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大) 안틸리즈(Antilles) 열도 중에서 가장 작은 최동단(最東端)에 위치한 섬으로 면적 8,897㎢, 인구 약 395만명(1982년 추계)이다. 콜룸부스의 제2차 항해 중에 발견된 것으로, 1509년에 레온(Juan Ponce de Leon)이 스페인왕의 이름으로 이 섬을 차지하였다. 이들은 주로 금광의 채굴 목적으로 체류하였으므로, 1570년에 금광이 바닥나자 스페인 출신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기를 희망하였으나 본국 정부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눌러앉아 살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 이 섬나라의 조상이 되었다. 1511년 스페인령 세빌(Seville)의 감목대리구가 된 이래 많은 변천이 있었다. 가톨릭 신자는 1982년 현재 321만 9,000명이며, 267개의 본당을 거느리고 있다.
푸른군단 [한] ∼軍團 [영] Blue Army
정식명칭은 ‘파티마 성모님의 푸른 군대’로 1947년 미국의 해롤드 콜갠(Harold Coalgan) 신부에 의해 창설되었다. 그는 병상에서 1829년 6월 파티마의 루시아에게 발현한 성모가 루시아에게 준 메시지의 의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중 “내가 만일 성모님의 은혜로 회복된다면 소련의 회개를 바라는 성모님의 요청을 세상에 알리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하였다. 몇 주 뒤 병상에서 일어난 콜갠 신부는 강론을 통해 “무신론자들은 ‘붉은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본당 신자들은 그들의 회개를 위해 성모님의 요구 조건을 채워드리는 ‘푸른 군단’ 대원이 됩시다”라고 외침으로써 푸른 군단은 창설된 것이다. 이들 푸른 군대는 ‘붉은 군단’을 회개시키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①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 ② 일상생활의 고통을 참으며 희생하고, ③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을 일으켜 성모를 통해 하느님께 봉헌하는 생활을 한다. 모든 대원은 파티마의 메시지를 전파 · 실천 · 정착시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푸른 군단의 본부는 파티마에, 국제사무국은 스위스에 있으며 세계 60여 개국에 전국평의회가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푸른 군단운동은 1964년 부산의 동항천주교회 하 안토니오 신부가 도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 해 7월 한국의 푸른 군단이 설립되었고, 1968년 푸른 군단의 소리인 <하나의 별빛>이 창간되었다. 현재 각 교구장의 인준을 받고 푸른 군단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본부는 부산시 남구 우암 2동 125번지에 있다. 1981년 봄부터는 <마리아>(Maria)라는 잡지를 창간, 발행하고 있다.
푸르티에 [원] Pourthie, Jean Antoine
Pourthie, Jean Antoine(1830∼1866). 순교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한국명 신요안(申妖案). 1830년 12월 20일 프랑스 알비(Albi) 교구의 ‘발랑스 앙 알비즈와(Valence en Albigeois) 지방에서 출생. 1854년 6월 11일 알비 교구 소속으로 사제서품을 받고 즉시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55년 중국 귀주(貴州)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포교지가 한국으로 변경되어 1856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신부와 함께 상해(上海)를 거쳐 해로(海路)로 한국에 잠입, 충청도 배론[舟論]의 성 요셉신학교 교장으로 한국인 신학생 양성을 위해 일하다가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신학교 교수 프티니콜라 신부, 신학교 주임 장주기(張周基, 요셉)와 함께 체포되어 그해 3월 1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로 순교하였다. 유해는 순교 직후 교우들에 의해 왜고개에 안장되었다가 1899년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로 이장되었고, 1900년 다시 명동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표양 [한] 表樣 [라] exemplum [영] model
≪한불자전≫에 따르면 ‘표양’이란 말은 모범 또는 본보기를 뜻한다. 어떤 사람 또는 어떤 물건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 대상, 생각 등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성인은 그리스도교 완덕(完德)의 모범 즉 ‘표양’으로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좋은 모범을 보인다”는 옛말이 “좋은 표양을 뵈다”이고, “나쁜 모범을 보인다”는 옛말로는 “악한 표양을 뵈다”로 사용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