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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적 물의와 논란

Ⅳ.사회적, 종교적 물의와 논란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교리에  따라 현세의 모든 제도를 거부한다. 그것은 병역거부와 수혈거부 및 기존사회  생활의 파괴 기성종교 비판등으로 나타나며, 그로써사회적 물의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1.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거부 및 집총거부 여호와의 증인은 “현 정부의  권력은 사탄, 마귀로 부터 받았기에 우리의 적이다.  따라서 곧 멸망할 정부를 위해  협조하거나 국기 배례는 물론 국가를 위해 병역을 이행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강조한다.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에 등록되어 있고 우리의 충성은 전능하신 하느님과 그의 왕국에 있기 때문에 병역을 이행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에서의  탈주와 같다”고 하며 병역이나 국가 배례를 거부한다. 결국 병역거부는 그들의 정부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신도들은 학교에서의 교련교육과 병역을 거부하는데 이로 인해 한창 배울나이에 학업을 포기하고 방황하다가 20세가 되면 벙역 기피자가 되어 구속되며 결국 청춘시절을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는데 소비하게 된다. 실제로 제 2대 교주 리더포드  이후 세계 제 2차대전 당시 미국에서 3500명의 신도가 집단구속되고,  독일에서는 6019명의 신도가 구속되어  635명이 옥사했으며, 지난  100년간 세계각국에서 국가체제와 충돌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75년 3월 12일 부산에서 55명의신도가 집단 구속되고,  지금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이가 많다. 또한 예비군 소집 기피자로  되어 있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요즈음은 방법을 달리하여  군대에 들어가서 항명(抗命)하는 방법을  쓴다. 만약 교단의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 제명하여 출교 처분한다. 이와같이 그들은 현세의 정부조직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현세의 조직에 의존한다.예컨대, 군대로 부터의 보호, 사회 간접자본 이용(도로,병원…), 또,병역 면제를 얻기 위해 정부에 호소하는 것등을 예로 들수 있다.      2.수혈거부3)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신도들이 피를 먹거나 수혈을 하면 교단으로 부터 제명시킨다. 그래서,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은 선지국을 먹지 않으며, ‘목졸라죽인 짐승의 고기는 먹지말라’는 성서 귀절에 따라 보신탕과 피를 빼지 않고 잡은 닭고기도 먹지 않는다. 또 어떠한 신체적 위험이 따르더라도 수혈을 거부한다. 피가 없어 죽어가는  신도들은 죽어도 다시 부활할테니  안심하고 수혈을 거부하고 죽으라는 말을 믿고 죽어간다. 수혈을 거부한다는 수혈거부카드를 주민등록증 처럼 신분증화해서 항상 의무적으로 휴대하며, 이 마저 안될때에는 대리인이 거부한다.  이들은 이러한 근거를 “피를 멀리하라”(사도15,20),“피를 먹지 말라”(레위17,14)에두고 이를 수혈에 까지  확대해석하여 피를 먹거나 수혈하는 행위를 하느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잘못 해석된 교리로 인간의  귀한 생명을 잃을 수는 없다. 실상 그들은 창세기 9,4을 수혈금지 교리의 근거로  제시하지만 그것은 수혈이나 피를 먹는 것에 대해 논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짐승들을 잡아 피있는 채로 먹는 이교의 풍습에  대한 것이다. 또 그들은 영양물의  공급을 위한 수혈을 반대한다고 하나 의학적인 측면에서 수혈의 목적은 파괴된 혈액과  산소를 옮기는 세포를 대치해 넣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서 어디를 살펴보아도 수혈을 하지 말라는 귀절은 없다. 이는 성서해석의오류에 기인한 것이다.      3. 기존 사회생활의 파괴4) 많은 신흥종교에서 강조하는 시한부 말세론은 말세라는 절박한 위기의식과 공포심을 심어줌으로써, 모든것을 포기하고 그들의가르침에 맹종하게 하고, 그 결과 일상적인 삶의 터전을  파괴시켜 버리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여호와의 증인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사외생활 파괴는  위에서 언급한 병역거부,수혈거부 뿐만 아니라 가정윤리 파괴,  특정 직업포기, 의무교육거부와 학업  포기,신도들기리만의 결혼등을 들수  있다.            1)가정윤리의 파괴  여호와의 증인은 종말이 임박한 이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전도활동에 전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만약, 가족의 반대를 받게 되더라도 “각 사람의 원수는 자기 집 식구들일 것입니다”(마태10,36)와 “여러분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것이나, 끝까지 참고 견디는 이는 구원받을 것입니다”(마태10,22)를 인용하여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하며, 끝까지 반대하면 가정을 떠나야(별거, 이혼, 가출)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자신들이 반대받는 이유를 ‘참 종교를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나, 에페소서 5,22-6,9에는 가정  공동체의 화목과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비유하면서 강조하고있다.     2)특정직업 포기 그들은 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교리를 교육훈련시키는데 방해되는 직업은 단호하게 포기할것을 강요한다. 종말에 있을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재산과 명예를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제시한다. 그들이 가져서는 안되는 직업은 다음과 같다. 국가 공무원,  국토방위관련 직종, 가수나 탈렌트같은 인기직종,그리고 다가오는 지상낙원에서는 병 드는  일도, 죽는일도 없으므로 병원,약국,장의사 같은 직업을 포기하라고 권유한다. 협회의  이러한 규율때문에 신도들은 안정된 직장이나, 생업수단을 갖기가 힘들며, 뿐만  아니라, 봉사 (전도)시간이 과다하게 부과되기 때문에 그 의무를 채우다 보면 생업에 종사할  시간은 더욱 적어지고 그 결과 그들 대부분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반면에 협회간부들은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양기리에 수십억대의 땅에 건물을 짓고 살고 있다.          3) 의무교육 거부와 학업 포기 그들은 세상의 교육기관을 마귀적 제도의  기관으로 보기에 참 진리를 배울 수 있도록 글만 읽을  수 있는 정도만 된다고 하면서  고등교육 이상을 받지 못하게 한다. 그 근거로 골로 2,8의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미혹케 할까 조심하시오. 그런 것들은 인간들의 전통과 세상의 원소들을 따르는 것일뿐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를 인용한다.  그러나 골로 2,8이 말하고 있는 학문은 초기 교회에 침투하는 이단적인 희랍철학과  지식(영지주의)를 경계하하는 뜻이지 학생이 학업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4) 신도끼리만의 결혼 여호와의 증인은 이방인(불신자)과의 결혼을 금지한다. 따라서 신도의 70%가 여자들인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남자가 부족하여 결혼을 하지 못하고 평생 외롭게 사는 60 세 이상의 노처녀들이 허다하다. 장로들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 곧 낙원이 오면 늙은이도 젊어지니까 그때 가서 결혼하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 내부 문제의 대부분이 성적인 것이다. 협회는 근본적인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성적 부도덕 행위를 신도들 앞에서 공개하여 모욕을 줌으로써 이를 방지하거나 제명처분 한다. 주로 피해를 보는 이들은 여신도들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은 그들의 교리와 가르침을 강요함으로써 신도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시켜  버린다. 또 그 신도들과 관계된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마저 악영향을 끼치게  한다. 실제로 세상종말의 시기라고 예언되었던 1975년에는 국내에서도 신자들의 가출, 이혼,학업중단,직장포기 등의 사례가 빈번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해 오는  아내,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가 버린 딸, 병역을 기피하여 전과자가  되어버린 아들… 이러한 현실을  직접 겪어본 이들의 아픔은 그 누가 달래줄까?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은 그들의 교리는 도대체 무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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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말세론

  7. 시한부 말세론   여호와의 증인의 시한부 말세론에는 예수의 재림, 신자들의 부활 지상천국론을 비롯하여 그들의 모든 교리가 집약되어 잇다. 곧 그들의 모든 교리는 이 시한부 말세론을 향해 방향지워져  있는 것이다. 또, 이  교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며, 그  결과 가정,직장,학업까지도 포기하는 사태를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말세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부터 시작되어 지상천국(새 하늘 새 땅)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의시기와 그 근거, 그리고 그 완성인 지상천국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예수의 재림 여호와의 증인은 영적인 존재로  하늘로 돌아간 예수는 하늘로 돌아가는 즉시 왕으로  통치하기 시작한것이  아니라,  “네 원수들  가운데서  왕권을 행사하라”(시편 110,2)는 하느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914년 때가 이르자 하늘정부의왕으로 통치 하면서 하늘의 사탄들과 그의 악귀들을 깨끗이 없애 버리는 전쟁(아마겟돈 전쟁)을 시작 하였다.  그런데, “하늘 정부가 통치를 시작할때는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아직 하늘에 살고 있고, 그들은 왕국  통치를 반대하므로 즉시 전쟁이  일어나게 한다. 그 결과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고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제거되기에 하늘에는 즐거움이 있게 되지만 오히려 땅에는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가장 큰 고난의 때가 시작되는 것이다…즉 하느님의  왕국통치의 시작은 지상에 즉각적인 평화와 안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참다운  평화는 후에 하느님의 왕국이 땅을 온전히 지배하게 될때 즉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더는 아무에게도 고통을 줄수 없도록 제거된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 하느님의 왕국의 통치를 위한 전쟁이 시작된 시기가 바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부터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금은 예수께서 눈에 보이지 않게 영적으로 재림한 종말이 임박한 시기라는 것이다.  그들이 1914년을 예수께서 하늘나라의 왕으로 즉위하셨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다니엘서 4,10-37이다. 곧, 다니엘서 4장  10- 37에는 ‘하늘에 닿는 거대한 나무’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  나무는 인간 통치자인 바빌론의  느브갓네살 왕과 동시에 하느님의 최고 통치권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나무는 B.C. 607년에 잘리어졌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하느님의 통치권을 대표하는 정부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신 ‘이방인의 시대’(루가 21, 24)가 시작된다. 이 시대는 다니엘서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일곱 해 동안 지속되는데, 요한 묵시록 12, 6과 14절에 1260일이 3년  반으로 나타나 있음에 바추어 한 해는 360일이고 따라서 일곱 해는 360일의 일곱  배, 곧 2520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의 하루는 1년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2520일은  2520년이 되고, 이 2520년에서 B.C.607년을 빼면 1914년이 남는다. 그들은 바로  이때가 예수께서 하늘나라의 왕으로서 통치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1914년을 원래 말세시기로 정하였으나, 예언이 맞지 않자 말세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수정하였다. 그 후 종말시기를 1925년으로 연장하였다가 다시 1975년으로 발표하였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하느님은 6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셨고 일곱째 날은  쉬셨는데 이 날은 안식일이다. 요한 묵시록에는 말세가 끝나면  ‘안식의 시기’인 ‘천년왕국’이 시작된다고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안식일의 1일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천년에 해당한다. 또 하느님이 아담을 6일째 되는 날 창조하셨다는  것은 아담의 창조 후 이세상은 하느님의 시간으로는 6일(인간의 시간으로는 6천년)동안 지속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담의 창조일자를 알면 말세의  시기를 알 수 있는데, 성서에  나타난 아담 이후 자손들의 나이들을 모두 계산하면 아담의 창조일은 B.C. 4026년 10월 1일이다. 따라서 이때부터 6천년을 계산하면 말세의 시기는 1975년 10월 1일 경이다. 그러나 예언이 또 다시 빗나가자 그들은 하와의 창조를 생각하지 못한 계산 착오라고 하며, 아담의 창조일부터 하와의 창조일까지의 기간만큼 종말의 시간은 지연되며, 그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1914년에 살았던 이들이 다 죽기 전에 닥칠 것이라고 한다.1)           2)말세  여호와의 증인은 1914년 부터  시작되는 마지막 때(말세)는 하느님께서 현 악한 사물의 제도를 멸망시키실 때에 끝난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마태오 28,20의 “세상 끝날까지”라는 구절을 ‘세상의 제도의  마지막 날’이라고 번역한다. 그들은 말세 (아마겟돈 전쟁) 이후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며(2 베드로 3,13), 지상천국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때 그들은 예수와 함께 세상을 통치하고 심판할 것이며, 그 기간은 1천년(요한 묵시록 20장)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 이때에는 144,000명의 하느님의 충실한 종들이 부활하게 되는데 이들 중 일부는 예수가 영적으로 재림한 1914년에  이미 부활하였으며, 아직 살아있는 충실한 종들은 죽는 즉시  영적으로 부활한다고 한다(天的 부활).  이들 144,000명의 충실한 종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으로서 하늘로 올라 가고,  선한 일을 행한자(하느님과 그의 왕국에 헌신하며 아마겟돈  전쟁에 죽은 다른 양들,아브라함,다윗, 다니엘….) 들은 과거의 몸이 아닌 새로운 살로 이루어진 몸으로 부활한다고 한다.  또한 이 최후의 심판에서 살아 남은 생존자들은 땅을 낙원으로 만드는 일에 종사하게 될 것이고, 선택받은 부활한  자들은 이 낙원으로 환영을 받으며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와  144,000명의 연합왕들은 그러한 낙원상태에서 인류를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러한 지상낙원에서 자신들이 예수와 함께 하느님이 맡긴 일을 마치게 되면, 예수가 왕국을  하느님께 바칠 것이고, 그 이후에는 하느님이 왕으로서 직접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와 같은 주장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성서의 자의적 해석에 기인한다. 예컨대 4026년을 계산해 내기  위해 구약의 아브라함으로부터의 족보와 개 개인의 생존년수를 실제로 더하고 있다. 또 요한 묵시록 20,1-5의 ‘천년동안’이란 귀절은 실제로는 무한히 긴  세월을 의미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 그대로 1000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144,000명의 충실한 종에서  이 144,000 이라는 숫자는 원래 한정된 숫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대 민족들의 사고방식대로  완전한 숫자인 12의 배수로, 그것을 천배해서 전부를 포괄하는 숫자이며,  결국 이 숫자의 의미는 구원을 받을 자의 수가  대단히 많으리라는 희망적인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구원받을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마태오 24,36이 “그  때는 아버지만 아신다” 고 밝히고 있는데도 구약과 신약의 내용을 이리 저리 합해서 그리스도 재림의 시기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의 역사적,문화사적 배경을 무시한 이와 같은 자의적 해석은 계시의 곡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가톨릭 신앙은 이를 금하며, 나아가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진 말씀에 대한 유권적 해석  임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있는 교도권에만 맡기고 있다. 왜냐하면,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여 성실히 진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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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육체적 부활 부정

  6. 예수의 육체적 부활 부정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들은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했다면, 그는 자기의 대속의  값을 찾은 것이 되기 때문에 그의 인간구원사업은 무효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지 하느님께 철저히 순종하였기에 영적으로만 일으킴을 받았다는  것이다. 강생 이전에 영체로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부활 후에도 영체(靈體)로 존재하며, 부활 후 발현하신 것도 역시 영적 발현이었다고 주장한다.제자들에게 물질화한 몸으로 나타나 먹고 마시는 행동을 한 것은 자신의 영적부활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베드로 전서 3,18(그리스도께서는 육적으로는 죽으셨지만 영적으로는 다시 사셨습니다)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또 토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한 것은 단지 깜짝  놀라서 그랬을 뿐이라고 한다. 나아가 영자( 靈者)로서 하늘로 돌아간 예수는 하늘로  돌아가는 즉시 왕으로 통치하신것이  아니며, 1914년 때가 이르자 하늘정부의 왕으로 통치하면서 하늘의  사탄들과 그의 악귀들을 없애 버리는 전쟁(아마겟돈전쟁)을 시작할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린토  전서 15,45(나중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었습니다)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대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이 본질적으로 영이었다고 가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자신의  영광스러운 육체적 부활을 통하여 모든 믿는 이들에게 보장해 주는 부활의 생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루가 24,39절에서  당신이 영적 피조물임을 확실하게 부인한다. 곧,“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잇지 않느냐”에서 당신의 부활이 전인적임을 밝혀 주셨다. 또한, 토마가 깜짝 놀라서 그랬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여호와의 증인의 이러한  주장은 럿셀의 1874년에 있을것이라던 예수의 불가시적인 재림에 대한 가르침에서 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것이 합당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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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불멸과 지옥의 부정

 4. 영혼 불멸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부정한다. 인간이란 생리적이고 물질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이며,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죽음으로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불의한  인간의 죽음은 영원히 끝나지만  의인의 죽음은 ‘부활’에 대한 여호와의 기억으로 다시 영적으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영혼을 2가지로 이해한다.  첫째,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특질을 모두 가진  인간 자신을 말하며, 인간이  죽으면 활동적인 생명력이 사라지기에영혼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명기 12장 20절을 “너희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며 만약  영혼을 인간의 정신적 특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어떻게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둘째, 영혼이란 인간이나 동물  자체, 또는 인간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곧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이 되며, 따라서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결국 살아 있는 한 모두 영혼을 갖는다고 말한다. 자연히 영혼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그들 고유의 성서해석에서 이를 구체화한다. 첫째, 욥기  7,15-16을 사용하여  ‘숨이 막히면  죽고 더는 생명이  없다고 하는데  사후에 무슨생명이 있다고 하느냐?’고 주장한다.  둘째, 창세기 9,5에서 ‘생명을 피라고 하였는데 사후 생명에는 피가 없다. 따라서, 영혼불멸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셋째, 전도서 9,5의 “무릇 산자는 죽을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를 인용하여 사후 생명이 있다면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고 한다. 이에 반하여 교회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각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부여되어서 창조  되었고, 영혼은 육체의 체형이며  육체와 함께 인간 개성의실체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또한, 육신과 영혼은 일체를 이루는 공동 구성원리이기는하지만, 영혼은 영체이기 때문에 육체를 떠나서 단독으로 존재할수 있다(죽음). 그러나, 영혼은 어디까지나 자기 육체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이것이 천사와 다른 점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귀절은 요한  11,25절 이하 –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와 루까 22,19-“여러분이 참고 견디면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이다. 그리고, 루까 16,19-32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도 의인과 악인 모두 그들의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또  마태 복음 10, 28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시오”라는 구절도 이를 뒷받침한다.      5. 지옥의 존재 부정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부정은 내세의 존재, 지옥의 존재 부정으로 연결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지옥은 비(非)성서적, 非이성적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공의와도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죽은 자는 생명도 없고 의식도 없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옥은 불이 붙는 뜨거운 곳도,악귀가 득실거리는 곳도, 끝없이 고통을 받는 곳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죄를 짓든 안짓든간에 죽음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셔올’이라는 히브리어와 ‘하데스’라는 희랍어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곧  기성교회에서 이 말을 지옥으로 번역하지만, 성서에서 이 용어가 나오는 곳을 찾아보면 고초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 무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곳은  무존재, 무의식의 장소, 하느님께서  부활시킬 때까지 죽은 자가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 붙는 지옥’(마태 5,22)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그곳은 유황을 넣어 죄수들과 동물들의 시체를 태우던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벌 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는 성서적으로  큰 오류에  빠져 있다. 그  근거로서는 마태오  13,42; 마르코 9,43; 마태오 8,22;25,46;  유다 1,13 을 들 수 있다. 또한 영벌 교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나 공의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빠스카를 통해 인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로써 그 은혜를 거부하는 인간은 즉, 관계를 끊어버린 인간은 그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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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신성 부정

  3.예수의 신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  그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아니고 하느님의 첫 피조물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아들이지 하느님 자신은 아니다. 하느님은  이 영적 피조물을 통해 다른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영적 지위에 있던 영적 피조물인 미카엘 대천사가 대천사의 성품을 벗어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미카엘 대천사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부인하고 그 피조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성서의 여러  부분을 인위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몇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요한 14,28 –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당신을 더욱 감추고 작아지려는 자발적인 순명.자기비하를 의미한다. 나아가 이러한 순종을 통해 아버지와 온전히 일치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결국 아버지와의 완전한 일치를 의존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② 요한 묵시록 3,14 – 여호와의 증인은 요한 묵시록 3,14절 하반부, 즉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이라는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그들의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다. 그들은 이  구절을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창조의 근본’이라고 번역하면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첫 피조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속격의 의미는 ‘하느님의(of God)이지, ’하느님으로 말미암은(by God)이 아니다. 만일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면, 그는 ‘하느님의’ 라는 뜻을 잦는 ‘του θεου’보다는 전치사 ‘ὺπο(에 의해서)’를 사용했을 것이다. ③ 골로사이서 1,15 – “모든 조물의 맏이시로다, 먼저 나신 자로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구절을 ‘제일 처음 창조되어진 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며’(1,16.17)라고 하며 그 분이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15절의 ‘모든 조물의 맏이’라는 지칭은 그 분의  탁월한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분이 첫 피조물이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교부들도  사도  바오로가πρωτοχτιοι(먼저 창조된)를 사용하지 않고 πρωτοκος(먼저 나신)를 사용한 사실에 대해깊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 그리스도는  ‘나셨고’, 우주는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의 교리를 위해 1,16-17에 ‘다른’이라는 말을 삽입시켜 놓고 있다. ④ 여호와의 증인들은 마태오 4,1의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대목을 예로 들면서 “만일 예수께서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이 하느님을 유혹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 구절을 예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천사나 인간처럼 유혹을 당할 수 있는 별개의 개체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적 의미를 논하면서 예수님을 아담과 똑같은 인간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 즉, “완전한 인간 아담의 불순명으로 상실한 완전한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담과 동등한 또 다른 인간 영혼, 곧 인류를 위해서 자기의 완전한  생명을 희생으로 바칠 영혼이 필요했다.그러나 아담의 후손은 모두 불완전하게 출생했으므로  자격이 없고 오직 하느님으로 부터 출생한 완전한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예수만이 아담이 상실한 것을 회복시킬 정확한 대속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외에 예수는 대천사 미카엘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데살전 4,16에 부활을 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천사의 소리’로 언급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 분을 아담과 같은 존재로 격하시켜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은 오류는 아리우스 이단과 그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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