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본당1 [한] 順川本堂 [관련] 은산본당

1928년 평북 순천군 순천읍 관상리(平北 順川郡 順川邑 館上里)에 창설되어 1944년 폐쇄된 평양교구 본당. 1926년 평안도 동북지역의 전교요충지로 창설된 은산본당(殷山本堂)이 1928년 폐쇄됨에 따라 그 후신으로 창설되었다. 평원선(平元繕)과 만포선(滿浦繕)의 분기점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이용하여 순천군 전역과 맹산군(孟山郡) 일부지역을 관찰하였다. 은산본당의 주임이던 크레이그(Craig, 奇)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임시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고 인근지역에 20여개의 공소를 개설하는 등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고, 2대 주임 마컴(Markham, 馬) 신부 재직 때인 1936년 성천본당(成川本堂)을 분할, 창설시켰다. 그 후 1942년 1월 4대 주임신부 홍용호(洪龍浩) 신부가 평양교구 내의 모든 메리놀회 성직자들과 함께 일제(日帝)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후,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되자 순천본당은 안주본당(安州本堂)으로 이관되었고, 1944년 4월 장두봉(張斗鳳) 신부가 5대 주임신부로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재출발 하였다. 그러나 1944년 11월 장 신부가 강계본당(江界本堂)으로 전임되자 다시 기림리본당(箕林里本堂) 관할 공소로 격화되었고, 공소마저도 1949년 12월 북한 공산정권의 탄압에 의해 기림리본당과 함께 폐쇄되었다.

순천본당의 관할 공소로는 중평리(中坪里), 조산리(棗山里), 자산리(慈山里), 북창리(北倉里), 신창리(新倉里), 맹산리(孟山里) 등이 있었다. (⇒) 은산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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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도 [한] 巡威島 [관련] 김대건

황해도 옹진군 옹진반도 남단에 있는 섬으로 성인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체포된 곳. 김대건 신부는 폐레올(Ferreol, 高) 주교로부터 서해(西海)를 통한 성직자영입로를 개척하라는 명을 받아 1846년 5월 14일 7명의 교우와 함께 마포(麻浦)를 떠나 인천을 거쳐 백령도까지 갔고, 그 곳에서 중국 어부들과 접촉하여 6통의 편지와 2통의 지도를 중국 교회에 전달케 하고 귀한 도중 순위도에 정박했다가 6월 5일 체포되어 등산진(登山鎭), 해주(海州) 감영을 거쳐 서울로 압송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 김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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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심학교 [한] 純心學校

왜관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교육기관. 1936년 소화여학원의 설립으로 역사가 시작되었고, 1946년 순심초급중학교로 개편되었다. 1952년 고등학교가 병설되고, 1974년에는 남녀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1977년에는 또다시 여자중학교가 분리되어 현재 순심학교 울타리 속에는 남녀 중고등학교 4개교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동 340번지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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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명 [한] 順命 [영] obedience

윤리덕(倫理德)의 하나로 자유의사를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명령을 따르는 마음 자세를 지칭한다. 순명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행위이고,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기쁘게 한다. 수도원에서는 순명을 서원하게 한다. 순명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인 외적 순명과 내면으로 따르기를 마음먹는 내적 순명이 있다. 한편 어느 만큼 순명해야 하는가는 명령자의 권한과 관계가 있다. 예컨대 하느님에 대한 순명은 그 범위에 제한이 없는 절대적인 순명이다. 그렇지만 사람에 대한 순명은 정해진 권위에 한정된 범위 내의 명령에 순명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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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한] 巡禮 [영] pilgrimage

하느님과 관련된 성스런 땅 – 예컨대 하느님이 임재하였거나 다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는 곳, 혹은 특별히 신성하다고 생각되는 곳 – 즉 성지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경신(敬紳)행위의 하나다. 순례의 기원은 뚜렷하지 않지만 유태교에서 이스라엘 남자들이 유월절(Pesah)과 오순절(Shavout) 및 초막절(Sukkot) 등 매년 3번씩 예루살렘의 성전의 가서 그들이 수확한 곡식을 바치던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그리스도교 시대에 들어오면 순례는 신에 대한 흠숭의 의미뿐 아니라 회개하는 행위로, 혹은 성인에 대한 존경의 행위로, 혹은 영적인 은혜를 받기위한 행위로, 혹은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행위로 인식되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활하시던 팔레스티나로 순례하였고, 그 후에는 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여진 로마에서의 순례도 성행하였다. 8세기 이후부터 순례는 신자들의 의무에 속한다는 관습이 생겨나 대 순례단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순례는 근대에 들어오면서 그 의의가 감소되어 차츰 활기를 잃었다. 현대에는 팔레스티나와 로마 이외에도 루르드, 파티마, 과달루페 등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곳에도 순례한다. 이러한 곳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순례를 위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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