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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보관물: 신학자료실
대학도
제 4장 대학도 *대학은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중 하나. 유가 척학의 이념을 드러낸다. 이 책의 특징은 修己治人이다. (참조, 소학: 先行後知) 즉 자신을 수향하고 다른이를 다스리는 先知後行에 있다. 그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먼저 자신만 수양해서는 안되고(修己)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야한다.(治人, 新民-백성을 새롭게 함)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데 이 책의 목적이있다.-유가의 三綱領삼강령. 두 번째로 지극한 선에 머무를 것을 알게 되면→정함이 있고(뜻이 있어 그 향하는 바가 있음), →다음으로 精함이 있다.(마음이 망동하지 않고 고요함이 있다).→ 편안함이 있다(처한 바에 편안하다)→생각할 수 있다(慮: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정미롭고 상세함이 있다)→목적한 바를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로 物有本末, 즉 일상의 잡다한 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 예를 들어 덕을 밝히는 것이 먼저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 나중이다. 다시말해서 일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하는 것과 뒤에 할 것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道이다. 네 번째로 밝은 덕을 밝게하려면(明明德, 平天下) 제후국을 다스려야 하고(治國) 그러기 위해서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하고(齊家) 집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서는 몸을 닦아야 하며(修身),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로 해야한다(正心). 그러기 위해서 뜻을 정성스럽게 해야하고(誠意) 그러기 위해서는 일의 선후를 알아 그대로 실천해야 하고(致知) 그러기 위해서는 일의 이치에 이르러야 한다(格物). 다시말해서 삼강오륜과 모든 일의 하나하나의 이치를 안 후에(격물) 일의 먼저함과 나중함을 알아서(치지) 인간의 언동이 드러나는 제일 처음인 뜻을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성의,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 혼자 있을 때 조심하는 것) 그다음 마음을 바르게 해야하고(정심, 분노와 두려함과 좋아함과 근심-四病을 제거하여 이치에 합당하는 것) 그다음 몸을 닦아야 한다.(수신,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즉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親愛)과 천하고 미워함과(賤惡) 두려워함과 공경함(畏敬)과 불쌍히 여김(哀矜)과 오만함과 게으름(??)의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그다음 집안을 화목하게 하며(제가), 즉 가장이 먼저 효도함으로써 본을 모범을 보이고 자시이 먼저 공경함으로써 집안 사람이 경하고 자신이 먼저 아랫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윗사람이 사랑하게 해야한다. 그럼으로써 이 효에서 충이 나오고 경에서 敬長(어른을 공경함)이 나오며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便民(백성을 편안하게 함)이 나오는 치국을 할 수 있다(치국). 이렇게 백성모두가 明明德하면 천하가 다스려 진다(평천하). 여기서 제가에서 평천하까지를 治人이라한다. 치인에 있어서 남에게 권하려면 자기 한테 먼저 있어야 하고 자기 한테 없을 때 남을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생각이다. 즉 推己及人(-자신에게 미루어보아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한다)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더과 재물과 형벌을 논하면 국가가 잘 다스려 질수 있다. 수신에서 격물에 이르는 것이 修己이다. 대학의 도는 명덕(인간이 태어날 때 가장 최상의 경지를 유지하고 있음, 그러한 상태)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고 지극한 선에 머무름에 있다. 이것은 그칠데를 안 다음에 定함이 있고 定함 다음에야 精할수 있고 그다음에 편안(安)할 수 있고 편안한 다음에야 생각 할 수 있고 생각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물은 근본과 끝이 있고 일은 마침과 시작함이 있다.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면 도에 가까우니라. 옛적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을 정돈하고 그 집을 정돈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이후의 내용은 위와 동일) (퇴계가 인용한 주자 혹문의 말) 공부(일)을 하려면 딴 생각을 하지 말고 주변 정돈을 잘해야 한다. 즉 밖으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整齊)마음을 엄숙하게 가져야 한다.(嚴肅-일이 닥쳤을 때 적극적으로 하려는 자세) 또한 몸이 깨어 있어야만한다. 이렇게 마음이 수렴되고 一物(한가지 일)에도 용납하지 않는 자세에서 격물을 하고 치지를 하며 성의를 하고 정심을 하고…평천하를 해야 한다. *수신하는 요령은 먼저 말은 忠(정성스레 말함)과 信(그 성실한 것으로 다함)이 있어야 하고 행동은 돈독하고(篤,독) 독실하며 공경해야(敬) 한다. 즉 화나는 것을 징계해야 하는데 첫째로 참아야 하고(忍) 두 번째로 이치로 변별해야 하며(辨理) 셋째로 反省(반성)해야 한다. 또한 육체의 욕심을 막아야하고 항상 선으로 향해야 한며 허물을 고쳐야 한다(改過, 개과). 일을 하는 요령은 한편으로 그 마땅한 것을 바르게 해야하고(正其義) 그 이익에대해 모의하지 않는다(不謀其利). 즉 이득을 위해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땅한 이득이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편으로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門其道). 즉 공은 부차적으로 그냥 따라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득과 공을 위해서 일을 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접대하는 요령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며(己所不欲 勿施於人) 행해서 그 목적을 얻지 못하거든 돌이켜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구하는 것이다(行有不得 反求諸己)
소학도
제 3장 소학도 *보편의 세계는 理즉 무극이태극이고, 천리이며, 理一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현상의 세계는 理와 形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形氣와 理를 같이 보면(涽淪看) 이와 기가 그 먼저와 나중이 없고(理氣無先後), 이와 형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分開看), 이가 먼저고 기가 나중이다. 3장 소학도에서는 악의 근원을 문제시한다. 즉 이 자체는 순전히 선하고 악함이 없다(純善無惡). 하지만 形氣는 耳目口鼻身이 욕심으로 가득차 있어서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有善有惡). 악의 근원은 이러한 욕심에서 근원한 것이다. 따라서 태어나서 14세까지는 소학을 배워야 하고 15세 부터는 사서 삼경을 공부해서 그러한 욕심에서 벗아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元亨利貞(원형이정)은 天道(천도)의 떳떳함(常)이고 仁義禮智는 인성의 강인함(綱)이다.(天理로부터 인간은 理를 받는 데 이것이 성품이다) 이것들은 그 처음에 선했다. 성대하게 나타나는 四端(수오지심-내가 성인이 되지 못함을 미워함, 사양지심-겸손하는 마음, 측은지심-불쌍한 사람을 측은이 여김, 시비지심-옳고 바르지 못함을 구별함.)이 감정에 따라 나타나서 어버이를 사랑하고(孝) 형에게 공경하고(悌,제), 임금에 충성하고(忠), 어른에 공손하니(敬) 이를 일러 병이(떳떳이 잡아야할것-본성)이라 한다. 본성은 따름이(順)이 있되 강제로 시키는 것이 없다. 오직 성인은 성품대로 하는 이라서 하늘과 같이 넓어서 털끝만한 힘도 드리지 않아도 萬善이 갖추어 진다.(왜냐면 천리를 받았기 때문에 그는 완전무결하고 형기에 결점이 전혀 없는, 성품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일반사람은 미련하여서 물질의 욕심에 기리워서 그 綱(형기가 선을 따르지 않고 악만을 행함)을 무너뜨리고 자포자기를 쉽게 한다. 성인은 이를 측은하게 생각하여 학문을 세우고 스승을 세워 그 뿌리를 북돋우고 그 가지를 펴게 하였다. 소학의 방법이란 마당에 물뿌리고 비질을 하고, 어른이 부르면 대답을 하고,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경하여 행동을 理法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다. 행동을 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시를 읊고 책을 읽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추어서 생각이 분에 넘침이 없게 해야 한다. 理를 연구하고(窮究) 몸을 닦음은 이 학문의 중요한 것이다. 밝은 명(天理)이 환하여 안과 밖이 없으니(公平無私) 德을 쌓고 어진일(業)을 해야만 그 처음의 상태, 욕심이 없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옛적에 완전 무결한 것이 이제 어찌 남음이 있겠는가?(지금도 깨끗하다) 세대가 멀어지고 성인이 없어져서 經典이 잃어지고 가르침이 끊어지니 어린이 기르는 것이 단정치 못해서 자라서 더욱 인정이 薄(박)해진다. 그래서 마을에 선한 풍속이 없어지고 세대마다 좋은 인재가 부족하다. 利慾에 옥신각신 싸움하며 異端의 말로 시끄러히 떠들기 잘한다. 다행이 이 본성이 끝까지 떨어지지 아니하였으니 이에 舊聞(옛날의 가르침)을 주어 모아 뛰에 오는 세대를 깨우칠까 하노라. 탄식스럽도다 젊은 사람들이여! 이 책을 잘 받들어 읽으라 이것은 나의 노망한 말이 아니라 성인의 말씀이다. 소학에서 중요한 것은 敬이다. 대학은 한 격 높은 이치를 아는 것이다.
서명도
제 2장 西銘圖 건(乾)을 아버지라 부르고 곤(坤)을 어머니라 부른다. 나(我)라는 이 자그만 몸이 그 가운데 처해 있다. 그러므로 천지사이에 가득차 있는 것이 나의 몸이요 천지를 이끄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다시 말해서 도의 경지에 이르른 나는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것, 즉 천지의 성품을 나의 성품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백성은 나의 동포요, 사물은 나와 같은 족속(與族)이다.(즉 최고이데아인 理一로부터 각각의 분수(개별 이데아)가 태어날 때는 모두 理一을 가지고 태어난다). 天子(大君)는 나의 부모의 맏아들이고, 그 大臣이란 것은 맏아들의 家相(봉건 제후의 집안일을 돌보는 사람)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높이는 것은 그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도리이고, 외롭고 약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하는 도리이다. 성인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그 덕이 합한 사람이고 현인은 그 빼어남을 지닌 사람이다. 무릇 하늘아래 늙고 병들고 외로운 홀아비와 과부는 다 내 형제중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고 호소할 데 없는 자이다. 때때로 보존함(하늘이 인간을 내려 살펴보는 형상)은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며 근심이 없는 것은 효에 있어서 순수한 자이다. 하늘의 명을 어김을 회덕(덕을 어긋나게 함)이라하고, 仁을 해치는 것을 賊이라 일컫는다. 악을 행하는 자는 재주없는 못난 자(不才)이고 그 모양(形)을 밟는 것(天性의 자연적 법칙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오직 그 부모를 닮는 자이다. 덕의 성대함인 조화를 알면 부모의 일을 잘 이어 따르고, 神妙(신묘, 정신의 묘함)를 다하면 그 뜻을 잘 이어 받든다. 방안에서도 부끄럽지 않는 것이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고, 마음(心)을 있게 하고(在) 성품(性, 본성)을 길들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맛있는 술을 싫어하는 것은 우임금이 그 어버이를 돌보는 것과 같고, 영재를 기르는 것은 현고숙(?)이 그 數를 길이 이어가게 함이다. 괴로워도 공경을 게을리 아니하여 마침내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것은 순인금의 효도의 공적(功)이고, 도망 칠 곳이 없어도 죽음을 피하지 않음은 신생(申生)의 공경(恭敬)이다. 주신 몸을 받아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은 증삼(曾參)이고, 따름에 용감하여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백기(佰奇)이다. 부귀와 행복은 미래의 나의 삶을 두텁게 할 것이고 가난과 천함과 근심은 너를 옥(玉)으로 완성 시켜 준다. 살아있는 동안 나는 순하게 섬기고 죽을 대는 나는 편안히 돌아 갈 것이다. 퇴계의 설명 서명은 횡거장자가 지은 것이다. 처음 이름은 정(頂)원(?)이었는데 程子(정자)가 고쳐서 서명이라 하고 林隱程(임은정)이 이 그림을 만들었다. 대개 성학(聖學)은 인(仁)을 탐구하는 데 있으니, 모름지기 이 뜻을 깊이 체득하여야 하늘과 땅의 만물과 더불어 한몸이 되는 것이 진실로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야 인을 하는 공부가 비로서 친절하고 맛이 있어서 분탕히 교섭없이 될 염려가 없고 또 사물(타인)을 자기로 인정하는 병통도 없이 마음의 덕이 온전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자는 이르기를 ‘서명의 뜻은 극히 잘 갖추어져 있어서 이것은 인의 체이다’라고 하였고 ‘다 채워 충만한 때는 성인이 된다’고 하였다.
태극도
제 一장 太極圖 무극이면서 태극이라는 말은 우주의 최종적 실재를 가리키는 말로 이는 시간, 공간 안에 있지 않지는 않지만(무극) 아무것도 없는 허무가 아니라 우주의 모든 사물을 설명해 주는 것(태극)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우주의 최고의 이치(天理)가 동(動)하는 길을 타고 있으면 양(陽)이 된다. 이 陽은 氣가 동하는 것으로 기가 고요히 있으면 그곳에 理가 타고 있는데 이것이 음(陰)이다. 여기서 또 기의 고요함이 극하면 다시 동하게 된다. 이 음과 양은 서로 맞서게 된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쳐져서 수, 화, 목, 금, 토를 만들어 내어 이 5개의 기(五行)가 차례로 펴져서 사계절이 돌아가게 된다. 여기서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무극인 것이다. 건도(乾道)가 남이 되고 곤도(坤道)가 여가 되어 두 기가 서로 감(感)하여 만물을 만들어 낸다. 만물은 다시 생기고 생겨서 그 변화가 끝이 없게 된다. 이중에서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남(秀, 수)을 가지기에 가장 영(靈)하다. 사람에게서 형체(形)가 생겨나게 되면 정신(神)이 지식(知)을 만들어 내며 오성(五性, 仁, 義, 禮, 智, 信)이 감하여 움직이므로 선한 것과 악한 것,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의 만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도는 인의(仁義)와 중정(中正, 중용)이며, 마음을 고요히 하여 인극(人極, 인간의 윤리생활의 최고의 표준)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늘과 땅과 함께 그 덕(德)스러움이 합하고 해와 달과 함께 그 명철(明徹)함이 합하며 사시(四時)와 더불어 그 질서가 합하고 귀신으로 더불어 그 길흉(吉凶)이 합한다. 군자는 이러한 것을 닦음으로써 길(吉)하고 소인은 이것을 어김으로써 흉(凶)하다. 그러므로 주역에서는 ‘천(天)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하고 지(地)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하며 인(人)의 도를 세워 인(仁)과 의(義)라한다. 또한 처음에 생겨나게 된 것을 미루어 보고 종말에 죽게 되는 것을 뒤로 돌이켜 보면 사생(死生)의 설(說)을 안다’고 언급한다.
결론
결론 19세기 조선왕조는 정치․경제․ 사회․사상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서 최제우는 민중을 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濟宣이라는 이름을 어리석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濟愚로 바꿨다. 그는 이런 생각 속에서 20대에 팔도를 돌아다니며 그 방법을 생각해 보고, 민중의 생활을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소득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860년 4월 5일 신비한 체험을 하고, ‘한울님’께 도를 얻어 ‘東學’을 창도했다. 수운의 신 즉 ‘한울님’은 인간의 화복과 자연계를 다스리는 全知全能하신 초월적 존재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따로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라 인간이 나면서부터 모시고 있는 내재적인 존재다. 이런 ‘한울님’을 잘 모시기 위해 기본이 되는 마음 자세는 誠․敬․信의 마음이며, 그 방법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三七字呪文이다. 인간은 주문을 통해 ‘한울님’을 섬길 수 있고 ‘한울님’을 알아모실 수 있다. 이러한 전제 조건으로 誠敬의 마음이 전제된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呪文을 외우고 하느님을 섬길 때 인간은 天命과 天理를 알아들어 道成德立하여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 그 방법 또한 유가처럼 오랜 시간의 학습을 통해 가능하고 일부 계층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誠․敬․信의 마음으로 道를 깨닫고, ‘한울님’을 섬길 때 聖人․君子가 되는 것이다. 이런 東學의 理想的 人間觀은 유교처럼 폐쇄적인 人間觀이 아니라, 개방적이며 보편적인 人間觀이다. 최제우의 人間觀을 최시형은 실생활에 구체화했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胞胎說을 주장하면서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주장해서 汎神論으로 빠졌다. 손병희는 人乃天의 원리로 인간 본성을 규명하고 인본주의의 사회적 실천에 힘썼다. 그는 性心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정의하면서 인간의 무궁함을 설명했고, ‘侍’를 覺天으로 풀이하여 ‘한울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한울님’이 어떤 분인지 먼저 깨닫고 자신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인간 본질을 깨닫게 했다. 東學의 人間觀은 근대 이후 인간을 존중하고, 나가 만물을 중요시한다는 면에서 사상적 발전을 가져왔으나, 인간을 너무 중요시하여 신적 위치로 격상시키면서, 정작 신의 위치는 격하시켰다. 人乃天思想은 無神論的 성격과 汎神論的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이런 東學의 사상은 근대적 人間觀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수운의 侍天主思想은 ‘한울님’을 섬긴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東學의 입장은 유교나,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는 事人如天思想은 평등사상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람을 恭敬하라는 주장이다. 이런 東學의 교리는 그리스도교의 愛主愛人思想과 비슷하다. 그러나 손병희가 侍天主思想을 발전시킨 人乃天思想은 근대적 人間觀형성에 도움은 되었으나 無神論과 汎神論的 문제를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이 곧 하늘이라면 인간과 하늘은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하늘을 섬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인간은 타인에게 봉사와 공경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하늘인데 굳이 하늘을 섬길 필요가 없고, 내가 중요한데 타인에게 봉사와 공경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잘못 해석하면 극도의 이기주의를 낳을 수 있다. 결국 손병희는 최제우와 최시형의 사상을 잇는 것 같으면서도, 모순된 교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Imago Dei’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Imago Dei란 하느님께서 인간은 자기의 형상대로 人格的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대자로서 창조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피조물로서 하느님을 닮은 것이지 똑같은 존재는 아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언제나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하느님과의 거리감을 인식하며, 모상의 원천인 하느님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의 모상인 구체적인 인간은 하느님을 대표하는 존재다. 이렇게 인간이 하느님을 대표하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