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onese, Paolo(1528-1588).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기 베네치아파 화가. 베로나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에서 죽었다. 본명은 Paolo Cagliari. Veronese는 ‘베로나 태생’이란 뜻. 부친은 조각가였다. 1552년 만토바 근처의 대사원에서 화재(畵才)를 인정받았다. 1553년 이래로 베네치아에 거주하며 동시(同市)의 유행작가로 활약하였다. 그의 스승은 티치아노(Vecellio Tiziano)였고 동료화가로는 틴토레토(Jacopo Robusti Tintoretto)가 있었다. 1560년 로마를 방문, 1566년 베로나 시절의 은사의 딸과 결혼, 두 아들을 얻었다. 그의 동생 베네데토(Benedetto)는 그가 죽은 뒤 거대한 그의 화방(畵房)을 계승, 지휘하였다. 그는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을 비롯한 여러 성당의 벽화장식에 종사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카나의 향연>(루브르 미술관),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유로프의 약탈>, <최후의 만찬>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색채가 화려하고 구상이 웅대했으나, 장인적(匠人的) 작가로 종교적 신비적인 점이 부족하다. 베네치아의 풍속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화가로서 유명하다.
베렌가리우스주의 [한] ∼主義 [영] Berengarianism
프랑스의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 999~1088)가 제창한 학설로 1050년 이후 이단으로 배척당하였다. 투르 지방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고, 그 지방의 마르티노 학교장으로도 재직했던 베렌가리우스는 당시의 결혼제도와 유아세례에 대해 이론(異論)을 제기했고, 특히 실체변화(實體變化, transubstantiation)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1050년 로마 교회회의, 1051년 파리 교회회의에서 잇달아 이단으로 배척당하였다. 1079년에는 로마 교회회의로 불려가 성체에 그리스도가 실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신앙선언을 하였으나 고향으로 돌아가 그 선언을 철회해 버렸다. 그의 저작으로는 ≪란프랑쿰을 반박하기 위한 성찬론≫(De sacra coena adv. Lanfrancum)이 있다.
베들레헴 [영] Bethlehem [그] bethleem
이스라엘의 지명(地名)으로 유대의 베들레헴과 스블론의 베들레헴 두 곳이 있다. 그러나 보통 베들레헴이라 할 때 전자를 가리킨다. 예루살렘 남쪽 8km 지점에 위치하며 예루살렘과 네게브를 연결하는 간선도로 상에 있다. 다윗의 고향(1사무 17:12-15, 20:6-28)으로 유명하다. 또 그가 사무엘로부터 도유된 곳도 베들레헴(1사무 16:1-13)이다. 베들레헴의 지도급 인물들이 바빌론에 유배당한 이후 메시아적인 통치자의 고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베들레헴은 예수가 탄생한 곳으로 유명하다(마태 2:1-16, 루가 2:4-15, 요한 7:42).
베드로헌금 [한] ∼獻金 [라] Denarius Sti. Petri [영] Peter’s pence
교황이 사용할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전세계 신자가 매년 납부하는 헌금으로, 교황헌금이라고도 한다. 이 헌금은 먼저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의 교황헌금은 일정 한도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만이 납부하였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이후 중단된 것을 교황 비오 9세가 부활시켰다. 어떤 국가에서는 신심단체들이 모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매년 주교가 교황에게 송금한다.
베드로의 편지 [라] Epistola Catholica Beati Petri Apostoli [영] Epistle of Peter
1. 베드로의 첫째 편지 ① 필자 문제와 수신인 : 오늘날 신약 학계에서는 대체로 이 서간의 베드로 친서설(親書說)을 부정하고 있다. 그 논거로,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인 베드로가 과연 이 편지의 문장처럼 세련된 그리스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 베드로의 모국어는 아람어인데, 구약의 성구를 줄곧 70인역에서 인용한 점, 예수의 말씀을 직제자 곧 목격자로서 전하지 않고 정형화된 전승에서 인용하고 있는 점, 갈라디아서 2장에 의하면 베드로는 별로 바울로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은데, 바울로 계열의 전승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점, 자기 본명인 시몬 대신 예수께 받은 별명(베드로)으로 자기소개를 한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바빌론’이라는 로마의 별명이 서기 70년 이후에 사용되었다는 점도 고려하면 아무래도 사도 베드로를 이 서간의 필자로 보기는 어렵다. 5장 12절을 근거로 실바노를 필자로 보는 학자들도 더러 있지만 확실한 논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요컨대, 필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다만 로마 교회의 신도로서 바울로 계열의 전승뿐 아니라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승도 잘 알고 있었던 성명 미상의 어떤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소아시아 교회들을 고무, 격려하기 위해 이 서간을 썼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바울로의 선교 무대보다 좀 더 넓은 소아시아 지역 여러 교회의 이방계 신도들이 수신인이다(1:1, 2:9 · 10, 4:3참조)[가명 작품에 관해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 둘째 편지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 항 참조].
② 집필 연대와 장소 : 이 서간에 묘사된 역사적 상황은 서기 65년부터 90년까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90년 이후에 야기된 신앙문제, 예컨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로마를 가리키는 ‘바빌론’이란 별명은 70년 이후에 사용되었으니, 본서의 집필 연대는 70년부터 90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집필 장소는 물론 로마로 짐작된다.
③ 주제와 내용 : 이 서간은 고난을 겪고 있는 신도들을 격려하고 하느님의 은총에 관해 증언하려고 한 일종의 회람서한이다. 필자는 역경의 신도들을 지켜 주는 은총에 대해서 말할 뿐 아니라(5:10), 심지어 고난 자체를 은총이라고도 한다(2:19-20, 참조 4:14 ‘행복하다!’). 신도들이 사회생활에서 소외되고 백안시되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 일반 사람들과 다른 새로운 규범의 생활을 하기 때문이니 그 어려움을 경건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한다(1:6, 2:18-20, 3:1-6, 3:13-5:11). 그 구체적인 예로 국가 권력자들에 대한 충성문제(2:13-17), 노예생존의 역경(2:18-25), 신자와 비신자의 혼종결혼으로 인한 갈등(3:1-7), 그리고 교직자들이 그 직분 때문에 부닥치게 되는 유혹(5:2-7) 등에 대해서 말한다. 요컨대, 이 서간은 신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를 닮아 갈 수 있는지를 밝힘으로써 신도들로 하여금 확고한 믿음과 희망을 갖게 하려고 한다.
2. 베드로의 둘째 편지 ① 필자 문제와 집필 연대 : 베드로의 둘째 편지 역시 필자가 자신을 명백히 사도 베드로로 소개하고(1:1) 첫째 편지도 자기가 쓴 것처럼 시사하고 있으나(3:1) 일찍부터 베드로 친서설에 이론이 제기되어 왔고, 오늘에 와서는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이 본서를 가명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사도 아닌 사람이 쓴 유다의 편지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 썼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말이 나오는데(3:4), 베드로 생존시에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셋째로, 바울로의 서간들을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3:15-16), 바울로의 서간들이 모든 교회에서 그런 인정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서간은 베드로가 쓴 것이 아니라, 후대의 어느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잘 아는 교회들의 어려움을 좌시할 수 없어 도와주려고 쓴 것이며, 이 때 수신인들이 자기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이용했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유다의 편지 집필 연대를 100년경으로 추정한다면, 본서의 집필 연대는 125년 이후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② 내용과 목적 : 먼저 신도들에게, 덧없는 속사를 멀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얻어 그분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쓸 것을 권고하고(1:12-21), 죽음을 앞둔 베드로의 ‘유언’ 형식으로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실현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재림의 영광을 미리 보여 준 그분의 거룩한 변모(현성용)를 자신이 목격했다고 한다(1:12-21). 그리고 이단자들이 나타나서 날뛰겠지만 틀림없이 심판을 받으리라고 예고하면서 구약의 예화 세 가지를 든다(2:1-10). 이어서 이단자들의 가르침을 공박하고 그들의 퇴폐적인 생활을 규탄한다(2:11-22), (2장의 내용과 표현은 유다서와 거의 일치한다). 3장 1-4절에서 필자는, 신도들에게 예언자들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신을 박아 주기 위해 본서를 썼다면서 집필 목적을 밝힌다. 그리고 이단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됨을 비웃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미루고 계시니(3:5-9), 신도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그날에 대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도록 노력하라고 권고한다(3:10-13). 또한 바울로의 서간에 언급하면서 그 내용을 곡해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찬송으로 서간을 끝맺는다.
[참고문헌] 200주년 신약성서 12 / 장 엘마로 역주, 베드로 전후서, 분도출판사 19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