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가 [원] Luanga, Carolus

Luanga, Carolus(1860?~1886). 성인. 순교자. 축일은 6월 3일. 우간다의 부두(Buddu)군에서 태어나 나무공고(Namugongo)에서 순교하였다. 루앙가는 마울루궁구(Mawulugungu) 추장의 궁정에서 처음으로 가톨릭의 믿음을 두 사람의 동족 신자에게서 배웠다. 아직 예비신자일 때인 1884년 우간다 중심지인 부간다(Buganda) 왕국 궁정에서 젊은 시동(侍童)이자 가령(家令)인 무카사(Joseph Mukasa)를 보좌하였다.

이보다 앞서 1879년 아프리카 선교회 선교사 피에르 블랑 등은 부간다 국왕 므테사(Mtesa)의 궁정에 선교 기반을 만들어 처음에는 좋은 포교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아랍인 세력이 우세해짐에 따라 1882년 11월 선교사들은 부득이 철수하였다. 므테사가 죽은 후 그 후계자인 어린 왕 무왕가(Muanga)가 선교사들을 다시 불러, 그들은 1885년 7월에 부간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후 이 19세의 왕은 정치적 음모에 놀아나 공공연히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 그중에서도 궁정내의 신자인 정신(廷臣)과 시동들을 가혹하게 박해하였다. 이리하여 1885년 11월 무카사가 순교하던 날 밤에 루앙가는 세례를 받았다. 그로부터 여러 달 동안 선교사들과의 연락이 불가능한 가운데 루앙가는 무앙가의 마수로부터 시동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가르치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으며 예비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1886년 5월 신도들에 대한 처형이 다시 시작되자 루앙가는 시동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한 후에 모두 체포되었다. 나무공고까지 연행되어 가는 도중에 루앙가는 특히 가혹한 취급을 당하였다. 1885년 11월부터 1887년 1월 사이에 흑인 천주교도 22명이 처형 순교했으며, 그 중에는 루앙가를 포함한 14명의 시동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루앙가 등 10명은 1886년 6월 3일 몸을 갈대 짚으로 감싸여 산채로 불태워져 순교하였다. 다른 21명과 함께 루앙가는 1920년 6월에 시복(諡福)되고,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이보다 앞서 교황 비오 11세는 루앙가를 적도 아프리카의 청소년 및 가톨릭 액션의 보호자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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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라] Lucia [영] Lucy

성녀. 동정(童貞) 순교자. 축일은 12월 13일. 304년경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박해 때 시칠리아의 시라쿠사(Siracusa)에서 순교. 거절당한 구혼자에 의해 고발되어 육체적 능욕과 불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출되었지만, 결국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5세기의 한 그리스어 비문(碑文)은 시라쿠사에서 루시아에 대한 공경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후에 젤라시오 전례와 그레고리오 전례 속에 소개되었고 예로니모(Jerome)의 ≪순교록≫에도 기록되었다. 6-7세기에 루시아의 공경은 로마, 밀라노, 라벤나로 전파,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는 성 아가토(St. Agatho)와 함께 미사에 소개한 듯이 보인다. 눈의 수호성녀로서 접시에 두 눈을 담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종종 묘사되었고, 또는 순교자의 종려잎, 등불(혹은 책) 등을 들고 있거나 목에 칼이 꽂힌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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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슬로 [원] Rousselot, Pierre

Rousselot, Pierre(1878-1915). 프랑스의 철학자, 신학자, 그리스도교 호교가. 낭트(Nantes) 태생. 1895년 예수회에 입회, 수련자로서 영국 캔터베리에 파견, 1905년 신학대학을 마치고, 1908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09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 가톨릭대학원에서 교리신학을 가르쳤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본국에 소환되어 전선에 출정, 1915년 4월 레제파르즈(Les Eparges)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짧은 생애였으나 그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설(神學說) 부흥을 위해 끼친 영향은 컸다. 주요 저서로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성주의≫(L’Intellectualisme de saint Thomas, Paris 1908), ≪Pour l’Histoire du probleme de l’amour au moyen age≫ (1908) 등이 있다. 그리스도교 변증자로서도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여 신앙행위에 대한 종래의 교육방법과 정확한 판단에 관해 상세히 살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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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원] Rubens, Peter Paul

Rubens, Peter Paul(1577~1640).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플랑드르 제일의 화가. 어려서 예수회 수사에게 많은 감화를 받았다. 23세 때 이탈리아로 유학 가서 8년 동안 고대미술과 르네상스의 거장들 작품을 연구하고, 당시 대표적 바로크 화가인 카라바지오의 영향을 받아 장족의 발전을 이룬 다음 명성을 얻었다. 그는 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제재를 작품화하였는데, 파리의 뤽상부르 궁전의 대벽화 <마리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그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루벤스 예술의 모든 특질을 담은 바로크 회화의 집대성으로 평가된다. 화려한 그의 작품은 밝게 타오르는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울려 생기에 넘치고 감각적이며 사상성이 풍부하다.

특히 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과감하고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는 거대한 작업장을 세워 상당수의 보좌들과 도제들을 고용하였는데, 그가 얻은 세계적인 명성은 이들의 도움이 컸다. 그는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휴머니스트 학자로 고대 예술품 수집에 노력하였으며, 외교관으로 프랑스 · 스페인 · 영국에 부임하여 각지에서 작품활동을 펴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화가로서 절정에 이르러 작품에 시적(詩的) 분위기를 살리고 숙달된 유화의 기법은 최고봉을 이루었다. 그의 유명한 종교화로는 <3인의 성왕(聖王)의 예배>, <최후의 심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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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의 성모 [한] ∼聖母 [영] Our Lady of Lourdes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에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 이 기간 동안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프랑스 루르드에 있는 마사비엘르의 동굴 위에서 14세 된 시골 소녀 베르나데타(Bernadette Soubirous)[1933년 12월 8일 성녀 베르나데타로 시성]에게 발현하였다. 마지막 회의 발현 때 성모는 자신을 일컬어 “나는 원죄없는 잉태이다”라고 하였다. 이 발현이 있기 4년 전(1854년) 교회의 교도권은 성모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신앙을 교의로 선포한 바 있었다.

발현이 있었던 자리에 샘물이 솟아났으며 이 샘물로 목욕하거나 이곳에서 성체강복 예절을 할 때 질병 치유의 기적이 일어날 뿐 아니라, 영적 생활에 있어서 기적적인 회개와 은총을 체험하는 등 신앙적인 기적이 일어나곤 하였다. 교회는 1862년 이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발현하신 성모의 요청에 따라 성당을 건립하였는데 이 성당은 남 프랑스의 가장 웅장한 성당의 하나가 되어 있으며 루르드는 유명한 성지가 되어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든다. 이 발현을 기념하기 위하여 1891년 루르드의 성모 축일이 제정되고(2월 11일) 1907년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하여 전교회의 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오늘날 여기에 병원을 설치하여 기적적인 치유의 진정성(眞正性)을 조사하고 있다. 이 병원은 자원 봉사자들로 구성된 세계적 조직을 갖고 있으며 봉사자들은 해마다 며칠씩 모여 환자들을 들것으로 운반하고 지체 부자유자들을 휠체어에 태워 샘물의 목욕을 시켜준다. 매년 600만 명의 인파가 루르드를 순례하고 있는데 이 숫자의 변동 상황은 소설가 프란츠 베르펠(Franz Werfel)이 <베르나데타>(Bernadette)를 통하여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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