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한] 馬山敎區

마산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일부 지역을 관할하는 교구. 1957년에 대목구(代牧區)로 승격된 부산 교구(釜山敎區)에 속해 있던 마산(馬山) 지방은, 날로 그 교세가 늘어남에 따라 1966년 2월 15일에 부산 교구의 일부 지방을 떼어, 마산 교구로 독립하였다. 이 때 <가톨릭시보(時報)>의 편집인이던 김수환(金壽煥) 신부가 초대 교구장에 임명되었고, 김 교구장은 그 해 5월 31일에 주교 성성식을 갖고, 새로 설정된 교구의 기반을 닦는 일에 전심하였다.

그러나 1967년 3월 27일에 서울 대교구의 노기남(盧基南) 대주교가 사임하고 수원 교구장이던 윤공희(尹恭熙) 주교가 서리로 서울 교구장직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1968년 4월 27일에 마산 교구장인 김수환 주교가 서울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에 공석이 된 마산 교구장에는 1968년 8월 3일에 장병화(張炳華) 신부가 임명되어, 그 해 10월 7일 성성식을 갖고, 정식으로 교구장에 취임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산 교구의 관할지역은 마산(馬山), 창원(昌原), 진주(晉州), 진해(鎭海), 충무(忠武), 삼천포(三千浦) 등의 6개 시(市)와 거창(居昌), 함양(咸陽), 합천(陜川), 진양(晉陽), 사천(泗川), 고성(固城), 남해(南海), 의령(宜寧), 산청(山淸), 하동(河東), 통영(統營), 함안(咸安), 의창(宜昌), 거제(巨濟), 창녕(昌寧), 김해(金海)군 일부, 밀양(密陽)군 일부에 걸쳐 있는데, 1982년 말 현재 교세를 살펴보면 신자수 6만 7,514명, 본당 41개소, 공소 101개소, 한국인 신부 58명, 외국인 신부 6명, 외국인 수사 9명, 한국인 수녀 141명, 외국인 수녀 10명, 남자 수도단체 3개, 여자 수도단체 16개, 병원 1개소, 양로원 1개소, 나병 수용소 1개소, 유치원 19개소,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2개교, 주일학교 39개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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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치오 [원] Masaccio

Masaccio(1401-1428). 이탈리아의 피렌체파 화가. 원명은 Tommaso Guidi.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산 조반니 발다르노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죽었다. 마소리노(Masolino da Panicale, 1383?-1447)의 제자로서 로마의 산 클레멘테 성당 및 피렌체의 Santa Maria del Carmine 대성당에 있는 브란카치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작업에서 스승을 도왔으며, 이후 스승의 화업(畵業)을 계승하였다. 특히 브란카치 성당의 <낙원추방>, <희사금>(喜捨金) 등 벽화와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의 벽화 <성 삼위일체> 등이 그의 주요 작품이다. 치마부에(Giovanni Cimabue), 지오토(Giotto de Bondone)가 이룩한 극적 정신의 조형화(造型化) 전통을, 새로운 르네상스적 합리주의적인 공간표현 속에 회복 · 통일시킨 기념비적인 구성, 빛과 명암(明暗)의 표현에 대한 뛰어난 감수력, 독립된 실재(實在)로서의 물상(物象)의 재파악과 같은 조형적 집성(集成)에 의해 15세기 사실주의 확립자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의 성전인물(聖傳人物)의 의지(意志)나 정념(情念)의 박진적 표현은 뒤이어지는 르네상스 회화의 인간적인 전개방향을 예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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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탱 [원] Maritain, Jacques

Maritain, Jacques(1882-1973).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가톨릭 철학자. 블르와(Leon Marie Bloy)의 감화로 1906년에 가톨릭에 귀의하였고, 1940년 이후에는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1945년부터 1948년까지는 프랑스의 바티칸 주재 대사를 역임하였고 그 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형이상학 서론≫(Elements de philosophie), ≪인권과 자연법≫(The Rights of Man and Natural Law) 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자연법과 인권≫(김창수 역), ≪인간과 국가≫(한용희 역) 등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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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수녀회 [영] Franciscan Missionaries of Mary [한] ∼傳敎者∼修女會 [라] Congregat

1877년 1월 6일 마리 드 라 파시옹(Marie de la Passion) 즉 샤포탱(H l ne Chappotin)에 의해 인도 오타카문드(Otacamund)에서 창설된 수도회. 1958년 6월 27일 한국에 진출하였다. 관상(觀想)과 사도직을 통해 전교에 헌신하기 위한 본회의 명칭은 1882년 12월 8일 성 프란치스코 수도 3회에 가입할 때 마리아의 전교자 수녀회에서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로 개칭하였고, 1885년 교황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았다. 1954년 노기남(盧基南) 주교의 초청으로 내한하려 했으나 중국에서의 수녀원 추방운동으로 1958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진출하였다.

1960년 5월 부산 양정동(楊亭洞)에 정착하여 성모의원과 함께 수예실을 운영하였다. 1975년 2월에는 부산 성보의원을 폐쇄하고, 의료 혜택이 더욱 필요한 강원도 정선(旌善)으로 이전하여 1976년 5월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개원하였다. 한편 부산에서는 1961년 3월 성모여자중학교, 1964년 성모여자고등학교를 개교했으나 1974년 성모여중을 폐교하고, 1979년 6월 성모여고를 부산교구에 이관하였다. 1966년 서울 가리봉동에 수녀원과 의원건물을 완공함으로써 모두 이전하여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고, 1974년에는 부산에 있던 수련원도 서울로 이전하였다. 1972년 일본관구 소속에서 준관구(準管區)로, 1978년 정식 관구로 승격되었다. 1979년에는 원래 학교부지로 매입했던 곳에 선화기숙사(善花寄宿舍)가 완공되어 5월 1일 첫 기숙생을 입사시켰다. 현재 한국 관구 본부가 있는 서울 가리봉동 수녀원을 비롯하여 부산 양정동 수녀원, 강원도 정선 수녀원에서는 관구장 수녀를 비롯한 65명(1983년말 현재)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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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한] ∼姉妹會 [영] Little Company of Mary

1877년 7월 2일 메리 포터(Mary Poter) 수녀에 의하여 영국 노팅검(Nottingham)에서 창설된 수녀회. 1963년 11월 23일에 한국에 진출하였다. 낡은 공장 터에서 시작된 초창기에는 주로 임종 중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시작하여 가난한 형제자매들과 함께 고통을 몸소 나누는 것을 기본정신으로 하여 1886년 5월 교황청의 정식인가를 받았다. 1963년 당시 춘천교구장 퀸란(Thomas Quinlan) 주교의 요청으로 호주관구 소속 마크 메이어(St. Mark Maher) 수녀 외 2명의 수녀가 내한하여 강원도 지방에 정착,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65년 3월 15일 강릉(江陵) 갈바리 의원을 개원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고, 1973년 11월 20일에는 포천(抱川) 평화의 모친 의원을 개원한 뒤 1980년에는 치과를, 1981년에는 지체부자유자를 위한 물리치료시설을 개설하였다. 1974년 11월 15일에는 서울분원을 신설하고, 1975년 현 서울 후암동으로 이전하였다. 현재 서울 · 강릉 · 포천에 분원이 있으며, 원장 마리 데레사 나일론(Marie Therese Nilon) 수녀를 중심으로 9명(1983년말 현재)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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