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계승 [한] 使徒繼承 [라] successio apostolica [영] apostolic succession

가톨릭 교회 안에 교황과 주교들의 주교직의 유효성이 역사적으로 중단됨이 없이 열 두 사도로부터 전래되어 온 현상. 이 연결을 상징하고 유효하게 하는 외적표시는 서품식때 이행되는 안수이다. 사도계승이란 개념은 영지주의(Gnosticism)에 직면하며 2세기에 분명해졌다. 영지주의는 구원이 지식을 통하여 도래하며 이 지식은 선택된 소수에게 은밀히 전달된다는 주장인데, 교회지도자들은 이에 반대하고 진리는 만인에게 개방된 것이며 어느 가르침이 복음의 표현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기준은 그것이 모든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면 주교들은 개인자격으로서가 아니라 단체적으로 사도들의 계승자들이며(교회헌장 20)사제들과 부제들은 불완전하나마 진실로 주교들의 직무에 참여한다(교회헌장 22, 28, 사제직무 교령 1). 즉 개인은 신품성사로 사제적 능력을 개인적으로 받지 않고,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위임한 사명을 단체적으로 상속하고 지속시키는 성직자단에 입단하는 것이요, 이 단체의 기능은 대사제인 그리스도의 직무를 하느님의 백성안에 대표하고 이행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의 지도자는 그들이 주교단의 일원으로서 전체교회에 속하는 부분교회로서 사도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학자들은 가톨릭 교회밖의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사도 계승성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고 애썼다. 즉 하느님은 성사를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고, 사도들의 직무는 주교 직무에서뿐 아니라 선체교회 안에서 지속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사제적, 왕적인 삼중의 사명에는 전체교회가 참여하므로(교회헌장 30항) 이들 직무를 사도와 주교들의 직무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 아닌 신앙공동체를 ‘교회’로, 그 구성원을 ‘형제와 자매’로, ‘그리스도 교인’으로 부르고 있다.(일치교령 3항).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 이외의 교회들 안에서 수행되는 직무도 부분적으로 사도계승성을 지닌다고 본다. 즉 사도성과 사도계승에는 등급이 있다는 것이 공의회의 가르침이라고 다수 신학자들은 해석한다. 다만 동방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되기 이전부터 유효한 주교제도를 갖고있어 왔기 때문에 다른 개신교회와는 다른 이유로 사도계승성을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문헌] R.P. McBrien, Apostolic succession,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17, McGraw Hill, N.Y. 1967 / J.J. Hughes, Apostolic succession, ibid, vol. 16 / Wilhelm Brenning, Apostolic succession, Sacramentum Mundi, vol. 1, Burns & Oates, London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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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한] 使徒 [라] apostolus [영] apostle [그] apostolos

‘사도’의 어원은 ‘파견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동사 apostello이며 이의 명사형인 apostolos 즉, 사도는 ‘보내진 자’ 또는 ‘파견된 자’라는 의미이다. 성서에서 ‘사도’는 초기에 예수를 따르고 그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더 엄밀히 말하면 ‘사도’라는 칭호는 예수가 그의 교회를 세우고, 그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선택한 열두 명의 제자들과(마태 10:2, 사도 21:4) 이방인들의 탁월한 사도였던 바울로에 국한되어야 한다. 신약성서에서 12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던 시기에는 ‘제자’들로 불려졌으나 예수가 승천한 이후부터는 ‘사도’들로 기록되고 있다.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찬을 베푸는 자리에서 예수는 이들을 사제로 임명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들은 성령강림절 이후에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가르쳤던 바를 사람들에게 전했으며, 초대교회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사도’는 사도직을 계승한 주교 등 성직자뿐만 아니라 사도적 활동을 하는 평신도들에게도 해당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에서는 사도직 수행의 권리와 의무는 성직자나 평신도나 모든 신자에게 공통적이라는 것과 교회 건설에 평신도들도 고유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교령 25)을 성직자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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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축일 [한] 四大祝日

예수그리수도에 의해 이루어진 구세사(救世史)의 가장 중요한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네 대축일, 즉 예수성탄 대축일, 예수부활 대축일, 성신강림 대축일, 그리고 성모승천 대축일을 말한다. 예전에는 사대첨례(四大瞻禮)라고 하였다. 사대축일에는 파공관면(罷工寬免)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예수성탄 대축일과 성모승천 대축일은 주요한 날로 간주되며 전날 제1저녁기도로 경축이 시작된다. 어떤 대축일은 전야제까지 지내며 전날 저녁에 지낼 수 있는 고유미사까지 마련되어 있다. 최고의 대축일은 부활과 성탄이라고만 말하고 사대축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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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첨례 [한] 四大瞻禮 [관련] 사대축일

사대축일의 옛말. ⇒ 사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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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복음서 [한] 四大福音書 [영] Four Gospels

교도권(교회법)에 의해 인정(認定)된 네 개의 복음서들은 각각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나 이들은 결코 독립적이 아니며 이해의 세 가지 영역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외관상으로는 독립된 것처럼 보이는 각 복음서를 통해서 복음서 저자들은 공통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네 복음서 저자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부흥시키고 돈독히 하려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었으나 각자가 뚜렷한 개성과 독창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특정한 주제나 일련의 주제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루가는 예수를 ‘자비로운 구원자’로 부르고 요한은 ‘성부의 해석자(The interpretation of the Father)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현재까지 교회와 교회의 성사에서 쓰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로부터 복음사가들이 모아들인 복음들은 따로 독립된 부분들이 아닌 것이다. 또한 복음서 저자들은 사건이나 비유들을 각각 치밀한 계획아래 배치했으며 그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복음서 저자들을 처음부터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이 결국에 가서는 신앙에 필요한 것들을 골라 기록했을지라도 복음서의 많은 부분들이 앞서 존재했던 전승에서 따온 것이며, 이렇게 기록된 각 사건이나 일화들은 사도 공동체가 부여한 특별한 의미를 각각 지니고 있었으며, 사도 공동체에 의해 예수의 행적과 말씀에 부여된 의미들은 실제 예수의 생애와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이들 중 어느 것이 진실성 을 지니고 있는가? 그러나 진리는 한 가지 견해 또는 의미에 의해 구속될 수 없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화를 내시며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마르 10:14)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우리는 제자들이 그들의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려오는 것을 막았으므로 예수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려오도록 허락하라는 말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전승에 의하면, 예수가 어린이들이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들어오도록 허락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그 말을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해석들은 모두 진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모두 복음서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역사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복음서는 역사적인 관점을 전혀 무시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생애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는 것은 불합리한 일인가?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류의 역사에 하느님이 관여하고 계시며, 인간이 된 예수를 통한 역사적 사건에 의해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믿음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생애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과 세부적인 사실들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분은 신약성서와 신약성서 시대의 관례에 기초를 둔다. 신약성서에는 당시로부터 전해 내려온 전승을 고수해 갈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부분들이 있다(사도 1:21 · 22, 4:9-20, 루가 1:2, 1요한 1:1-4). 이러한 전승은 신약성서(사도 10:34-43)와 케뤼그마에 나와 있으며 이를 잘 지켜나가는 것이 지도자들의 의무로 되어있다(사도 6:3-4, 갈라 1:6-9, 1고린 11:23-26). 그 반면에 예수의 생애와 교리의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해석상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세부사항들이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문헌] V. Taylor, The Formation of the Gospel Tradition, New york 1935; History and the Gospel, London 1938 / J. Huby and X. Leon-Dupour, L’Evangile et les Evangiles, Paris 1954 / EncDictBibl 890-895 / Didache as a Constitutive Element of the Gospel-form, Cath Bibl Quart 17, 1955 / The Gospels Reconsidered, a selection of Papers read at 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The Four Gospels in 1957, Oxford 1960 / Balaam’s Ass, or a Problem in NT Hermeneutics, 1458 / J. Dupont, Les Beatitudes: Le Probleme litteraire, Bruge 1958 / Q. Quesnell, This Good News: An Introduction to the Catholic Theology of the NT, Milwakee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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