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복음서 [한] ∼福音書 [라] Evangelium secundum Joannem [영] The Gospel according to Joh

1. 복음 : 요한의 복음서에는 “복음”(euangelisthai, evangelion)이라는 용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 복음서야말로 복음서 중의 복음서이다. 복음은 본시 문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산 말[口傳]로 전해졌다. 그것은 원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사자(使者)로서 이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었다(이사 52:7 참조). 그러나 원시 교회는 이 복음을 부활사건이 있는 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 하느님 오른편에 높이 거양(擧揚)되신 메시아시며 주(主)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말씀으로 알아듣게 되었고(사도 2:36, 5:42, 로마 1:1-4 참조), 훨씬 후에야 서면으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우리는 복음서라고 부른다.

요한의 복음서는 원시교회의 이 예수 전승(傳承)을 충실히 따르며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복음서 전반부(1-12장)에 수록하였고, 복음의 핵심인 예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후반부(13-21장)에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시며 하느님의 아들임을 믿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요한 20:30-31 참조).

2. 공관복음서와의 관계 : 요한복음은 공관복음(共觀福音)[마태오, 마르코, 루가]과 복음서라는 관점에서는 거의 같지만 내용 면에서는 크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로 두 복음서간의 지리적 순서나 연대적 순서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공관복음서에는 예수의 활동이 갈릴래아 지방에서 시작하여 유대지방을 거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완성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데 비하여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전교활동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수시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며,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활동이 예루살렘에서 단 한 번의 빠스카(해방절) 축제를 맞이하여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빠스카 축제를 지낸 것이 적어도 세 번(2:13, 6:4, 11:55)은 기록되어 있으므로, 예수의 포교활동이 3년을 지속된 것으로 나타난다. 둘째로 복음서의 구성과 문체도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공관복음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단편적으로 많이 수집하여 전하는 데 비하여 요한복음은 예수의 기적[징표, Semeion] 몇 가지만 선별하여 그것에 예수의 담화(談話, discourse)와 나란히 연결시켜 복음을 전개해 나아간다. 셋째로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에 비하여 예수의 행적이 적게 전해지는 것이 사실이나, 공관복음에는 전연 전해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이 전해지고 있다. 즉 가나의 혼인잔치(2:1-11), 니고데모와의 대화(3:1-11), 사마리아 인과의 대화(4:5-42), 라자로의 부활(11:1-57),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13:1-19) 그리고 최후만찬 때의 긴 이별의 담화(13:31, 17:26) 등이다.

그러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공관복음을 알고 있었을까?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을 자기 복음의 자료로 인용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 전승과는 독립된 자기 고유의 전승에서 온 것이며, 간혹 두 복음 사이의 같은 내용이 발견되는 것은 공관복음을 자료로서 인용해서가 아니라, 그 이전 구전으로 전해질 때의 상태에서 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전승과 편집 : 19세기까지 요한복음은 한 사람의 작품으로 간단히 생각되어 왔으나, 오랜 연구를 거듭한 결과 이 복음서는 긴 세월을 두고 서서히 완성된 작품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어떤 부분은 전승 초기에 이미 형성된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전승 후기의 발달된 신학을 반영하는 것도 있다. 이처럼 생성 연대와 배경으로 다른 전승이 저자의 신학으로 집중되어 성숙하며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 저서는 본질적으로 한 사람의 작품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그러면 이 복음저자가 자기 복음서에 사용한 자료가 이미 서면(書面)으로 고정된 문헌이었을까? 우리는 단지 기적의 자료만 서면으로 된 것으로 보고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진 전승에서 왔다고 본다. 그 중에도 예수의 어록(語錄, logion)과 담화는 전승 초기에 이미 형성된 것으로 본다. 그밖에 원시교회의 예전에 사용되었던 ‘말씀(Logos)의 찬가’(讚歌)(요한 1:1-18)와 요한의 교회에 전해지던 ‘복음선포’(Kerygma)(예컨대 요한 6:31-58) 등이 이 복음서에 들어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복음서의 전체적 구성과 신학의 내용은 이 복음저자의 것이지만 그는 이 복음을 완성하지 못하였고, 요한복음의 21장을 추가한 그의 제자가 이 복음서를 출간한 것으로 생각된다.

4. 저자 : 교회에 전해 오는 오랜 전승은 요한복음의 저자를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12제자 중 하나였던 요한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파피아스(Papias)(에우세비오, ≪교회사≫, Ⅲ, 39:3-4), 이레네오(Irenaeus)(≪반이단론≫, Ⅲ, 1:1) 그리고 무라토리(Muratori) 단편(K. Alad, ≪4복음서 공간≫, P.533 참조)은 이미 2세기에 이를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이 전통적 견해에 이이가 제기되었다. 공관복음서에 비해 요한복음은 그 내용이나 신학이 너무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12사도 중 하나인 요한이 이 복음서의 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복음서는 역사적 사건의 목격증인의 것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한의 복음서 문제’ 중의 하나인 이 저자문제도 그 후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여러 가지가 밝혀졌으나 아직 많은 점이 어두움 속에 묻혀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우는 바이다.

요한의 복음 선포는 맨 처음 간결한 것이었고 구전으로 전해졌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많아지면서 서면으로 전해지기 시작하여 완전한 복음서를 집필할 결심을 하고 전승 속에 전해지는 여러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여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비서를 채용하여 그에게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을 주어 이 저작을 완성케 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전해진 요한의 복음서를 출간한 사람으로서 21장을 첨가하고, 5장과 6장의 순서를 바꾸었다. 요한복음의 저자를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또 다른 제자’라고 불렀던 요한의 제자로 생각된다. 요한복음서의 완성 연대는 100년경을 보이며 저술 장소는 소아시아로 추측해 본다.

5. 사상적 배경 : 요한의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 시대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첫째로 요한복음에 영향을 준 것은 구약성서이다. 요한의 구약성서를 분명하게 인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19곳이나 인용하고 있으며, 특히 지혜서(智慧書)계 문헌의 주제들, 예컨대 물, 천상의 양식, 목자, 포도, 성전 등이 자주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요한은 구약을 깊이 묵상하고 있으며 그 사상을 자기 그리스도론의 자료로 삼고 있다. 둘째로 그 시대의 유대사상과의 접촉이 나타난다. 그 일부는 유대적 헬레니즘사상이고 또한 부분은 바리사이-랍비적 유대사상이다. 그리고 특기해야 할 것은 근자에 발견된 쿰란(Qumran)문헌과 요한복음 사이에 유사점이 많이 발견되는 점이다. 셋째로 그 시대에 널리 전파되어 있던 영지사상(靈知思想, Gnosticism)과는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과 유사한 점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영지사상의 문헌으로 cospus hermeticum(1, 13장)과 Manda문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요한복음의 logos와 비슷한 개념이 hermeticum(I, 5-6)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문헌 XIII장에는 ‘새 생명으로 태어남’의 신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요한복음과 비슷하게 구원을 주는 ‘계시’, ‘인식’, ‘직관’에 관한 언급이 있다. 그리고 Manda문헌에 나타나는 ‘구세주 신화’에 있어서 그 골격을 이루고 있는 구세주 즉 계시자의 이 지상에로의 하강과 다시 천사에로의 승천의 구조 속에 영지주의적 이원론적 개념(생명과 빛, 진리와 허위, 계시자와의 일치, 세상과의 이별)이 등장하는데 이 점이 요한복음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사점이 곧 요한복음 사상의 원류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6. 신학 : 요한복음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요한의 신학사상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리스도론(Christology)이라고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론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으므로 그 속에는 구원론(soteriology)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그 믿음으로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요한 20:31). 그리고 요한복음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예수의 기적과 자기 계시인 ‘말씀의 계시’는 한결같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으로 인도하고 있다. 예수는 ‘세상의 구원자’(요한 4:42)이기 때문이다.

이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 요한은 그 시대의 이원론적 세계관의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즉 암흑과 죽음의 이 물질적 지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를 광명과 생명의 저 영적인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구세주이며 계시자인 예수를 ‘얻고’, ‘알고’, ‘고백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의 구원은 ‘기현화 종말론’(旣現化 終末論, realized eschatology)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그의 그리스도가 종말론적으로 현존하는 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원은 교회(Ecclesia)를 통하여 이 세상에 실현되고 있고, 구체적으로 교회의 성사(sacraments)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金炳學)

[참고문헌] C.H. Dodd, 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 Cambridge 1953 / C.H. Dodd, Historical Tradition in the Fouth Gospel, Cambridge 1963 / R. Bultmann, Das Evangelium des Johannes, Gottingen 1957 / R.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I-XII(1966), XIII-XXI(1970), Garden City, N.Y / R. Schnackenburg, Das Johannesevangelium I(1967, II(1971), III(1975), Frei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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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묵시록 [한] ∼默示錄 [라] Apocalypsis Beati Joannes Apostoli [영] Book of Apocalypse

묵시록(黙示錄), 즉 “말없는 가운데 비밀을 나타내 보인다”는 우리말 표현이 성서의 마지막 책의 이름이다. 원래 이 표현은 그리스 말 apocaluptein, 다시 말해 ‘가리는 너울, 혹은 베일을 벗기다’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이다. 그러므로 묵시록은 하느님의 비밀을 갖추고 또 가리고 있는 베일을 벗기는 책(revelatio)인 것이다. 묵시문학은 구약의 예언문학에서 출발한 성서의 매우 독특한 전통에서 연유하고 있으니, 예언자들의 신탁(神託)에 관한 일종의 재해석(re-interpretatio)이라고 규정할 수가 있다. 또 묵시문학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성서와 성서주변문학에서 나타나고 있으며(다니 7-12장 참조), 그 문학의 선구자들로서는 에제키엘, 요엘, 즈가리야와 이사 24∼27장의 저자 등을 손꼽을 수가 있다.

묵시록의 문학유형은 매우 난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탁과 현시(顯示, visio), 하늘세계를 묘사하는 풍부한 이미지, 은유, 환유, 상징들이 묵시록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전혀 차원이 다른 하느님의 세계와 영원으로부터 준비한 인류역사에 대한 하느님의 비밀과 그분의 결정적인 승리에 대한 계획을 묘사하는 것이 묵시록의 대상이다. 이 같은 문학유형의 의도는 우주나 인류의 역사가 통째로 하느님 왕국의 긴박한 도래(到來)에 의해 변혁, 결정되며 또 시간의 마지막에 대한 비전은 새로운 창조와 맞먹는다는 것에 있다. 시련과 유혹 그리고 알력의 때인 현시대는 종국적으로 하느님의 질서에 의해 대치될 것이다. 또 하느님은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요 심판자인 까닭에, 인간의 구원은 창조의 한 ‘케이스’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은 구원이 완성되는 ‘주님의 날’을 위해 인내로이 깨어 있으며 또 그날의 선택받은 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 하느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한의 묵시록은 묵시문학의 유형과 구조를 사용하고 있지만 매우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묵시록의 중대한 일부인 2-3장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이 편지들은 묵시문학의 형식보다는 예언자들의 설교양식을 취하고 있다. 편지의 발신자는 자기의 이름을 밝히고 수신자인 동시대인들에게 설교형식을 통해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요한의 묵시록은 종교사에 관한 독특한 해석과 그 주요 관심사 때문에 여타의 묵시문학과는 구별된다. 시간의 마지막에 대한 요한적 비전은 초대교회의 신학적 확신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다. 유태교적 묵시문학이 기다리고 있던 ‘새 시대’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시작되었다. 마지막의 때[終末의 시간]는 이미 시작되었고 또 그때의 하느님의 선물 곧 모든 인간들에게 내리신 성령(사도 2:16-21 참조)은 전달되었으며, 그리스도 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부활한 사람이다. 하지만 왕국의 도래는 비밀스럽게 성취되고 있으니, 이 신비가 계시의 대상이기에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왕국은 그 영광의 현시를 지향하는 완벽한 실현을 기다리고 있다. 역사에 대한 이 같은 비전은 묵시문학의 주제인 ‘주님의 날’을 이중적으로 수식한다. 이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사건과 그분의 최상주권을 지적한다. 또 이날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 왕국의 보편적이고도 찬란한 현시의 날(Parousia),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날을 지적하고 있다. 이 두 날의 긴장감 속에서 교회의 때가 전개된다. 교회는 현시대의 때 안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종말의 실제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묵시록의 저자는 누구이며 그 책의 사건을 유발시킨 시대적 상황은 어떠한가? 불행히도 묵시록의 저자는 자신의 정체를 뚜렷이 밝히지 않고 있다. 저자는 자기의 가명을 요한이라 밝히고 있지만 스스로를 예언자로 소개한다(1:1 · 4 · 9, 22:8-9). 이 책의 어느 곳에서도 저자는 자신이 열두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인 넷째 복음의 저자 요한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성서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오늘날 그들의 대부분은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받은 에페소 교회의 편집자들의 손에 의해 묵시록이 쓰여졌다고 보고 있다. 묵시록의 수신자들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1:3 · 11, 2-3장)인데 그 교회들의 소재는 소아시아의 지방에 해당하고 그 지방의 수도는 에페소이다. 일곱의 숫자는 완벽성을 뜻한다. 하여 묵시록의 저자는 단순히 아시아의 일곱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전체 교회에 자신의 묵시적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이다. 묵시록이란 책의 사건을 유발시킨 시대적 배경은 아직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혹자는 묵시록의 연대를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인 박해와 예루살렘 멸망을 선행하는 시대(기원후 65∼70년)로 보는가 하면 어떤 이는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섬겨야 한다”고 선포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의 치세 도중, 그러니까 기원후 91∼96년 사이에 그 책이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화제 숭배를 증언한 프랑스 리용의 교부 이레네오에 따라 오늘날 대부분 성서학자들은 둘째 번의 연대규정을 선택하고 있다. 묵시록이 주 예수의 왕국과 로마 황제의 신성 모독적인 왕국 사이의 적대관계를 매우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묵시록은 박해와 위기의 시대에 쓰여진 책인 것이다.

묵시록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고 그 해석 또한 심히 어렵다. 하지만 우리의 손에 전해진 오늘날의 묵시록 본문들은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독자는 이 책이 2부로 나뉘어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제1부는 예언자적 기질을 지니고 있으니, 그 형식은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들’(1:9-3:22)로 나타나고 제2부는 엄격하게 묵시적 형식(4:1-22:5)을 취하고 있다. 제2부는 또 다음의 묵시적 주제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마지막 때의 전조(前兆)(6:1-11:19), △ 현시대의 시련과 대결투(12:1-20:15), 완성과 마지막의 현시(21:1-22:5). 이 도식은 또다시 일곱 숫자의 놀이로 복합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일곱 개의 인장, 일곱의 나팔과 잔이 그것이다. 일곱의 숫자 사이에 예언자의 비전들이 끼여들고 있으니, 수많은 암시, 구약본문들의 요약, 교회와 현시대의 신비에 대한 예언자의 명상록 등이 그 내용이다. 이 내용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대부분의 묵시록 주석가들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이 비전들의 대구법(對句法)을 감안하여 그것들의 수사학적(修辭學的) 구조에 유의하고 있다. 묵시록의 편찬자들은 이 비전들을 통해 언제나 변함없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적 가르침을 여러 가지 형태로 설명하며 재조명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학형식과 복잡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묵시록의 메시지와 그 현실성은 놀랄 만큼 명백하다. 모든 예언자들의 메시지처럼 묵시록은 하느님 계획의 현실성을 선포하고 이와 연관시켜 우리들의 긴박한 참여를 강조한다. 이 선포는 ‘현시대’의 시간과 그 시간의 완성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하느님의 창업은 이미 그 마지막 단계에 와 있으니, 인류는 이제 그 창업(創業)의 현시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1:7, 22:20). 이미 그리스도는 승리했고 그의 왕국이 창시되었다. 예수님이 구세주요 하느님이 세우신 우주와 인류역사의 주님이시다(5:5-14, 11:15-17, 12:10, 1911-16). 오늘의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시대 안에 살고 있고 구원의 선참(先參)과 심판의 전조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사건 앞에 불행히도 인간들은 서로 화해가 불가능한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승리에 가담하고 메시아적 백성의 실현인 바 하느님의 백성을 구성한다(7:9-17, 14:1-5, 15:2-4, 17:4, 19:1-9, 20:4-6). 하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에게 저항하는 불경자들이다. 묵시록은 이들을 ‘땅의 주민들’이라 부르니, 사탄의 사주에 놀아나는 자들로서 사탄처럼 저주받은 사람들이다(6:15-17, 9:20-21, 13:7-8과 14-17, 14:9-11, 17:8-14, 18:9-19, 19:19-22, 20:7-9). 교회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위격과 업적에 연결되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선택한 공동체요 그분 사랑의 대상이다(1:56, 3:9, 7:3-4, 12:6, 19:7-9).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공동체이다(1:56, 5:9, 7:14, 14:3-4). 또 교회는 그리스도 왕국의 시작이요 왕과 사제다운 백성이다(1:6, 5:10, 7:15, 20:4-6). 이 같은 특성들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운명과 실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성실한 증인’으로서 예언자였으니(1:5, 3:14, 19:11) 교회도 이 세상 안에서 증언을 하는 거룩한 공동체이다.

교회도 그리스도처럼 예언자적사명을 수행한다(11:3-6, 12:17, 19:10, 22:9). 그리스도는 당신의 증언을 수난으로 완성했으니, 하느님의 원수인 세상의 적대 세력에 부딪쳤기 때문이다(1:5, 5:6). 교회도 그리스도처럼 시련과 투쟁, 순교를 통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은 묵시록의 진리를 그들의 피소리로 증언하고 있다(6:9, 7:14, 11:7-10, 12:2 · 4 · 11 16:6, 18:24, 20:4). 그리스도는 승리하신, 부활하신 분이다(1:5 · 18, 5:5, 12:5, 17:14, 19:11-21).

교회는 이미 그분의 승리에 참여하고 있으니, 그 교회가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다고 말해야 한다. 교회가 부활의 발단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6:11, 7:16-17, 11:11-12, 12:11, 17:14, 20:4-6). 그리스도는 영광과 최고주권자이시다(1:5 · 12-16, 19:16). 그런 이유로 교회는 이미 사제적 왕국이다. 교회는 이 세상 안에서 경신(敬神)과 예배를 통해 천상의 전례(典禮)를 구현하고 있다. 교회의 전례는 곧 나타날 천국의 승리를 예시한다(7:9-12 · 15, 14:3, 20:4 · 6). 이리하여 현시대 안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양한 신비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천주의 어린양이 가시는 모든 곳을 따라 다닌다(14:4). 어린양의 길이 모든 그리스도 교인들의 윤리적 영성적 귀감인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안에서 그분을 성실하게 증언해야 한다(1:3, 2:10 · 13 · 26, 3:8, 14:12, 22:7 · 9). 교회는 이 지상생활에서 유형의 처지에 있는 공동체다. 그렇지 못하면 교회는 세상의 빛도 소금도 아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유형지에 와 있다는 것의 명백한 증거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 시련 때문에 하느님의 보호를 보증받고 있으니, 교회가 이미 부활의 시초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시련과 영광의 처지 안에서 교회가 취할 태도는 진리에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 끝까지 진리를 증언하는 것은 예언자들의 성실성이다. 피의 순교를 마다하지 않음은 증언의 특수형식이라 할 수 있다(1:9, 2:2 · 3 · 10, 3:10-11, 13:10, 14:12). 교회는 탈출(脫出) 애굽의 길 위에 있다. 그의 길은 험난하고 목마른 사막의 길이다. 하지만 그 해방의 길이 지향하는 터미널은 교회의 참다운 조국, 곧 천상 예루살렘이다. 교회는 그 천상수도(天上首都)의 왕, 곧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동녀들이다(마태 25:2). 비록 현시대의 시련이 냉혹하더라도, 우리의 조국과 왕의 나라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이유로 교회는 현재의 시련과 미래의 결정적인 승리의 긴장 안에서 모든 희망의 기수인 것이다. “오소서! 주 예수님!”의 외침은 이 불굴의 희망을 증언하고 있다(6:10, 10:7, 11:17-18, 12:10-12, 15:3-4, 19:7-9, 20:3-4, 22:17 20).

이 메시지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와 각자에게 호소력과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천상 예루살렘과 그 왕의 재림은 ‘인민의 아편’이 아니다. 교회와 그 안의 각 인간은 부활의 보증을 받은 이상 매 순간 그 부활의 사랑과 정의대로 행동하고 처신해야 한다. 신도 각자는 매 순간 이 세상의 우상숭배와 그 뒤에 숨어 있는 사탄과 싸워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른다 함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현시점의 시간의 중대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교회와 그 신도들의 매일매일의 삶은 세상의 죄와 타협할 수가 없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선다는 것은 지금 또 여기에서 전적인 투신과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나의 현존을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전망 안에 둔다”는 것은 주 예수가 역사의 원칙이요 목적임을 의미하고 있으니, 지상적 실제들이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상대적이란 뜻이다. 또 묵시록은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강조하고 있다. 전례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그분을 파스카의 주님으로, 천상 예루살렘의 다시 오실 주님으로 상징화한다. 오늘의 교회가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께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장차 도래할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그리며 지내는 ‘초대받은 사람들의 행복’(묵시 19:9)을 상징화하고 있는 전례인 것이다. (徐仁錫)

[참고문헌] A. Bisping, 1876 / E.B. Allo, Paris 1921 / A. Wikenhauser, Regensburg 1949 / J. Sickenberger(2hg), 1942 / J. Bonsirven, Paris 1951 / E. Schik(Echter Bible), Wurzburg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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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기사수도회 [한] ∼騎士修道會 [영] Hospitalers of St. John of Jerusalem

11세기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생겨난 기사수도회로 십자군 원정 때 순례자를 보호하고, 병자를 간호하였다. 최초의 명칭은 ‘예루살렘 요한 기사수도회’라 불렸다. 이들 중 일부는 군인수사, 일부는 의사와 간호를 담당하는 간호수사들로 이뤄져 있었다. 1310년 이후 ‘로드스 기사단’(Knights of Rhodes)라고 불리다가 1530년 이후는 ‘말타 기사수도회’(Order of Knights of Malta)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십자군 원정이 끝나면서 군사부분을 담당하는 수사들은 없어지고, 간호부분을 담당하는 수사들만이 남았다.

한편 요한 기사수도회 이외에도 hospitallers라고 불리는 몇몇 병자간호수도회가 있다. 예컨대 1572년에 인가된 ‘요한병원수도회’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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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2 [라] Joannes

Joannes 1세(?∼526). 교황(재위 : 523∼526). 성인. 순교자. 축일은 5월 27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태생. 교황이 된 후 동(東)고트족의 왕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에게 강요당하여 콘스탄티노플에 가서 동로마황제 유스티누스 1세가 자기 나라 안의 아리우스파(派) 동고트인(人)에 대해 오래된 이단법(異端法)을 가혹하게 적용한데 대해, 황제가 탈취한 여러 성당을 그들에게 반환하고, 가톨릭 신자가 된 고트인들이 형벌을 받음이 없이 아리우스파로 복귀하는 것을 허가하도록 절충하였다. 탈취되었던 여러 성당을 반환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라벤나로 귀환 직후에 테오도리쿠스에 의해 투옥 당한지 며칠만에 죽었다. 디오니시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의 추천에 의해 성 요한 1세는 알렉산드리아식의 부활절일 산정(算定)을 로마교회에 도입하였다.

Joannes 23세(1881∼1963). 교황(재위 : 1958. 10. 28∼1963. 6. 3). 원명은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 1881년 이탈리아 베르가모(Bergamo)의 소토 일 모테(Sotto il Monte)에서 출생하여 1904년 사제서품되고, 라디니 테데스키(Giacomo Radini Tedeschi) 백작이 베르가모의 주교로 임명된 동안(1905~1914) 그의 비서 겸 신학교수로 근무하였다. 뒷날 비오 11세가 된 아킬레라티와 친분을 맺었고, 1차 세계대전 후 교황청에서 행정업무를 맡기도 하였다. 1925년 아레오폴리스(Areopolis)의 명목상의 대주교 및 1935년 불가리아의 대목으로 임명되었다. 불가리아 · 그리스의 교황 사절, 파리주재 교황청 대사(1944∼1953년)를 거쳐 1953년에는 사제추기경으로 임명, 1958년 비오 12세에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최초의 업적은 23명의 새 추기경을 탄생시킨 일(1958. 12)인데, 1962년까지 87명으로 늘어났다. 1959년 추기경들에게 세 가지 과제를 제출, 로마를 위한 교구 시노드와 일치공의회를 개최하고 교회법전의 개정 등을 제안하였고, 1960년의 시노드는 로마의 지방문제를 토의하였다. 1962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의 재위기간 중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이 공의회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 교인의 일치라는 궁극적인 목적에서 교회의 종교생활을 쇄신하고 그 가르침과 조직을 현대에 맞도록 개혁한다는 취지를 펼쳤다. 이 밖의 괄목할 만한 개혁으로는 그리스 멜키테 총대주교 막시모스(Maximos) 4세의 호소를 받아들여 비잔틴 전례에서 모국어 사용을 허가하는 한편, 미사경본과 성무일도에 대한 새로운 전례법규를 인가(1960년), 미사법전에 성 요셉(St. Joseph)의 이름을 삽입하였으며, 교회법 개정을 위한 교황위원회를 구성(1963년)한 일 등을 들 수 있겠다. 또한 1960년 교회일치 진흥을 위한 사무국의 개설, 이듬해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의 대표가 참가하였으며 바티칸 공의회에도 비가톨릭 인사들이 참관인으로 초대되는 등 일련의 쇄신이 이어졌다. 한편, 15세기에 요한 23세라는 대립 교황(재위 : 1410∼1415)이 있었는데, 1947년 교황표에서 공식 말소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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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 [라] Joannes [영] John [독] Johannes [관련] 가르멜회

① 사도 ∼(J. Apostolus, ?∼100?). 12사도의 한 사람. 성인. 갈릴래아의 어부, 제베대오의 아들. 장(長)야고보의 동생(마태 4:21, 10:2, 마르 1:19, 3:17, 루가 6:14, 사도 1:13). 형 야고보와 함께 일찍부터 가업(家業)을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마태 4:21 · 22). 12제자 중에서도 베드로, 형 야고보와 함께 대표적 인물이며, 예수 생애의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고 있다(루가 8:51, 마태 17:1, 마르 14: 33). 타고 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벼락의 자식’이라 불릴 정도였지만(마르 3:17), 요한복음이나 편지 등과 관계가 깊다고 보고 ‘사랑의 사도’로도 일컫는다. 요한복음에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예수가 사랑하고 계신 자”(13:23)라는 것이 요한이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돌보아 드릴 것을 부탁 받았다(요한 19:26). 성신 강림 후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사도 3:1)과 사마리아(사도 8:14)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 81∼96)의 대박해 때 파트모스섬으로 유배되었다가 에페소로 돌아가 서기 100년경에 90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파트모스섬에서는 <요한 묵시록>을, 에페소에서는<요한복음>과 3서한을 썼다고 한다.

미술에서는 독수리 또는 안에서 뱀이 기어 나오려 하고 있는 배(杯)와 함께 복음사가로, 파트모스섬 위의 환시자(幻視者)로, 또는 펄펄 끓는 솥 속의 환시자로 묘사되고 있다. 축일은 12월 27일.

② 세례자 ∼(J. Baptista). 사제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의 아들. 예수의 사촌(루가 1:36). 세례자로 불리는 것은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권위에 의해서 세례의 새로운 의식, ‘회개의 세례’를 가르쳤기 때문이다(마태 3:13-17, 마르 1:9-11, 루가 3:21 이하). 그의 출생, 석녀(石女)의 잉태, 어머니 태내에서 이미 성령이 충만함, 할례(割禮), 명명(命名) 등이 천사(가브리엘)에 의해 성전(聖殿)에서 그의 부친 즈가리야에게 고해졌다(루가 1).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서 예수에 의해 증명되고(루가 7:28)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나지르 사람으로서 바쳐진 수행자(修行者)이며, 메시아의 선구자(先驅者), 선지자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루가 1:17, 마태 17:12 이하). 청년시절에 황야에서 기도와 고행으로써 자신을 준비하고 부름 받을 때를 기다렸다(루가 1:80).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재위 : 14∼37)의 재위 15년째인 28년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베타니아의 요르단 계곡으로 갔다(요한 1:28).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마태 3:2), 죄를 용서받기 위해(루가 3:3) ‘회개의 세례’를 받을 것을 전달하였다.

요한의 세례에는 원죄(原罪)를 사해줄 힘은 없다. 이 세례는 내심의 영성(靈性)을 상징한 것이며, 이것을 받으려면 내심의 개선을 필요로 한다. 이 세례는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회개에 의한 준비단계로서, 죄의 고백도 포함되어 있었다(마태 3:6). 그는 선교(宣敎)의 초기부터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면서, 장차 오게 될 메시아의 증인이 되었다(루가 3:15-18, 요한 1:19-28). 그는 장차 오게 될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마련하였다.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사양한 요한에 대해, 그리스도는 “모든 정의는 완수해야 한다”(마태 3:14)(예수는 죄인인 인류의 대표자로서 죄인처럼 세례를 받아야 하며, 그것은 구세주로서 완수해야 하는 의무라는 뜻)고 말하고 요르단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영세하였다. 요한은 자기 제자와 어떤 유다인이 세례에 관해 의논했을 때, 제자들에게 답하여,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신랑과 신랑의 친구의 비유를 가지고 그리스도에 관해 증명하고,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5-30)고 말하고 그의 선교를 끝마쳤다. 그 후 갈릴래아 분국(分國)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의 결혼에 대해 그 부도덕함을 비난했다가 체포되어 사해(死海) 동쪽 마케르스성(城)의 감옥에 투옥된 후 참수당하였다.

③ 십자가의 ∼(J. a Cruce, 1542∼1591). 성인. 축일은 12월 14일. 스페인의 신비가. 아빌라의 데레사(Teresa of Avila)와 함께 맨발의 가르멜회를 창설하였다. 폰티베로스(Fontiveros)에서 귀족 혈통을 이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563년 메디나 델 캄포(Medina del Campo)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살라만카(Salamanca)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567년에 서품받았다. 좀 더 엄격한 수도 규칙을 찾아 카르투지오회(會)의 수사(Carthusians)가 되려고 하였으나 아빌라의 데레사에게 설득되어 데레사의 개혁을 가르멜 남자수도회에 소개하고, 두루엘로(Duruelo)의 첫 개혁 수도회(맨발의 가르멜회)에 입회하였다. 그 뒤 알칼라 데 헤나레스(Alcala de Henares)에 있는 가르멜회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1570∼1572년), 아빌라의 강생수도원의 고해신부가 되었다(1572∼1577년), 그러나 1577년 개혁을 원하지 않는 수도원장 때문에 톨레도(Toledo)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갇혔으며, 9개월만에 칼바비오(Calvavio)의 수도원으로 도망침으로써 가르멜회는 맨발의 가르멜회와 이전의 가르멜회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는 베자(Baeza) 대학의 총장(1579∼1581년)과 세고비아(Segovia)의 소수도원장을 지냈으며, 1581년부터는 그라나다에서 아라비아의 신비주의와 접하였다. 이리하여 개인적인 체험과, 성서 및 토미즘을 바탕으로 하여 주석을 덧붙인 <갈멜산에 오름>(The Aseent of Mount Carmel),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 <영의 노래>(The Spiritual Canticle),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The Living Flame of Love) 등의 작품을 남겼다. 말년에는 선임자에게 불신을 받고 라 페누엘(La Penuel)의 탁발 수도회에서 우베다(Ubeda)로 쫓겨 가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 1762년 시성, 1926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 가르멜회

④ 몬테코르비노의 ∼(J. a Monte Corvino, 1247∼1328). 최초의 중국 선교사. 나폴리왕국 몬테 코르비노에서 태어나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다. 1289년까지 아르메니아와 페르시아에서 활동하다가 그 해 아르메니아의 왕 하이툰(Haitun) 2세의 사절을 대동하고 교황 니콜라오 4세를 만났고, 교황의 서한을 후대하여 다시 동방으로 갔다. 그 서한 가운데 하나가 몽고왕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1291년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에 도착하여 약 1년 동안 머무르면서 100여명을 개종시켰다. 1292년 바다를 건너 중국에 도착하였고, 1294년 북경에 입성하였다. 당시 북경에 인접한 산서성(山西省) 에는 네스토리우스파의 일파인 경교도(景敎徒)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과 논쟁하여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1299년에는 북경에 최초의 성당을, 1305년에는 제 2의 성당을 각각 건립하였으며, 신약성서와 시편을 번역하는 등 저술활동을 폈다. 1307년 교황 글레멘스 5세는 그를 북경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또 복건성(福建省)에 대성당과 수도원을 건립하고 교구를 설치하게 하였으며, 북경에도 수도원과 제3 성당을 설립하였다.

그가 죽은 지 약 40년 후인 1368년 몽고가 중국 땅에서 축출되면서 그가 활동한 중국포교지의 교회도 거의 소멸되었다. 1924년 상해 중국교회회의는 교황청에다 그의 시복을 신청하였다.

⑤ 천주의 성 ∼(J. a Deo, 1495∼1550). 성인. 원명은 Juan Ciudad. 포르투갈의 몬테 모로노보 태생. 파란 많은 생활을 한 뒤 스페인 카스틸랴의 오로프루사(Oroprusa) 백작의 목부(牧夫)가 되고, 이어서 1522년 백작 휘하의 병사(兵士)가 되어 스페인 프랑스 전쟁에 참전, 후에 헝가리에서 스페인 터키 전쟁에서도 싸웠다. 그 뒤 아프리카로 추방된 한 귀족의 하인이 되었는데, 아빌라의 복자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 덕행에 매료되었다. 1540년 그라나다(Granada)에 병원을 세우고, 영웅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병자를 돌보면서 의료봉사(醫療奉仕) 사업에 몸을 바쳤다. 그가 죽은 뒤 1589년 교황 식스토 5세의 인가를 얻어 ‘요한의 자비의 벗 모임’이 발족되었다. 1630년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시복(諡福), 1690년 알렉산데르 8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레오 13세는 1886년에 또한 비오 11세는 1930년에 각각 그를 병원 · 병자 · 간호인 등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였다. 축일은 3월 8일 그의 유골은 그의 이름을 붙인 그라나다의 동수도회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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