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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보관물: 신학자료실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
제2절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 「엘리야」가 재림하리라는 것은 이미 「말라기」선지가 예언했던 바였고(말라기 4장 5절), 세례「요한」이 바로 재림한 「엘리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증언이었다(마태복음 17장 13절, 마태복음 11장 14절). 그러나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재림자였다는 사실은, 일반 「유대」인은 물론 세례「요한」 자신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요한복음 1장 21절), 이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의혹(마태복음 11장 3절)과, 그에 따르는 「유대」인들의 불신은 날로 더하여지게 되어, 마침내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Ⅰ.「엘리야」의 재림을 중심한 「유대」인들의 심적 동향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 「솔로몬」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성전 이상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던 성전 이상을 다시 찾아 세워, 실체 성전된 「메시아」를 맞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4대선지자와 12소선지를 보내시어 「사탄」분립의 역사를 하셨다. 또 하나님께서 특별선지 「엘리야」를 보내시어, 「가멜」산에서 「바알」선지자들과 대결케 하여 「바알」신을 멸하신 것도, 이러한 이상 실현의 뜻을 가로막는 「사탄」을 멸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이루지 못하고 승천하였기 때문에(열왕기하 2장 11절),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사탄」을 분립해 가는 노정에 다시 「사탄」이 횡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실체 성전 이상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이에 앞서 「엘리야」가 지상에 다 이루지 못하고 간 「사탄」분립의 사명을 계승 완수하게 하는 섭리가 있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섭리 적인 필연성에 의하여, 선지자 「말라기」는 「엘리야」가 재림해야 할 것을 예언했던 것이다(말라기 4장 5절1)).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의 간곡한 소망은 물론 「메시아」의 강림이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유대」인들이 갈망해 왔던 것은, 「엘리야」의 재림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말라기」선지를 통하여, 「메시아」의 강림에 앞서 그의 앞길을 예비하게 하시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시마고 분명히 약속하셨었기 때문이다(말라기 4장 5절). 그런데 「엘리야」는 이미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900여년 전에 승천한 선지자로서(열왕기하 2장 11절), 그는 분명히 영계에 있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인 사실이 있다(누가복음 9장 31절). 이와 같이되어 「유대」민족은 하늘에 머물고 있는 「엘리야」가 다시 올 때에는, 전에 승천하던 모양으로 반드시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이,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듯이,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엘리야」가 다시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다시 왔다는 소식은 없고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메시야」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예루살렘」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7장 10절1)을 보면,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만일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그보다 먼저 오기로 약속되어 있는(말라기 4장 5절) 「엘리야」는 어디 와 있는가 하는 공박을 받게 되었다. 제자들은 그 답변에 궁하여 예수님께 직접 문의한 결과(마태복음 17장 10절), 예수님은 바로 세례「요한」이 그들이 고대하고 있는 「엘리야」라고 대답해 주셨다(마태복음 11장 14절1), 마태복음 17장 13절).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바로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겠지만,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는 다른 「유대」인들이야 어떻게 예수님의 이러한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인가 ? 예수님 자신도 「유대」인들이 자기의 증언을 즐겨 받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ꡔ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ꡕ(마태복음 11장 14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이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을 더욱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요한」복음 1장 21절1)의 기록이 보이는 바, 이미 세례「요한」 자신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명백히 부인한 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된 성구
Ⅵ.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성구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데가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하실 때, 이것을 만류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ꡔ「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ꡕ(마태복음 16장 23절)고하신 책망으로 미루어,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이 어찌하여 「베드로」에 대해 그토록 책망하셨을 것인가 ? 그러나 사실에서는 예수님은 그때 이미,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어차피 영 육 아우른 구원섭리를 완성하실 수 없게 되자, 영적인 구원만이라도 이루시려고 그 탕감조건으로서, 부득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로 결정하고 계셨던 때였다(누가복음 9장 31절). 그런 때에 「베드로」가 이 길을 만류한 것은, 결국 십자가로 인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길마저 방해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처럼 책망하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ꡔ다 이루었다ꡕ(요한복음 19장 30절)고 최후의 말씀을 하신 것은 십자가로써 구원섭리의 전 목적이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아시게 된 후부터, 예수님은 육적인 구원은 재림 후의 섭리로 미루시고,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만이라도 조성하시려고 십자가의 노정을 걸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ꡔ다 이루었다ꡕ고하신 그 말씀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제2차적인 구원섭리의 목적으로 세우셨던, 십자가에 의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를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하여는, 첫째로 기도에 의한 신령으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해야 되고, 다음으로는 성서를 바르게 읽음으로써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요한복음 4장 24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은 죽음의 길을 가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던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던 근본 목적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구원이 예수님이 띠고 오셨던 사명의 전부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서 뜻을 이루시려고 오셨다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원치 않는 죽음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억울하고도 비통한 심정을 풀어드리고 그의 뜻을 맞추어 드리는 신부가 지상에 생겨나기 전에, 예수님이 누구와 더불어 그 뜻을 이루시겠다고 재림하실 것인가 ! ꡔ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ꡕ(누가복음 18장 8절1))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무지를 예상하시고 개탄하신 말씀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서를 중심하고,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죽음의 길을 가시려고 오신 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영적으로 예수님에게 직접 물어보면, 더욱 명백하게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자기가 영통을 하지 못하면 영통하는 딴 사람의 증언을 통하여서라도 바른 신앙을 가져야만, 끝날에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Ⅴ.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전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사야」서 53장에, 그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만이 성경에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리를 알고 성서를 다시 읽어보면, 구약시대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된 「이사야」서 9장11장, 60장 등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장차 잉태될 예수님이 생전에 「유대」인의 왕이 되어, 영세토록 소멸되지 않을 왕국을 지상에 건설하실 것을 예언케 하셨던 사실을 알게 된다(누가복음 1장 31 – 33절). 그러면 어찌하여 이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전편 제1장 5절 ꁽ.2).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인간 시조는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타락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를 성서에서 들어보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것을 안 따먹고 완성될 수도 있는 반면에, 결과적으로 나타난 사실과 같이 따먹고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또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구원섭리를 위한 인간 책임분담의 조건으로 십계명을 주셨던 것인데, 여기에서도 인간은 그것을 지키어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고, 혹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멸망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애급에서 「가나안」복지를 향하여 떠난 「이스라엘」민족이 「모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세워야 할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복지로 들어갈 수도 있었고, 혹은 불순종하여 못 들어가게 될 수도 있었다. 사실상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복지로 들어가도록 예정하시고(출애굽기 3장 8절), 그에게 이를 명령하셨었으나, 그들은 불신으로 인하여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그 후손들만이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인간 자신이 수행해야 될 책임분담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이루어 드릴 수도 있고, 혹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 드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신의 책임분담 수해 여부에 따라 그 어느 한 면의 결과를 이루어 놓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메시아」를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지만, 오시는 「메시아」를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내시는 「메시아」를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을 수도 있었던 것이고, 혹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믿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 나타날 양면의 결과에 대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기록과 같이,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지만, 한편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과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기록과 같이, 저들이 「메시아」를 믿고 모심으로써, 영광으로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예언만이 이루어지고,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 및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예언은 모두 재림하셔서 이루어질 말씀으로 남아진 것이다.
구원의 한계와 예수 재림의 목적
Ⅳ.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의 한계와 예수 재림의 목적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 예수님은 영 육 양면의 구원섭리를 완수하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사야서 9장 6 – 7절)과,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천사의 교시(누가복음 1장 31 – 33절) 그대로, 또 예수께서 친히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신 말씀(마태복음 4장 17절)과 같이, 그는 영원토록 소멸되지 않는 지상천국을 건설하셨을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육신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세기 2장 7절). 이와 같이 영과 육으로 창조된 인간이므로, 타락도 역시 영 육 아울러 된 것이었다. 따라서 구원도 영적 구원과 육적 구원을 아울러 하셔야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목적이 구원섭리를 완수하시려는 데 있었으므로 그는 영적 구원과 육적 구원을 아울러 완성하셔야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일체를 이룬다는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스스로 포도나무로, 신도들을 그 가지로 비유하셨고(요한복음 15장 5절), 또 ꡔ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ꡕ(요한복음 14장 20절)고도 하셨다. 이처럼 말씀하신 이유는 영 육 아울러 타락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가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써 영 육 아울러 그와 하나가 되었다면, 타락인간도 영 육 아울러 구원을 받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여 그를 십자가에 내주었으므로,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마침내 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에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을 믿어, 그와 한 몸을 이룬 신도들의 육신도 그대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어 아무리 독실한 신앙자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로써는 육적 구원은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아담」부터 내려오는 혈통적인 원죄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그에게 원죄는 그대로 남아지게 되어, 그는 또 원죄 있는 자식을 낳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육신을 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원죄로 말미암아 항상 육신을 통하여 들어오는 「사탄」침범의 조건을 막기 위함이며, ꡔ쉬지 말고 기도하라ꡕ(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1))한 것도, 이와 같이 십자가에 의한 구속으로도 근절되지 않은, 원죄로 인한 「사탄」침범의 조건을 막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의 육신이 「사탄」의 침범을 당함으로써, 육적 구원섭리의 목적은 달성하시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피의 대속으로 부활의 달성하시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피의 대속으로 부활의 승리 적인 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영적 구원의 기대를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부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도들은 영적 구원섭리의 혜택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은 영적 구원뿐이므로, 잘 믿는 신도들에게도 원죄는 육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것이 계속적으로 그 자손들에게 유전되어 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도들은 그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죄와 더불어 더욱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십자가로써 청산하시지 못한 원죄를 속하고 육적 구원을 완성함으로써 영 육 아우른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지상에 재림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십자가의 대속을 받은 성도들도 원죄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사도들 중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바울」도, 육적으로 들어오는 죄악의 길을 막을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던 끝에, ꡔ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ꡕ(로마서 7장 22절 – 25절)고 말하였다. 이것은 영적 구원의 완성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육적 구원의 미완성에 대한 비탄을 표명한 것이라 하겠다. 또 「요한」1서 1장 8절1) 내지 10절에 ꡔ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ꡕ라고 한 「요한」의 고백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받고 있는 우리들도, 여전히 원죄 때문에 범죄자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Ⅲ.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우리는 먼저 성경 상에 나타난 사도들의 언행을 중심 삼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당연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느낀 뚜렷한 하나의 정염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김으로써 분개하고 서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준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을 통분이 여겼으며, 그들의 행위를 패역무도한 것으로 여겨 저주하였다(사도행전 7장 51 – 53절). 그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내려왔던 것이다. 만일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결과였다면, 사도들이 그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정이겠지만, 하나님의 예정대로 이루어진 그 섭리의 결과에 대해서 그렇게도 분개하고 저주했을 리는 없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온당치 않은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하나님의 예정에서 되어진 필연적인 결과였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부르시어 저들을 보호 육성하시고, 때로는 그들을 고난과 시련으로써 인도하셨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시어 위로하시며, 장차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굳게 약속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막과 성전을 지음으로써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시고, 동방박사 「시몬」, 「안나」, 세례「요한」 등을 보내시어 「메시아」의 탄생과 그의 나타나심을 널리 증거 하셨던 것이다. 특히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그가 잉태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증거한 사실을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었고(누가복음 1장 13절1)), 그가 출생할 때에 되어진 이적은 당시의 「유대」성중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누가복음 1장 63절 – 66절). 뿐만 아니라 광야에 있어서의 그의 수도생활은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가 「메시아」가 아닌 가고 생각케 할 정도로 놀랄만한 것이었다(누가복음 3장 15절). 하나님이 이렇듯 위대한 세례「요한」까지 보내시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 하게 하셨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어디까지나 「이스라엘」로 하여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할 「이스라엘」은 그를 「메시아」로 믿어야만 했었다. 만일 저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다면,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고대해 왔던 그 「메시아」를 누가 십자가에 내주었을 것인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 길에 내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반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길을 가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 자신의 언행으로 보아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메시아」로 오셨던 그 전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길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모든 섭리가 그러했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메시아」로 믿을 수 있도록 언행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한복음 6장 29절1))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또 「유대」인들의 배신행위를 가슴아프게 생각하시고, 호소할 곳이 없어 성을 바라보고 우시면서, 하나님이 2천년 동안이나 애쓰시며 사랑으로 이끌어 온 「이스라엘」선민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 성마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라고 저주하시면서, ꡔ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ꡕ(누가복음 19장 41 – 44절1))고, 명백히 그 무지를 지적하셨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ꡔ「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ꡕ(마태복음 23장 37절)라고 하시어, 그들의 완고와 불신을 한탄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증거하고 있는 성경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를 책망하시면서 ꡔ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ꡕ(요한복음 5장 39 – 40절1))라고 슬퍼하셨다. 그는 또 ꡔ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ꡕ라고 서러워하시면서, 이어 ꡔ「모세」를 믿었다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ꡕ(요한복음 5장 43 – 46절)고도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돌이키시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던가. 그러나 그들은 그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바알세불」이 접한 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던가(마태복음 12장 24절). 그리고 이러한 비참한 정경을 보시는 예수님은 때로는 ꡔ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ꡕ(요한복음 10장 38절1))고도 말씀하셨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그들에게 화가 있으라고, 분노를 퍼붓기도 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3장 13 – 36절1)).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었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이와 같이 저들에게 자기를 믿을 수 있도록 언행을 하셨던 것이다.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고 예수님이 원하신 대로 그를 「메시아」로 믿었다면, 누가 그를 십자가의 죽음 길로 몰아냈을 것인가 ! 우리는 위에서 논증한 모든 사실로 보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전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의 결과로 온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장 8절의 ꡔ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ꡕ는 성구는, 바로 이 사실을 충분히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 노정이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예정하신 길이었다면, 그는 당연히 가셔야 할 길을 걸어가시면서 무엇 때문에 할만 하면 그 죽음의 잔을 면케 해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를 올리셨을 것인가(마태복음 26장 39절). 실상 그것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4천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애쓰셨던 지상천국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고난의 역사가 그대로 연장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요한」복음 3장 14절을 보면 예수 님께서는 ꡔ「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ꡕ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때, 광야에서 「모세」를 믿지 않게 되자, 불 뱀이 나와서 그들을 물어 죽이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리 뱀을 장대 끝에 달게 하여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살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써 만민이 지옥으로 가야만 하게 되었기 때문에, 장차 예수님이 구리뱀과 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그것을 쳐다보고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예견하시면서 예수님은 서글픈 심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누가복음 19장 44절) 그가 돌아가신 후 「이스라엘」선민이 쇠망한 것을 보아도,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사야」 9장 6절 이하에 ꡔ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ꡕ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윗」왕의 위를 가지고 오셔서, 영원히 멸하지 않을 왕국을 세우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잉태될 때에도,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ꡔ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ꡕ(누가복음 1장 31 – 33절)는 말씀을 전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선민을 불러, 2천년간이나 고난 가운데서 이끌어 나오신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시어 영원히 존속할 왕국을 이룩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가 「유대」인들에게 몰려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저들은 선민의 자격을 잃어버리고 지리멸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족적인 학대를 받아 나왔다. 이것은 그들이 신봉해야 할 「메시아」를 도리어 살해함으로써, 구원섭리의 목적을 이루시지 못하게 하였던 그 범죄에 대한 벌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이후 수많은 성도들이 당하여 온 십자가의 고난도, 예수님을 살해한 연대적 범죄에 대한 형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