의 첨례표를 보강하여 소책자로 꾸며진 <매일첨례표>가 간행되어 기존이 첨례표와 함께 사용되었고, 이 <매일첨례표>는 1922년 이후 매년 간행되어 오다가 1966년 첨례라는 용어가 축일로 개정됨에 따라 <매일축일표>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간행되고 있다. (⇒) 교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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