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 [한] 無量

일반적으로 ‘무한량’, ‘막대함’ 등과 같은 말로서, 양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가리킨다.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의 품성(稟性)을 적극적인 것, 소극적인 것 둘로 나누어 설명할 때, 적극적인 품성의 하나를 ‘무소부재’(無所不在)라는 말로 나타냈음에 대조하여, 소극적인 품성의 하나로서 ‘무량’(無量)을 꼽는다.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사적으로 초기단계부터 쓰였던 용어인데 ‘한도가 없는 일’을 지칭한다. ≪한불자전≫(韓佛字典, Dictionnaire Coreen-Francais, 1880)에 의하면 ‘무량하다’를 ‘무제한하다’(Etre sans limite), ‘무한한’(Sans bornes), ‘무한의’, ‘한없는’(illimite) 등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이 ‘무량’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신의 무한성’(infinity of God)을 가리킨다. 즉 하느님의 한계가 없는 완전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느님은 “지성과 의지와 모든 완전성에 있어서 무한인 것이다”(제1차 바티칸 공의회, 제3총회 제1장). 신에게는 가능성은 없으며, 신은 순수한 현실유(現實有)이다. 신은 자기 안에 지식, 권능, 존재에 있어서의 모든 완전성의 충만을 다 가지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무라토리 정전목록 [한] ∼正典目錄 [영] Muratorian Canon

무라토리(L.A. Muratori, 1672-1750)에 의해 1740년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도서관에서 발견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약성서의 경전목록. 작성 연대는 교황 비오 1세(재위 : 142-155)가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74-77행) 2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철자와 문법적 오류가 많은 점, 서투른 라틴어로 쓰인 점, 그리고 문법적 구성으로 보아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것으로 추측되며, 저자로는 성 히폴리토(St. Hippolytus)가 가장 유력시된다. 앞뒤가 파손되어 있고 85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르코 복음에 대한 언급의 말미로 시작되어 루가와 요한이 각각 제3, 제4 복음으로 열거되어 있고 히브리서, 야고보서, 제1, 제2의 베드로서를 제외한 모든 신약성서가 언급되어 있다. 또한 경고와 함께 베드로의 묵시록과 솔로몬의 지혜서도 언급되었다. 반면 2세기 중엽에 쓰여진 도덕서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 of Hermas), 성 바울로가 라오디케아(Laodicea)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보내는 마르치온(Marcion)적인 서한, 그리고 다른 그노시스적이거나 몬타니즘적인 글들은 배제되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무당 [한] 巫堂 [관련] 무속신앙

⇒ 무속신앙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무교회주의 [한] 無敎會主義

일본의 종교가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가 시작하고 그의 문인(門人)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는 신앙과 주장. 의식, 전례, 교회당 등 교회의 제도에 매이지 않으며, 하느님의 말씀은 성서에 의해서만 주어지고,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신봉하는 독특한 그리스도교 운동을 형성한 것이 이 무교회주의이다. 1878년 우찌무라는 삽뽀로(北海道 札幌) 농학교(農學校)에 다닐 때 감리교 선교사 해리스(M.C. Harris)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뒤 선교사들의 교파주의적인 경쟁심에 실망하고, 미국 유학을 통하여 복음신앙의 재발견 시기를 거쳐 귀국하였다. 그는 타고난 깊은 애국심과 그리스도교를 연결시키려고 한 것 때문에 선교사들에게 배척을 받게 되자, ≪그리스도 신도의 위안≫(1893)에서 비로소 “나는 무교회가 되었다”고 해서 ‘무교회’란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 1901년 잡지 <무교회>를 창간하여 그 제1호에서 무교회주의 그리스도교는 결코 교회를 부정함을 목표삼은 것이 아니라, ‘교회 없는’ 사람들의 교회라고 선언, 이보다 한 해 앞서 창간한 잡지 <성서의 연구>(聖書之硏究)의 발행을 통하여 성서연구의 그룹적 활동을 계속, 성서강의에 힘써 각계에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무교회주의의 성립 배경은, 일본적인 주체적 그리스도교의 모색, 교회의 형식과 경화에 대한 도전이요, 따라서 주체성 확립과 개혁 의지가 그 기축을 이루고 있다. 우찌무라는 “나는 직접 그에게로(즉 그리스도에게로) 향한다. 교회, 교황, 감독, 기타 유상 무상의 거간을 통하지 않고 그대로 직접 그에게 향한다. 그리스도교가 역사이기를 그칠 때 – 그리스도교는 역사가 아니다 – 교권을 갖는 교회란 것은 소멸된다”고 결론을 맺었다. 서구 그리스도교에서 독립하고자 한 욕구에서 볼 때, 동양적인 체질의 무교회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적나라한 모습을 직접 접함에서 일본적인 그리스도교의 바탕을 보고 있었다.

[참고문헌] 土肥昭未, 內村鑑三, 東京 敎團出版局, 1962 / 內村鑑三 信仰著作全集, 東京 敎文館, 1961-1964 / 萬有百科大事典(Genre Japonia), 小學館, 197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무관심주의 [한] 無關心主義 [영] indifferentism

무차별주의라고도 번역되는 무관심주의란 어느 하나의 특정한 견해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배척하고 모든 견해가 똑같이 진리라는 생각을 견지하는 주의나 주장을 가리킨다.

보통 종교와 관련된 분야에서 많이 나타나는 무관심주의는 다음과 같은 바탕 위에 서 있다. 즉 ① 어떤 종교라도 그것이 신봉자들의 열망을 충족시키는 한 선(善)이고, 각 종교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똑같이 진리이고, 가치를 지닌다. ② 종교적인 가르침은 이성에 의해 연역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종교의 가르침만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다. ③ 모든 교회와 그 신조(信條)는 동일한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 개인이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 것은 그 종교가 갖고 있는 신조, 율법, 문화가 다른 종교의 그것에 비해 타당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지 그 종교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나타나는 무관심주의는 무신론에서 파생되었고 모든 종교를 무용한 것이라고 하여 배척하는 반종교적(反宗敎的) 무관심주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신만을 인정하여 초자연적인 계시를 부정하는 자연적 무관심주의, 모든 계시종교는 모두 신의 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은 특정한 종교집단만을 구원하고 다른 종교집단은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집단을 동시에 구원한다는 초자연적 무관심주의 등이 파생된다.

한편 무관심주의는 종교적 관용, 반종교주의, 종교적 중립, 실천적 종교무관심주의와 구별되며 신크레티즘(Syncretism, 諸說混合主義)은 무관심주의의 산물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