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dovicus(1214~1270). 성인. 프랑스왕 루이 9세. 일명 성왕(聖王)(재위 : 1224-1270). 축일은 8월 25일. 1226년 랭스(Reims)에서 즉위, 1242년에는 서부 프랑스의 앙즈뱅(Angevin)을 되찾기 위한 영국왕 헨리(Henry) 3세의 공격을 물리쳤다. 1248년 십자군 원정에 나셨으며 이듬해 이집트의 다미에타(Damietta)항을 점령하였으나 자신의 몸값으로 이곳을 양도함으로써 결국 이 원정은 실패하였다. 아직 그리스도 교도들이 차지하고 있던 요새를 방비하기 위해 1250년 시리아로 갔으며, 1254년 그는 프랑스로 되돌아와 플랑드르인(Flanders)의 평화를 확보하였고(1256년), 평등과 지속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아라공(Aragon)과의 코르베이유(Corbeil) 조약(1258년), 헨리 3세와의 파리조약(1259년)을 차례로 맺었다. 1270년 다시 십자군 원정을 떠났지만 그해 튀니스에서 이질로 사망하였다. 그는 중세 제왕의 이상형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경건하고 신앙심이 강했으며 인간의 평등과 성지수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가 교회를 위해 한 일로는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모시기 위한 생 샤펠(Sainte Chapelle) 성당(1245~1248년)을 비롯한 여러 수도회 건물을 지은 것, 1257년 로베르 드 소르본(Robert de Sorbon)에 의해 창립된 신학교(소르본대학의 전신)를 지원한 일 등이 있다. 교황 보니파시오(Bonifatius) 3세에 의해 1277년 시성되었다.
루가의 복음서 [한] ∼福音書 [라] Evangelium secundum Lucam
1. 필자 및 독자 : 무라토리 경전목록(180년경 로마에서 작성)과 프랑스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130~200?)의 반이단론에 따라, 바울로의 동료 루가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집필했다는 통설이 생겨났다. 그러나 두 가지 작품과 바울로의 친서를 비교해 볼 때 차이가 큰 까닭에 바울로를 따라 다닌 루가가 두 가지 작품을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편의상 두 가지 작품의 필자를 루가라고 할뿐이다. 필자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내용 중 그가 이스라엘의 지리를 잘못 전하고(4:29) 유태인들의 관습과 풍물을 착각한 점(1:59, 2:22-24, 5:19, 6:48, 14:5)으로 미루어보아 필자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복음서 작가들 가운데서 그리스 어문을 가장 잘 익힌, 상당히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독자들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스라엘의 지리를 설명하고(1:26, 2:4, 4:31, 8:26, 23:51, 24:13) 유태교 관습을 설명한다(1:9, 2:22-24, 41-42, 22:1.7). 또한 유태인들의 정결례를 다루는 단락(마르 7:1-23)을 아예 삭제해 버렸는가 하면 히브리어나 아람어 낱말을 그리스어로 바꾸기도 한다(마르 9:5 비교 루가 9:33, 마르 10:51 비교 루가 18:41, 마르 3:18 비교 루가 6:15, 참조 사도 1:13). 그런가 하면 마르코 복음서의 나자렛 설교를 개작하면서 그 옛날 하느님이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들추기도 하고(4:25-27), 초대 교회의 이방인 전도활동을 상세히 기록하기도 하였다(사도 10:13-28장). 위의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이 복음서의 독자라는 결론을 내려 마땅할 것이다.
2. 집필 장소, 연대 및 동기 : 집필 장소에 대해서 정확히는 알기가 어렵고, 루가가 이스라엘의 지리와 관습에 서투르다는 사실과 이방인 전도에 많은 관심을 표명한 사실을 참작하여 이스라엘 밖에서 복음서를 집필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집필 연대는 50~60년대에 집필된 예수어록과 70년경에 집필된 마르코 복음서를 참고했을 뿐 아니라, 유대 독립전쟁 말기(서기 70년)에 일어난 일들을 전한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집필 상한연대는 70년이고, 1세기 말엽에 집필된 사도행전보다는 분명히 먼저 집필되었으므로(사도 1:1) 그 하한연대는 100년으로 본다. 대체로 집필 연대를 80~90년으로 잡는다. 집필 동기는 그 머리말에 잘 나타나고 있다(1:1-4).
3. 사료 : 루가는 복음서를 집필하면서 70년경에 씌어진 마르코 복음서의 구조를 따르면서, 50~60년대에 쓰여진 예수어록을 곳곳에 삽입했고, 또한 자기 나름대로 예수에 관한 또 다른 사료를 수집하여 삽입했는데 이를 루가의 특수사료라 한다.
① 마르코 복음서 : 루가는 마르코 복음서의 구조를 따라 자기 복음의 골격을 갖추었으며 어록과 특수사료를 여기저기 삽입하여 복음서를 엮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마르 3:19 다음에 루가는 6:20-8:3을, 그리고 마르 9:40 다음에 루가는 9:51-18:14를 삽입하였다. ② 예수 어록 : 루가는 대체로 어록의 말씀 배열을 존중하면서 3-4장, 6-7장, 9-17장에 집중적으로 옮겨놓았는데 루가 복음서에 인용된 어록의 말씀은 모두 70개가 넘는다. ③ 루가의 특수사료 : 오직 루가만이 수집한 사료들을 일컫는데, 특수사료들 가운데는 문헌도 있었고 구전도 있었겠지만, 오늘날 그 두 가지를 밝혀내기란 불가능하다. 루가 복음서에 있는 특수사료들은 모두 60개 남짓이다.
4. 편집 사상 ① 구조 : ㉮ 머리말(1:1-4) : 신약성서 작품들 가운데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1:1-5)에만 머리말이 있다. 이는 그리스 문인들의 관례를 따른 것이다. ㉯ 전사(前事, 1:5-2:52) : 요한 세례자와 예수의 수태, 탄생, 성장과정을 나란히 서술하면서 예수가 요한보다 훨씬 더 위대함을 강조한다. ㉰ 활동준비(3:1-4:13) : 우선 요한 세례자의 활약상을 소개하는데 루가는 그를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 간주한다(3:20, 16:16, 사도 13:25). 예수의 족보(3:23-28)에서는 아담에게까지 소급한다. 예수가 온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유혹사화(4:13)에서는 악마가 예수를 유혹한 다음 물러갔다가(4:13) 수난할 때에야 다시 덤벼드는 것으로(22:3, 31-32 · 53) 묘사하니 루가는 예수의 시대를 구원의 시대로 서술하고 있다. ㉱ 갈릴레아 활동기(4:14-9:50) : 맨 먼저 고향에서 활약하신다(4:16-30). 그러나 동향인들이 그분을 배척한다. ㉲ 예루살렘 상경기(9:51-19:28) : 갈릴레아에서부터 예루살렘 근처에 도착하신 때까지의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다. ㉳ 예루살렘 활동기(19:29-24:53) :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승천까지의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다.
② 구원사관 : 루가는 신약성경 필자들 가운데서 구원의 역사를 가장 분명하게 구분한 사람으로, 그는 구원사를 우선 이스라엘의 시대와 구원의 시대로 양분한 다음, 구원의 시대를 예수시대와 교회시대로 또다시 세분하였다. ㉮ 이스라엘의 시대 :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 구원을 예고하는 시대로서 요한 세례자는 이 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이다(3:20, 16:16, 사도 13:25). ㉯ 예수시대 : 예수의 나자렛 설교로 구원이 이룩되는 새 시대가 시작되고(4:21, 참조 사도 13:25) 그것은 예수 승천으로 끝난다(24:50-51, 사도 1:1-2. 6-11). 예수 부활부터 승천까지의 40일은 예수시대를 마무리 짓고 교회시대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활동무대를 보면 예수께서는 갈릴레아에서 활동을 시작하여(4:14-9:50) 상경하고(9:51-19:28) 그 다음에는 내내 예루살렘에서 활약하신다(19:29-24:53). ㉰ 교회시대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룩하신 구원이 온 세상으로 확산되는 시대로서, 열두 사도에게 성령이 내린 오순절부터(24:49, 사도 2:1-13) 예수께서 종말에 재림하실 때까지(1:11) 계속될 것이다. ㉱ 종말 : 종말은 시간의 중단이므로 시대의 구분에 속하지 않는다. 루가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집필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종말이 곧 닥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19:11, 사도 1:6), 루가는 종말임박설을 경계하여 종말지연설을 내세우고(17:20-21, 23-24, 19:11-27, 21:8-9, 23-24, 사도 1:6-7), 사도행전을 집필하여 세상에 정착하는 교회상을 정립하였다.
③ 사도관 : 루가는 예수시대와 교회시대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갈릴레아에서부터 예수사건을 목격한 증인들만 사도라 부르고 예수사건을 전부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위대한 전도사일지라도 사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루가는 바울로를 무척 존경하면서도 그를 사도라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사도행전 14:4.14에서 바울로와 바르나바를 ‘사도들’이라 한 것은 그들을 열두 사도와 같은 계열의 사도로 간주한 것이 아니고 오직 안티오키아 교회의 ‘심부름꾼들’이란 뜻으로 그 낱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④ 루가 복음서를 일컬어 흔히 소외자들의 복음서라 한다. 사실 예수께서는 갈릴레아 활동 벽두부터, 곧 나자렛 회당에서 설교하신 때부터 소외자들에 대해 큰 관심을 드러낸다. 예수님이 각별히 아끼신 여러 부류의 소외자들은 가난한 이들과 불쌍한 이들, 여자들, 죄인들로 분류할 수 있다.
⑤ 재물관 : 루가는 부자와 빈자, 소유와 포기문제에 관해 남달리 큰 관심을 쏟았다. 루가는 제자들이 재산을 포기한 사실을 남달리 강조할 뿐 아니라, 제자들의 이런 생활상을 예루살렘 교회에 투사하여 그 교회를 나눔의 공동체로 묘사한다(사도 2:44-45, 4:32-37).
⑥ 기도 : 루가는 공관복음서 작가들 가운데 기도에 관한 말씀과 이야기를 가장 많이 수록하였다. 예수님이 친히 기도하셨다고도 하고(3:21, 5:16, 6:12, 9:18 · 28-29, 10:21, 11:1a, 22:32 · 41-45, 23:34 · 41) 또한 제자들에게 기도를 권장하셨다고도 한다(6:28, 11:1b-13, 18:1, 21:34-36, 22:40 · 46). 루가는 믿음을 보존하고(22:32) 유혹을 이기며(22:40-46) 장차 재림하실 인자를 맞으려면(18:1 · 8b, 21:36) 늘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자신들을 헐뜯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6:28, 참조 23:34)고 한다.
⑦ 시청각교육방법 : 루가는 일찍이 시청각교육의 효과를 터득하여 내면적 체험을 외형적 사건처럼 서술하곤 하였다. 곧 신앙체험을 드라마로 꾸몄던 것이다. 몇 가지 실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 세례사화(마르 1:10, 비교 3:22), ㉯ 발현사화(24:39-43), ㉰ 승천사화(24:50-51, 사도 1:1-11), ㉱ 성령내림사화(사도 2:1-13), ㉲ 바울로의 개심기(사도 9:1-19, 22:3-21, 26:9-18).
⑧ 성령 : 루가 복음서에서는 열일곱 번에 걸쳐 하느님의 능력인 영에 관해서 언급한다(1:15 · 35 · 41 · 67 · 80?, 2:25 · 26 · 27, 3:16 · 22, 4:1 · 14 · 18, 10:21, 11:13, 12:10 · 12). 그런가 하면 영이 사도행전에는 무려 57번이나 나오는데, 1-16장에 집중적으로 45번이나 나온다. 그는 또한 영을 ‘아버지의 약속’이라고도 한다(24:49, 사도 1:4). 이스라엘 시대 말기에 영이 요한 세례자(1:15), 엘리사벳(1:41), 즈가리야(1:67), 시메온(2:25 · 27), 특히 마리아(1:35)에게 내린다. 그리고 예수시대가 도래하자 그분은 영을 듬뿍 받아 영검하신 분, 신통하신 분으로서 구원을 이룩하신다(1:35, 3:22, 4:14, 4:18, 10:21, 24:49, 사도 1:4-5, 2:1-13 · 33). 마지막으로 교회시대에 이르러 영은 하느님의 영일 뿐더러(사도 5:9, 8:39)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기도 하다(16:7). 이 영이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내려(2:1-13) 하느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창립된다. 이제 그들은 영의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중해 각지에 전한다(8:29 · 39, 1:12, 16:7-8). (鄭良謨)
[참고문헌] 정양모 역주, 루가복음서, 분도출판사, 1983 / 하워드 마샬 저, 강요섭 역, 루가복음(I), 한국신학연구소, 1983.
루가 [라] Lucas
복음사가. 축일은 10월 18일. ‘사랑하는 의사’(골로 4:14)요 바울로의 ‘동료’(필레 1:24)로서 바울로의 죽음 직전 함께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2디모 4:11)이었다. 초대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셋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이다. 이교도 출신의 개종자이며(골로 4:11 · 14 참조) 자신이 저술한 내용을 목격하지 않았으므로(루가 1:2) 일흔 두 제자의 하나도 아니고(루가 10:1) 엠마오로 가는 길에 글레오파와 동행한 자도(루가 24:18) 아니다. 토로아스에서 처음으로 바울로를 만났고(사도 16:10) 수년 뒤 필립비에서 다시 합류했으며(사도 20:5) 바울로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고(사도 21:1-18) 체사레아와 팔레스티나와 로마에서 구금된 바울로와 함께 머물렀다(사도 27:1-28:16).
전승에 의하면, 루가는 미혼이었고 84세를 일기로 아카이아(비타니아 혹은 이집트)에서 별세했는데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그리스도교 회화에서는 대개 저술가 또는 소(牛)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소의 상징(에제 10:14, 묵시 4:7)으로 표현한 것은 루가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품 때문일 것이다.
로트 [원] Roth, Lucius
Roth, Lucius(1890~1950). 독일 상트 오틸리엔 성 베네딕토수도회 덕원교구 선교사. 한국명 홍태화(洪泰華). 독일 바이에른(Bayern)에서 출생하여 1917년 로마의 성 안셀모대학에서 철학 ·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한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1923년 내한, 베네딕토회가 담당하던 한남 덕원교구에서 전교활동을 벌이는 한편, 1936년 미사경본 (彌사經本)을 저술하였고 그밖에 <가톨릭청년>지(誌)에 많은 호교론과 공산주의비판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덕원 베네딕토수도원 원장, 해성학교장을 역임하고 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교회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는 가운데 1949년 5월 사우어(Sauer, 辛) 주교, 수도원 부원장 쉴라이허(Schleicher, 安) 신부, 덕원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Klingseiz, 吉) 신부 등과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원산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평양으로 이송되었고 잔혹한 고문과 형벌을 참아내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950년 11월 3일 공산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로크 [원] Locke, John
Locke, John(1632~1704). 영국의 계몽철학 및 경험론의 창시자. 사마센토샤의 린튼에서 출생하여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 자연과학 ·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1700년까지 관직에 재직하였다. 그는 데카르트 철학과 뉴턴에 의해 완성된 당시의 자연과학을 받아들여 스콜라철학에 반대하였다. 1690년에 출판한 ≪인간오성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제4권은 경험론, 내재적 현상론(內在的 現象論)의 입장에서 인식론을 철학의 근본과제로 삼아 버클리와 흄에 영향을 미쳤고, 그의 근대 인식론이 칸트에 의해 완성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제1권에서는 데카르트와 케임브리지의 플라톤 학파가 주장한 본유관념(本有觀念)을 부정하였다. 제2권에서 사람의 지식은 모두 감각과 반성이라는 경험을 통해 얻어진 단순관념에서 복합관념으로 나아간다고 주장, 인간의 마음은 출생시엔 백지(白紙)와 같다고 하였다. 이러한 백지 위에 관념이 새겨짐으로써 인간은 지식을 갖게 되는데 이 관념의 원인을 감각과 반성을 통해 인식되는 물성(物性)이라 하였다. 물성을 객관적인 제1성(형태, 크기, 수 등)과 주관적 제2성(빛깔, 향기, 맛 등)을 구별하였다. 제3권 언어론은 스콜라적 실체형상(實體形象)을 비판하면서 개념론, 또는 유명론적 보편개념을 정의, 설명했다. 제4권에서는 주로 이상의 것을 포함하여 지식의 확실성 · 종류 · 가능성 등을 논하였다. 그는 이성론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지만 지식을 관념과 대상 사이의 관계로 파악치 않고 관념과 관념 사이의 일치. 불일치 관계로 규정하였다. 또 그는 쾌락주의 · 행복주의적 경향의 윤리관을 가졌고 도덕은 신의 법, 자연법, 국법과 일치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로크의 유명한 정치사상은 계약설(契約說)로 홉즈의 전체주의를 자연상태보다 더욱 악하다고 하여 주권재민(主權在民)과 국민의 반항권을 인정했고, 대의제에 의한 민주주의, 삼권분립, 이성적인 법에 의한 통치, 국민의 자유 등을 강조하여 프랑스혁명, 미국의 독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그의 사상은 서양의 민주주의의 근본사상이 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1690), ≪Two treatises of government≫(1690), ≪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1673), ≪The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1695)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