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펠라지아니즘:구원 의지와 신앙의 시작

 

제9장 세미펠라지아니즘: 구원 의지와 신앙의 시작


17세기에 이르러 세미펠라지아니즘이라고 불리는 사상은 펠라지아니즘의 단죄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세례의 필요성이나 세례 때 주어지는 은총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우구스티노의 예정과 은총의 결정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 이 결정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은총이 자유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많은 사람들 예컨대 자캐우스와 같은 사람은 그들이 요구하고 문들 두드리고 찾은 다음 세례를 받기에 이르렀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은총을 모두에게 제공하신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전적으로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에게 해당된다. 예정은 단순히 미리 알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하느님의 선취권이 없다. 참을성은 세례의 은총으로부터 구별되는 은총이 아니다. 어떻든 ‘세미펠라지아니즘’은 다양한 정통 주제들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들은 아우구스티노의 입장을 따라서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들은 단죄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적 공로의 선지식을 통하지 않고서 이 사실이 설명될 수 있는가? 그리고 불신앙인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왜 복음은 모든 민족에 선포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일부 민족이 빈약하게 배열되어 있었기 때문인가 또는 그리스도교적 메시지를 환영하지 않기 때문인가?


        아우구스티노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결정적인 해답을 주지 않았다. 일부 그의 답변은 공격하도록 개방되어 있다. 그의 답변에서 아무도 그리스도 이전이나 이후나 그리스도의 은총없이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사도 바울로의 보편 구원적 의지에 관한 진술의 목적을 제한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은총의 보증이 보편적으로 분배되어 화해될 수 있는지 보지 못하고 있다. 그는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서 그 시초부터 의회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래로 모든 사람에게 은총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얀세니스트들만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니안’이라고 불리는 학파의 신학자들도 이러한 협의의 개념을 취하게 된다. 그것은 세미펠라지아니즘에 의해 처음으로 공격받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몰리니즘에 의해서 공격받는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세미펠라지아니즘은 아우구스티니아니즘의 엄격한 형식에 거슬러 대항하는 반작용을 대표한다. 비신앙인의 구원의 문제는 세미펠라지아니즘에 의해 새로운 국면의 문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세미펠라지아니즘은 여전히 이단이었다. 우리의 구원의 업적에서 모든 것은 하느님 자비의 선물이라는 것이 이해될 수 없었다. 그리고 은총이 항상 인간의 노력에 앞선다는 것도 이해될 수 없었다. 이점을 아우구스티노는 그가 로마서로부터 자료를 취하여 투쟁할 그 날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397년 유명한 저서 Questiones ad Simplicianum은 세미펠라지아니즘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였다. 교회는 은총의 문제에 있어서 아우구스티니아니즘의 정신을 과도하게 취하는 편으로 나아갔다.  교회의 전례는 얼마나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이러한 선행되는 은총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당신의 영감으로 우리의 행위들을 앞서가라 그리고 당신의 은혜로운 도움으로 그들을 수행하라”. 어떻든 세미펠라지아니즘의 오류가 단죄되기 이전 그것은 좋은 것이었다. 바로 그 시기에 그 지지자들은 아우구스티노의 옹호자들과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주 분명하게 선-얀세니스트적 기질을 보이는 사람들과도 다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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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제9장 세미펠라지아니즘: 구원 의지와 신앙의 시작

    17세기에 이르러 세미펠라지아니즘이라고 불리는 사상은 펠라지아니즘의 단죄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세례의 필요성이나 세례 때 주어지는 은총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우구스티노의 예정과 은총의 결정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 이 결정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은총이 자유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많은 사람들 예컨대 자캐우스와 같은 사람은 그들이 요구하고 문들 두드리고 찾은 다음 세례를 받기에 이르렀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은총을 모두에게 제공하신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전적으로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에게 해당된다. 예정은 단순히 미리 알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하느님의 선취권이 없다. 참을성은 세례의 은총으로부터 구별되는 은총이 아니다. 어떻든 ‘세미펠라지아니즘’은 다양한 정통 주제들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들은 아우구스티노의 입장을 따라서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들은 단죄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적 공로의 선지식을 통하지 않고서 이 사실이 설명될 수 있는가? 그리고 불신앙인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왜 복음은 모든 민족에 선포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일부 민족이 빈약하게 배열되어 있었기 때문인가 또는 그리스도교적 메시지를 환영하지 않기 때문인가?

            아우구스티노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결정적인 해답을 주지 않았다. 일부 그의 답변은 공격하도록 개방되어 있다. 그의 답변에서 아무도 그리스도 이전이나 이후나 그리스도의 은총없이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사도 바울로의 보편 구원적 의지에 관한 진술의 목적을 제한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은총의 보증이 보편적으로 분배되어 화해될 수 있는지 보지 못하고 있다. 그는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서 그 시초부터 의회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래로 모든 사람에게 은총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얀세니스트들만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니안’이라고 불리는 학파의 신학자들도 이러한 협의의 개념을 취하게 된다. 그것은 세미펠라지아니즘에 의해 처음으로 공격받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몰리니즘에 의해서 공격받는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세미펠라지아니즘은 아우구스티니아니즘의 엄격한 형식에 거슬러 대항하는 반작용을 대표한다. 비신앙인의 구원의 문제는 세미펠라지아니즘에 의해 새로운 국면의 문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세미펠라지아니즘은 여전히 이단이었다. 우리의 구원의 업적에서 모든 것은 하느님 자비의 선물이라는 것이 이해될 수 없었다. 그리고 은총이 항상 인간의 노력에 앞선다는 것도 이해될 수 없었다. 이점을 아우구스티노는 그가 로마서로부터 자료를 취하여 투쟁할 그 날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397년 유명한 저서 Questiones ad Simplicianum은 세미펠라지아니즘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였다. 교회는 은총의 문제에 있어서 아우구스티니아니즘의 정신을 과도하게 취하는 편으로 나아갔다.  교회의 전례는 얼마나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이러한 선행되는 은총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당신의 영감으로 우리의 행위들을 앞서가라 그리고 당신의 은혜로운 도움으로 그들을 수행하라”. 어떻든 세미펠라지아니즘의 오류가 단죄되기 이전 그것은 좋은 것이었다. 바로 그 시기에 그 지지자들은 아우구스티노의 옹호자들과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주 분명하게 선-얀세니스트적 기질을 보이는 사람들과도 다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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