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한] 價値觀 [영] value view [독] Wertanschauung

가치에 관한 관점, 또는 가피를 중심으로 보는 관점을 ‘가치관’이라는 말로 흔히 표현한다. 가치라는 것은, 어떤 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하거나, 혹은 값어치 없는 것으로 하는 성질을 말한다. 즉 가치는 사물의 객관적 · 절대적인 성질보다는 주관적 · 상대적인 측면을 강조하므로, 사물의 내재적인 우수성보다는 개인적인 평가가 어떤 것이냐를 의미한다. 어원은 라틴어의 ‘valere’, 즉 ‘~값어치 있다’, ‘강하다’에서 온 말이다. ‘가치’란 사물에 내재하는 완전성보다는 ‘가치의 계층’이라고 불려지는 가치체계에 있어서의 상대적인 위치를 의미한다. 사회의 구성원은 어린이 시절부터의 교육이나 일상생활을 통하여 가치체계를 내면화해서 몸에 붙인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충분히 자각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일정한 역사적인 사회에 있어서는 지배적인 가치체계 이외에 지난 구사회의 가치체계가 어느 정도의 변모를 거친 모습으로 잔존할 경우도 있으며, 또한 사회의 변혁기에는 지배적인 가치체계와 대항하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낳게 됨도 사실이다.

가치를 중심으로 보는 관점, 즉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각각 여러 가지로 갈라질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실용적(實用的)이 아닌 것에서는 가치를 발견 할 수 없다”는 듀이(Joan Dewy)의 주장은 가치판단을 해석하는데 연관하여 제기되는 논리적인 문제만에 치우친 느낌을 갖게 한다. 오늘날의“정신적 가치를 너무나 등한히 하고, 전연 무시하거나 대체로 부정해 버린” 물질만능의 사고방식은 바로 이러한 한쪽에만 치우친 가치관에서 뿌리를 잘 못 내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윤리적인 관심을 배제한 가치관은 절름발이 가치관을 만연시켜, 참된 의미에서의 가치를 중심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그릇된 가치관에 떨어지고야 만다.

칸트의 경우,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은 시장가격을, 취미를 만족시켜주는 것은 감정가격을 갖는데, 이것은 외적이며 상대적인 가치여서 등가물(等價物)의 존재를 허용하지만, 이에 반하여 도덕적인 한에서의 각자의 인간성은 아무 것과도 대체될 수 없는 내적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보았다. 실질적인 가치윤리학(價値倫理學, Wertethik)을 전개한 셸러(M. Scheler, 1814~1928)는 가치 사이에 높고 낮은 서열 결정의 기준을 제시하여, 쾌적 가치보다 생명가치가, 생명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가, 정신적인 가치 가운데서는 ‘종교적인 가치’가 최고라고 하였다. ‘도덕적 가치’나 ‘종교적인 가치’를 최고로 볼 때, 우리는 가치관에 있어서도 윤리적 · 종교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관주의적 윤리철학이나 상대주의적 윤리철학에 있어서는 ‘공동선’(共同善, common good)이라는 생각보다도 ‘가치’라는 말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가치 내지는 가치관이라는 용어에 객관적인 도덕기준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을 경우 즉 물질적 소유가 ‘인생의 최고 가치’가 아니라는 가치관에 설 경우에는,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이를 인정할 수 있고, 그럴 경우 회프너(J. K. Hoffner)가 지적 했듯이, 경제보다 높은 서열에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 결혼과 가정, 종교와 도덕 그리고 여러 문화적인 가치, 최후로는 ‘만물의 최종적인 끝이며 궁극적인 목적’ 즉 하느님 자신이 위치하고 있다는 가치관의 방향을 정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번창하는 과학, 기술 및 경제가 비록 ‘위대한 문명과 문화의 진보’를 의미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데 이바지 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가치관의 이해에 있어 깊이 연관시켜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참고문헌] W. G. Everett, Moral Value, New York 1918 / W. R. Sorley, Moral Values and the Idea of God, Cambridge, Eng. 1924 / S. C. Pepper, The Sources of Value, Berkeley 1958 / 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와 교사), 1961. / J. K. Hoffner, 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Verlag Butzon & Bercker,1975; 朴永道역,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出版社, 1979 / John A Hardon, S. 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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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 [한] 家族計劃 [영] planned parenthood

1. 개념 : 부부 또는 부모가 원만한 결혼생활, 적당한 수의 자녀, 가족의 건강 등을 계획하는 일. 그러므로 가족계획의 목표는 가족의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생활향상에 있다. 생활향상을 기하자면 결국 적당한 수의 자녀만을 가져야 하므로 수태조절을 하게 된다. 여기에 부모는 양육할 수 있을 만큼의 자녀를 가질 윤리적 내지 사회적 책임이 강조된다. 출산간격이나 수태를 조절하여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자녀를 가지는 것이다. 수태조절은 그 방법으로 피임을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임신이 되지 않는 부부에게 수태할 수 있도록 치료하는 적극적 의미도 포함한다.

가족계획이란 말은 신 맬더스(1766~1834)주의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마가렛 생거(1883~1966)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산아제한’이라는 용어로 일컬어져 오다가 조절을 하는 대상은 산아나 출산이 아니고 수태이므로 ‘수태조절’로 표현이 바뀌었고 근래에 ‘가족계획’으로 되었다.

2. 수태조절의 수단 : 수태조절에 등용되는 피임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각기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다. 피임법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크게 고전적 피임법과 현대적 피임법, 임시적 피임과 영구적 피임법, 자연적 피임법과 비자연적 피임법으로 분류한다. 여기서는 마지막 분류에 따라 각기 어떤 방법들이 있는가 그 종류만 제시한다.

① 자연적 방법 : 여성의 월경주기를 이용하여 가임기에 금욕함으로써 임신을 피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주기 금욕법이다. 1930년대에 와서야 일본의 오기노와 오스트리아의 크다우스가 배란기와 월경과의 관계를 밝혀냄으로써 수태시기를 예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까지 월경주기가 계속되는 동안(초경에서 폐경까지) 어느 때나 배란이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사실, 다음 월경주기의 시작과 배란과의 관계를 발견함으로써 자연적 가족계획이 탄생되었다. 이 발견 이래 지금까지 자연적 방법에 대한 지식은 괄목하게 발전해 왔다. 오기노 학설에 의한 달력 주기법의 날짜 계산으로부터 최근에 등장한 기초체온법과 증상체온법 또한 1970년대에 들어서 배란법(점액관찰법 또는 빌링스법)이 발견되었다. 1970년대에 배란이 되는 시간, 배란 후 난자의 생존시간, 그리고 정충이 살 수 있는 일수에 대해서 실제적인 연구결과 개념이 많이 변하였다. 호주의 빌링스박사 부부팀에 의한 점액 관찰법으로 배란시기를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적인 개념의 생식생리학에 발맞춘 자연피임법은 정확히 사용한다면 어느 방법보다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만족한 피임효과를 얻을 수 있고 여기에 더 한층 부부애를 증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으면서 자기행위의 주인공으로서 부부가 가족계획을 실현할 수 있기에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랄 수 있다.

② 비자연적인 방법 : 이 방법들은 생식기관을 형태적으로 변화시켜 버리거나 이들 각 기관의 임신을 위한 생리기능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임신을 피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들은 임신이 언제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 생리기능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임신은 아무 때나 가능해도 무방하다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비자연적 방법들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구용 피임제와 주사용 피임제, 자궁내 장치, 국소 물리적 및 화학적 장애법(콘돔, 질내격막, 살정충제)이 있다. 그런데 인공 임신중절술은 원래 가족계획의 방법이 아니다. 또한 불임수술은 단종을 뜻하므로 윤리와 종교적 차원에서 용납될 수 없는 방법이다. 수태조절에 있어 약물이나 어떤 기구를 이용하든 인공적으로 수정을 저지하는 것이나 수태를 저지하는 것은 다 같이 살생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방법들은 의학적으로 수많은 부작용을 발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윤리도덕적 차원에서 찬성할 수 없는 방법들이다.

3. 피임의 역사 : 피임은 모든 시대, 모든 문화권에서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아주 넓은 의미에서 비의도적으로 출산의 억제가 특정지역에서 되어졌음을 포함시켜 볼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원시집단에서 특정기간에 성교를 금하는 터부에 의해서 임신이 비의도적으로 감소되기도 하렸고 중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수도회에 들어가 독신으로 수도생활을 하였으므로 의심 없이 구라파의 출산율이 어느 정도 억제되었음도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의도적으로 가족의 크기를 제한한 사실도 오래된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시인들과 고대 민족들 가운데 성교중절, 낙태, 영아살해로 제한이 시도된 것을 볼 수 있다. 기원전 2750년에 중굴 의서에 인공유산법이 실려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풀뿌리를 짓이겨 넣거나 솜을 틀어넣는 민간요법이 전해오고 있다. 이집트인, 희랍인, 로마인들도 마력이 있다는 약을 먹거나 또는 풀, 꿀, 고무, 기름 등으로 혼합된 물질을 질내에 삽입함으로써 피임을 시도하였고 이슬람인들은 다소간 희랍으로부터 전해 받은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피임술을 발전시켰다. 그리스도교 유럽국가들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된 것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이탈리아인 해부학 의사인 팔로피우스(1523~1562)가 ≪프랑스인의 병≫(1564)이라는 저서에서 성병 치료에 린네르로 만든 콘돔을 사용한 것을 처음으로 보고하고 있다. 소위‘현대’라 일컫는 1800년대 이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인위적인 조절과 관계없이 다른 요인들에 의하여 인구가 조절되어 왔다.

현대적 피임운동의 기원과 발전을 보면, 초기단계는 확실치 않으나, 조직적이 아니지만 가족의 크기를 억제하려는 강력한 경향이 18세기에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여 진다. 1875년 이후 서구의 전지역(아일랜드 제외)에 출산율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은 확실하다. 이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효과적인 피임의 방법 특히 동물의 얇은 막으로 만든 콘돔[1844년 이전에는 고무를 유황처리해서 만드는 방법]의 발견과 이후의 질내격막의 발견에 의함일 것이다. 이러한 방법에 대한 지식이 신속하게 전파된 도시지역과 상류계층에 출산율의 감소가 나타났다. 그러나 낙태와 성교중절의시행도 병행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산아제한을 위한 조직적인 운동을 전개한 지적 인물들은 프랑스의 수학자, 철학자, 정치가인 콩도르세(1741~1794)로서 그는 인간성의 완전가능성을 주창하였고 영국의 실리주의자인 벤담(1748~1832)은 영국의 빈민율을 줄이려면 그 방법으로 스펀지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1797). 소위≪인구론≫(人口論, 익명으로 1798년 출판)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성직자이며 경제학인 맬더스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한없는 희망은 공허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인구는 식량의 증가한계를 항상 초과하려 하며 생계의 수단은 다만 산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인구의 증가는 억제되지 않는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겠기 때문이다. 인구는 항상 생계의 한계를 넘어 팽창하게 되며 기근, 전쟁, 병고가 발생하여 추가 인구를 죽여 없애게 될 것이다(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더라도)”. 그는 1803년 그 책의 재판에서 결혼을 늦추는 것과 결혼 전에 엄격히 자제를 하는 윤리적 자제가 추가적인 억제책이 될 것임을 제시하였고 생식에 간섭하는 어떤 류의 파괴적인 수단이나 인공적인 피임에 의한 제한은 비윤리적인 것으로 배척하였다.

4. 신 맬더스주의자, 이상향주의자, 우생학자들 : 플레이스(1771~1854)는 급진적 혁신주의자, 정치인, 노동운동의 지도자로서 영국에 있어 산아제한 운동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인구이론에 관한 증명과 예제≫라는 저서를 냈으며 산아제한에 대한 광고지를 노동자들에게 4년간(1823~1826)배포하였으며 윤리적인 자제는 바보스런 짓이라 부르고 인공적인 피임방법을 찬양하며 이를 ‘신맬더스주의’ 라고 불렀다. 미국의 이상향주의자인 험프리(1811~1826)는 성교 유보로 임신조절을 하면서 자유연애와 우생학적으로 우수한 사람끼리 짝지우기를 주창하고 이러한 이상으로 모인 공동생활 단체를 처음으로 설립하였다.(1842~1847). 영국의 브래들러(1833~1891)는 맬더스협회를 조직하려다 실패로 끝나고 그 당시 ‘신 맬더스주의’의 가장 영향력을 발휘했던 잡지 <민족 개혁자>를 1860년부터 1893년까지 런던에서 발간하였다. 이 동안에 ‘신 맬더스주의’의 주장은 점점 지성층의 지지를 얻게 되어1865년 이후 지혜롭고 바람직한 성분계층은 윤리적 자제를 실행하고 반면에 천한 하층 군중은 출산을 계속함으로써 이른바 ‘비 우생학적인 결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신 맬더스주의는 더욱 세력을 펴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우생학의 창시자인 걸턴(1822~1911)경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졌다.

1878년에 마침내 영국에 맬더스협회가 창설되었고 이어 협회의 의학지부도 설립되어 신 맬더스주의의 주제들을 강의, 팸플렛, 잡지들을 통하여 전파시켜갔다. 이 협회는 1913년에 선보인 산아제한의 기술에 관한 소책자를 공공연히 배포하였고,1972년에 협회의 사업은 성취되었다고 생각하여 해산하였다. 1921년에 마리 스텁스(1880~1958)는 고전적인 경제적 이유 보다는 의학적이며 우생학적인 이유들을 강조하게 되자 여러 도시로부터 후원을 받아 런던에 처음으로 산아제한을 위한 의원을 개설하였고, 그후 1930년에 창립된 가족계획협회에 통합되어 영국에서 제일가는 산아제한 기구가 되었다.

한편 미국에 있어서는 헤이우드(1829~1893), 잉거솔(1879~1942), 골드만(1869~1940) 같은 자유사상가들이 여성의 투표권, 금주, 이혼법 완화, 자유연애, 무정부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이와 관련하여 피임을 주창하였다. 20세기 초에 들어서 생거 여사는 간호원으로서 뉴욕의 빈민가에서 보건사업에 종사하면서 신 맬더스운동에 조금은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의 실제의 체험을 통하여 가정의 빈곤 퇴치와 모자보건에 주안점을 두고 피임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는 중국, 하와이, 인도 등 저개발지역을 찾아다니며 운동을 폈고 전세계적인 기구로 확장되어야 함을 역설, 1952년 봄베이에 국제 가족계획협회를 창설하였다. 그리고 여러 나라들에 센터를 설치하여 피임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보급하며 결혼상담도 하였다. 이리하여 이 기관들은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의 자문기관이 되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저개발 국가들에서 사망률은 저하되고 인구는 소위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많은 국가들이 효과적으로 인구정책을 추진키 위하여 가족계획 사업을 국가정책으로 펴게 되었다.

5. 한국의 가족계획 : 민간요법이 전해 내려오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극수수이긴 하겠으나 개인적으로 비밀스럽게 피임이 행하여졌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최근에 이르러서 인구 억제라는 세계적인 조류는 완고한 봉건사상과 인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침입하였다. 1931년에 독신녀인 로젠버그가 태화사회사업관에 와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농촌부인들에게 피임을 권하였으며 원주 기독병원에서 머리 의사가 가난한 부인들에게 피임방법을 가르쳤다. 1960년까지 가족계획 계몽운동을 하였으며, 1957년에 레어드 여사가 대전에 있는 기독사회관 관장을 폈다. 1958년부터 서울대학교 부속병원 산부인과가 이 대학의 사회사업과의 지원을 받아 가족계획상담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1960년부터는 대한 어머니회가 자체사업의 하나로 가족계획 사업을 시작하여 의원과 상담소를 개설하였다(윤동주 저, 인구학, 한얼문고, 1973).

우리나라에 가족계획이 정식으로 시작된 것은 1961년 6월 ‘국제가족계획협회’에 가입한 이후 같은 11월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제59차 상임위원 회의에서 인구팽창은 국가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저해된다는 점에서 인구정책의 한 방편으로 가족계획 사업을 채택하고서부터이다. 1962년에 가족계획 사업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이 끝날 때까지 인구증가율을 2.5%로 제2차 5개년 계획(1967~1971년)이 끝날 때까지 2.0%로 내리겠다는 목표를 세워(경제 기획원, 보건사회부 모자 보건과) 전국에 가족계획 상담소를 설치하여 1,432개 면마다 가족계획 요원을 배치하였다. 1973년엔 법률 제2514호로 전문 14개조로 부칙으로 된 모자보건법을 제정 공포하여 실시하기에 이르러 가족계획이랄 수 없는 인공 임신중절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그리하여 제3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1976년에는 1.7%까지 낮추는 계획을 세웠는데 실제로 1.75%의 평균 증가율에 도달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개발도상국가들 중 가족계획 사업에 성공한 모범국가로 인정받고 있으나 이러한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반드시 가족계획 사업에 의한 것 만은 아니고 여러 가지 요인 중 인공 임신중절(약 100만건 추정)에 의한 요인이 컸던 것으로 보여진다.

6. 가족계획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태도 : 가톨릭 교회가 가족계획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이나 목표를 달성하는데 사용하는 인공적 피임방법을 반대한다.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자연 자체에 내재하는 법칙 즉 생식생리에 내재하는 가임기와 불법을 권장하고 주장한다. 인공적 피임술이 이미 4,000년 전에 인류죄악사에 나타난[아브라함의 현손 오난이 레위법에 따라 형수를 아내로 삼았으나 임신되는 것이 두려워 성교중절(오나니즘)을 하여 신으로부터 벌을 받아 즉석에서 죽음을 당함] 이래 그리스도교 초기에서부터 혼인과 성에 관련된 여러 가지의 이단들에 대하여 교회는 가차없이 단죄하였으며(고인 5:1-8,갈라 5:1-26 등),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때마다 혼인과 가정을 수호해 왔다.

1930년 이전까지는 인공적 피임에 대한 제반 종교들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실제로 일치하였다. 그러나 1930년 1930년 이후 세계 대종교 및 프로케스탄 교파들은 인공적 피임법을 특정 상황하에서 인정하는 공식적 태도를 취하였다.

이제는 오직 가툴릭 교회만이 인공적 피임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30년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순결한 혼인>은 인공적 피임은 하느님의 법과 자연을 거스리는 중죄로 단죄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는 출산간격이나 가족의 수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주기 금욕법을 이용하는 것은 정당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1951년에 교황 비오 12세는 ‘산파들에게 행한 담화문’(A.A.S. 43, 859)에서 심각한 경제적 · 의학적 및 사회적인 이유로 자녀를 갖지 않기 위하여 부부들이 불임기를 계획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이후 의학계에서 여성용 경구피임악을 개발하게 되자, 독일의 러이츠, 네덜란드의 반 델 마르크, 벨기에의 장센 같은 신학자들은 수태조절을 위하여 이 약의 사용은 이론적 정당성이 있다고 주창하였으나 1958년에 비오 12세는 이를 배척하였다(A.A.S. 50, 735). 그러나 이 문제가 계속 논란되자 1964년에 교황 바오로 6세는 비오 12세의 규범을 바꿀 만큼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밝히고 교황 요한 23세가 설치한 출생, 인구, 가정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에 경구용 피임제의 사용문제를 연구토록 위임하였다. 1965년 역사상 처음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부부행위의 목적은 인간 대 인간의 부부애임을 밝혔다(현대세계의 사목헌장 50). 마침내 부부들이 어떻게 수태조절을 해야 할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회가 가르친 것은 1968년에 발표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의 생명>에서이다. 또한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11월 22일 사도적 권고 ‘가정 공동체’에서 바오로 6세의 규범을 더욱 강경하게 재천명하고 있다. (方永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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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위원회 [한] 家庭司牧委員會 [라] Pontificium Consilium pro Familia [관련] 교황청

그리스도 교인 가정생활을 위한 사목을 관장하는 교황청 위원회의 하나. (⇒) 교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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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한] 家庭司牧 [관련] 가정

⇒ 가정(家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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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한] 家庭 [라] familia [영] family

가정은 부부관계와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포함한 공동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 서로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도록 창조하였다. 즉 인간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그 중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가 부부와 자녀를 구성원으로 하는 가정이다. 따라서 가정은 신적(神的) 기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참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공동체로서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가정이다. 이렇게 자유롭고 일부일처로서 서로 갈릴 수 없는 결혼에 의하여 성립된 가정은 인간 사회의 첫째이고, 근본적인 핵심이다. 가정은 일부일처제도와 영속성을 지녔고, 하느님이 계획하시고 그리스도교에서 성화된 것이므로 여러 구성원이 모여서 지혜를 배우고 개인의 권리와 사회 생활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기본적인 사회다. 가정은 우리 생명의 원천이요, 사고를 배우는 학교요, 기도를 배우는 첫 교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가정을 파괴하거나 교란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대항해서 싸우는 반면, 가정의 일치로 안정과 번영을 위하는 것에는 찬양과 격려를 보내야 한다. 가정은 여러 세대가 모여 보다 깊은 예지를 얻고 개인의 권리를 사회생활의 다른 요청과 조화시키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곳이므로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 그러므로 사회나 단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이바지해야한다. 한편 가정의 구성원들은 서로 영적인 은총을 나누어야 한다.그리스도교적 가정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맺어진 계약을 나타내고 거기에 참여하는 혼인성사로써 이루어졌으므로 부부애와 풍부한 자녀 번성과 일치와 충실로서 뿐 아니라 가족 전원의 사랑의 협력으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현존시켜 드리며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교회는 인류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 사랑의 공동체다. 우리가 세상에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은 교구나 본당이 아니라 가정 교회다. 모든 그리스도교 가정이 가정 구성원끼리 사랑하고 나아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였을 때 그리스도의 현존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수의 그리스도교 가정이 조그만 공동체를 형성하여 전례와 신앙과 사랑을 나누는 기초공동체의 필요성이 생긴다. 개인의 구원과 사회의 구원은 부부 공동체와 가정공동체의 행복한 상태에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가정의 존엄성이 어디서나 꼭같은 빛을 발하지는 못한다. 오늘날 일부 다처주의, 이혼, 에로티시즘 등 여러 가지 탈선의 풍조로 가정 제도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부부애는 이기주의, 향락주의, 부당한 피임 등으로 가금 속화(俗化)되고 있다. 또한 현대의 경제 · 사회심리 · 정치 등의 생활조건이 가정생활에 미치는 혼란도 적지 않다. 따라서 사목자들은 가정생활에 관하여 필요한 지식을 배양하여 기혼자들이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에 있어서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고 행복한 가정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하여 젊은이들, 기혼부부들, 그 중에서도 신혼부부들을 이론과 행동으로써 격려하여 그들을 가정생활, 사회생활, 사도적 활동에 적합하게 육성해야 한다. 부부생활과 부부애로 깊이 맺어진 공동체인 가정은 조물주가 친히 제정하셨고 당사자도 철회치 못할 인격적 동의의 계약으로 성립된다. 따라서 부부와 자녀들과 사회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 성스러운 제도가 인간의 임의에 맡겨질 수는 없다. 가정에는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 가치와 목적을 부여하였다. 이 가치와 목적은 인류 존속, 가정 구성원의 인격향상과 영원한 운명, 가정 자체와 온 인류사회의 존엄성과 영속성, 평화와 행복 등이다. 가정의 기초적 요소는 부부관계다. 남편과 아내는 혼인계약으로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되었다(마태 19:6).

남편은 가정의 주인이며, 아내는 머리다, 아내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동료로서 남편과 관계지워진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는 혼인 계약으로써 인격이 결합되어 서로 도와주고 서로 봉사해야 한다. 남편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한다.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남편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도대체 자기 몸을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자기 몸을 기르고 보살펴 준다. 그리스도께서도 교회를 기르시고 보살펴 주었다. 여기에는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서 남편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고, 아내는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에페 5:25 · 28-29 · 32-33).

부부애는 완전히 인격적인 사랑이다. 서로가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하며, 상하 관계나 명령지배의 관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남존 여비 사상이 완전히 불식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재능과 소명이 다르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부부의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부부애는 완전히 전인적 사랑이다. 자기의 모든 것을 같이 나누면서 전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부부는 존재적 관계이지, 조건적 관계가 아니다. 서로 결합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짝지어 준 불가분의 관계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또한 부부애는 결실이 풍부한 시장이다. 서로 인격을 성숙시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서로 결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성장시켜 상호 보완함으로써 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공동체의 성성(聖性)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바로 부부 공동체가 거룩해짐으로써 가정 공동체가 성화될 수 있다. 부부애는 그 성격상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한다. 자녀야말로 혼인의 가장 뛰어난 선물이다. 참된 부부애의 실천과 그로써 형성되는 가정생활은 혼인의 다른 목적들을 경시함이 없이 부부로 하여금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가족을 날로 자라게 하고 풍요케 하는 하느님의 사랑과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자녀의 출산에 대해서 세계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소위 인구정책이나 산아제한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교회도 인무제한한 증가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임신중절이나 약물의 사용을 배격하고 윤리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산아조절의 적당한 방법은 무엇보다도 먼저 생명과 가정의 참된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할 것을 부부에게 요구한다. 또한 자신과 자신의 본능을 완전히 지배하는 데 익숙하기를 요구한다. 지성과 자율적인 의지의 힘으로 본능을 지배하는 데는 부부생활에 고유한 사랑의 표현도 바른 질서에 알맞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일정기간 동안 절제를 지키는 것은 부부의 정결을 빛내는 것이며 부부애를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부애를 보다 높은 인격적 가치로 충만케 해 준다. 이런 규율은 항구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 덕분에 부부의 인격이 풍부하게 발전한다. 가정은 보다 풍요한 인간성을 길러 내는 학교와 같다. 그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부의 마음의 일치와 상호협력이 필요하고, 자녀 교육을 위한 부모의 끊임없는 협력이 요구된다. 부모들이 솔선수범하고 가정적 기도 생활을 실천한다면 자녀들의 인격적 완성과 구원과 성화가 더욱 손쉽게 이루어진다. 특히 자녀들의 종교교육은 부모의 의무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녀들도 그들 나름대로 부모의 성화에 이바지한다. 감사하는 마음과 효심과 신뢰로써 부모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한다. 자녀는 신체적 · 지적 · 도덕적 · 종교적으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부모에게 맡겨진 첫째의 의무요 권리다. 부모는 이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바치는 데 있어서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 만일 부모가 교육을 시키는 의무를 이행치 않거나 이행하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이는 부모의 잘못이다. 자녀는 부모에게 부모의 의무를 실천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으므로 자녀의 권리는 훨씬 더 신성한 것이다. 의무를 게을리하는 부모는 이 신성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무능과 태만을 저지르는 부모로부터 자녀의 권리는 교회적으로나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성소에 따라 신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혼인하는 경우에도 도덕적 · 사회적 · 경제적으로 행복한 조건하에서 자신의 가정을 구성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결혼에 있어서 지나치게 강압하지 말고 자유의사를 존중하면서 지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계명보다 더 큰 소명은 ‘하나가 되라’(요한 17:20-23)는 일치의 소명이다.

이러한 일치를 이룩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화’를 통한 일치가 가장 바람직하다. 오늘날 모든 공동체 안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대간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도는 대화의 결핍이다. 이것은 가정 공동체 안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부부간, 부모와 자녀 사이, 그리고 형제간에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많은 문제들이 파생되고 있다. 문제아가 생기는 원인 중에는 가정 안에서 일치가 없고 대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크게 지적되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대화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고 있고 많은 문헌들도 나오고 있다. 대화는 단순한 인간과 인간과의 말의 교환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마음의 소통으로서 대화를 통하여 하느님을 발견하는 수단인 것이다. 따라서 대화는 단순한 대인도(對人道)가 아니라 대신도(對神道)라고 한다. 가정 안에서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서로 상대방의 인격의 성숙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는 부모가 자기의 아집으로 자녀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강요하는 데 있다. 자녀도 그 나름대로의 인격이 있고, 그 인격은 하루하루 성장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부모가 권위의식에서 사로잡혔을 때 진정한 대화는 불가능하다. 서로가 마음을 개방하고 선입견을 버리고 사랑으로써 대화하면 가정의 일치를 이룩할 수 있다. 가정의 일치 없이는 사회의 일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가정 안에서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가족끼리 가끔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교회는 권장하고 있다. 국가권력은 가정의 본질을 인정하고 보호하며 향상 시키는 동시에 공중도덕을 수호하고 가정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성스러운 임무로 알아야 한다. 자녀를 낳고 가정의 품안에서 교육한다는 부모의 권리는 절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N.C.W.C.인권선언(1947)은, 가정은 자연적 기본적으로 사회 기본단위로서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실정법에 선행하는 불가침의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전제하고, 가정의 권리로서 ① 결혼, 가정의 성립, 자녀의 출산에 대한 권리, ② 가정의 안정과 유지에 충분한 경제적 권리, ③ 모성의 보호에 대한 권리, ④ 자녀 교육에 대한 권리, ⑤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의 보호와 원조를 받아 가정 내에 적당한 수준의 자녀 복지를 유지할 권리, ⑥ 공중사회의 봉사를 통하여 자녀 교육과 보호를 도와줄 수 있는 권리, ⑦ 가정생활의 필요한 기능에 적응하는 거주를 정할 수 있는 권리, ⑧ 수색이나 침해로부터 가정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 ⑨ 공중사회의 부도덕한 조건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였다. 국가는 가정과 결혼의 불가 해소성을 지키고 국가의 세포인 가족에게 공간과 휴식을 주며 새로운 생명을 전하고 참된 종교적 신념으로 자녀를 키우며 가능한 한 경제적 · 정신적 · 도덕적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韓庸熙)

[참고문헌] 사회정의, 가톨릭 출판사, 1976 / 사목헌장, 1975 / 바오로 6세, 산아제한에 관한 회칙, CCK, 1968 / 한용희, 가톨리시즘의 가정윤리와 결혼관, 숙대 아세아여성문제연구소 논문집(15집),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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