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새로운 문제들: 아우구스티노의 후기 저서들
Sixtus에게 보낸 편지는 아프리카의 Adrumentum의 수도원에서 읽게 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수도자들은 은총이란 자유의지를 거부함 없이 방어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은총과 자유 의지에 관한 책에서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수도자들은 매우 고집을 부렸다. “만일 우리의 의지와 행동에 효과를 가져다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면 왜 우리는 잘못했을 때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바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시오. 만일 우리가 하도록 제안 받은 것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마시오.”. 아우구스티노는 끈기있게 참으면서 그 문제를 좀더 분명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모든 노력을 새로운 주제를 작성하는데 투입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De correptione et gratia]이다. 은총에 관한 매우 중요한 작품의 하나다. 그러나 매우 논쟁거리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담의 은총과 우리 은총 사이의 유명한 구별을 발견할 수 있다. adjutorium sine quo non, adjutorium quo의 구별이다. 많은 글들이 이러한 구별 위에 쏟아졌다. 그것이 얀세니즘의 아우구스티니즘을 위한 기초가 되고 있다. [De correptione et gratia]는 이러한 구별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다루려는데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의 중세기의 제자들은 그것을 약화시켰다. 그들은 아우구스티노 자신보다도 은총이 온전히 초자연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노의 은총 신학에 관하여 할 수 있는 비판만은 아니다. 우리는 곧 아우구스티니즘이, 적어도 그 마지막 형식문에 있어서 생동적인 저항을 만나게 되고, 이 위대한 주교로 하여금 성인들의 예정된 운명과 의로운 자들의 참을성에 대한 그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한번 글을 쓰도록 강요하였다는 것을 보게된다. 어떻든 이러한 주제들로 해서 더 이상 아우구스티노와 펠라지오 사이의 논쟁은 없었다. 세미펠라지아니즘의 오류는 잠시동안을 위한 장면에 사로잡히고 그에 대한 매력을 가지려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오랑제 공의회와 더불어 6세기에 그 끝을 맺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