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부재 [한] 無所不在 [라] ubiquitas

≪한불자전≫(韓佛字典, Dictionnaire Coreen-Francais, 1880)에 따르면 ① 있지 않는 장소가 없다. ② 도처에, 어디에나 있음을 뜻하는 용어로서 우리나라 천주교회사상 초기단계부터 많이 쓰여온 말이다. 하느님의 품성(稟性)을 설명할 때 소극적인 품성의 하나인 무량(無量)과 대조되어 자주 사용되었던 것이 이 ‘무소부재’(無所不在)라는 낱말인데, 이는 ‘하느님이 어디든지 있지 않는 데가 없이 아무 데나 있음’을 또는 ‘없는 데가 없음’을 뜻하는 옛말이다. 1900년대에는 ‘무소부재’ 대신 ‘아니 계신 데 없음’으로도 사용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 ‘무소부재’에 해당되는 적절한 말이 없으나 ‘신의 내재(內在)’(divine immanence) 곧 모든 피조물에 충만해 있는 신의 보편성을 지칭하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어디든지 없는 데가 없다는 것은, 바로 신의 본질과 행동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 침투하고 있다는 것을 지칭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는, 이 하느님의 ‘내재성’(內在性)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초월성’(超越性)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족(補足)하는 것이다. 신은 신으로서 머무르는 것이요, 세계의 일부는 아니다. 신은 세계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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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세 [원] Mousset, Germain

Mousset, Germain(1876-1957).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 제 2대 대구교구장. 주교. 한국명 문제만(文濟萬). 프랑스에서 출생. 1900년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 졸업과 함께 사제서품을 받고 한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해 10월 한국에 입국하였다. 1901년 첫 사목지인 제주도에 부임했으나 5월 신축교난이 일어나자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에게 교난의 경과를 상세히 보고한 후 라크루(Lacrouts, 具瑪瑟) 신부와 함께 목포로 피신했다가 10월에 제주도로 귀환, 다시 전교를 시작하였다. 1902년 마산본당(현 완월동 본당)으로 전임되어 성당을 신축하고 창원, 진주, 통영, 거제 등지를 전교하는 한편 1910년 현 성지(聖旨) 여중고의 모체인 성지학교를 설립했고, 1911년 대구교구가 서울교구로부터 분할, 창설되자 대구교구 당가(재정부장)로 임명되었다. 그 후 1928년 대구교구 부주교를 거쳐 1938년 2월 대구교구장 드망즈(Demange, 安世華) 주교가 사망하자 이해 12월 교구장(대목)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5월 6일 주교로 성성되었고 그 후로는 대구교구의 교육사업에 주력하여 효성(曉星) 보통학교를 설립하고 주교관내에 루르드 성모당을 건립하였다. 1942년 일제(日帝)의 탄압으로 교구장직을 사임당하고 광복 후 파리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으로 활동, 그 성과로 인해 195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 받았다. 1957년 6월 8일 노환으로 서울에서 사망, 대구교구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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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부무군 [한] 無父無君

≪한불자전≫에 따르면, 무부무군이란 자신의 임금도, 자신의 아버지도 알아볼 줄 모르는 것을 가리키는 ‘욕설’로 풀이하고 있다. 이 말은 한국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거나 그들을 처단할 때의 죄목으로 사용하여 ‘무부무군의 부도죄’(不道罪)라는 단죄용어로도 사용하였다. 천주교 박해의 원인의 하나로 집약되는 이 용어는 예를 들자면, 천주교인 윤지충(尹持忠)이 모친상 때 조상의 신주를 불사르고 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든지, 천주교인인 그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이 고모상 때 신주를 태워 땅에 묻고 제사를 폐지하였다든지 하는 것에 사실 바탕을 두고는 있으나, 교황청이 이질문화(異質文化)와의 만남에 있어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결정적인 제사 금령(禁令)을 내림으로써 당시 전통 유교사회의 박해는 자연적인 결과로 빚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천주실의≫(天主實義) 등 서학서(西學書)의 폐해를 지적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으레 ‘무부무군’이 패륜적인 것 중의 가장 큰 골격이라고 주장, ‘척사윤음’(斥邪綸音)에서도 ‘폐제훼주’(廢祭毁主)를 ‘무부’(無父)의 불효행위일 뿐만 아니라 금수만도 못한 짓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하상(丁夏祥)은 <상재상서>(上宰相書, 1839)에서 “세상의 도리에는 높고 낮음과 일의 가볍고 무거운 사정이 있다. 한 집안에서 중한 이는 아비만한 이가 없으나, 아비보다 더 높은 이는 나라 임금이고, 임금보다 더 중한 이는 천지대군(天地大君)이신 천주이다. 아비 말을 듣고 임금의 영(令)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가 무거울 것이요, 따라서 임금의 명을 듣고 천지 대부모의 명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가 더욱 중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주를 받들어 공경하는 것은 임금의 영을 짐짓 거스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마지못하여 하는 일이거늘, 어찌 이것으로써 임금도 부모도 몰라본다고 하나이까?”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대군대부’(大君大父) 즉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영신적인 의리에서 절대적인 분을 공경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충효관념은 상대성을 띠게 되었고, 이는 바로 유교사회 윤리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당시의 유교관념으로 볼 때는, 효도대상으로서의 부모도 없고, 충성대상으로서의 임금도 없다는 즉 충효사상이 없는 ‘무부무군지학’(無父無君之學)이 바로 서학인 양 잘못 인식하게 되었지만, 가톨릭적인 입장에서 살필 경우, 교리나 교법(敎法)으로 일국의 풍속을 바꾸려는 계획이 아니요, 나라의 임금과 자신의 아버지가 있음도 알고 있으며, 어디까지나 천주를 공경하여 영혼을 구해 죽은 뒤의 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데 있다고 교인들은 주장하였다.

‘무부무군’이라는 용어가 엉뚱하게 천주교를 탄압하려는 박해자들의 기만정신에서 사용된 점도 있지만, 천주교의 보편성이 당시의 국교인 유교의 존재와 위정자의 정교(政敎) 일치적인 정책을 위협할 수 있고, 또 천주교의 초국가적인 위력은 장차 국가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대립적인 개념용어로서 빈번히 이를 남용하여 천주교를 궁지에 떨어지게 만들고자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본다면 ‘무부무군’이라는 욕설의 이면에서 오히려 가톨릭 교도가 ‘대군대부’를 공경하는 근본교리임을 역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며, 단순한 유교사회의 충효관념도 형식적이고 가부장적(家父長的)인 굴레로서가 아니라, 좀 더 깊이 있는 근본에 연결되도록 내실(內實) 있는 모습으로 되기를 도전 받았다고 평가할 여지마저 생긴다.

[참고문헌] 崔奭祐, 韓國敎會史의 探究, 한국 교회사연구소, 서울 1982 / 崔奭祐,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울 1982 / 한국교회사연구소편, 상재상서(上宰相書), 순교자와 증거자들, 서울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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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류지권 [한] 無謬之權 [라] infallibilitas [관련] 무류성

무류지권이라는 번역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법률적인 권한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교회가 신앙진리를 믿음에 있어서나 가르침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용어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회와 교도권의 무류성’이다. (⇒) 무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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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류성 [한] 無謬性 [라] infallibitas

무류성은 ‘무류지권’이라는 말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교회와 교도권의 무류성’이다. 또한 이 말은 성서의 무오성(無誤性)과도 전혀 다른 개념의 말이다.

1. 전체교회의 무류성 : 교회 전체가 구원의 진리를 믿음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은 성서에 의하여 명백하다. 주께서 세우실 교회를 지옥문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마태 16:18), 주께서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함께 계시겠고(마태 28:20), 진리의 성령이 영원히 교회를 지도하시겠다(요한 14:16-17)는 약속은, 만일 진리의 전달자인 교회전체가 오류에 떨어질 수 있다면 무의미한 약속이다. “하느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이고 진리의 기둥이며 터전이라”(1디모 3:15)고 믿기 때문에 교회헌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령의 도유를 받는 신자들의 전체는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니 주교로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에 백성 전체의 초자연적 신앙감(信仰感)에서 이 특성이 드러난다”(교회헌장 12).

2. 주교단 전체의 무류성 : 교회 전체의 무류성은 교회의 신앙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주교단 전체에도 나타난다. 주께서 사도들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을 듣는 사람이라 하셨고(루가 10:16, 마태 10:40, 요한 13:20), 바울로는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이미 전한 기쁜 소식과는 다른 것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그는 저주받아 마땅하다”고 선언하였다. 아타나시오는 니체아 공의회를 통하여 선언된 주님의 말씀은 영구히 남으리라 하였고(Ep. ad Afros, RJ 792), 교회헌장은 “각 주교들이 무류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온 세계에 산재하면서 서로 일치하고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사정을 유권적으로 가르칠 때에 결정적인 한 가지 판단에 의견이 일치하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교리를 오류없이 가르치는 것이다”(교회헌장 25)하였다. 주교단의 장엄 교도권 행사인 세계 공의회의 무류성은 명백하다. “주교들이 공의회에 모여서 세계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가르치고 판단할 때에 무류성은 더욱 명백한 것이니, 이 결정 사항은 신앙적 순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교회헌장 25).

3. 교황의 특별 교도권의 무류성 교황은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다른 주교들과 함께 장엄 교도권을 행사하지만(공의회의 경우 – 교회의 최고 목자의 자격으로 단독적으로 장엄 교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교좌선언(敎座宣言, ex cathedra)이라고 한다. 교황이 교좌에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에 최종 단안을 내릴 때에는 무류한 결정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선언은 극히 희소한 일이지만 근세에 몇 번 있었다. 교황의 단독 선언이 무류하기 위하여 반드시 다음 조건들이 채워져야 한다. ①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공식으로 선언한다. 따라서 교황도 개인 자격으로나 로마 교구의 교구장 자격으로 선언한 것은 무류하다고 보장할 수 없다. ② 어떤 진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의사를 밝혀야 한다. 따라서 교황의 통상적인 설교, 지도, 권유, 해설, 반박, 경고 등이 다 무류하지는 않다. ③ 신앙이나 도덕의 문제에 국한된다. 따라서 교황이 아무리 강력하게 주장할지라도 과학, 예술, 인문, 정치, 경제, 사회 등에 관한 주장이라면 무류할 수 없는 것이다.

4. 무류성에 대한 태도 : 장엄 교도권이 정의한 것은 신자들의 동의여부와는 상관없이 결정 자체로서(ex sese) 무류한 것이지만, 교도권이 신자 전체의 신앙감과 유리되어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교도권자들은 이런 중대한 결정에 앞서서 충실한 조사, 연구, 협의, 기도를 거칠 중대한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 교도권은 신앙 진리의 최고 규범이 아니고 더 높은 규범인 성경과 성전의 규제를 받는 규범(norma normata)이다. 그러므로 장엄 교도권이 선언한 내용을 해석할 때에는 엄밀하게(stricte) 그리고 축소하여(restrictive) 해석하여야 한다. (鄭夏權)

[참고문헌] B.D. Dupuy, L’infaillibilite de I’Eglise, in Catholicisme, t. 5, col. 1549-1572 / G. Dejaifve, Pape et eveque au 1er concile du Vatican, 1961; L’infaillibilite de I’Eglise, 1963 / 정하권, 교회론 II, 125-133(문헌목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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