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미사 [한] 莊嚴∼ [라] Missa sollemnis [영] solemn Mass [관련] 미사

사제가 부제(副祭)와 복사(服事)를 거느리고 특별한 음악과 함께 향을 피우며 장엄하게 거행하는 미사. 초기 교회의 주교 공동 미사에 기원을 두며 중세의 로마 예식서에서 발견된다. 전례 개정 전에는 부제와 차부제(次副祭)가 사제를 도왔다. 수세기 동안 사제를 보조하는 부제와 차부제의 수가 변해 왔는데 각각 한 사람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최초의 명백한 증거는 10세기경에 보여진다. 장엄미사란 용어는 사제들이 시종하는 교황이나 주교의 미사에도 적용된다. 공동 집전이 시행됨에 따라 장엄미사의 상당한 부분을 흡수하여 대체되었다. (⇒)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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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약슬 [한] 張若瑟 [관련] 베르모렐

베르모렐(Vermorel) 신부의 한국명. ⇒ 베르모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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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고버 [한] 長∼ [관련] 야고보

⇒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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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본당 [한] 長水本堂

전주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로사리오의 성모. 현재 명칭은 장계(長溪)본당이다. 일찍이 1850년께부터 최양업(崔良業, 도마) 신부의 활약무대였던 전라도 장수는 병인(丙寅)박해 때 모여든 팔도의 피난 교우가 교우촌을 이룩하게 되었다. 험악한 산악지대만, 인심이 순박하고 경치가 좋은 이 고장에 본당 설립의 기틀을 마련한 동기는, 1915년 경남 함양본당(咸陽本堂)의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와 전북 진안군(鎭安君) 어은동본당(魚隱洞本堂)의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가 이 두 본당의 인접지인 무주(茂朱), 남원(南原), 임실(任實) 등의 전교상 쉬어가는 중간지점인 장수면(長水面) 수분리(水分里)에 강당과 사제관을 건립한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사제의 부족으로 인하여 교회설립은 지연된 채 함양본당에서 이 지방을 포용해오다가, 1926년에 와서야 장수본당의 정식 발족을 보게 되었다.

초대(1926∼1928. 11. 8) 김필곤(金泌坤, 바르나바) 신부가 주임신부로 3년 동안 신설본당의 시설을 갖추기에 힘썼고, 2대(1928∼1931년) 석윤학(石允學, 바오로) 신부가 ‘소화(小花)학원’을 설립, 문맹퇴치에 기여하였다. 1931년 전라도 감목대리구가 된 뒤의 3년간은 신부 부족으로 공석 중이던 주임신부 자리에 3대(1934∼1939년) 김동욱(金東旭, 마티아) 신부가 부임하여 수분리에서 장수읍내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그 뒤 4대(1939∼1946년) 하근주(河漌珠, 요셉) 신부를 거쳐 5대(1946∼1947년) 이기순(李基順, 도미니코) 신부가 1946년 2월 5일 본당을 다시 수분리로 옮겼고, 6대(1947. 5. 27∼1948년)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 신부, 7대(1948. 8. 20∼1950년) 이철연(李喆淵, 프란치스코) 신부를 이어 8대(1950. 4. 10∼1950년) 조상익(趙相益, 베드로) 신부 때, 6.25동란으로 조 신부가 군목(軍牧)으로 입대하자 그 때부터 장수 본당은 3년 동안 남원본당(南原本堂)과 진안본당(鎭安本堂)에 소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3년 새로운 대지와 가옥을 매입하고 수분리와 장수를 망라하여 1954년 5월 19일, 장수군 계내면 장계리(溪內面 長溪里)에 성당을 짓고 본당으로 재출발하게 되었고, 이때 본당명을 장계(長溪)본당으로 바꾸었다. 그 후 김종택(金鍾澤, 요셉) 신부로부터 현재까지 9개 김봉희(金鳳熙, 요한) 신부에 이르고 있다.

한편 실제로 군소재지이면서도 본당 설치가 끊겼던 장수에 본당 설립 준비를 해온 장계본당 주임인 당시 김병운(金炳韻, 베네딕토) 신부가 1973년 2월에 현 위치인 전북 장수군 장수면 장수리에 대지를 매입, 9월에는 강당을 건립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이를 성취시킨 것은 현재의 장계본당 주임인 김봉희 신부인데 그는 장계본당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장계지역과 장수지역을 분리, 별도 운영하여, 1977년 5월 17일에는 사제관을 신축함으로써 1977년 7월 9일 새로운 장수본당을 창설하여 유서깊은 옛이름을 승계하였다. 역대 주임신부는 초대(1977. 7. 20∼1979. 9. 6) 왕수해(王壽海, 요한) 신부, 2대(1979. 9. 7∼1983. 2. 2) 이종원(李鍾源, 토마스) 신부, 3대(1983. 2. 3∼현재) 박성팔(朴性八, 안드레아) 신부이며, 1984년 6월 현재 신자수는 남자 420명, 여자 526명, 도합 946명이다. 전주교구 관하에 있는 본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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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집 [한] 張∼

장성집(1786∼1839).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요셉. 서울에서 태어나 한강변 서강(西江)에서 살았다. 30세경 천주교를 알게 되어 처음에는 열심한 예비교우로 생활했으나 점차 교리에 대한 회의를 품었고 그 뒤 세속 향락을 좇는 일과 재산 모으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그러나 교리지식이 깊은 교우의 친구들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다시 신앙생활로 돌아와 자신의 죄를 보속하고 세속의 유혹을 끊어 벌린 후 방에만 틀어박혀 추위와 굶주림을 참아가면서 기도와 성서연구에만 전념하였다. 집안 어른들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게 너의 신앙생활에 무엇이 그렇게 방해되느냐?”고 걱정했으나 “제가 지은 죄는 모두 의식(衣食)을 넉넉히 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그런 죄를 짓는 것보다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라고 자신의 뜻이 변할 수 없음을 밝혔고 이러한 열정적인 신앙자세로 1838년 4월 성세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4월 초 자수를 결심했으나 대부(代父)의 만류로 자수하지 않고 있다가 4월 6일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중병 상태여서 포졸들이 가마에 태우려 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포청까지 걸어서 갔고 포청에서도 신문하는 형관에게 맑은 정신으로 자세히 교리를 설명한 후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다. 5월 26일 치도곤 20대를 맞고 장사(杖死),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이어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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