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전동본당 [한] 麻田洞本堂

1939년 평북 신의주시 마전동에 창설되어 1942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1937년 신의주 본당 운영의 성심학교(聖心學校)가 신의주시 마전동에 설립된 후, 마전동 일대의 교세가 급격히 신장되자 1939년 신의주 본당으로부터 분할 창설되었다. 초대 주임신부로 마컴(Markham, 馬)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의 기초 작업에 노력을 기울이고 1940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분원을 설치, 분당 일과 성심학교의 서무일을 전담케 하였다. 이어 2대 주임신부로 기본스(Gibbons, 盧) 신부가 부임했으나 몇 개월 사목한 후 서포(西浦)의 교구청으로 전임되어 1940년 말 크레이그(Craig, 奇)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크레이그 신부는 마전동 외곽지대의 전교에 힘쓰며 야학을 개설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목하였다. 그러나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평양교구 내의 모든 메리놀회 성직자들이 일제에 체포 구금되자 마전동 본당은 신부 없는 본당이 되었고, 1942년 2월 신의주 본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오기선(吳基先) 신부가 마전동 본당에 주재하며 신의주 일대를 사목했으나 이 해 6월 오기선 신부가 신의주 본당으로 이사함으로써 마전동 본당은 신의주 본당에 병합되었다. 마전동 본당 운영의 성심학교는 1942년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개교하여 빈민아동들을 교육했으나 1947년 가을 북한 공산정권에 몰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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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재 [한] 馬峴

한국 천주교회 요람지(搖籃地)의 하나로 정약전(丁若銓), 정약종(丁若鍾), 정약용(丁若鏞) 형제의 고향. 현 지명은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京畿道 楊洲郡 瓦阜面 陵內里)이다. 1777년 권철신(權哲身), 정약전, 이벽(李檗) 등이 참가한 주어사강학(走魚寺講學) 이후, 1784년 4월 이벽이 마재의 정약전, 정약용 형제들을 찾아와 얼마 동안 머무른 다음 정약전, 정약용 형제와 함께 배를 타고 서울로 왔고, 이 때 선상(船上)에서 천주존재, 천지창조, 영혼불멸, 상선벌악 등의 천주교 교리에 대해 토론하였다. 현재 마재에는 정약용의 묘소가 있고 1972년 정약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여유당기념석’(與猶堂紀念石) 그리고 정약용 생가(生家)터 입구에 세워진 이정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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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스 [원] Michaels, James

Michaels, James(1926~ ). 주교. 전(前) 광주 대교구 보좌주교. 한국성은 권(權). 미국 시카고에서 출생. 1951년 성 골룸바노대학을 졸업하고 이 해 12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듬해 로마 성 그레고리오 대학원에 진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성 골룸바노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57년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 광주 대교구의 여러 본당과 소록도 나환자촌에서 사목하였다. 1965년 광주 대교구 부주교를 거쳐 1966년 3월 광주 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이 해 4월 14일 미국에서 주교로 성성(成聖)되었고 그 후 광주 대교구장 헨리(Henry) 대주교를 보좌하며 교구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던 중 1973년 미국 버지니아주(州)의 필링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한국을 떠났다.

[참고문헌] 가톨릭시보 제517호, 1966. 5. 1; 가톨릭시보, 제861호, 1973. 4. 15 / 경향잡지, 통권 58권 제4호, 196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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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한] 魔術 [라] ars magica [영] magic [그] Mageia [히] Kesapim

일반적으로 마술로 호칭되고 있으나, 종교학의 용어로서는 주술(呪術)이라는 말이 보다 적절한 것이라 해서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구약성서에서 마술적인 방법과 연관하여 많이 사용되는 말로 ‘qasam’이라는 동사가 있고, 여기서 파생된 명사 ‘qesem’은 마술뿐만 아니라 흔히 ‘점’(占)으로도 번역되어 있다. 본래 어원은 아라비아어 ‘qisma’(운명)에서 온 것 같다. 그러나 보통은 마술을 뜻하는 그리스어 ‘Maeia’에서 온 말로 이해되고 있다.

마술은 일반적으로 시간 · 공간을 통하여 보통 사람들이 갖추고 있지 못한 어떤 신비적인 힘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자가 신, 정령(精靈), 사물 따위를 자기 뜻대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하여 행하는 이상한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마력을 가진 영적 존재인 아라비아어의 진(jinn) 즉 정령 같은 것의 힘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질서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이러한 신비력을 가진 자가, 특수한 시간(예를들면 밤중, 황혼, 하지, 동지 등)과 장소(예를들면 사원, 묘지, 동굴, 깊은 산속 등)에 따라, 신이나 정령의 마음을 변하게 하여 주술자 즉 마술자가 생각한 대로의 결과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 때의 전제가 되는 것은, 마술자 쪽이 신이나 정령보다도 능력에 있어 훨씬 뛰어나 있어야 된다는 점, 즉 신이나 정령은 마술자에게 강제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자여야 한다는 사상이 존재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마술에 사용되는 수단은 단순한 말, 내용이 없는 주문, 상징적인 부호, 손가락이나 손, 머리나 몸운동 등이고, 도구로는 특히 지팡이와 거울이 곧잘 쓰인다. 그리고 이 마술의 몸짓이나 행위에 관한 것은 물론 비법이며, 지엽적인 세목도 비밀히 정해진다. 만일 그 몸짓을 잘못하였을 경우 마술은 효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행위자에게 유해한 결과까지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마술이 신앙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때에는, 그 성공의 정도도 또한 신앙적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마술의 의뢰자에게 실망을 주지는 않는다.

마술은 원시시대에는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권(父權) 사회의 토테미즘 및 모권(母權) 시대의 농경을 주로 하는 문화단계에서 비로소 나타났다. 많은 미개민족들은 마술을 직업적으로 시행하는 특정한 사람, 특히 남자를 보유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모든 종류의 마술에 대하여 원천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구약성서는 민중생활과 밀접한 교착을 가졌던 관계로 다니엘서(1:20)에 마술이 나오는데, 이는 바빌론의 마술을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스라엘과 교섭이 깊었던 이집트에서는 마술이 성행하였으며 창세기(41:8)나 출애굽기(7:11, 8:7-11, 9:11)에도 이집트의 마술이 나온다. 가나안의 마술은 아합의 왕비 이세벨에 의하여 이스라엘 왕조에 영향을 미쳤다(2열왕 9:22).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마술을 금지하고 있었고(민수 23:23), 예언자는 마술의 유행을 비난하였다(이사 47:9, 미가 5:12). 바울로는 전도지에서 마술자를 만났는데(사도 13:6, 19:19), 예수의 복음을 통하여 마술을 구축하고 있다.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 기원전 1791)도 최초의 항에서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한다는 데서 마술을 금지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마술은 주로 악마를 추방하는 수법으로서 사용되었다. 묵시록(22:15)에서 마술은 결정적인 비난을 받고, 마술자는 갇혀 버린다. 도덕적으로 말해서, 마술이란 하느님에 의한 주재 또는 운명에 관하여서까지도, 비밀스런 힘 또는 하느님에 맞서는 존재 따위를 사용하여, 취소하거나 벗어나게 하거나 하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술, 특히 악령(惡靈)에 의한 마술은 성서(묵시 21:8) 및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대죄이며, 교회법에서는 이단적인 마술을, 악령의 미신과 마찬가지로 보아 파문(破門)과 오욕(汚辱, infamia)을 과하여 이를 금지하였다. 중세의 로마 국법은 극형, 심지어는 화형에까지도 처하였다.

마술은 기도의 의식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종교적 영역과 아주 인접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신을 사역(使役)한다는 데서 종교와 마술과의 그 내적 본질에서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종교는 신적인 것 앞에 무릎을 꿇어 받들려고 하는데 반하여, 마술은 신적인 것을 강제하거나 또는 회피하려고 한다.

[참고문헌] P. Scholz, Gotzendienst und Zauberei bei den alten Hebraern und benachbarten Volkern, 1877 / G. Saint-Yves, La force magique, Montauban 1914 / Danzel, Magie und Geheimwissenschaft, 1924; Der magische Mensch, 1928 / R. Allier, Magie et Religion, paris, 1935 / C.H. Ratschow, Magie und Religion, B.2, Gutersloh 1955 / B. Malinowski, Magic Science and Religion, New York 1955 / A.E. Jensen, Myth and Cult among Primitive Peoples, tr. M.T. Choldon and W. Weissleder, Chicago,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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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본당 [한] 馬山本堂

① 1901년에 창설된 마산 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 요셉. 현 명칭은 완월동(玩月洞) 본당이다. 마산 본당은 타케(Taquet, 嚴宅基)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타케 신부는 1896년에 입국하여 2년간 강원도 원주 일대에서 전교하였으며, 그 뒤 경상도의 남부 지역 최초의 주임신부로 진주에 부임하였었다. 그는 1901년 현 마산시 오동동의 이 지방 첫 신자인 김 달시시오 집에 거처하면서 범골(현 마산시 완월동)에 대지를 구입하여 초가 3간의 임시 성당을 세워 마산 본당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창립 당시 초대 본당 회장으로 최계영(요셉)이 임명되었다. 당시 완월동 근처는 몇 채의 가옥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을 뿐 황무지나 다를 바 없었다. 2대 마산 본당 주임신부는 무세(Mousset, 文濟萬) 신부였는데 그는 1902년 마산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이후 10년간 서부 경남지방을 전교하면서 현 수녀원 뒷터에 초가 5간의 성당을 새로 지어 교세 확장에 노력하는 한편 교회의 인재 양성을 위하여 1910년에 사립 성지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가 발전하여 1947년 성지여자중고등학교가 되었으며, 다시 1954년에는 성지 유치원을 개설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또한 1931년에는 교구의 사제와 수녀들을 위한 휴양소가 될 사제관, 수녀원 신축공사가 시작되었고 샤르트르 수녀회가 초청되었다. 1952년에는 마산시내 남성동(南城洞)에 새로운 본당을 분리 신설시킨 후 본당명을 신마산 본당으로 바꾸고, 그 뒤 다시 현재의 명칭인 완월동 본당으로 개칭하였다. 이 본당이 창설된 후 80여년, 현재 본당 주임신부는 20대에 이르고 있다. 그중 제4대 베르몽(Bermond, 睦世英) 신부는 1914년에 부임하여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3년 일제에 의해서 연금될 때까지 성당을 석조로 신축하고(1932년) 수녀원을 세우는 한편 교육에도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베르몽 신부는 다시 이 본당에 부임하여 3년간 전교에 힘썼다. 1966년 마산교구의 설정으로 이 본당은 임시 주교좌 성당이 되었는데 1975년 12월 14일 완월동 246의 16번지에 현 성당을 준공,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날이 신자수가 격증하여 지금까지 함안, 진영, 진해, 남성, 월남 본당을 분리 독립시켰으며 현재 임상엽(林常葉, 마르코)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다. 1983년말의 신자총수는 3,300명에 1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② 1929년 평남 강서군 성태면 원당리(元塘里)의 마산시장(馬山市場)에 창설되어 1950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녀 안나. 마산지역은 1895년 평양에서 성세성사를 받고 귀향한 현승구(玄昇九, 시메온)에 의해 처음으로 전교되어 1901년 공소(公所)로 설정되었고, 그 후 1923년 메리놀회가 평안도 지방을 담당하게 되자 1926년 본당으로 승격되어 강서군(江西郡), 대동군(大同郡), 평원군(平原郡)의 일부 지역을 관할하며 12개의 공소를 두었다.

부드(Booth, 夫)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마련하고 1928년까지 사목했고, 클리어리(Cleary, 吉)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부임, 성당과 공소강당들을 개축하고 전교와 교세확장에 주력하여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후 1934년 성당이 신축되었고 이어 1935년에는 강서(江西) 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평양교구 내의 모든 메리놀회 성직자들이 일제에 체포 구금되고 평양교구가 한국인 성직자들로 재조직되자 이듬해 2월 강현홍(康賢洪) 신부가 7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1944년까지 일제말기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본당의 자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광복이 되고 북한지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전 교회가 박해를 받게 되어 1950년 6월 24일 8대 주임신부 강영걸(康永杰) 신부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됨으로써 마산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마산본당의 신심단체로는 공소시절 조직된 인애회(仁愛會), 부인단체인 안나회, 가톨릭청년회, 가톨릭운동연맹의 지회와 분회, 본당 자치기구인 교무위원회 등이 있었고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는 1932년 3대 주임 코너스(Conners, 權) 신부가 세운 성요셉 학원, 1933년 4대 주임 캐롤(Carroll, 安) 신부가 세운 양로원과 시약소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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