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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보관물: 신학자료실
실체기대
2. 실체기대 세례요한은 모세와 같은 처지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있어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기 때문에 동시에 자녀의 입자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다(본장 제2절 Ⅰ.2). 따라서 세례요한은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40년간의 탕감기간을 지나고,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운 터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 국가인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지만, 세례요한을 중심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 밑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그 제국을 하늘 것으로 복귀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례요한을 중심한 기사 이적을 보여 주시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잉태에 관한 천사의 놀라운 예고와 또 그 부친이 이것을 믿지 않았을 때 벙어리가 되었던 기사, 그리고 그가 출생할 때에 보여주신 이적 등으로 말미암아,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고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누가복음 1장 65~66절1))고 하신 성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민족은 세례요한의 출생시부터,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목숨을 이어가면서 기도의 생활을 한 그의 빛나는 수도의 생애로 인하여, 제사장들과(요한복음 1장 19절2)) 일반 유대인들(누가복음 3장 15절3)), 그를 메시아로 잘못 알 정도로 그의 신망이 높았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궁중 40년의 탕감기간을 마치고 애급사람으로 죽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믿고 따랐더면, 그들은 홍해를 건너거나 광야를 돌지 않고, 또 석판이나 성막이나 법궤도 필요없이 불레셋의 곧은 길을 통하여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기사 이적으로써 믿음의 대상자로 세워 주신 세례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기대를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제3절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천사를 주관해야 할 아담(고린도전서 6장 3절)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탄의 주관을 받아서 지옥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그 자신이 사탄을 굴복시켜 천국을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제1절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같이, 하나님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사탄이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순종굴복할 리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인 책임을 지시고 야곱과 모세를 세워 장차 예수님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본보기노정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적인 노정을 걸었고, 모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형상적인 노정을 걸었으며, 예수님은 그 실체적인 노정을 걸으셔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사탄을 굴보시켜 나아갔던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완수하셔야 했던 것이다. 신명기 18장 18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라”고 하신 말씀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모세와 같은 노정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 보여주신 본보기노정을 그대로 걷고 계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상세한 것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논하였지만, 모세를 중심한 3차의 민족적인 가나안복귀노정과, 예수님을 중심한 3차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전체적인 윤곽을 비교 대조하면서,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노하여 보기로 하자. Ⅰ.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세례요한이었다. 그러면 세례요한은 어떠한 처지에서 그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었던가 ?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가 석판을 깨뜨린 것과 또 반석을 두번 친 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그를 중심한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석판과 반석의 실체인 예수님의 몸도 칠 수 있다는 조건을 사탄에게 허락하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는 데 대해서 이미 모세노정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조건을 피하시게 되려며는, 그의 강림을 위한 터전을 닦아 나아가는 선민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항상 불신의 길을 걷게 되어, 장차 오실 예수님 앞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켜 왔으므로, 이러한 조건을 막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발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를 합하여 850명을 멸하는 등(열왕기상 18장 19절), 사탄분립의 역사를 하고 승천하였던 것이다(열왕기하 2장 11절). 그러나 엘리야의 전체적인 사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는 재림해야 했던 것이다(말라기 4장 5절). 이와같이 엘리야가 다하지 못한 사탄 분립의 사명을 맡아 완수하고, 메시아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요한복음 1장 23절) 엘리야로 왔던 선지자가 바로 세례요한이었다(마태복음 11장 14절, 마태복음 17장 13절). 이스라엘민족은 애급에서 400년 동안,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고역을 당하여 오다가, 그들을 민족적으로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메시아를 맞게 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모세 한 분을 만나게 되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말라기 선지 이후 메시아강림준비시대 400년간,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페르샤, 헬라, 애급(에집트),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들에게 고역을 당하여 오다가, 마침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 앞으로 그들을 인도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세례요한을 만났던 것이다. 애급고역 400년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섰던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충효의 도를 배웠던 것과같이, 메시아강림준비시대 400년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섰던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하늘에 대한 충효의 도를 세웠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을 비롯한(요한복음 1장 19절) 유대인들은 모두 세례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누가복음 3장 15절). 세례요한은 이와같이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세웠으므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모세 노정이 보여준 교훈
Ⅲ. 모세 노정이 보여준 교훈 모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뜻을 받드는 수 많은 성도들이 모세에 관한 성서의 기록을 읽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모세의 역사에 관한 기록인줄만 알았고,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복귀섭리에 관한 어떠한 비밀을 가르쳐주시려 하셨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5장 19절1)에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정도로 말씀 하셨을 뿐 모세노정의 근본의의를 밝히지 않고 돌아가셨던 것이다(요한복음 16장 12절2)).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가 어떻게 복귀섭리를 위한 공식적인 또는 전형적인 노정을 걸었는가 하는 것을 밝혔다. 이것이 장차 예수님께서 걸으실 길을 그대로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본장 제3절을 대조함으로써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를 중심한 섭리 하나만을 보아도,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의 절대적인 목적을 지향하여 인류역사를 이끌어 나오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모세 노정은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서, 그 인간을 중심한 하나님의 예정의 성사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예정도 그 예정을 위하여 세워진 인물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 인물을 중심하고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을 예정하시고, 그에게 이것을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책임분담에 대해서는 간섭치 않으시고,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놀라운 이적과 기사로써 이스라엘을 이끌어 주셨으나, 모세가 석판을 받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드는 행동에 대해서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셨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이 독자적으로 걸어야 할 책이분담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의 절대성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뜻을 예정하시고 이루시려는 것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모세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의 대신으로 여호수아를 세워서라도 한 번 예정하신 뜻은 기필코 이루시고야 마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하늘이 세우신 아벨적인 인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가인의 입장에서 충성을 다한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아벨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태복음 11장 12절)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이다. 또 한편 큰 사명을 진 사람일수록 그에게 주어지는 시험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인간시조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배반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은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시고 버리시는 시험을 이기고 나서야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셨던 시험을 이기고 난 후에야(출애굽기 4장 24절),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사탄이 타락을 조건으로 하여 인간을 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조건하고 인간에게 은사를 내리실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참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사를 내시려 할 때에는, 그 은사를 전후하여 사탄의 참소를 막기 위한 시험을 반드시 하시는 것이다. 모세노정에서 그 예를 들어보면, 모세에게는 바로궁중 40년의시련을 거친 후에야 제1차 출애급의 은사가 허락되었던 것이고, 또 미디안광야 40년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 하나님은 제2차 출애급의 은사를 내리셨던 것이다(출애굽기 4장 2~9절).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는 시험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4장 25절) 3대기적과 10재앙의 이적을 내려 주셨고(출애굽기 7장 10절~12장 36절), 삼일노정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10장 22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은사가 있었다(출애굽기 13장 21절). 한편 홍해의 시련을 지난 후에야(출애굽기 14장 21~22절) 만나와 메추리의 은사(출애굽기 16장 13절)가 있었고, 아말렉과의 싸움으로 인한 시련(출애굽기 17장 10절)이 있은 후에야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은사(출애굽기 31장 18절)가 있었다. 그리고 40년간 광야에서 표류한 시련(민수기 14장 33절)이 있은 후에 반석 샘물의 은사(민수기 20장 8절)가 있었고, 불뱀의 시련을 거친 후에야(민수기 21장 6절) 구리뱀의 은사(민수기 21장 9절)가 있었던 것이다. 모세노정은 위와 같이 여러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던 것이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
ㄷ. 메시아를 위한 기대 이스라엘 민족은 정탐 40일의 사탄분립 기간을 세우지 못하여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실패하고, 이 기간을 재탕감하기 위하여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유리하고 다시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왔다. 이 대의 모세는 제3차 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에 따르는 모세의 반석 2타로 말미암아 이 두 기대는 모두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에서 떠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섬멸되었으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가 세웠던 제2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정탐 40일의 사탄분립기간을 믿은과 충성으로 찾아 세웠기 때문에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으나,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은, 모세를 대신한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충성을 다하여 법궤를 모시고 요단을 건너 여리고성을 무지르고 소망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룩됨으로써, 아브라함 때에 이루어졌던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는 그의 제물 실수로 인하여 400년 애급고영의 탕감노정을 지나서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러나 이미 후편 제1장 제3절 Ⅲ에서 자세히 논한 바와 같이, 그 때는 이미 타락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하고 애급왕국 등의 굳건한 왕국을 건설하여, 하늘편의 복귀섭리에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는 세워졌을 지라도, 그 터전 위에 사탄에 대결할 수 잇는 하늘편의 왕국이 건설되기까지는 메시아가 강림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간 내적 이스라엘도 또다시 불신으로 흘러, 이 섭리는 다시 연장을 거듭하여 예수님 때까지 밀려 나왔던 것이다.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
ㄴ) 여후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가나안으로 복귀하려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민수기 20장 1~13절1)) 외적으로는 사탄이 침범했지만, 르비듬 반석 샘물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는 그대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에게 먹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위에서도 밝혀 온 바와같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서빌에 대한 또 하나의 노정을 보여주셨다. 즉 이스라엘 민족 중, 사탄 세계인 애급에서 출생하여 광야노정에서 불신으로 돌아갔던 외적인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탐 40일을 믿음으로 세웠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반석샘물을 마시고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만이, 모세 대신의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민수기 32장 11~12절2)).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면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잔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수기 27장 18~20절3))고 하셨다. 여호수아는 정탐 40일기간에 불신으로 돌아갔던 온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모세가 세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위에 굳게 서서, 변함 없는 믿음과 충절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고 끝까지 그것을 받들었던 오직 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와같이 비록 모세는 불신으로 돌아갔으나,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여전히 여호수아가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후수아를 모세의 대신으로 세우시고, 그 내적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여 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게 하심으로써,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고, 이 섭리에 의하여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써, 거기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제3차 노정의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여호수아)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건너가서 네(모세)가 볼 당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신명기 3장 28절4))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후수아에게도 “모세와 함께 있떤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여호수아 1장 5~6절5))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미디안광야생활 40년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찾아 세웠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령하셨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3장 8~10절6)), 하나님은 광야에서 표루하는 40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찾아 세운 여후수아를 모세 대신으로 부르시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여호수아 1장 2절)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을 불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러한 뜻을 전하였을 때(여호수아 1장 10절7)),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여호수아 1장 16~18절8))라고 대답하면서, 그들은 죽기를 맹세하고 여호수아를 따라갈 것을 결의하였다. 이와같이 모세의 사명을 대신하고 나선 여호수아는, 초림때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러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따라서 모세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여호수아의 노정은, 예수님의 영적 복귀의 노정을 영 육 아울러 탕감복귀해야 할 그의 재림노정에 대한 표시적인 노정이 되는 것이다. 모세가 제2차 노정에서 가나안 땅에 정탐으로 보냈던 열 두 사람이 있었다(민수기 13장 1~2절9)). 그들 중 오직 충성으로 그 사명을 완수한 두 사람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여호수아는 다시 두 사람의 정탐을 여리고성으로 보냈다(여호수아 2장 1절10)). 그리하여 여리고 성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두 정탐인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던이다”(여호수아 2장 24절11))라고 믿음으로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 때에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두 그 정탐인의 말을 믿었으므로, 이것으로써 과거에 40일 정탐을 뜻맞게 세우지 못한 선조들의 죄를 탕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내적 이스라엘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선 여호수아에게 순종할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 기대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그들은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제2차 노정에서 3대기적과 10재앙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던, 모세를 중심한 그들의 선조들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거너기 전에 3일노정을 찾아 세웠던 것과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3일 조정을 찾아 세웠던 것이다(여호수아 3장 2절12)). 한편 제2차 노정에 있어서 3일노정을 지난 이스라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홍해까지 인도하였던 것과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그들이 3일노정을 마친 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표상된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 실체인 법궤가 그들을 요단강까지 인도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아 3장 3절13), 여호수아 3장 8절14)). 그리고 모세를 인도하던 지팡이에 의해서 홍해가 갈라졌듯이, 여호수아를 인도하던 법궤가 요단강의 물 위에 서자, 언덕에 넘치던 요단의 흐름이 갈라져서(여호수아 3장 16절15)), 따라온 이스라엘은 육지와 같이 강을 건너게 되었다(여호수아 3장 17절16)). 지팡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의 표시체였고, 두 석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 법궤는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인 실체였었다. 그러므로 법궤 앞에서 요단강의 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이 평탄하게 가나안 땅으로 복귀하였다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과 성신 앞에 몰로 표시된 이 죄악세상(요한계시록 17장 15절17))이 선 악으로 분립되어 심판을 받은 후, 모든 성도들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오나성하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 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여호수아 4장 2~3절18))고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정월 10일에 요단강에서 올라와서, 여리고의 동편 지경인 길갈에 진을 치고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거기에 세웠었다(여호수아 4장 2019)절).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미리 보여주신 것인가 ? 이미 논한 바와 같이 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상징한다. 따라서 12지파를 대표한 열 두 사람이, 법궤로 인하여 물이 갈라진 요단강 가운데서 열 두 돌을 받들었다고 하는 것은, 장차 12지파의 대표형으로 부름을 받을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 죄악세상이 선악으로 갈라질 때, 그 곳에서 예수님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들이 열 두 돌을 받을었다가 가나안땅의 안정된 진에 한데 모아 놓았을 때, 여호수아는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여호수아 4장 24절20))고 말하였다. 이것은 장차 돌로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는 열 두 제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곳에서 하나로 뭉쳐야만,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야곱이 가는 곳마다 돌단을 쌓았던 것과 같이, 야곱의 열 두 아들의 후손인 열 두 지파의 대 표들도 열 두 돌을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의 제단을 쌓아 앞으로 성전을 건축할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니,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힘을 합하여 예수님을 성전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후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되지 못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장 19절21))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과연 12제자는 하나 되지 못하고,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므로, 성전된 예수님이 십자가로써 헐렸다가 3일만에 부활하시어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모은 후에야, 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어 영적인 성전으로 모시게 되었고, 또 재림하신 후에야 실체성전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제2차노정을 출발할 때, 그 해 정월 14일 유월절을 지나고 진군하였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12장 17~18절22)) 길갈에 진을 쳤던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그 해 정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굳게 닫힌 여리고의 성벽을 향해 진군을 하였다. 땅에서 난 것을 먹기 시작하자 40년간이나 내려주시던 만나도 그쳤으므로, 그 때부터는 인간의 땀으로 된 곡식으로 생활해야만 되었으며, 사탄 도성의 최후의 관문을 뚫는데 있어서도 인간으로서 할 책임을 다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4만의 병사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따라 일곱 제사장이 일곱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고, 또 그뒤는 레우지파의 제사장들이 멘 법궤(여호수아 3장 3절23))가 따랐으며, 맨 뒤에는 이스라엘 전군이 연달아 진군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알 6장 8~9절24)).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행군으로 하루에 한 번씩 6일이나 성을 돌았어도 그 성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그들은 인내와 복종으로 사탄의 침범을 당한 6일의 창조기간을 탕감복귀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순종으로 6일을 찾아 세운 후, 제7일에 일곱 나팔을 부는 7명의 제사장이 성벽을 일곱 번 돌면서 7회의 나팔소리를 끝내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향하여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호령하자, 백성들이 이에 응하여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치니 그 성이 곧 무너졌었다(여호수아 6장25)). 이러한 노정은 장차 예수님의 권능과 그의 성도들에 의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가로막혀 잇는 사탄의 장벽이 무너질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성벽은 다시 쌓아서는 아니 될 것이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 계자를 잃으리라”(여호수아 6장 26절26))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거침없이 적을 공격하게 된 여호수아는 벧호론 싸움에서의 19왕과 메롬격전에서의 12왕을 합하여 모두 31왕을 멸하였으니(여호수아 12장 9~24절27)), 이것도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의 왕들을 전부 굴복시키시고 그 백성들을 포섭하여 통일된 지상천국을 건설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