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굴 [한] 理窟

1832년 중국 상해의 자모당(慈母堂)에서 9권 2책으로 간행된 호교서. 저자는 중국인 예수회 신부 이체(李杕)이며 제목 이굴(理窟)은 ‘진리가 숨겨져 있는 동굴’이라는 뜻으로 천주교를 가리키는 말이다. 모두 210장의 분량에 2책 9권 104개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책은 1권에서 4권까지 44개 조목 100장이고 2책은 5권에서 9권까지 60여개 조목 110장의 분량이다.

1권(卷一)에서는 10개 조목에 걸쳐 천주존재 · 천지창조 · 영혼불멸 등을 다루고 있고, 2권(卷二)에서는 2개 조목에 걸쳐 예수의 전기(傳記)와 예수의 일생을 찬미한 한시(漢詩)가 수록되어 있으며 3권에서는 11개 조목에 걸쳐 천주강생 · 전교 · 혼인에 대한 교리 등을, 4 · 5 · 6 · 7 · 8권(卷四 · 五 · 六 · 七 · 八)에서는 76개 조목에 걸쳐 유 · 불 · 선과 각종 미신에 대한 비판을, 마지막 9권(卷九)에서는 5개 조목에 걸쳐 여성과 아동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서술방식은 중국 제종교의 비판과, 중국 제종교와 천주교와의 비교설명을 통하여 천주교가 참된 종교임을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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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승 [한] 李國昇

이국승(1771~1801). 순교자. 일명 성겸, 세례명은 베드로. 충정도 음성(陰城)에서 출생하여 충주(忠州)로 이주,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1760년 최인길(崔仁吉)의 권유로 경기도 양근(楊根)의 권일신(權日身) · 권철신(權哲身) 형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795년 을묘박해(乙卯迫害) 때 충주에서 체포되었으나 배교로 석방되었고, 석방된 후로 배교를 뉘우쳐 오랫동안 극기와 고행으로 보속(補贖)하는 한편,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정(童貞)을 지켰다. 그 뒤 1797년 상경하여 명도회(明道會)에 가입, 황사영(黃嗣永)의 지도로 교리연구에 전념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체포되어 이 해 7월 2일(음 5월 22일) 사형선고를 받고 출신도(出身道)인 충청도 공주(公州)로 이송되어 그 곳에서 참수당하여 순교하였다. 유해는 그의 조카들에 의해 공주 근방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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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 [한] 異敎徒 [관련] 이교2

이교를 신앙하는 신자. ⇒ 이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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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2 [한] 異敎 [라] paganismus [영] paganism

그리스도교(敎) 이외의 모든 종교나 종교형식, 또는 유일신교(唯一神敎) 이외의 모든 종교나 종교형식을 가리키는 말. 이교(異敎)라는 의미의 말은 성서에서 이방인(異邦人)이라는 말로 처음 나타나는데, 구약 성서에서의 이방인(goim)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민족을 지칭하는 말로 민속적 민족적 구별보다는 종교적 대립에 의한 구별로 사용되었고 신약성서에서의 이방인(ethge)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지 못한 민족, 즉 유대민족을 제외한 모든 민족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그 뒤 이방인이라는 말은 4세기말 시작된 성서의 라틴어 역(譯) 과정에서 젠테스(gentes)로, 다시 파가니(pagani)로 변하였고, 그 의미도 이교도라는 의미로 변하였다.

이교는 하느님과 세계(世界)를 혼동한 피조물(被造物)이 하느님으로부터 이탈, 스스로를 신격화시키려는 데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에 대한 거부와 반역, 하느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 악마에의 복종, 우상숭배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여기에 종교적 형식이 더해져 그리스도교와 대립되는 하나의 종교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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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1 [한] 離敎 [라] schisma [영] schism

교회 공동체로부터의 고의적인 이탈, 이탈한 상태 혹은 그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 교인의 단체. 이의 대표적인 단체로 그리스 정교회를 들 수 있다. 갈라진 금을 뜻하는 그리스어(schisma)에서 유래한 이 말을 바울로는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위협하는 견해의 차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고(1고린 1:10, 11:18, 12:25), 초대 교회는 주교의 합법적인 권위에 순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교회의 친교에서 이탈하는 것을 지칭하였다. 이교는 친교의 이탈이라는 점에서 이단과 같으나, 그 이탈의 원인에서 볼 때 후자가 신앙 이해의 차이인 데 대하여 전자는 교회의 재치권에 대한 배척이라는 점에서 서로 구별된다.

이교의 개념이 발전한 데는 치프리아노(Cyprianus)와 아우구스티노에 힘입은 바 크며 그레고리오 개혁(11세기)의 영향을 받았다. 그 개념은 또한 교회론의 발전에 크게 의존하였다. 가톨릭 개혁(Counter-Reformation) 신학은 ‘이교’의 신학적 성격을 수정하는 길을 열었다. 이때까지는 신앙에 대한 중대한 이해 차이가 없는 한, 더구나 합법적인 권위로부터 이탈한 자가 교회의 성사체계와 교계조직들 간직하는 한 이교는 교회 일치를 침해하는 것으로 인정될 뿐, 이교집단이 교회의 신비와 절연되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교는 교회 ‘안에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았으며 서로간의 우정은 그대로 지속되었다. 한편 교회란 교황권 아래 교계조직을 갖춘 사회라고 정의하게 되자, 가톨릭 개혁은 이교를 ‘교회 자체로부터’의 이탈이라고 보았다. 종교개혁자의 거부운동에 답변할 목적을 가진 이 교회론은 서방교회가 동방 자매 교회에 대하여 취한 전통적인 태도를 자신도 모르게 수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재치권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대신 ‘우정의 교회론’을 제창함으로써 이교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회복하였다. 그래서 성사(세례, 신품, 성체), 성화은총, 대신덕, 성령의 은혜 등을 강조하며, 교회의 신비에 참여하는 데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교의 두 가지 의미를 구별해야 한다. 이교는 교회법적 의미에로 로마 성청과 재치권적 관계를 끊는 것이며, 신학적 의미로는 교회가 지닌 단일성의 구현을 저해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이교자(schismatici)라는 말을 쓰지 않고 갈라진 형제라 부르며 교회의 재일치를 위해 서로가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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