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카르포 [라] Polycarpus

Polycarpus(69?∼155?). 성인 . 순교자. 2세기 스미르나(Smyrna)의 주교. 초기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생애도 사도시대와 2세기말 성 이레네오(St. Irenaeus)와 같은 위대한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성 이레네오에 의하면,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고 그리스도를 직접 본 사람들과 교제가 있었다. 폴리카르포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서간(다른 날짜의 두 서간 이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과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가 그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이냐시오는 로마로 가던 길에 그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116년경). 말년에, 부활 축제 일자와 과월제파(過越祭派, Quartodecimani)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소아시아 교회의 대표자로 로마에 가서 교황 성 아니체토(St. Anicetus, 재위 : 155∼166)를 만났다. 로마 체류 중, 전통 교리의 충실한 옹호자였던 그는 마르치온파(Marcionians)와 발렌티노파(Valentinians)와 같은 이단과의 논쟁에 주력하였다.

스미르나로 돌아온 직후 이교 축제 동안 체포되어 배교를 거절, 처형당하였다. 필로멜리움(Philomelium) 교회의 요청으로 스미르나에서 써 보낸 ≪폴리카르포 순교전≫(Martyrium Polycarpi)은 그의 심문과 순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전해 준다. 처형날짜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155년 2월 22일 혹은 2월 23일이었던 것 같다. 에우세비오(Eusebius)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치하(161∼180년)였다고 주장하였다. 축일은 1월 26일(동방 교회에서는 1월 25일 혹은 2월 23일).

폴리카르포의 편지는, 이냐시오의 편지들을 제공해 주기를 요구했던 필립비교회의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쓰여졌는데 사도 바울로의 서신과 요한 1서 등의 인용으로 성서의 역사적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편지는 그리스어로 보존되어 있고 초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전체 17장 중 1-12장은 필립비 교회에 보낸 사목서간이며 13장은 이냐시오 편지에 소개장으로서 삽입된 개별적 편지로 보인다. 편지에서 그는 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대로 생활할 것과 왕과 통치자, 적과 박해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등을 권고하였다. 그의 모든 도덕적 권고는 그리스도의 모방에 그 근거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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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원] Poland

유럽 중부, 발트해에 면해 있는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정식 명칭은 ‘폴란드인민공화국’. 소련, 동독, 체코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면적은 31만 2,677㎢, 인구는 3,623만명 (1982년 추계)이다. 10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으며 1000년에 그네센(Gnesen)에 대교구가 설치되었다. 11∼12세기에는 내란이 계속되었고 교회도 타락하였으나 13세기에 타타르인의 침입을 받자 교회는 각성하였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종교전쟁이 일어났으며, 1537년 바르샤바회의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교회는 ‘관용령’을 발표하였다. 이후 교회는 국법 개혁에 착수했고 개혁파들은 자체세력의 분산으로 약화되어 17∼18세기에는 가톨릭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1772년과 1773년의 폴란드 분할은 가톨릭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러시아에 속한 동부지역의 주민은 정교회의 신앙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프로시아는 가톨릭 신자를 박해했으며 오스트리아는 종교의 국가관리체제를 강력히 시행하였다. 1918년 독립으로 가톨릭은 자유를 얻었으나 동부에서는 정교회가 상당히 많은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화되었다. 국민의 94%인 약 3,410만 3,000명(1982년 현재)이 가톨릭 신자이며 27개의 교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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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티펙스 막시무스 [라] Pontifex Maximus

‘지고(至高)의 주교’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원래 주교들을 가리키는 존칭어였으나 5세기부터는 교황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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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시아노 [라] Pontianus

Pontianus(?∼?). 교황(재위 : 230∼235). 성인. 순교자. 축일은 8월 13일. 로마 태생. 성 우르바노 1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되었다. 그는 알레산드리아의 사제 데메트리우스가 오리제네스(Origenes)를 퇴위시키는 것을 허가하였다. 성 갈리스도 1세(재위 : 217∼222) 때 발생한 히폴리토(Hippolytus)의 이교(離敎)는 성 폰시아노 치하에서도 계속되었다. 성 폰시아노는 황제 막시미누스 트락스(Maximinus Thrax, 235∼288)에 의해 히폴리토와 동시에 사르디니아섬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퇴위하고 성 안테로가 후계자로 즉위하였다(235. 11. 21). 그는 히폴리토와 마찬가지로 사르디니아섬 광산에서의 힘겨운 강제노동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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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영] violence [독] Gewalt [한] 暴力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여 다른 사람의 육체나 재산에 해를 입혀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관철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모든 폭력을 하나의 틀 속에 넣어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래서 폭력을 1차적 폭력, 혹은 구조적 폭력과 2차적 폭력, 혹은 대항적 폭력으로 나눈다. 1차적 폭력(구조적 폭력)이란 사회제도나 법률, 정치 권력을 이용,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불의와 부정으로 타인을 구속하는 행위를 말한다. 옛날부터 구조적 폭력은 폭력의 근원으로 존재해 왔다. 향락과 사치를 추구하기 위해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킨 노예제 사회, 인간을 봉건적 구속으로 묶어둔 봉건제 사회, 인간을 기계화시키는 산업사회에서 폭력은 ‘법과 질서’라는 이름 아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지배계급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인권을 유린하고, 인류를 결국 파멸로 인도할 이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여 싸우며, 구조적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대항적 폭력이다. 물론 대항적 폭력을 두고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악을 근절하기 위한 폭력의 사용을 인정하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악의 세력이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을 내리려고 하는 경우에서는 정상시의 도덕률과 윤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고, 그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폭력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본회퍼(Bonhoeffer)의 주장. 그는 미친 운전사가 버스를 몰아 사람을 살상하는 경우 우리는 그 운전사에게 폭력을 사용하여서라고 그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의 파쇼정권에 항거하였다. ② 포악한 무리가 연약한 민중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을 때, 분노한 민중더러 가만히 폭력을 받고만 있으라고 하는 것은 민중에게 주체적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기 때문에, 이 경우 폭력을 사용하더라도 그들에게 항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런 폭력은 자신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됨을 깨우쳐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나 제임스 콘(James Corn)의 주장. 억눌린 사람은 폭력에 항거함으로써 그의 정신상태를 건강하게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③ 사랑의 채찍이라 하여 억눌린 자들이 힘을 모아 대항할 때 강자들은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는 흑인 민권운동가들의 말. ④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낡은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생산력에 올가미를 씌우는 상태에서 낡은 생산관계를 고수하려는 지배계급을 폭력으로 타도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있다.

이상과 같이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는 대항적 폭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고 하는 물음이 잘못된 것이고 “그 방법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악한 제도를 파괴하고 새롭고 선한 내일을 이룩할 수만 있다면 대항적 폭력 그 자체도 선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구조적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며, 이에 대항하는 대항적 폭력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는 반대하는 비(非)폭력의 입장에 선다. 제2차 바티간 공의회는 “평화의 건설을 위해서는 우선 불의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폭력의 방종을 억제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83)고 선언하였다. 한편 바르트(K. Barth)와 같은 신학자는 한계상황에서는 폭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성전 안의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고 내쫓으셨다(마르 11:15)는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참고문헌]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 바오로 6세, 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 /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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