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라] talmud [영] talmud [관련] 유태교

탈무드란 기원전 300년경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부터 5세기까지 약 800년간 구전(口傳)되어 온 유태인들의 종교적, 도덕적, 법률적 생활에 관한 교훈, 또는 그것을 집대성한 책이다. 이는 미시나(mishna, 반복)와 게마라(gemara, 보완)의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미시나는 모세오경에서 볼 수 있는 율법, 즉 성문율법(torah sebbiketab)을 사회 · 경제적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도록 해석하고 보완한 구전율법(torah sebee’ al peh)을 가리키며, 케마라는 미시나의 주해서(註解書)인 셈이다. 탈무드는 법률적 자료인 할라카(halakah)와 윤리와 종교의 전영역에 걸친 자료인 하가다(haggadah)에 근거하여 서술되어 있다.

탈무드가 취급하고 있는 대항목은 제라임(zeraim, 농사법), 모에드(moed, 안식일 · 축제 · 금식에 관한 법), 나심(nashim, 결혼과 이혼에 관한 법), 네지킨(nezikin, 민사법과 형사법), 코다심(kodashim, 성소와 희생의식에 관한 법), 토호로트(tohoroth, 레위적인 정결법) 등 6개로 나뉘어져 있다. 탈무드는 그것이 기록된 장소와 지적 배경으로 보아 팔레스티나 탈무드, 바빌로니아 탈무드로 구분한다. 팔레스티나 탈무드는 3세기경 랍비 요하난(Johanan ben Nappaha, ?∼427)이 편집했다고 하며 서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고, 할라카 연구에 불가결한 책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동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고, 4세기말 라브 아시(Rab Ashi, ?∼427)가 편집에 착수, 그의 후계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탈무드는 유태인의 암흑시대에 완성되어 압박과 위협의 시대를 사는 많은 지혜를 유태인에게 제공하였다. 즉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또는 어떤 사회나 문명의 단계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유태인의 특성은 탈무드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탈무드는 유태인의 신앙과 사상의 원천이며 생활의 규범이었다. (⇒) 유태교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탄자니아 [원] Tanzania

아프리카대륙 동부, 인도양에 면한 나라로서 정식 국명은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이다. 서쪽으로 루안다 · 부룬디 · 자이레, 남쪽으로 말라위 · 모잠비크, 북쪽으로 케냐 · 우간다와 국경을 접한다. 면적은 94만 5,087km 에 인구 1,911만명(1982년 추계)이다. 공용어는 스와힐리어와 영어이며, 초등교육은 무상이나 문맹률은 80∼85%로 추정된다. 가톨릭 신자는 1982년 현재 390만 5,000명이며, 기타 그리스 정교 등이 신앙되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탁발수도회 [한] 托鉢修道會 [라] Ordines mendicantium [영] mendicant Orders

창설 당시 공동으로 또는 개별적이건 모든 소유의 포기를 서약한 수도단체. 그러나 수도회의 팽창으로 수도자 양성 및 정주를 위한 공동 재산의 보유가 불가피해지자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년) 이후 공유재산은 인정되었다. 영어명은 ‘구걸하다’(mendica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12세기말에서 13세기초 도시의 발달과 부유한 중산층의 대두, 그리고 성직자들의 지나친 부는 당시 빈자들의 무리로 전락한 하층민의 반발을 일으켰으며 이것은 발두스파(派, Waldenses), 카타리파(Cathari) 그리고 알비파(Albigenses) 등의 이단의 융성으로 이어졌다. 특히 카타리파와 알비파는 남부 프랑스 및 북부 이탈리아를 휩쓸고 있었으나 교황의 사절들과 교회의 십자군들도 이들을 교화시키는데 실패하였다. 이때 이탈리아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of Assisi)가 설립한 프란치스코회(1209년)와 스페인에서 성 도미니코(St. Dominic)가 설립한 도미니코회(1216년)는 이들 빈자와 이단자를 교화시켜 교회 안으로 이끄는 데 놀랄 만한 성과를 보여 주었다. 이들 최초의 탁발수도회들은 기존 수도회의 엄격한 이념에서 청빈과 사도직을 특히 강조하였으며 특히 도미니코회는 학문과 사도적 열의를 훌륭히 조화시켰다.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1230년)와 그 개혁 이후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사목면에서 뿐만 아니라 학문면에서도 영향력 있는 수도회로 발전하였으며 이들의 전통은 가르멜회(1180년)와 아우구스티노회(1244년)에 의해 확산되었다.

그 뒤 그레고리오(Gregorius) 8세(재위 : 1572∼1585)는 Serviti, Minimi, Trinitarii, Mercedarii 등을 탁발수도회로 인정하였다.

탁발수도회는 그 시작부터 교회의 꾸준한 인기와 지지를 받았지만 간혹 1253년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가 파리대학 신학부에서 받았던 것처럼 맹렬한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탁발수도회의 활동은 교구장의 관할권과 관련되어 여러 문제들을 야기시켰는데 1300년 보니파시오(Bonifatius) 8세는 대칙서 을 발표하여 탁발수도회의 특권을 제한하였다. 한 예로 탁발수도회의 수도승이 설교를 하거나 고해성사를 주려 할 때에는 관할 교구장으로부터 그 허가를 받아야 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탁덕 [한] 鐸德

신부(神父)를 지칭하는 옛 말. 원뜻은 덕(德)을 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탁(司鐸), 서사(西士), 신사(神士) 등과 함께 신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었다. 현재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타케 [원] Taquet, Emile

Taquet, Emile(1873∼1952).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원, 대구교구 선교사. 한국명 엄택기(嚴宅基). 프랑스 루르드에서 출생. 1897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해 10월 28일 사제서품을 받은 뒤 이듬해 1월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경남 부산을 중심으로 밀양 · 김해 · 진주 · 거제 · 마산 등지에서 전교했고, 1902년부터 1916년까지는 제주도와 전라남도의 목포 · 무안 · 장성 · 영광 · 함평 · 해남 · 완도 등지에서 전교하였다. 그 뒤 1922년 대구 성 유스티노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이어 1931년 교장으로 임명되어 1940년 은퇴할 때까지 대구교구 사제 양성을 위해 헌신하였다. 1940년 고령(高齡)으로 은퇴하여 대구교구 주교관에서 휴양하던 중 1952년 1월 25일 사망, 대구교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식물의 수집과 연구로 식물학계에 업적을 남겼다. 한국의 남쪽의 도서, 특히 제주도에서 식물을 수집하여 유럽박물관으로 보냈는데 그 중에서 제주도의 왕벚꽃 등은 유명하다(Dryopteris Taqueti, Diplazium Taqueti).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