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신학자료실

영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고찰

3. 영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고찰   3.1. 영성에 대당되는 의미들(영성에 관해 잘못 이해된 의미들)     ①영성은 신비적 체험이나 종교적 정서(감동, 감상주의)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신비적 체험과 동일시할 경우, 영성생활을 하나의 환상으로 전락시키는 결과에 이를 수 있고, 종교적 감동과 동일시할 경우 영성생활에 있어 인격적 하느님을 잃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영성생활에서 넓은 의미의 신비체험(세레, 기도, 감사로움 체험)이 필요하고, 좁은 의미의 신비체험<탈혼, 시현, 말씀(locution), 계시, 성흔, 공중부양 등 – 신흥종교가 이 점을 중시하며 강조함>이 있을 수 있다.   영성생활에서 정적측면이 무시될 수 없고, 오히려 중요요소이지만, 감정에만 호소되거나 예속되어서는 안된다(신흥종교들이 이런 경향이 있음). 지(知), 정(情), 의(義)의 조화가 필요하다(성령쇄신운동, 부흥회 등 이런 경우 주의를 요한다).     ②영성생활을 어떤 영적 이상(理想)과 혼돈해선 안된다. 영성생활은 비현실적 영적관념으로 지배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현실적 영성인이다(루가6,46: 말씀따라 사는 사람 ; 갈라5,25 : 성령의 지도에 따라 사는 사람). 혼돈할 경우 땅에 발을 디디고 뜬 구름잡으려는 격이 된다. 이원론적 영성으로 빗나갈 수 있다(육과 세상 경멸하는 영성).  구원(성화) =  은총 + 인간의 협력 : 기도, 성서읽고 묵상, 사랑실천, 복음선포.     ③영성은 율법주의나 윤리주의적 미덕(美德) 추구에 있지 않다. 윤리주의적 미덕을 추구한다는 구실로 강요되는 의미없는 형식적 법이나 전통은 – 살아계신 하느님을 잃게하며, 소심하고 법칙준수로 자족자만하는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은 – 오늘의 율법주의자나 바리사이파 사람을 형성한다(예수님 시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외적으로는 잘 살았으나 그 근본정신(사랑)을 놓쳤음). 물론 교회법, 영성적 규범이나 지침을 무시할 수 없으나, 그 근본정신을 잃어서는 안된다. 영성생활의 본질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는 삶이다.   율법주의 자세는 Pelagianism을 추구하게 된다<Pelagius(+418)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장한 은총과 구원에 대한 이설임. 원죄의 결과를 부정 내지 경시하면서 의화와 구원에 있어 인간의 주도권을 강조함. 은총을 그것을 쉽게 하는데 필요할 뿐이라고 함).     ④영성은 경건한 자태(Pietismus)나 정적주의(Quietismus)가 아니다. 영성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힘에 이끌려 밖으로 들어나기 때문이다. 영성은 무조건적 열심과 다르다. 더구나 빗나간 열심과 드르다. 그러므로 영성은 정체적일 수 없다. 영성생활은 보다 강한 생활로 그리스도와 밀접히 일치하기 위하여 성령의 역동적인 힘에 이끌려 언제나 전진하는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삶은 자연히 밖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Quietismus(靜寂)- 17C 블란서 신학자들이 주장한 이설임. 그리스도교 완성이란 죄악과 싸우는 인간의 노력적 행위나 도덕성등의 외적인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김으로써 도달하는 영혼의 정적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그 상태에 도달한 이는 절제도, 성사생활도 필요없다>.     ⑤영성은 물질이나 육을 배제하거나 벗어나 독립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을 제일의 가치로, 우선적 가치로 추구하는 것은 영성생활이 아니다. 영과 물질은 서로 배제하거나 반대되기 때문이 아니고, 완전성에서 영이 물질보다 상위이기 때문이다. 영성생활은 하위의 물질(물리적 측면)이 상위의 영(영성적 측면)에 종속될 때에 이루어진다.   인간은 영혼으로 대표되는 영과 육신(육체)으로 대표되는 물리적 측면(물질)로이루어진 단일체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것만을 따라 가거나 그것을 먼저 추구하는 삶은 영성ㅇ적 삶이 아니다. 지나치게 현세적 재물이나 명예에 지착하고 있거나 육체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생활이라면 올바른 영성생활이 아니다.   한편 육체와 물질을 거부하고 순수히 영적인 것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세상의 발전과 사회참여, 이웃사랑을 경시한다면 그것은 그릇된 신심주의이며 빗나간 영성이다.    건전하고 올바른 영성생활은 인간의 영과 육의 단일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인 영성이 상위적으로 모든 삶을 주관하는 것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영성의 종말적 측면과 육화적 측면

2.4. 영성의 종말적 측면과 육화적 측면   종말적 영성이란 말뜻 그대로 이 세상의 끝, 죽음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잘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하며 대기하는 삶이다. 이 영성은 세상을 잠시 지나가는 눈물의 골짜기로 보며, 인간의 본성이 원죄의 결과로 인해 하느님의은총과 대립을 이루게 되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항상 꺠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본성을 억제하고 그분의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도록 권한다. 여기에는 현세적 삶에서의 초월, 관상적 기도, 완덕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고행, 희생, 극기, 포기 등이 강조되고 따라서 개인적 신앙이 발전된다. 이러한 영성적 경향은 초세기 박해시대에 순교를 염원하고 대기하던 신자들과 그 공동체 안에 짙었으며 박해가 끝난 후에는 새로운 순교형태로서의 복음삼덕을 철저히 실천하던 은수자 및 수도자들에 의해 이어졌다.   육화적 영성은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로 구원되고 성화된 세계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려는 자세의 삶이다(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세계와 인간들 사이에 태어나도록 추구하는 것이다). 이 영성은 현세적 사물과 인간의 삶에 대한 긍정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자연이나 인간의 본성적 능력이 초자연적 질서에 의해 강화되고 거양되어 은총의 힘과 조화있게 합쳐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금지, 극기, 포기, 고행 등 부정적 측면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인 듯 소개하면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교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앞당겨 사는 이로서 그의 삶은 기쁨과 희망, 자발성과 용기, 자유와 사랑 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상의 모든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 들이면서 성화되도록 하고 인간생활의 모든 환경을 복음화시키며, 모든 사물을 하느님의 뜻안에서 질서있게 정리하는 노력, 즉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끊임없이 건설하고 확장하려는 역동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이 영성은 이웃 사랑의 실천, 복음선포, 봉사활동, 사회참여와 정의 실현의 추구 등 수평적으로 개방적인 삶을 통해 복음을 표현하려 한다.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핵심이며 신앙생활의 본질인 사랑은 두 관계를 이룬다. 하나는 수직적 측면으로서 하느님과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수평적이 것으로 이웃과의 관계이다.    종말적 영성이 수직적 측면에 더 치우친다면 육화적 영성은 수평적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교회는 이 두 측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긴장하면서 노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한 측면이 우세를 나타내면서 영성생활에 불균형을 가져오곤 했음을 우리는 영성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종말적 영성, 즉 신앙생활의 수직적 관계가 지나치게 강조될 때, 초자연주의 현상을 나타내면서 수직주의 또는 종말주의로 기울게 된다. 이웃에 대한 봉사나 사랑의실천없이 기도, 재계, 극기 등 개인적 수덕을 통해서 완벽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하느님을 이 세상 현실이나 인간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존재로 보며 신앙생활을 그러한 분과의 수직적 관계로만 축소시키는 경향이다.   한편 영성생활에 있어 수평적 관계가 너무 강조될 때 세속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이웃사랑을 통해 하느님께’라는 이웃과의 개방 및 봉사관계를 일방적으로 과장하는 경우이다. 여기에 흔히, 이웃에게 참된 봉사를 하기 위해 필히 이루어져야 하는 하느님과의 지속적이며 긴밀한 관계, 즉 기도와 묵상이 차차 소홀히 되고 사랑과 봉사의 근원이며 원동력인 참된그리스도인 정신이 차차 흐려지게된다. 그리고 흔히 사도적 애덕정신에서 시작된 활동이 박애주의적 및 사회사업적 성격으로 변해진다.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은 수직적 혹은 종말적 영성과 수평적 혹은 육화적 영성 중의 택일이 아니며 양 측면의 알맞은 조화와 균형의 모습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영성과 영성생활

2. 영성과 영성생활   2.1. 영성의 정의   성삼위의 친교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의 참여이다. 곧 성령의 은총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성부께 나아가는 삶이다.   2.2. 영성생활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성삼위의 신비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생활은 우리에게 사람이 되어오신 그분의 모범을 따라 그분을 닮아가면서,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 완전하신 하느님 아버지(마태 5,48 참조)께 올라가는 여정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신비가 인간 안에 실현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인 생활인 것이다.   “이방인 여러분과 우리 유다인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에페 2,18).   2.3. 영성의 유일성과 다양성   그리스도교 영성은 근워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이 진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성서에 입각하여 성성(Sanctitas)의 본질과 근원을 밝힘으로써 매우 명료해졌다(교회헌장 5장 참조). 즉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느 누구하나 빠짐없이 세례성사를 통해 성성(聖性)에 불리었으며, 걸어야 할 목표는 거룩함 자체이신 유일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거룩함은 근보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거룩함에로 걸어가는 길은 다양하다. 때와 장소 그리고 생활의 상태나 위치에 따라서 사람들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 다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능력에 있어 다른 입장에 처해 있는 각자의 한계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영성은 같은 한 하느님이 근원이시므로 본질적으로 하나일 뿐이며, 한편 여기에 참여하는 방법과 양상은 다양하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신비, 구원, 사랑 등 은총이란 객관적 측면에서 영성은 하나이다. 그것이 인간 안에 받아들여지고 실현될 때 주관적 측면에서의 영성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그릇에 담기고 다른 정도의 성숙도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각 시대와 각 지역은 같은 한 영성을 받아들이는 데에 다르고도 고유한 그릇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각 시공안에 살고있는 각 사람들은 생활의 상태와 사명에 따라, 즉 성소에 따라 다른 영성을 살게 된다.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척도에 따라 영성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1)민족 및 지리적 척도: 동양의 영성, 서양의 영성, 한국의 영성, 중국의 영성 등.   2)교의 및 신심적 척도: 삼위일체의 영성, 그리스도론적 영성, 성체성사의 영성, 예수성심의 영성 등.   3)수덕, 신비적 척도: 애덕의 영성, 가난의 영성, 순결의 영성, 속죄의 영성 등.   4)인간학적 및 심리학적 척도: 이지주의적 척도 또는 사변적 영성, 정적 혹은 실천적 영성 등.   5)생활상태와 직업의 척도: 평신도, 수도자, 사제, 교사, 의사, 농부의 영성 등.   6)역사, 연대적 척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영성, 교부시대의 영성, 중세 영성, 근세 영성, 현대 영성 등,   7)수도회의 창립자들의 카리스마에 의한 척도: 아우구스띠노의 영성, 베네딕도의 영성, 프란치스코의 영성, 가르멜 영성, 이냐시오 영성 등.   이같이 그리스도교적 유일한 영성이 그리스도인이 사는 시대와 장소, 상황과 사명 그리고 카리스마에 따라 다양하게 구체화 된다. 유일한 영성의 여러 측면이 각기 다른 요소들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영성 실현의 방법과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측면의 영성이든지 그것을 절대화 하거나 보편화 하고자 해서는 안된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인간성숙의 요소 및 척도

  1.1.2. 인간성숙의 요소 및 척도     가) 자아개념의 확장(사랑의 성숙)     나) 타인과 관계의 친밀도     다) 정서적 안정     라) 현실이해와 임무수행 능력     마) 자신에 대한 이해와 유모어     바) 일관적 생활관(인생관)     사) 성(性)의 실현   1.2. 그리스도인 성숙     “인간성숙은 우리의 의무들의 종합이다. 그러나 아직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책임있는 개인적 업무로 풍요로워진 본성의 조화는 더 높은 곳으로 불린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차원, 초월적 인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인간 발전의 최고 목표이다”.  실로 그리스도인은 은총에 응답하면서 인간성숙 이상의 과제 즉 그리스도인 성숙을 이루어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성숙은 성숙된 인간이 신앙으로 조명되고 애덕의 초자연적 질서에 높여짐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또한 성숙한 인간이다. 그는 초자연적 은총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자연적 능력까지 충만히 꽃피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성숙은 인간적으로 성숙된 이에게 더욱 풍요로워지며 인간성숙은 그리스도인 완성 안에 통합되고 온전해지며 거양되는 것이다.    가) 그리스도인 성숙의 본성    나) 인간성숙과 그리스도인 성숙의 관계       ㄱ) 인간성숙과 그리스도인 성숙의 특징들의 비교       ㄴ) 심리적 성숙과 그리스도인성숙       ㄷ) 인간성숙과 그리스도인성숙의 관계 규명을 위한 세 가지 문제점 제기         (ㄱ)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없이, 즉 신앙 없이 진정한 인간성숙이 가능한가?         (ㄴ) 인간성숙 없이 그리스도인 성숙이 가능한가?         (ㄷ) 실생활과 별리되어 있는 신앙의 열성자세가 그리스도인 성숙과 같은 것인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인간성숙

1.1. 인간 성숙    공의회의 문헌들과 최근의 교도권의 가르침은 인간성숙을 인간의 완성적 발전을 위해 매진해야 할 목표인 초자연적 발전, 즉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기반 및 전제로 여긴다(사제양성교령 9;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 2; 평신도교령 29; 현대의 사제양성 43.44.45.51항 등 참조). 은총이 본성을 파괴하지 아니하고 완성시킨다면, 은총의 생활은 인간의 전반적 활동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 개체의 심리적 윤리적 신체적 및 사회적 발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곧 초자연적 생활은 자연적 생활의 발전에 비례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초자연적 생명의 빛은 그것이 내재하는 자연적 바탕이 얼마나 활기차고 강하냐에 따라 생동감이나 밝기를 다르게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일상생활 안에서 은총의 활동이 심리적 혹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 안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약한 사람에게서 활기를 잃게된다는 점을 보아도 인간의 기본 조건이 은총을 규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은총이 우리 안에 가능한 한 완전에 가깝게 작용하도록 더욱 알맞은 인간 성숙이 그리스도인 성숙의 전제 조건이라는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다.    1.1.1. 전인성숙   오늘의 심리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은 인간성숙의 개념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여러 정의를 종합하면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인간성숙이란 “인간적 충만성으로서 성인(成人)적 성격을 갖추고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성적으로 조화있게 발전된 단계”이다. 즉 전인적 성숙이다.   인간 성숙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의  조화와 균형적 발전을 요구한다.     가) 신체적. 물리적 측면     나) 심리적. 지성적 측면     다) 사회적. 정적 측면     라) 영적. 윤리적 측면     *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 정의       인간에 관한 학문들과 대화하면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오늘 인간을 이렇게 포용성있게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 및 화학적 작용을 하는 복합 유기체로서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심리적. 지성적 법칙을 따라 구체적 상황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존재”이다.    인간 실존은 신학과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생물학 등이 만나는 자리라 할 수 있으며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이 상봉하는 육화한 영성의 장(場)이라 할 수 있다. 실로 하느님이 인간 아에 심어주신 심리적. 지성적 법칙과 생물학적 질서를 더 많이 찾아낼수록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에 관해 더 많이 알게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 상호간의 통교의 법칙은 하느님께 대한 이해와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의 신비에 좀 더 접근하도록 돕는다. 즉 우리는 개방하여 이웃과 대화할 수 있고 상호 진실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을 때 하느님과의 그러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 안에서 이웃과의 진실된 인격적 관계없이 진실된 기도는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비로소 이웃과 참다운 인간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지만 한 편 이웃관계의 성숙을 통해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 즉 기도의 요령과 방법을 터득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인간에 관한 여러 학문들의 기여와 도움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화의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비행기는 삼차원의 세계인 하늘을 날을 때에 제 구실하는 것이며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가 비행장에 기착해 있을 때 비록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역시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비행기이다. 또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바퀴로 달릴 때 자동차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을지라도 자동차가 아니며 비행기이다. 길상 비행기가 하늘을 날을 때 비로소 제 구실을 하는 명실 공히 비행기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인간의 모습을 유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가 공항에 기착해 있을 때 비행기이듯이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생물학적 차원을 지니지만,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는 존재로서 인간이다. 떠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릴 때 여전히 비행기이듯이 인간은 설령 하느님과의 관계를 모르는 가운데 심리적. 사회적 차원을 지녔을지라도 그것을 초월하는 영적 측면을 지닌 특수한 존재이다.   비행기가 3차원의 세계로 떠올라 날을 때 제 구실하는 것처럼, 인간은 영적 차원에까지 들어가면서 참된 인간의 모습을 들어내는 것이다. 즉 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때에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있으며 지금은 어디까지 와 있는 알 수 있게 되며, 인간은 왜 살아야하고 왜 인간다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영성’이란 육신과 물질세사 그리고 인간적 사회생활을 떠나 순수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상황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생활이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자신의 육체, 마음, 정신을 가꾸고 일치시키며 물질 세께와 인간 사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질서있게 발전시키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인간이란 신체적, 심리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을 배제하거나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차원들과 불가분의 연관과 상호작용 중에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인 영성이 그의 삶 전체를 주관하는 것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