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송 [한] 感謝頌 [라] praefatio [영] preface [독] Prafation [관련] 미사

라틴어 어원은 ‘서언’(序言), ‘서문’(序文)의 뜻으로 미사전문(典文), 즉 성찬기도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원래는 이 감사송으로써 미사성제가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들고 성부(聖父)께 사례하신 뒤 성찬을 나누셨던 것이다.(마태 26:27). 그러므로 감사송은 바로 이 사례의 기도이다. 봉헌기도 후 사제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하느님께 끌어올릴 것을 권고하는 대화의 기도를 시작하며 신자들은 이에 응답한다. 이어 사제는 하느님 백성의 이름으로 성대한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린다. 즉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기묘한 업적에 대해, 특별히 그날 미사전례에서 기념되는 은총에 대해 마땅한 감사를 드리며 동시에 천신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영광을 드리는 것과 신자들이 감사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다.

감사송은 구원사업의 여러 단계를 기억하여 전례시기에 맞게 그 내용을 달리한다. 로마식 전례는 각 시기와 축일에 고유한 감사송을 여럿 가지고 있는데 레오 교황 때는 267개의 감사송, 젤라시오 교황 때는 54개, 그레고리 교황 때는 다만 10개 감사송을 가졌다. 로마미사경본에는 15개의 감사송이 있었다. 새 미사 규정은 교회의 전례시기에 맞게 7가지의 감사송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그 외 고유감사송이 다수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감사송이 시기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감사송은 찬미의 환호로 마쳐지는데 신자들이 사제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거룩하시다’(sanctus)를 외거나 노래한다. (⇒)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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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서문경 [한] 感謝序文經 [관련] 감사송

감사송의 옛말. 라틴어(praefatio) 어원이 ‘서언’(序言), ‘서문’(序文)의 뜻을 갖고 있다. ⇒ 감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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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 [영] Republic of Gambia

아프리카 서단에 위치한 공화국. 면적은 1만 1,295㎢, 인구는 64만명(1982년 추계)이다. 현재 감비아에는 1개의 교구가 있으며 총 국민의 22%인 약 1만 4,000명(1982년 현재)이 가톨릭 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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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목대리구 [한] 監牧代理區 [관련] 감목대리

감목대리가 담당하는 지구(地區). (⇒) 감목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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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목대리 [한] 監牧代理 [라] Vicarius foraneus [영] Vicar forane [관련] 감목대리구

감목대리구(監牧代理區)를 담당하는 사제(司祭). 주교는 그의 교구 영역을 여러 본당으로 구성된 지구로 구분하여, 마땅한 성직자로 하여금 각 지구를 감독하게 하는데, 이러한 직책에 임명된 신부를 지구장(地區長, Vicarius episcopalis) 또는 지구수석사제(首席司祭) 등으로 부른다. 주교는 이들의 임면(任免)을 임의로 할 수 있다. 지구장은 담당 구역 내의 성직자들의 생활을 비롯하여 성무집행, 교리교육, 교회재산의 관리, 본당문서의 정리 등을 감독하고 매년 교구장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감목대리는 교회법상 지구장에 해당되는 직책이지만, 포교지(布敎地)의 경우 지구장과는 전혀 다르다. 지구장의 임무는 담당 구역에서 성직자의 생활을 감독하는데 그치지만, 감독대리의 임무는 무엇보다도 담당 구역이 조속히 교구로 승격되도록 준비하는 데 있다. 감목대리는 감목이라는 포교지의 고유한 직책에서 연유한다. 감목은 포교지의 고유한 교구제도인 대목구(代牧區)나 지목구(知牧區)의 대목(代牧)이나 지목(知牧)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포교지의 감목에게는 대목구란 잠정적인 교구제도를 조속히 정식 교구제도로 발전시키고, 그것을 현지인에게 넘겨주어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다. 이 실현을 위해 잠정적으로 나타난 것이 감목대리라는 직책이었다. 감목대리에게 주교만이 할 수 있는 견진성사의 집전이 위임된 것도 실은 교구창설의 준비작업과 관련된 특전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교회에 처음으로 감목대리가 탄생한 것은, 1928년 서울교구의 감목인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서울 대목구에 속하는 황해도(黃海道)를 감목대리구로 설정하는 동시, 장연(長淵)본당의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를 초대 감목대리로 임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나 황해도는 끝내 교구로 승격되지 못하고 1942년 황해도 감목대리구의 폐지와 더불어, 김신부는 감목대리의 직책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어 1931년에는 대구 대목구에 속해 있던 전라북도가 감목대리구로 설정되어, 전주(全州)본당의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가 초대 감목대리로 임명되었다. 이 감목대리구는 1937년에 한국인에게 위임되는. 동시에 김신부도 감목으로 승격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한국 교회에는 많은 감목대리가 탄생하였는데, 이는 방인(邦人)교구로 육성키 위해서가 아니라, 새 선교단체에 새 지역을 맡겨 교구를 증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충청남도와 안동지역은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촉되었고, 충청북도와 인천(仁川)은 미국 메리놀회에 위촉되었으며, 제주도는 에이레 골룸바노회에 위촉되었는데, 이들은 곧 교구로 승격되었다. 1956년에 대구 대목구의 감독대리구로 설정된 바 있는 왜관(倭館)지구만은 아직도 감목대리구로 남아 있다. 감목대리는 한국 교회에서 방인교구의 탄생과 교구의 증설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크다고 하겠다. (⇒) 감목대리구

[참고문헌] 敎會史硏究, 第4輯, 한국교회사연구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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