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관 [한] ∼冠 [라] corona spinarum [영] crown of thorns

복음서에는 가시관이 빌라도의 군사에 의해 예수께 씌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마르 15:16-20, 마태 27:27-31, 요한 19:1-3). 이 사건은 총독관저에서 일어났는데(마르 15:16, 마태 27:27), 그 장소는 시의 서부에 있는 헤롯왕의 궁전이거나 신전 (temple)의 북서부의 안토니아로 추정된다. 헤롯왕의 군사들에 의해 예수가 조롱당하는 장면이 루가복음 23장 11절에 기록되어 있고, 마르코복음 14장 65절에는 대사제의 시종들에 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들은 모두 한 가지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간주되며 예수가 복음서에 기록된 이들 세 그룹 모두에 의해 모욕을 당했으리라고 추정된다.

가시관에 쓰인 나무는 당시 예루살렘 지역에 흔했던 대추나무의 일종인데 그 뒤 이 나무는 ‘그리스도의 대추나무'(zizyphus spina Christi)라고 불리고 있다. 이 가시관은 수 세기 동안 유물로 예루살렘에 보관되어 오다가 1063년에 비잔틴으로 옮겨졌고, 1238년에 볼드윈 2세가 이를 프랑스의 성 루이에게 전하였다. 1248년 이 유물을 공경하기 위해 프랑스에 생 샤펠(Sainte-Chapelle)이 세워져 그 곳에서 보관되고 예배가 행해지고 있다. 이 진짜 가시관 외에 이것에 닿았던 많은 별개의 가시덤불들이 유물로서 공경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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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파르 [원] Gaspar [관련] 삼왕

삼왕중 한 사람. ⇒ 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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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직제도 [한] 假聖職制度

초기 한국 천주교회에서 평신도들이 성직자의 고유한 성무(聖務)를 집행했던 제도.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인 1786년부터 1787년경까지 이승훈(李承勳, 베드로), 권일신(權日身,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 홍낙민(洪樂敏, 루가) 등 10여명의 지도급인물들이 약 2년간 신품(神品)을 안받은 채 사제(신부)로서 미사성제(聖祭)를 드리고 고해(告解) 등 각종 성사(聖事)를 집전하였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北京)에서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래 그를 북경으로 가게 했던 남인(南人) 학자 이벽(李檗, 세자 요한)을 중심으로 권일신, 정약전(丁若銓) ·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 · 정약용(丁若鏞, 요한) 3형제, 이존창(李存昌, 별명 단원, 곤자가의 루도비코), 홍낙민, 유항검, 김범우(金範禹, 토마스) 등 양반 및 중인신분 사람들이 차례로 입교함으로써 창설된 한국 교회는 처음 서울 명례방(明禮坊)[지금의 乙支路 2가]에 있던 김범우의 집을 집회장소로 삼아 주일과 축일을 지내왔으나 그 때까지는 아직 이런 제도는 실시되지 않았다.

이 제도는 1785년 일어난 박해 즉 추조적발사건(秋曹摘發事件)으로 김범우가 유배되어 순교하고, 주도 인물이었던 이벽이 타의로나마 은거케 된 뒤, 북경에가서 직접 성직자들의 성사 집행광경을 보고 온 이승훈에 의해 교회발전책으로 제의되어 채택되었다. 그러나 유항검이 교리서(敎理書)를 자세히 연구하여 본 결과 신부의 자격과 신부를 임명한 것이 효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하여 큰 의심을 품게 되어 성사를 중단하고 북경주교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문의하는 편지를 쓰기로 결정하였다. 이 편지는 이승훈과 권일신의 이름으로 씌어져 1789년 10월(음), 권일신의 제자 윤유일(尹有一, 바오로)을 통해 북경의 북당(北堂) 선교사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이승훈 등은 1790년 윤유일로부터 북당 선교사들의 회답을 받을 수 있었다. 이회답에서 선교사들은 성사를 마구 집전한 것을 무지로 돌리고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정한 통회로써 구원을 얻도록 노력할 것이고, 구원의 가장 확실한 길은 성직자를 영입하는 것이므로 그 조속한 실현을 권고하였다. 이로써 한국의 평신도들은 신품성사를 받은 성직자가 교회에 필요함을 비로소 인식하고 북경교회에 선교사파견을 요청하기 위해 윤유일을 다시 밀사(密使)로 북경에 파견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社, 上·中·下, 분도출판사, 1979∼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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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리 [원] Gabrieli, Andrea

Gabrieli, Andrea(1510?∼1586). 이탈리아의 작곡가, 오르간 연주자. 베네치아의 귀족가문에 태어나 평생 동안 고향에서 활동하였다. 베네차아파의 창시자인 빌레르트(A. Willaert)의 제자로 있다가 1566년 메룰로(C. Merulo)의 뒤를 이어 베네치아 성 마르코 성당의 제2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미사곡, motetus, cantiones,madrigale 등 교회음악·일반음악을 막론하고 다수가있다. 특히 그의 음악은 문예부흥의 발상지인 베네치아의 베네치아파 중에서도 매우 엄격한 것이 특징이고, 음악사적으로는 인성(人聲)과 오케스트러의 융합을 시도했으며, 소리의 배합에서 오는 여러 규칙을 정했는데, 이 규칙이 당시에는 유일한 표준이 되었다. 그의 15개 악기를 위한 는 5개 악기씩 3개 그룹으로 나누어 제대(祭臺) 양 옆쪽과 앞쪽 등 3개소에 배치하고, 때로는 대화식, 때로는 전체적 합주로써 음향효과를 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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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마르셀 [원] Gabriel Marcel [관련] 마르셀

[관련단어] 마르셀

⇒ 마르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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