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열 [한] 崔性悅

최성열(1776∼1816). 순교자. 세례명 바르바라. 충청도 홍주(洪州)의 한내장벌[현 忠南 禮山郡 古德面 大川里]에서 출생.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전에 입교하여 첫 남편을 잃은 뒤, 서석봉(徐碩奉)에게 개가하였다. 1815년 2월(음력) 경북 청송(靑松)에서 부활축일(復活祝日)을 지내던 중 남편, 사위 최봉한(崔奉漢)을 비롯한 25명의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진영(慶州鎭營)을 거쳐 대구감영(大邱監營)으로 압송되었고 이듬해 12월 26일(음 11월 8일) 고성대(高聖大) · 고성운(高聖云) 형제, 김종한(金宗漢), 이시임(李時壬), 김희성(金稀成), 김화준 등 6명의 교우와 함께 대구에서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최봉한 [한] 崔奉漢

최봉한(?∼1815). 순교자. 세례명 프란치스코. 일명 여옥, 아명(兒名)은 진강. 순교자 서석봉(徐碩奉) · 최성열(崔性悅) 부부의 사위. 최양업(崔良業) 신부 일가의 친척으로 충청도 홍주(洪州)의 다락골(현 지명은 忠南 淸陽郡 化城面 豊岩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의 권고로 입교했고,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 누이와 함께 상경, 정약종(丁若鍾), 황사영(黃嗣永), 최필공(崔必恭) 등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과 친교를 맺었다. 동정(童貞)을 지킬 결심을 했으나 친척들의 만류로 서석봉의 딸과 결혼, 다락골 · 공주 무성산(茂城山)을 거쳐 경상도 청송(靑松)의 노래산(老萊山)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15년 부활축일을 지내다가 처가 식구를 비롯한 30여명의 마을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진영(慶州鎭營)으로 압송되었고 이어 대구감영(大邱監營)으로 이송된 후 그곳에서 장하치명(杖下致命)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최방제 [한] 崔方濟

최방제(?∼1861). 세례명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聖人) 최경환(崔京煥)의 조카이며,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사촌. 1836년 모방(Maubant, 羅伯多祿)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김대건(金大建), 최양업과 함께 1836년 출국하여 1837년 6월 7일 마카오에 있는 외방전교회 경리부(外邦傳敎會 經理部)에 도착하였다.

마카오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민란(民亂)이 일어나, 마닐라로 피난을 갔다가 그해 겨울에 다시 마카오로 돌아왔으나 연이은 먼 여행 때문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웅지(雄志)를 펴 볼 사이도 없이 마카오 도착 15개월 만인 1838년 11월 26일 밤 숨을 거두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최바시리오 우정씨 이력서 [한] 崔∼禹鼎∼履歷書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셋째 동생 최우정(崔禹鼎)의 전기(傳記)로 최우정의 아들 최상종(崔相鍾)에 의해 저술되어 1939년 필사(筆寫)되었다. 최양업 신부 일가의 내력을 중심으로 최우정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최바르바라 [한] 崔∼

최 바르바라(?∼1840). 순교자. 신유(辛酉)박해 때 순교한 최창주(崔昌周)의 딸.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고 혼기에 이르러 신태보(申太甫)의 아들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곧 죽자 홀로 시부모를 공양하며 어렵게 생활하였다. 1827년 정해(丁亥)박해 때 시아버지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고 그 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김소사(金召史, 아나스타시아), 이소사(李召史, 막달레나), 이 아나스타시아 등과 함께 당시 광주(光州)에 유배중이던 홍재영(洪梓榮)의 집에 피신해 있다가 이해 6월 14일(음) 체포되어 이듬해 1월 4일(음 11월 30일) 전주(全州)에서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