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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크리소스토모 [라] Joannes Chrysostomus
Joannes Chrysostomus(약 347∼407). 성인.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교회학자, 설교가의 주보(主保). 축일은 9월 13일. 안티오키아 출신. 이교 대가들에게서 법률, 철학 및 수사학을 공부, 안티오키아학파의 지도자 타르소의 디오도로(Diodore)에게서 신학을 배웠다. 은둔생활(373?~381년?)을 거쳐 381년 부제로, 386년에는 사제로 서품받았다. 은둔생활 중 자신에게 부과한 지나친 엄격성으로 건강을 해쳤으며, 서품 후 설교에 종사, 이 때 ‘황금 입’(크리소스토모) 즉 ‘금구’(金口)라는 뜻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도시 안티오키아의 개혁에 대한 설교, 교훈 및 일련의 신약성서 설교로 최고의 그리스도교 설교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398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되자 선임자 성 넥티리우스(St. Nectarius)에 의해 고무되었던 궁중, 성직자, 그리고 신자들에 대한 개혁에 착수하였다. 한편 그의 대담한 솔직성으로 오크(Oak) 교회회의(403년)에서 오리제네스의 신봉자라는 등 29개 죄목으로 단죄받게 되었다. 그의 적들은 여황제 에우독시아(Eudoxia)의 반감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그는 404년 교회 법정에서 파문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신자, 교황 성 인노첸시오(St. Innocentius) 1세 및 서방교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폰투스(Pontus)로 유배 도중 사망하였다. 개인적 성성뿐만 아니라 설교, 주석학, 전례적 개혁 등으로 유명한 그는 특히 설교에 있어 반복과 비약으로 구조가 허술해 보이지만 날카로운 지성과 그리스적 균형 감각,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과 청중에 대한 제어력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설교는 박수와 눈물로 자주 중단되었다고 전한다.
요한 카피스트라노 [라] Joannes Capistranus [이] Giovanni da Capistiano
Joannes Capistranus(1386∼1456). 성인. 프란치스코회 사제. 축일은 10월 23일. 이탈리아명은 Giovanni da Capistiano. 이탈리아 아브루치주(州) 카피스트라노에서 귀족의 아들로 유고슬라비아의 일로크(Ilok)에서 세상을 떠났다. 페루지아 대학에서 민법 · 교회법을 전공, 1415년 프란치스코회원이 되고, 1426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단 심문관으로서 오스트리아 · 헝가리 · 보히미아 등지를 다니면서 유태인 및 후스파(派) 등을 압박하는 한편, 다수의 청중 앞에서 설교, 교황 갈리스도 3세의 명을 받아 십자군을 일으켜, 1456년 베오그라드 전투에서 터키군을 격파하였다. 이로 인해 이슬람 교도는 유럽 침입을 저지당하였다. ≪Speculum Conscientiae≫의 저자이다. 생전부터 성인으로 숭배받았으나, 1960년 교황 알렉산데르 8세에 의해 시성 되었다. 1880년 교황 레오 13세는 그의 축일을 로마교회력에 올리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유럽의 사도’로서 숭앙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