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대륙의 북부에 있는 나라. 동쪽은 수리남, 서쪽은 베네수엘라, 남쪽은 브라질과 경계하고 있다. 면적 21만 4,969㎢에 인구는 92만만명(1982년 추계)이다. 주민의 구성이 복잡하며 전형적인 다인종 사회를 이루고 있다. 가장 비중이 큰 동인도인이 48%, 아프리카계 흑인이 33%, 혼혈인이 11%, 원주민인 인디언이 4%, 그밖에 화교 · 유럽인 등이 있다. 1966년 영령(英領)기아나가 가이아나로 독립하였고, 1970년 7월에 공화제로 바뀌었다. 가톨릭 신자수는 10만 5,000명(1982년 현재)이다.
가에타노 [라] Cajetanus
Cajetanus(1480∼1547). 성인. 테아티노수도회 창립자. 축일 8월 8일. 이탈리아명은 Gaetano da Thiene. 베네치아 부근 비첸차에서 태어나 나폴리에서 죽었다. 티에네의 가스파레(Gasar da Thiene) 백작의 아들이며, 파도바대학에서 법률을 배운 후 신학을 전공, 1516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1522년 베네치아에서 불치병 환자를 위한 병원을 개설, 1524년 로마에서 카라파(Gian Pietro Caraffa, 후의 교황 바오로 4세) 등 3명의 동지와 함께 율수성직자회(律修聖職者會, Clerici regulares)를 창립, 이것이 후에 테아티노회로 발전하였다. 1533년부터 나폴리에서 테아티노회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629년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시복(諡福), 1671년 글레멘스 10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가실본당 [한] 佳室本堂
소재지는 경북 칠곡군 왜관면 낙산리(慶北 漆谷郡 倭館面 洛山里, 현倭館邑 落山洞). 현 왜관읍 낙산본당의 전신. 1904년 대구본당 (현 桂山童本堂)에서 분할 창설, 초대 본당주임으로 그 해 입국한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파이아스(Camille Cyprien Paillhasse, 가밀로, 河敬朝) 신부가 부임하였다. 파이아스 신부가 처음에 주재한 신나무골[枝川面 蓮花里, 옛 中花]은 대구교구(大邱敎區)의 요람지로서 1886년 경상도 담당 선교사로 임명된 로베르(Achille Paul Robert, 金保祿) 신부가 1888년까지 체류, 이어서 보두네(Calixte Xavier Baudounet, 尹少勿) 신부와 조조(Moyses Jozeau, 趙得夏) 신부가 각각 머무르던 곳이다. 파이아스 신부는 1896년과 1897년 사이에 부산에서 낙동강을 통해 낙산 사이를 왕해하는 선박의 선착장이 가까운 낙산리 노곡(蘆谷)으로 본당을 이전,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창설 당시의 본당 관할구역은 칠곡, 선산, 성주, 김천, 문경 등지로 공소는 모두 17개소, 파이아스 신부가 처음 주재했던 신나무골의 신자수는 70명, 관할구역 총신자수는 777명이었다. 파이아스 신부는 1898년 ! 황해도 장연(長淵)의 두섭[道習]본당으로 전임되고, 2대 본당주임으로 김성학(金聖學, 알렉시오) 신부가 부임, 3년간 전교활동을 하다가 1901년 김천(金泉)본당으로 전임하였다. 3대 본당주임으로 1901년 5월에 부임한 조아요(Louis Alphonse Marie Joyau, 玉裕雅) 신부는 1903년 성당을 증축, 사제관을 건립했으며, 부임 당시 800∼900명이던 신자수가 몇 해 만에 1,400명으로 늘어나는 큰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병(癩病)에 걸려 1907년 1월 12일 30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 본당주임 소세(Hyppolyte Joseph Sacet, 蘇世德) 신부가 부임하였다. 원래 서울교구에 속해 있던 가실 본당은 1911년 4월 창설된 대구 대목구에 편입되었고, 그 당시의 본당 신자총수는 1,649명, 공소수는 36개, 본당 소재지인 가실의 신자수는 270명이었다. 그 해 가을에 소세 신부는 대구본당 로베르 신부의 발병(發病)으로 그 곳 주임이 되어 전임, 5대 투르뇌(Victor Louis Tourneux, 呂東宣) 신부가 부임, 1944년까지 33년간 재임하하다. 그는 부임한 지 13년만인 1923년 벽돌 양옥 성당 신축공사에 착공, 1925년에 준공, 1928년 9월에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현재 본당주임인 19대 송만협(요셉) 신부는 1978년에 부임했고, 본당주보는 성녀 안나, 신자수는 719명(1984년 현재), 공소는 3개소이다.
가시미로 [라] Casimirus
Casimirus(1458∼1484). 성인. 축일 3월 4일. 풀란드왕 가시미루스 4세의 제3왕자.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공주 엘리자벳. 크라카우에서 태어나 벨로러시아의 그로드노에서 죽었다. 고명한 역사학자 들루고시(Jan Dlugosz, 1415∼1480)에게 배웠다. 13세 때 헝가리왕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의 반대당으로부터 헝가리 왕위를 수락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의 형 블라디슬라브(Wladyslaw)가 보히미아의 통치자가 된 후부터 가시미로는 폴란드이 명실상부한 왕위계승자가 되었다. 부왕(父王)이 국사(國事)로 리투아니아에 가 있는 동안(1481∼1483년), 가시미로는 부왕을 대리하여 폴란드를 통치하였다. 그는 동정을 지키겠다는 서원(誓願)을 관철하기 위해, 자기를 독일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딸과 결혼시키려는 부왕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그는 자기가 대공(大公) 직위를 겸하고 있는 리투아니아를 여행하던 중에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빌나(Vilna)의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의 생시의 경건과 순결,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 대한 특출한 신심(信心)은 주목을 받았고, 여러 종교적 기적(奇蹟)은 그를 성인으로 추앙케 하였으며, 1521년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청소년의 보호자. 폴란드 및 리투아니아의 수호성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