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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보관물: 신학자료실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영성과 빗나간 영성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영성과 빗나간 영성 박재만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오늘 한국 교회는 빗나간 사회적 및 종교적 흐름으로부터 크게 도전받고 있다. 신흥종교들과 여러 빗나간 영성운동들 그리고 이설들이 여러 방법과 경로를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을 현혹하고 있으며 또한 실제로 적지 않은 신자들이 그에 기울어져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러한 현상들의 위험 요소들과 현혹방법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면서 그에 대처해야 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신원 및 사명을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해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신앙생활의 주체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 개념을 정립하고 참다운 그리스도교 영성과 영성생활의 의미를 찾아본다. 이어서 영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위해 유익한 몇 가지 사항들을 고찰한 후, 영의 식별기준 및 척도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본론으로 한국 사회의 빗나간 영성운동과 흐름의 문제점들을 분석, 고찰하면서 그에 대한 교회의 대책들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 이해 오늘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은 인간에 관한 학문들과 개방적 대화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가 무진장 담겨있는 신비로운 창조물인 인간 존재에 대해 훨씬 풍요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인간에 관한 학문들이란 심리학, 사회학, 인간학, 생물학, 의학 등인데, 이 학문들은 끊임없이 각기 인간의 측면들을 분업적으로 깊이 탐구함으로써 창조주 하느님의 오묘한 신비를 더 많이 알아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므로 이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하느님의 신비를 더 깊이 아는 것이다. 계시진리인 성서에 입각하여 인간을 이해하고 정의해온 신학은 한 때 그러한 학문들이 신학을 배제하며 인간에 관해 연구하고 주장하고자 하는 학설들을 조심스럽게 대하며 소외시키려 했다. 무신론, 영혼존재 부정, 유물론 등의 오류를 지닌 그 학문들이 실상 계시진리를 손상시킬 위험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편 유감스럽게도 그 학문들의 긍정적인 측면과 유익하고 중요한 지식 및 정보까지 받아들이길 꺼려했다. 오늘도 모든 논쟁이 끝나거나 상호 불신이 다 극복된 것은 아니지만 시대와 상황은 이미 바뀌었다. 학문적 분야에서 신학과 인간에 관한 학문들 사이에 많이 성숙한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신학과 인간에 관한 학문들의 충돌은 신앙의 대상인 절대자 또는 하느님을 보는 방법이 다르고 또한 인간의 신앙적 행위에 대한 착안점이 다르다는 것을 상호 인정하지 않을 때 빚어지는 것이다. 심리학 등 인간에 관한 학문들은 오늘 일반적으로 신학적 본성의 문제에 대해 논란하겠다고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적 측면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들로부터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생활화 될 수 있으며 또한 인간이 ‘거룩함’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하는 데 유익한 자료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웃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 정상적이고 역동적인 관계, 기도생활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정상적 신앙생활과 비정상적이고 빗나간 신앙생활을 구별해 내고 식별하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은 불가분적인 네 측면으로 구성된다. 일차적 측면은 생물학적 및 화학적 작용을 하는 신체, 물리적 측면이다. 이 측면에 대해 생물학, 생리학, 의학 등이 많이 연구하여 알려주고 있다. 다른 한 측면은 심리적 및 지성적 측면이다. 이에 대해서는 심리학, 교육학 등이 연구하고 실험 .체험하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세 번째로 고찰 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정(情)적 측면이다. 이 분야에 대해선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이 기여하며 발전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넷째 요소는 윤리적, 영적 차원이다. 이 분야는 신학에 고유하고도 특수하게 관련되는 것으로서 계시진리에 입각하여 이해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사회 경제적 종교적 상황
2. 사회·경제적 상황 조선말 사회구조상의 현저한 특징의 하나는 양반계급의 비대화(肥大化)였다. 이로 인해 과거제도의 문란이 일어났으며, 일반 민중은 과중한 과세를 부담하며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위에 정치구조상의 혼란에 기인한 관리들의 민중수탈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일반 민중의 생활은 그야말로 도탄(塗炭) 그 자체였다. 그 결과 각 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났으며, 고종이 즉위한 이듬해인 1864년부터 동학혁명이 발생하던 1894년 1월까지 30년동안에 전국에 걸쳐 41건의 민란이 발생하였다. 특히 관리들의 수탈이 심한 전라도에서 많이 발생하였는데, 동학혁명 직전인 1893년 11월에는 고부, 전주, 익산 등 3군(郡)에서 한꺼번에 발생하였다. 정부의 탄압도 이와 함께 거세어졌는데, 民亂의 주모자들이 대부분 동학교도였던 관계로 동학교도들은 관리들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탄압이 심한 만큼 민중들의 저항도 거세어졌고, 결국 동학혁명의 기치(旗幟)를 높이 날리게 되었다. 이는 종교운동의 차원을 넘어 차라리 피지배계급의 저항운동인 대중운동으로도 볼 수 있다. 동학혁명은 민중의 열망과 욕구가 뭉친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학혁명은 결국 외국군대의 개입과 동학조직 내의 분열, 무기의 원시성, 중간계급(소재산 소유자, 적당한 교육을 받은 자)의 반대 등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동학교도들은 재산을 압류당하고 극심한 탄압에 받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볼때 동학혁명은 초기에는 잠재되어 있던 일반 민중의 욕구를 극대화시켜 이에 참여할 경우 신정부의 수립과 복지사회의 건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지만, 이것이 실패함으로써 혁명에 가담한 일부 민중은 극대화된 욕구의 충족수단을 상실함하고 심한 좌절을 겪게 되었다. 더욱이 혁명의 부산물로 나타난 사회적 혼란 및 관군과 日兵, 민포군(民包軍) 등으로부터 받게 된 보복은 그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동학혁명이 처음으로 발생하였던 전라도 지방이 더욱 심했고, 특히 전봉준이 봉기했던 고부(古阜-증산의 출생지)지방과 그가 군관과 최후의 결전을 했던 태인, 금구(金溝) 등지에서 더욱 심했다. 또한 1895년에는 유교적 전통사상의 단절을 뜻하는 단발령이 선포되었다. 이에 항거하여 각 지방에서 의병운동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 의병들은 한때 위력을 떨쳤으나 1896년 국왕의 포고문과 선무작업(宣撫作業)에 의해 해산되었다. 그 후 잔존(殘存)해 있던 의병들이 화적으로 전환되기도 하여 민중들에게 더욱 피해를 끼쳤다. 3. 종교적 상황 동학혁명의 실패에 따른 사회 경제적 혼란은 신흥종교로서의 기대를 모았던 동학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와 허탈감을 갖게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문호개방과 함께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서구문화는 국내의 전통문화와의 갈등을 초래했다. 이러한 현상은 1866년 대박해(大迫害) 이후 1878년부터 다소 탄압이 풀린 西學(天主敎)뿐만 아니라, 그 후에 들어온 신교(改新敎)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는데, 일반 민중들에게는 기독교 사상이 아직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재래(在來)의 종교인 儒敎와 佛敎 및 道敎는 사회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支柱)가 되지 못했다. 유교는 조선시대를 통하여 반상차별(班常差別)의 계급사상으로 변질되어 일반 민중과는 거리감을 갖고 있었고, 불교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되고 산으로 은거처를 찾는 등 일반민중에게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하기는 어려웠다. 도교는 風水圖識化하여 민간에 유행하는 토속신앙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렇게 볼 때 조선말기에는 일반 민중의 정신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조직화된 종교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반 민중 사이에 크게 성행한 것은 오히려 조선 초기부터 전해오던 정감록(鄭鑑錄) 사상이었다. 정감록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1868년과 1870년에는 반란을 도모하는 사건들이 발생할 정도였다. 정감록에는 진인사상(眞人思想), 신도사상(新都思想), 승지신앙(勝地信仰), 남조선 신앙(南朝鮮 信仰)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진인사상이란 메시아적 왕의 출현에 대한 대망(待望)이고, 신도사상은 時運에 의해 낡은 왕조는 물러가고 새 왕조가 들어서서 새 서울을 세운다는 믿음이며, 승지신앙은 亂時에 피하기만 하면 절대 안전하다는 피난지에 대한 신앙이고, 남조선 신앙이란 낙원이 남쪽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신앙이다. 이처럼 정감록은 조선말기의 쇠약한 국가정체와 사회적 혼란을 계기로 성행될 수 있는 요인이 충분히 갖추어진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상이 민간에 대두하게 됨으로서 민중의 조선왕조에 대한 불신은 더욱 강하게 나타났고, 그것은 동학혁명의 발생과 그 추진력에 크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동학혁명의 실패와 계속되는 외세열강의 침략 및 기성종교의 허약 내지는 미조직화에 의해 1894년 이후부터는 정감록이 더욱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조선말기의 종교적 문화적 상황은 사회구조의 타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혼란이 극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 민중은 生의 혼란에서 인간에로의 방향을 제시하여 불안을 면(免)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표상체계(表象體系)와 확신체계(確信體系)를 갖지 못하고 있었으며, 급격한 사회변동과 외국의 영향에 의한 문화갈등현상은 기존 규범체계의 와해(互解)를 가져와 사회적 및 문화적으로 도덕적인 규제력을 상실한 이른바 아노미 상태(Anomi)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동학혁명이 전개되었고, 증산이 출생하고 성장하였던 호남지방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났다. 증산의 本家나 外家가 위치한 古阜 지방은 민란과 동학혁명이 발생한 지역으로서 지방관리의 착취와 수탈이 가장 심했던 지역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1)
본론 – 시대적 배경
本論 Ⅰ. 시대적 배경1) 이하에서 증산의 성장과 활동을 고찰하기에 앞서 먼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그의 개인적인 환경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교 창시자로서의 증산의 성장과 활동은 그 시대 상황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증산이 출생한 1871년부터 그가 종교적 경험을 體系化하여 포교활동을 시작한 1902년까지 약 30년간의 시대적 상황을 그가 출생하고 성장한 전라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여기서는 개략적인 언급에 그치고, 증산의 종교적 경험에 영향을 끼친 부분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은 이후에 언급한다. 1. 정치적 상황 조선의 19세기 전반기에 속하는 1801년 (순조 원년)부터 1863년(고종 원년)까지는 소위 세도정치에 의한 변태적 정치가 시행된 때였다. 이 시기의 정치는 주로 내정의 발전과 개혁보다는 외척이 주축이 된 정치 엘리트들에 의한 권력투쟁에 일관되어 있었다. 고종이 즉위함으로써 정권을 잡게 된 흥선대원군은 세도 정치를 타파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과단성있는 개혁을 단행하였지만, 그 후에 발생한 국내외적 여러 사건들은 그전보다도 정치적 상황을 더욱 더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특히 증산이 출생한 1871년부터는 신미양요(1871년), 윤요호 사건(1875년), 병자수호조약(1876년), 미국·러시아·이태리 등 서양 제국에 의한 수교요구(1880년)등이 발생하여 일본과 채결한 병자수호조약 이외에도 미국, 영국, 독일(1882년), 이태리 러시아(1884), 프랑스(1886년), 청(淸-1899) 등과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었으며, 그후 한일합방(1910년)까지는 약 32개의 조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조선이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되자 일본을 비롯한 열강 제국의 세력과 문물이 국내에 밀어 닥치게 되고, 특히 권력 엘리트들은 보수 세력과 혁신세력으로 구분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두 세력간의 권력투쟁은 점차 그 농도를 더해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년)이라는 부수사건들을 발생시켰다. 또한 1892년부터 양성적(陽性的)으로 나타난 동학교도들의 교조신원운동은 그 후 그들의 이념이 국내 정치 문제에 파급되어 동학혁명(1894년)으로 발전되었다. 증산이 태어난 해가 1871년이므로 증산의 나이 23세때 동학혁명을 맞았다는 것이 된다. 동학혁명은 갑오경장이라는 국내적 개혁과 청일전쟁이라는 국제전쟁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권력투쟁전(權力鬪爭戰)은 여전하여 대원군과 민비의 권력투쟁은 그 농도가 더해 갔으며, 특히 외국세력에 의지하여 형성된 親淸, 親日, 親露의 신흥정치세력은 저마다의 권력신장에 열중하여 결국 을미사변(1895년)과 아관파천(1896년)이라는 국치적(國恥的) 사건을 발생시켰다. 결국 정치부재(政治不在)의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1871년부터 약 30년간의 정치적 상황은 국제적 영향과 국내적 권력계급의 갈등으로 인해 급격한 변동을 가져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와 같은 정치적 불안정은 정책 결정자의 급격한 지위변동을 수반하였으며, 이로 인해 국내 정책은 일관성을 상실하였고 국가의 정체위기는 극도에 달하였다. 따라서 서구문화의 이입(移入)을 통해 점차 개화되기 시작한 조선사회는 국내외적인 제 조건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일반 민중의 정치적 소외현상은 가속화되었다.
서론
서 론 무속(巫俗)의 목적은 인간이 현세에서 무병장수하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편히 살고, 등등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행복을 영구지속(永久持續)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무속제의(巫俗祭儀)를 통해 이것을 성취하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속은 인간 행복의 영구지속을 그 목적으로 한다. 무속의 제의는 존재(存在)의 획득지속(獲得持續)을 위한 실천적(實踐的)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모든 무속제의는 어떤 존재의 결핍된 상태를 다시 채워 인간 존재의 충족성을 다시 채우려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무속현상을 있게 하였는가? 무속이 제의를 통해 어떻게 존재의 결핍을 충족시키려 하는가? 그래서 여기서는 무속의 구심점(求心點)이 되는 “원본사고”를 찾아내어 모든 무속현상의 바탕이 되는 무속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겠다. 먼저 구체적인 제의 현상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살펴보아 그 특성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무속의 “원본사고”(原本思考, arche pattern)가 되는 “입체적(立體的) 존재사고”(存在思考)와 기구(祈求)의 대상이 되는 신(神)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
네 가지의 거짓말
네 가지의 거짓말 에덴에서 아담고 이브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 뱀으로 가장한 사탄의 기만에 속아 하느님의 축복을 빼앗겻던 최초의 한 사람 아담에게서 부터 이 세상 역사가 끝나는 그 날까지 되풀이될 거짓말이 오늘의 뉴에이저들로부터 속삭여 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보암지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대단히 탐스럽기도 했던 생명나무의 열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느님은 엄히 말씀하셨건만 “죽을까 하노라.”로 바꿔 사탄과 한 통속이 되어버렸던 그 날의 비극적인 사건. 첫번째 거짓말. 너희가 하느님과 같이 되리라. 사탄은 아담과 이브에게 하나님과 겨룰만한 왕국을 이룩 할 수 있다고 야속했다. 즉 사탄이 의도 했던 것은 하느님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을 제거하고 인간 자신이 그 자리를 메꾸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가공할만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창조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자신이 하느님이 된다는 거짓말이 인간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만물이 신이고 신은 곧 만물이다.”라는 ‘범신론’이 오히려 호소력이 있었던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핵심이 되는 범신론은 고대 힌두교 사상이다. 두번째 거짓말. 너희가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사탄이 불복종의 두려움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두번째 기만이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이다. 무신론자 조차도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로의 전이를 두려워 한다. 그것은 죽음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자신의 두번째 거짓말을 정당한 구실을 찾아야 했고 그것은 바로 ‘윤회설’이었다. 윤회론의 핵심 내용은 “그렇다. 당신의 육체는 죽는다. 그러나 당신은 또 다른 육체안에서 삶을 계속한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자아의 본질 자체는 변함없이 껍데기에 불과한 육신은 바꾸는 것이 곧 죽음인데 그것을 왜 두려워 하는가! 당신이 심판 받아야 할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러한 내용은 불교로 이어져 카르마(Karma) 즉 ‘업’으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죽음의 공포는 인간의 뇌리 속에서 확실히 제거되며, 오히려 환영받기 까지 한다. 세번째 거짓말 너희가 선악을 알리라. 사탄은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더냐?”라고 묻는다. 그는 이브에게 하느님의 선하심을 회의케 하려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는 그들이 그 열매를 먹는다면 선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유혹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선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사탄의 상대론(상황윤리)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상대론이란 나에게 옳은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남에게도 선은 아닌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상황이 도덕(윤리)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선악을 분별하기 위해 하느님께 자문을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선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마음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뉴에이저들은 선악에 관하여 터무니 없는 논리를 펴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선이되고 선이 곧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악 자체도 역시 선이 되어야만 한다.” 네번째 거짓말 너희의 눈이 밝아지리라. 에덴 동산에서 이브가 사탄의 대화는 사탄이 이브의 의심을 자극하는데 부터 시작된다. 하느님께 대한 이브의 배반에 의해 하느님이 차지하던 공간은 무엇으로 대체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물질적인 욕망이었다. 그에 관하여 성경은 이처럼 묘사하고 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니 먹음 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 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 주니 그도 먹은지라.” 이브가 그 나무를 보았을 때 그것은 그녀의 눈에 좋아보였고, 그녀는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열매를 먹었다. 사탄은 그녀의 눈이 열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녀는 불복종의 문명을 경험토록 했던 것이다. 그녀의 불복종은 문명을 경험토록 했던 것이다. 그 불복종의 모토는 “욕망대로 행하라.”는 것이었다. 고대 밀교의 교리는 뉴에이지 운동의 필수사항이다. 밀교에서는 “인간 의식의 전환”을 매우 중시했다. 밀교주의자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비밀로 되어 있는 특별한 지식을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고 믿었고 지식의 확대와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영적인 전환이었다. 뉴에이저들은 보편적인 신학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 경험이며, 신이라고 불리는 어떤 강력한 힘과의 합일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성도 필요치 않다. 궁극적인 실체와의 접촉을 통해 이성은 사라지고 무분별이 인간을 지배하여 “생각하지 말고 느낀대로 하라 ”고 명령한다. 지금까지의 4가지 거짓말을 나열해 보면 첫째 너희가 하느님과 같이되리라.(범신론), 둘째 너희가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윤회론), 셋째 너희가 선악을 알리라.(범신론), 넷째 너희의 눈이 밝아지리라. (밀교주의)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조합해 볼 대 이 4가지 거짓말은 이 땅에서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죽은 후에는 저주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 글은 제 나름대로의 견해와 자료를 수집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양해 있으시길 바랍니다. 이글에는 기독교의 성경말씀과 사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실 뉴에지 운동은 반성경적 운동이라 기독교에선는 사실 오래전 부터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신자의 대부분은 별의미없이 지나치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글을 올리는 바입니다. 지금 교회(기독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심각한 현실입니다. 이글을 읽어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글에 나오는 노래 가사나 이글에 실린 내용보다도 더 많은 뉴에이지 사상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 뉴에이지 사상들은 이미 기독교 중고등부 이상의 신자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카톨릭 중고등부 아니 청년부에서도 모르는 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카톨릭신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더 뉴에이지의 손길이 뻗쳐있지만 우리는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카톨릭 신자로서 그냥 모른체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글을 아직 뉴에지가 무엇인지 잘모르시는 모든 분들에게 올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