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은총과 자유-성화은총(신화은총)

 

7.2. 성화은총(신화은총)




        하느님의 현존에 관한 내용을 전하는 그의 편지에는 의로운 자들은 성령의 성전이라는 전통적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다.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은… 모두 안에 거주하시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축복된 성전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 안에만 거주하신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이러한 현존의 강도에 의해 측정된다.  모든 성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더욱 거룩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들이 그들 안에 더욱 풍부하게 하느님의 거주하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룩함이란 존재론적인 무엇이다. 그것은 어떤 자유로운 행위 이전의 것이다. 세례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는 이미 하느님의 성전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 할지라도 세례 받은 아이들 안에 거처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이란 신비체의 지체로서의 거룩함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의로운 인간 안의 하느님의 현존으로부터 교회 안의 하느님의 현존으로 나아간다. 교회 역시 성령의 성전이다. “그 안에 하느님이 거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성전, 이 도시 안에 자리를 지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도시, 하나의 육체, 하나의 건물 안에 하느님의 자녀들을 모으기 위하여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임이 하느님 성전의 건물이다”.


        그와 동일한 가르침은 신약성서의 은총에 관하여 Honoratus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은총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분의 신성을 나누어 받는 자가 된다. “그분은 우리가 올라가도록 하기 위하여 내려 오셨다. 그의 본연의 본성을 간직하고자 그는 우리의 본성을 나누셨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지키면서 그분의 본성을 나누어 받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요한 1서를 해설하는 가운데 이러한 이론을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형제적 사랑이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당신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시작하였는가? 그렇다면 하느님은 당신 안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존의 개념에 깊이 들어가면서 아우구스티노는 성서적 자료들을 비교하고 합성한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머무신다. 그러나 그분 역시 우리를 사랑 안에 머물도록 초대하신다. 즉 그분 안에 머물도록 초대하신다. 사랑은 하느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사랑 안에 머무는 그는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은 그 안에 머문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집에 계시고 당신은 하느님의 집에 머물기를 기원한다…. 하느님께 머물러라.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 안에 머물기를 기원한다.” 하느님이 머무는 그 영혼은 하느님을 내용물로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당신이 그 내용물이 될 수 있도록 하느님 안에 거주하라”고 강조한다. 아우구스티노는 우리가 그분 안에 있는 것보다 우리 안에 그분이 적게(less) 있다는 진실을 암시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하느님의 거주의 신비에 대한 그의 이해에 있어서 동방교부들을 초월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인의 신화의 이론에 다른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사도 바울로와 요한 이후 그는 신비체에 관한한 대가이다. 도나티스트인 Ticonius의 해석학적 규칙에 대하여 그는 그리스도는 성서 안에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고 응수하였다. 그리스도, 즉 그 말씀은 육이 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 전체”를 만드셨다. 그러한 대담한 형식은 아우구스티노가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고 우리 안에서 고통을 받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역시 우리 자신이시기 때문이다(Quia et nos ipse sumus).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신비체인 교회는 한 인간과 같다(tanquam integer vir). 마지막 시기까지 가서 끝날 것이며, 이 세상이 다 지나갈 때까지 온 몸이 그의 머리와 결합하려 하늘에 들려올릴 때까지 시련으로 신음하게 될 것이다. “그 머리는 앞서 가신다. 그 온 몸은 완성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이것은 아우구스티노가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법이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진정한 완성이 될 것이다. “거기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의 그리스도가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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