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th, Heinrich(1890~ ). 스위스의 철학자. 바젤 대학 철학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인간적 지식의 연관을 추구하면서 고전철학에서 현대철학에 걸친 광범한 분야에서 연구업적을 올렸다. 그의 신(新)칸트주의적 인식론이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에서 어떻게 정위(定位)되는가를 ≪현상의 철학≫(Philosophie der Erscheinung, 제1부, 1941)에서 구명하였다.
바르톨로메오의 밤 [라] Nox Sti. Bartholomaei
위그노전쟁(1562-1598년)이 전개되고 있던 1572년 대학살이 일어난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밤을 지칭한다. 당시 프랑스 국왕 샤를르 9세의 어머니이자 섭정인 카타리나는 위그노파의 지도자인 나바라 출신의 앙리와 화해하기 위해 그의 딸을 앙리에게 시집보내기로 하였다. 결혼일은 8월 23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카타리나는 생각을 바꾸어 기즈가(家)가 공모하여 위그노파에 대한 학살을 시도하였다. 결혼식은 그야말로 ‘유혈의 결혼식’이 되었다. 파리에 이어 지방에서도 위그노파에 대한 무서운 학살이 진행되었다. 이로써 화해는 깨어지고 위그노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바르톨로메오 [라] Bartholomaeus
열두 사도의 하나. 축일은 8월 24일. 바르톨로메오는 공관복음서(마르 3:l8, 마태 10:3, 루가 6:14)와 사도행전(1:13)에 다른 사도들과 함께 이름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며 그밖에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1:45-51, 21:2)에 나오는 나타나엘(Nathanael)은 바르톨로메오와 동일 인물이라 추정할 수 있다. 양자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면 일찍이 주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이 공관복음서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열두 사도의 하나인 바르톨로메오가 요한복음에 언급이 없는 사실이 부자연스럽다는 점, ‘바르톨로메오’는 ‘달메의 아들’(bar-Talmai)이란 뜻으로 성(姓)이므로 이에 이름이 있으리라 보며 나타나엘은 그의 이름일 수 있다는 점, 공관복음서에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가 함께 나열되어 있고 요한복음(1:45-46)에서 또한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께 데려갔다고 하여 함께 소개되어 있는 점 등을 그 논거로 한다.
전승에 의하면 바르톨로메오는 이디오피아, 인디아, 페르시아 등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성무일도서에 따르면 그는 또한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하다가 거기서 순교하였는데, 살아 있는 채 피부가 벗겨지고 참수당하였다. 그래서 그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서 벗겨진 피부를 드러내 놓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바르나바 [라] Barnabas
사도. 키프로스섬의 레위족 출신으로, 바르나바란 이름은 ‘위로의 아들’이란 뜻이다. 원래 이름은 요셉(사도4:36)이며 성 마르코의 사촌(골로 4:10)이다. 바울로와 함께 안티오키아 지방과 예루살렘 지방을 왕복하면서 예언자와 교사로 활동했고(사도 11:22 이하), 바울로의 제 1차 전도여행에 동반하였다(사도 13:4-14:26). 사도회의에서 바울로와 함께 유태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리사이파 출신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격렬하게 논쟁하였다(사도 15:1-29). 그 뒤 바울로의 제 2차 전도여행 때 마르코의 동행문제로 바울로와 충돌했고, 마르코와 함께 키프로스섬으로 떠나갔다(사도15:36-39). 그밖에 1고린 9:6, 골로 4:10에도 바르나바에 대한 기록이 있고,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가 지은 ≪Hypotyposeis≫, 에우세비오의 ≪교회사≫, 위(僞)글레멘스의 ≪성서성훈≫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재회록≫(Recognitiones)에 의하면 마태오와 동일인이라고도 한다. 테르툴리아노의 ≪De pudicitia≫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바르나바라고 말하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키프로스섬의 살라미나에서 유태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7세기 ≪로마 미사경본≫에도 그의 이름이 보이고 9세기 이후 축일표에는 6월 11일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바룩서 [한] ∼書 [라] Prophetia Baruch [영] Book of Baruch
바룩서, 바룩의 희랍어 묵시록, 시리아어로 보존된 묵시록 등 다수의 책들의 저자가 예레미아의 비서인 바룩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유일하게 우리가 취급하는 이 책만이 ‘바룩’이라는 명칭과 함께 70인역에 삽입되어 있다. 불가타(Vulgata) 속에서는 예레미아의 편지가 바룩서 6장이 되었다(라틴어 본문). 그러나 성 예로니모는 바룩을 라틴어로 번역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불가타가 내포하고 있는 텍스트는 옛 라틴어(Vielle Latine)의 텍스트인데 일련의 수사본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70인역 수사본들은 예레미아서 다음에 그리고 애가서와 예레미아의 편지 이전에 배열하고 있다. 아타나시오, 예루살렘의 치릴로와 같은 희랍 교부들에 의해 정경(政經)으로 선포된 목록들은 라오디체이아 공의회에 의해서도 같은 순서를 제공한다.
바룩에 대한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잘 알려진 인용문들 속에서는(아테나고라스, 이레네오) 바룩서를 예레미아의 이름 아래에서 명명하는데, 이유는 예레미아 예언서의 부록처럼 바룩서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 불가타의 상당수에 해당하는 수사본들은 완전히 바룩서를 제외해 버리고 있다. 특별히 예로니모는 heqraica veritas, 즉 히브리어로 된 것만을 진실된 것으로 인정하기에 바룩서를 제외하고 있다.
1. 분석 : 이 책은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서문 : 1:1-14, 1:1-2 바룩서 저자의 이름과 추정된 연대, 1:3-14 역사적 서두(書頭) △ 참회기도 1:15-3:8 △ 율법과 동일시되는 지혜에 대한 찬송 3:9-4:4. △ 격려와 위로의 담화 4:5-5:9 부록, △ 예레미아의 편지 6장.
내용 분류에서 보듯이 이 책은 상당히 복잡하고 서로 상이한 4개의 문하유형에 속해 있다. 즉 기도, 지혜적 시, 예언적 담화, 풍자.
희랍어로 된 기도(1:15-3:8)는 셈족 어법이 강하게 풍기는데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원(原)히브리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반대로 셋째 부분인 4:5-5:9은 순수하며 그 내용은 예루살렘에로의 즉각적인 귀환을 전제하는데 반해 서문인 1:1-14은 582년, 즉 유배 초기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기에 저작의 일체성이나 저자의 일체성에 대해 쉽게 단언할 수 없다.
2. 내용 : 서문에 의하면, 바룩서의 말씀들, 곧 죄인들의 신앙고백은 갈데아 사람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된 기념일에 유배된 백성 전체가 있는 바빌론에서 읽혀졌던 것 같다. 과월절 축제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순례자들은 회생제물을 봉헌할 때에 주님의 집에서 읊조릴 기도를 가져가야만 했다. 이것은 에즈라 시대부터 Diaspora의 유태인들의 실천행위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다. 에즈라가 저자로 생각되는 유사한 기도가 두 개 있는데, 이것들은 유사한 상황속에서 구성되었다(에즈 8장과 느헤 9장). 그러나 서문에는 분명한 연대 착오가 나타난다. 유배생활(流配生活)이 시작된 지 5년(바룩 1:2), 예루살렘에 순례를 가고 희생제물을 가져가며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을 위하여 기도하러 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다음 대사제(大司祭)인 여호수아(에즈 3장)가 등장하기까지 희생제물을 바치는 성전에서의 규칙적인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바룩의 서문은 인위적인 저작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바룩서 시대의 훨씬 나중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연대나 고유한 이름들은 유배의 귀환을 상기시키고 최종적인 복구를 엿보게 하는 연중 순례의 관습을 이스라엘 역사의 테두리 안에 집어넣자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포로로 잡혀간 자들의 참회 기도(1:15-3:8)는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외침이다. 이 기도의 문학형태는 구약성서의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2열왕 8:46-53, 시편 80, 집회 36:1-17, 다니 3:26-45) 집단적 참회 시편의 문학형태이다.
바룩의 기도는 에즈라 9:6-15, 느헤미아 9:6-37과 다니엘 9장의 기도들과 매우 흡사하다. 이 기도에 종말론을 감싸고 있는 아직 완숙되지 않은 형태는 바룩의 기도가 다른 것들보다 앞시대에 되었음을 믿게 하는데 이 기도는 2세기 초에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혜에 관계되는 부분인 3:9-4:4은 격려의 어조를 띠고 있다. 이것은 욥기 28장을 본뜨고자 했던,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신명기 30장에 종속적인 지혜에 대한 찬미가이다. 여기서의 분위기는 집회서 1:1-20과 24:1-32의 분위기와 동일하다. 우리는 200년경으로 이 찬미가의 저작연대를 규명할 수 있겠다.
4:5-5:9까지의 내용 속에 내포된 바룩의 담화는 서두에서 볼 수 있었던 참회기도와 상통한다. 이 시인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면서(4:5-9) 유배의 비탄이 그들의 잘못에 대한 처벌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즉 그들은 그들을 만드신 영원하신 하느님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으며, 그들의 어머니인 예루살렘을 슬프게 했던 것이다. 뒤이어 시온이 말을 한다(4:9-29). 이것 역시 백성들이 항명심을 갖고 하느님을 거역했기에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또 한편 하느님께 울부짖는 그들의 기도를 상기시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셨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유배로부터의 그들의 조속한 귀환을 예고하신다. 영원하신 하느님은 예언자의 입을 통해 피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시온에게 그의 슬픔이 끝났음을 알게 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분 앞에 돌아오게 된다(4:30-5:9). 이 담화와 선행하는 부분들과의 상호관계는, 이것 역시 2세기 초엽에 저작되었음을 지적한다.
예레미아의 편지(6장)는 히브리어로 쓰여졌지만 그리스어 번역으로만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이사야서 44:9-20에서, 특별히 예레미아 10:1-16에서 찾아볼 수 있는 풍자에서 변형된 풍자로서 우상에 반대하는 풍자이다. 6장이 묘사하고 있는 우상숭배는 알렉산더 대왕과 셀레우쿠스 왕가 치하에서의 바빌론의 우상숭배이다. 이들은 바빌론의 옛 신들께 바치는 의식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자들이다. 이것은 3세기나 더 후대에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레미아에게 저자권을 부여하는 것은 타당성이 분명히 없다고 볼 수 있다.
3. 정통성과 역사성 : 첫눈으로 볼 때 역사에서 유래한 것처럼 소개되고 있는 서문의 이야기는 상당수의 연대 착오를 범하고 있다. 예레미아의 비서인 바룩이 597년과 587년 두 차례의 강제 유배 동안에 바빌론에서 자기의 저서를 쓸 수는 없었다. 성전이 불타고 난 뒤 바룩은 예루살렘에 있지 안았다. 갈데아 사람들에게 굴종하기를 거부했던 애국자로 의심받은 그는(예레 43:3) 자기의 스승인 예레미아와 함께 이집트까지(예레 43:4-6) 끌려갔다.
이 책의 저자가 예레미아와 동시대인인 바룩이었다면 그가 알고 있던 사람들의 명판에 기입된 이름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는 예루살렘의 대사제였을 여호야킴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1:7). 그리고 느부갓네살의 후계자이며 아들은 결코 벨사살이 아니었다(1:11-12).여기서 바룩서는 다니엘서의 개념들과 유사한 개념들을 반영하고 있다(다니 5:2). 이 점은 바룩의 몇몇 부분들이 다니엘서에 종속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해 준다. 참회의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597년과 587년 두 개의 대재앙을 함께 혼합하고 있다. 어떤 때는 예루살렘 성전이 희생제물에 대한 의식과 함께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1:7·10·14) 어떤 때는 지나간 사건에서처럼 불행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2:26). 이 모든 것은 바룩 서문의 저자가 자기가 암시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문학적 가상(fiction)의 경우를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은 간단하다. 바룩이라는 이름은 에녹의 이름과 같이 참된 사건의 연속주기를 형성하고 있는 아주 상이한 정신을 가지고 쓴 글들을 바룩 주위에 모아 놓은 것이다. 바룩의 기도(1:15-2:19)와 다니엘의 기도(9:5-19) 사이에 나타난 분명한 문학적 유사성은 상호 종속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모든 것은 바룩이 다니엘에게서 영감을 받고 그것을 때때로 교정하거나 계발시켰음을 지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바룩 4:36-5:9은 기원전 63년 직후에 된 것으로 보이는 솔로몬의 시편 11장에 종속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 교의(敎義) : 바룩서가 혼합적으로 된 것이기에 그 속에 표명된 종교적 사상의 동질성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외로서는 하느님, 죄와 같은 교의를 지적할 수 있다. 분석에 나타난 세 부분 안에서 하느님은 정의와 권세와 지혜의 원천(1:15, 2:6, 3:1, 3:32-39)으로서 또 이스라엘 운명의 주인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에서 하느님은 특별히 ‘영원하신 분’(4:22 · 35, 5:2) 또 ‘거룩하신 분’(4:22)이라 불리고 있다. 그리스어 형용사 ‘영원한’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실사(實詞)가 히브리어에 없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죄에 대한 처벌로서의 고통과 죄에 대한 교의는 책 전체에 걸쳐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는데, 특별히 이러한 사상은 1:13 · 18, 2:10, 3:10-13, 4:6-8 · 12 · 13 속에서 발견된다. 조상들의 죄는 자손들에 의해 속죄받고 공훈의 원천처럼 간주되는 조상들의 정의는 거절된다(2:19). 바룩은 부활의 교의를 부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룩 2:17은 시편 115:17의 반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든 메시아니즘이 바룩서 안에는 결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바룩은 본질적으로 메시아니즘에 대한 교의가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바룩의 시리아 묵시록과 구분된다. 결과적으로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땅 위에 지혜가 나타나게 되었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3:38)라는 내용을 문자 그대로 메시아에 대한 것으로 주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그것이 지혜와 동일시 된 모세오경(Torah)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룩의 주제는 한 마디로 죄와 회개와 구원에 대한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安秉鐵)
[참고문헌] Ancien Testament. TOB, 1977 /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Abiugdon press / H. Cazelles, Introduction critique a l’Acien Testament, Desclee et Cie, Paris 19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