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ualdus(952?~1027). 성인. 축일 6월 19일. 카말돌리(Camaldoli)회 창설자.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파브리아노 부근의 발디카스트로(Val di Castro)에 있는 암자에서 별세하였다. 20세 때, 친척 남자를 죽인 부친의 죄를 보상하기 위해 클라세(Classe)에 있는 성 아폴리네르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가 되었다. 그러나 보다 더 준엄한 은수자적 생활을 찾아 각지를 편력하였다. 998년 신성로마황제 오토 3세에 의해 클라세의 성 아폴리네르 수도원 대수도원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사퇴하고, 1009년 아레조(Arezzo) 부근의 카말돌리에서 수도회를 창립, 은수자적 생활과 종교 공동생활을 결합한 수도생활 형식을 취하였다. 이 수도회는 베네딕토회 계통의 독립수도회로서 현재도 카말돌리회로서 존속하고 있다. 1466년 그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유해가 부패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1481년 유해는 파브리아노로 이장되었다.
로머 [원] Romer, Anselm
Romer, Anselm(1885~1950). 독일 상트 오틸리엔 성 베네딕토 수도회원. 덕원(德源)교구 선교사. 한국명 노병조(盧炳朝). 독일에서 출생하여 1910년 사제로 서품되어 이듬해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함남 덕원의 덕원신학교 교장으로 재직중 1949년 5월 11일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 투옥되어 1951년 11월 9일 옥사, 순교하였다.
로만칼러 [영] Roman Collar
가톨릭 교회에서 성직자가 성당이나 사제관 바깥에서 성직자의 공식적 복장을 표시하기 위하여 목에 두르는 아마포로 된 희고 빳빳한 칼러를 말한다. 수단이 성직자의 정식제복이라면 로만 칼러를 하고 검은 양복을 입는 것은 약식 제복이다.
로마학파 [한] ∼學派 [라] Schola Romana
로마를 중심으로 한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을 정립한 일군의 학자들. 이는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체계적인 것은 아니었다. 즉, 초기 로마교회는 우위성과 수위권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사상의 면에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로마의 주교들은 동방교회, 특히 알렉산드리아학파가 중심이 된 논쟁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했으며 서간과 중재를 통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에는 알렉산드리아와 비교할 만한 이렇다 할 신학의 전당이 없었다. 이 기간 중 로마 교회는 다만 미누치오 펠릭스(Minucius Felix)가 쓴 호교저서 한 권만 간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로마에서는 히폴리토와 노바시아노가 크게 활동했으나 이들은 모두가 교황들이었다. 히폴리토는 창작 면에서는 오리제네스에게 뒤지지만 그의 방대한 저서와 폭넓은 식견에 있어서는 오리제네스에 버금갈 만한 큰 인물이었으며 노바시아노는 라틴어로 저술한 첫 학자라는 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로마 교회는 ≪무라토리안 단편≫(Fragmentum Muratorianum)과 ≪사도전승≫(Traditio Apostolica) 등 중요한 두 문헌을 전해 주고 있다. ≪무라토리안 단편≫은 신약성서 목록을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며, ≪사도전승≫은 히폴리토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초기 교회의 전례와 신앙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