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12사도의 으뜸인 베드로와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 두 사도는 로마 교회의 창설자로 간주된다. 축일은 6월 29일. 이 날은 치명 기념일 혹은 유해가 옮겨진 날로 여겨진다. 3세기에 이미 로마에서 축일이 언급된 문헌이 발견된다. 이 축일은 4세기에 보편적으로 전파되었다. 성 베드로와 바울로의 이름은 미사 때 고백의 기도(현재는 언급되지 않음), 제1 성찬기도 등에 언급된다. (⇒) 베드로, 바울로
베드로세습령 [한] ∼世襲領 [라] Patrimonium Petri [영] Patrimony of St. Peter
교황에게 소속된 토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재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313년) 이전까지는 교회가 합법적으로 재산을 취득할 수 없었으나, 그 후부터 황제와 귀족들에게 기부받거나 위탁받은 교회의 재산은 상당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600년경에 교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토지의 소유자가 되었다. 광대한 농장과 삼림 등을 자유민들에게 경작시켜 하나의 장원(massa)을 형성시켰고, 이것은 로마의 한 주(州)에 해당하는 것으로 로마 교황에게 세습되었다. 이 세습령은 시칠리아, 갈리아, 코르시카, 아프리카 북부 등지에 산재해 있었고, 그 대부분은 이탈리아에 있었다. 세습령은 교황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레고리오는 베드로 세습령을 가난한 사람들의 세습령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베드로 세습령은 자주 세속권력들의 침탈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몇몇 교황들은 이 영지를 자신의 개인소유로 착각하기도 하였다. 중세시대가 끝나면서 베드로 세습령은 로마 근교의 지방으로 축소되었고, 지금의 바티칸 시국만으로 확정된 것은 1929년 교황 비오 11세와 이탈리아 정부 사이에 맺은 라테란조약에 의한 것이다. 이 조약에 따라 교황청은 바티칸 시국에 대해 배타적 주권을 갖게 되었고, 바티칸 시국은 불가침적 중립지대로 인정되었다.
베드로사도회 [한] ∼使徒會 [영] Pontifical Society of St. Peter Apostle(P.S.A.) [관련] 교황청전교원조
교황청 전교원 조회 산하 상설단체의 하나. 성소를 계발하고, 기도와 성금으로 성소를 후원하며, 전교지방의 방인사제 양성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베드로사도회의 한국지부는 1965년 주교회의(6월 29일-7월 3일)에서 발족되었고, 초대 지부장에는 윤공희 대주교, 2대 지부장에는 최재선 주교가 역임했고, 3대 지부장은 정은규 신부가 맡고 있다. (⇒) 교황청전교원조회
베드로대성전 [한] ∼大聖殿 [영] St. Peter’s Basilica
로마의 5대 바실리카의 하나로 교황청에 인접해 있는 총대주교좌 성당이다. 최초의 베드로 성당은 90년경 교황 아나클레토(St. Anacletus)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운 작은 기념당이었다. 그 뒤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베드로가 처형된 원형 경기장을 헐고 기념당과 무덤을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 이 성전은 1100년경까지 존속하였고, 몇 번의 개보수(改補修)를 거쳐 낡아진 대성전을 헐고 더욱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립하려 한 사람은 교황 니콜라오(Nicolaus) 5세였다. 교황의 명을 받은 르네상스기의 대미술가 브라만테(D. Bramante),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등이 설계하여 176년간에 걸친 대역사를 통해 완공되었고, 1626년 11월 18일 교황 우르바노(Urbanus) 8세에 의해 성대한 헌당식이 거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대성전은 최대길이 221m, 최대높이 141m로 세계 최대의 성당일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그 독창적인 구상과 중앙의 거대한 돔(dome) 양식은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성전 앞 대광장(plazza)의 중앙에는 베드로의 처형대로 사용되었다는 오벨리스크(obelisk)가 세워져 있고, 대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주랑(柱廊)에는 높이 약 3.6m에 이르는 126성인의 입상이 늘어서 있다. 성전의 정면에는 입구 위로 길게 내뻗은 난간(Loggia della Benedizione)이 있어 교황이 이곳에서 축복을 내린다. 이곳을 지나면 5개의 입구를 거쳐 성당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년에만 열리는 성년(聖年)의 문(porta santa)이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수도회 창립자들의 거대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중앙 통로를 지나 중앙의 대제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 대제단은 1633년 베르니니가 제작한 것으로 여기에는 95개의 등불이 밤낮 없이 계속 타올라 아래층의 청동관을 비추고 있다. 대제단에서 조금 들어가면 바로크 양식으로 된 베드로의 교좌(敎座)가 놓여 있다. 한편 지하성당에는 베드로의 무덤과 수많은 교황들의 무덤이 있고, 지하성당에서 올라오는 계단 위에는 베드로의 청동상이 놓여 있는데 수많은 순례자들이 청동상 오른쪽 발끝을 어루만지고 입맞추었기 때문에 닳아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밖에 성당 안에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피에타>(pieta)가 소장되어 있다.
베드로 클라베르 [라] Petrus Claverius [스] Pedro Claver
베드로 클라베르(1581-1654). 성인. 증거자. 스페인의 베르두(Verdu)의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나 1602년 다라고나에서 예수회에 입회, 남미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에서 사제로 서품(1616년), 노예매매 중심지였던 그곳에서 약 40년간 흑인노예들의 정신적, 물질적 소망을 이루어 주기 위해 ‘노예의 노예’로서 봉사활동을 계속하였다. 그 동안 약 40만명 이상을 개종케 하고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흑인들의 사도’로 알려져 있다. 1888년 시성(諡聖), l896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흑인포교의 수호성인으로 결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