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즈먼 [원] Wiseman, Nicholas Patrick Stephen

Wiseman, Nicholas Patrick Stephen(1802∼1965). 영국의 추기경,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스페인의 세빌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사망 후 일가는 아일랜드로 돌아왔다(1804년). 1818년 로마의 잉글리시 컬리지에 유학, 1824년 박사학위를 취득, 1827년 구약성서의 시리아판(版)을 번역 간행하여 동양학자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고, 로마대학 동양어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1828년 잉글리시 컬리지 학장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 영국 가톨릭 부흥운동인 ‘옥스퍼드 운동’의 기수들은 뉴먼(J.H. Newman), 프루드(R.H. Froude)의 방문을 받고 그 운동에 적극 가담하기로 하였다. 1835년 모국을 방문, 로마교회 신앙에 관한 일련의 강의를 함으로써 주목을 끌고, 뉴먼 등과 함께 옥스퍼드 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1840년 그는 런던지구의 대목(代牧) 및 버킹검의 오스콧 대학 학장에 임명되어 귀국, 1850년 추기경 및 웨스트민스터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영국의 가톨릭적인 종교 향상을 위해 계간(季刊) ≪Dublin Review≫의 창간을 도왔으며(1836년), 그리스도교 박해시대를 소재로 한 소설 ≪Fabiola, or the Church of Catacombs≫(1854년)는 널리 애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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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끼다 아사고로오 [한] 脇田淺五郞

脇田淺五郞(?∼?). 일본인 신부. 제2대 광주(光州) 교구장. 1941년 12월 일제(日帝)에 의해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뒤, 광주 교구장 맥폴린(McPoline, 林) 신부를 비롯하여 광주교구에서 사목중이던 아일랜드의 성 골룸바노회 선교사들이 일제 당국에 체포, 구금되자 1942년 2월 제2대 광주 교구장에 임명되어 1945년 8.15광복 직전까지 교구장으로 재직하였다. 광복 후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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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본당 [한] 甕津本堂

황해도 옹진군 옹진읍 온천리(溫泉里)에 이 본당은 자리잡고 있다. 1899년 10월 신천(信川)의 청계동(淸溪洞)본당의 빌렘(Wilhelm, 洪錫九) 신부가 옹진 본영(本營, 현재 北面 花山里)에 첫 공소를 열었다. 옹진지방은 청계동본당에 이어 장연(長淵)본당, 그리고 해주(海州)본당으로 그 관할 본당이 바뀌었다. 1939년 7월 해주본당 관할의 화산리(花山里)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고, 강원도 평강(平康)본당의 김피득(金彼得, 베드로)신부가 초대 사제로 부임하였다. 김 신부는 얼마 후 옹진읍내 중심지인 온천리에 성당과 신부댁을 마련하고 본당을 이전하였다. 1942년 김 신부가 강원도 이천(伊川)본당으로 전임된 후 옹진본당은 신부를 배정받지 못해 다시 해주본당 신부의 겸임관할을 받다가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8.15 광복과 함께 옹진읍 40리 북방에 38도선이 그어짐에 따라 옹진본당은 남한땅에 속하게 되고, 그 해에 신부가 공석중이던 옹진본당의 사제로 서울 주교관에 근무하던 방영석(方永錫, 요셉) 신부가 파견되었다. 방 신부는 1947년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하게 되자(그해 12월에 사망), 1947년 5월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부드(W. Booth, 夫), 치셤(D. Chisholm, 池) 두 선교사가 본당신부로 파견되어 전교하다가, 1948년 5월 부드 신부는 평택(平澤)본당 신부로 가고, 치셤 신부는 서울 주교관으로 전출하고, 후임으로 4대 유봉구(柳鳳九, 아우구스티노)신부가 부임하여 1950년 5월까지 재임하였다. 유 신부의 주요 일과의 하나는 전교활동 외에, 옹진 경찰서로 가서 월남하다 잡힌 교우들을 천주교 신자임을 확인해서 신원보증을 해주어 석방시키는 일이었다. 5대 이계광(李啓光, 요한) 신부는 부임한지 2개월도 안되어 6.25전쟁을 겪게 되었다. 6월 25일(일요일) 아침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성당 마당에 적의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이 신부는 성체를 급히 처리한 후 피난길에 올라 40리 떨어진 사곶리[沙串里]공소로 가서 그곳 도선장(渡船場)을 떠나는 후퇴 경찰관들이 탄 목선에 몇몇 신자들과 함께 편승하여 무사히 인천에 상륙하였다. 그 뒤 옹진읍은 1953년 7월 한국전쟁의 휴전 때 휴전선 이북에 속하게 되어 옹진본당도 침묵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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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에 [원] Olier, Jean Jacques

Olier, Jean Jacques(1608∼1657). 슐피스회 창설자. 프랑스의 가톨릭 신학자. 파리 태생. 소르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로마에 유학, 1631년 부친의 부음(訃音)을 듣고 귀국, 빈첸시오 아 바오로의 지도를 받으며 라자리스트회의 묵상회에서 일했으며, 1633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생 슐피스 본당을 개혁하고 그곳에 생 슐피스 신학교를 설치했으며(1642년), 이 신학교를 통해 교직자들의 각성을 일깨우고, 1652년부터는 신학교에서 교육에 전심하였다. 이른바 프랑스학파(L’ecole francaise)의 신비주의에 속했으며 콩드랑(Charles de Condren)이나 빈첸시오 아 바오로의 학설을 계승해서 이것을 민중에게 퍼뜨리는데 공헌하였다. 그의 교설은 자기부정(自己否定)과 심정종교(心情宗敎)의 강조를 특색으로 한다. 그가 17세기 프랑스에 준 정신적 감화는 컸으며, 그의 신학교는 해외로도 진출하였다. 그의 후계자들은 그를 창립자로 해서 ‘슐피스회’를 창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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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타노 성 베네딕토 수녀회 [한] ~聖∼修女會 [영] Olivetan Benedictine Sister’s Priory [관련] 베네딕토수녀

1830년 1월 28일 스위스의 캄(Cham)에서 동정녀 9명이 블룸(Joset Blum)의 지도하에 ‘가난한 자매들의 학원’을 개설하면서 공동생활을 시작한 것이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토수도회의 기원(起源)이 되었다. 이 수녀들은 1889년부터 스위스 아인지델른(Einsiedeln)에서 성 베네딕토의 규칙에 따라 수도생활을 가다듬게 되었고, 1892년 9월 11일 이탈리아 시에나의 몬테 올리베토(Monte Oliveto) 대수도원을 중심으로 하는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토회 수족(修族)에 연합되었으며, 1963년 10월 11일 교황 직속수도회로 승격되었다. 이 수녀회의 설립목적은 지역사회의 여성교육과 사회봉사활동에 헌신할 봉사자를 양성하는데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1930년 연길교구에 첫 진출하였다. (⇒) 베네딕토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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