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한] 道

1. 도(道)의 의미 : 도의 뜻은 넓고도 풍부하다. 서양의 logos와 인도의 Dharma처럼 가장 근본적인 개념이다. 그 ‘도’자의 자원(字源)을 살펴보면,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도란 다니는 길이다. 다니다와 머리로 구성되어 있다”(-所行道也, 從辵從首)라고 하였다. 착(辵)자는 ≪설문≫(說文)에서 또 “가기도 하고 머무르기도 한다”(乍行乍止)고 하였다. 유희(劉熙)는 석명(釋名)에서 “도는 밟는다(蹈)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의 ‘도’자의 형태는 도(導, 인도한다)자와 가깝다. 그러므로 도는 처음엔 인도한다는 도(道)와 밟는다는 도(蹈)의 의미로 쓰였다. 이것은 대체로 사람의 머리[首]는 그 발[足]의 가고 멈춤(行止, 즉 辵)을 인도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정복보(丁福保)는 ≪설문고림≫(說文詁林)의 ‘도’자 아래에 ≪설문고류보≫(說文古-補)에 기재된 금문(金文)을 인용하였는데 ‘도’자는 ‘-’이라고 하였다. 이 금문 중에서 ‘수’의 사방(四旁)은 바로 행(行)자로서 길[道路]의 모습이다. ‘도’자는 역시 길을 뜻하였다. 그러나 그 속엔 사람의 머리가 들어 있다. 도는 발로 가야만 하지만 머리로 잘 생각해서 내디뎌야 한다. 머리는 몸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이므로 ‘수’(首)자는 존경된다는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 ‘도’자의 자원이 인간의 머리[首]와 발로 걸어 감[足]이기 때문에 머리는 스스로 길 위로 걸어가는 것[行]을 인도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머리는 그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멀리 내다보고 그 몸과 그 발을 이끌어 준다.

2. 길은 어디에나 통하여 있다. 그러므로 ‘도’자는 통달(通達)로도 풀이된다. ≪설문≫에서 “통달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一達之謂道)고 하였으며,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는 “도는 통하여 하나로 된다”(道通爲一)고 하였고. 양웅(楊雄)의 ≪법언≫(法言)에서는 “도란 통(通)이다. 통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장횡거에 의하면 “만물에 두루 통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通萬物而謂之道)[≪正蒙≫ 乾稱篇]. 이와 같이 통달로써 도를 말하였는데, ‘통’의 의미도 심감천(-甘泉)에 의하면, 첫째 자질구레한 모든 것을 통틀어서 하나로 묶는다. 즉 총괄한다[總括之義]. 둘째 막힌 것을 터 주고 맺힌 것을 풀어 준다[疏解之義]. 셋째 꿰뚫는다[貫穿之義]. 넷째 마음으로 깊이 느껴서 깨닫는다[感梧之義]는 여러 가지 뜻을 갖게 되었다[≪理學格物通≫]. 따라서 통한다는 의미로 해석한 도도 위의 네 가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도는 텅 비어 아무런 형체도 없는 것[無形] 같지만, 만물이 다 거기에서 유래한다[所共由]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즉 길[道]은 어디나 통하여 있기 때문에 누구나 다 그 길을 거쳐서[由]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공자가 “나의 길은 하나로 꿰뚫었다”(吾道一以貫之)고 하였을 때 그가 걸어간 길은 오직 한 길 뿐이었으나 그 길은 어디에도 통하는 길이었다. 이와 같이 도는 거쳐야 할 실재로서 존재한다는 뜻뿐만 아니라 환하게 뚫려 있다는 허통(虛通)의 의미도 갖고 있다.

3. 우리의 어떤 활동이건 일정하게 따라야 할 길이 있고 이것은 서로 통한다는 의미에서 안다[知]와 말한다[說]는 뜻이 파생되었다. 중국어로 어떤 것을 아는 것을 일러 ‘지도료’(知道了)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을 일러 ‘모인도’(某人道)라고 한다. 그러면 어째서 그냥 ‘지료’(知了)하지 않고 ‘지도료’(知道了)라고 하며, 말하는 것을 도라고 하는가? 인간이 알고 말하는 활동의 진행에는 역시 따라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서로 그 길을 통하여 자기의 뜻을 전달하였을 때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알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 길을 방법 또는 방식(方式), 양식(樣式), 법칙(法則), 규칙(規則), 준칙(準則) 등으로 확대해석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에서 이치[理] · 진리 · 이법(理法)의 의미까지 파생되어 나왔다. ‘지도료’에서의 앎은 그간 막혔던 길을 터 주는 것뿐 아니라 헝클어져 맺혔던 가닥[條理]을 풀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 이해한다는 것은 모두 길을 통하여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 길을 표현하는 것은 대부분 말[言語]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말한다는 것은 도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도를 전부 다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노자(老子)는 그러므로 “말할 수 있는 도는 상도(常道)가 아니다”(言可道 非常道)라고 하였다. 도는 반드시 언어로 표현되어야 알 수 있는 것만은 아니고, 아무 말 없는 가운데서도 알 수도 있기[黙而識之]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말이 뜻[意]을 통하는 유일한 길은 아니기[言不盡意] 때문에 선종(禪宗)은 도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침묵으로 깨우쳐 준 사례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4. 서로 통하는 길에는 멀고 가까움의 차이가 있다. 지나가는 곳이 많으면 멀고, 지나가는 곳이 적으면 가깝다. 뿐만 아니라 길에는 큰 길[大道]과 작은 길[小道]이 있으며, 곧은 길[直道]과 굽은 길[曲道]이 있다. 많은 사람과 동물, 수레들이 함께 다니어 그 길 위에 많은 사람과 동물, 수레들이 있는 길은 큰 길이요, 그 반대는 작은 길이다. 사람과 수레들이 다니는 데 아무런 걸림이 없이 곧장 도달할 수 있는 길은 곧은 길이요, 거치적거리는 것이 많아 구불구불 가는 길을 굽은 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멀고, 크고, 곧은 길을 도라고 하지만 가깝고, 좁고, 굽은 길을 술(術)이라고 한다. 또 길에는 막다른 골목이 있어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도 있다. 이와 같이 통할 수 없는 길을 비도(非道)라 한다. 인간과 사물이 의존하는 길에는 어떤 때 어떤 곳에는 통하다가 통하지 않을 경우도 있으며, 한 사람에겐 통하다가 다른 사람에겐 통하지 않는 길도 있다. 또 소수인 에게는 통하지만 국가, 천하와 큰 우주에게까지는 통할 수 없는 길도 있다. 그 길이 작은 사람에게만 통하면 소인(小人)의 도요, 큰 사람에게 통하는 도는 대인(大人)의 도다.

5. 길은 누구나 다 거치지만, 그 길은 처음엔 누군가 다녀서 이루어진 것이다(道行之而成)[≪莊子≫]. 다시 말해 산에 있는 오솔길이 단단하게 다녀진 것도 그 길을 늘 다녀서 이루어진 것이다(山徑之蹊介然 用之而成路). 우리는 이미 나 있는 길을 처음으로 찾아 낼 수도 있으나, 사람들이 길을 내는 경우도 있다. 앞의 것을 도의 발견이라 한다면, 뒤의 것을 도와 창성(創成)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후자를 강조하여 “사람이 길을 넓힐 수 있는 것이지 길이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人能弘道 非通弘人)[≪論語≫]라고 하였다. 도가 인간에게 발견되어지는 것이라면 그 도는 아주 옛날부터 언제나 변함없이 있는[常存] 것이며, 도가 인간에 의해 창조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도는 시대 시대마다 언제나 새로운[常新] 것이다. 도는 영원불멸하게 존재하면서도 언제나 짧게 이루어지는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6. 길은 수단으로 사용될 때도 있고, 목적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고속도로는 차를 빨리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지만, 고궁 속에 있는 길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노니는 곳으로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재산을 모으는 것은 생활의 수단[道]이 되는 것이지만, 사람이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道]이 된다. 그러나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른 목적이 수단에 사용될 수도 있다. 예컨대 사람이 바른 생활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도리(목적)인 동시에 하늘나라[天堂]에 오르기 위한 길(수단)로도 볼 수 있다. 또 어떠한 수단도 목적에 의해 관철되었을 때 그 자체가 목적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궁극적인 묵적을 가지고 결코 수단으로는 삼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이 목적의 도를 동양철학에서는 경도(經道) 또는 구경도(究境道)라고 하고, 이 경도를 실현하는 공부 또는 수단의 도를 권도(權道) 또는 방편도(方便道)라고 한다. 그러면 최후의 목적이 되는 도는 무엇이며, 이것을 실현하는 수단의 도는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마다 또 철학자마다 서로 다를 수 있다. 두 사람이 동일한 길[道]을 걸으면서도 한 사람은 그것을 목적의 도로 여기는데, 다른 한 사람은 수단의 도로 여길 수도 있다. 인간은 오랫동안 길들여진 습관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자기가 걸어 온 길이 아닌 것을 서로 배척하게 되고 여기서 논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논쟁하는 가운데서 각자는 그가 생각하는 도가 비도가 아님을 스스로 따져서 밝혀야[辯明] 한다. 이와 같이 서로 따지고 밝히는 과정에서 서로 알게 되고 서로 만나게 되는 길이 생긴다.

특히 철학에서 서로 따지고 밝히는 논쟁이 많은 것은 철학이 최대 최고의, 가장 보편적이며 궁극적인 진리 또는 도를 추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최대 최고의 또는 하나뿐이며 둘을 허용치 않는다. 그런데 도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같지 않으면 반드시 서로 논쟁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것은 최고 최대의 도가 되지 못하고, 그보다 한 단계에 낮은 도가 되며, 이 또는 하나뿐 아니라 많이 있게 된다. 이 많은 도를 모두 하나로 통관(統貫)하는 도가 최고 최대의 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 사상에서 최고 최대의 도를 추구하려는 이는 언제나 논쟁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논쟁 중에서 스스로 따져지고 스스로 밝혀져 그 도가 서로 만나게 됨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논쟁은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도가 함께 존재하면서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道並行而不相悖) 세계에서 공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술에서 서로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사는(人相忘於道術) 경지에서 노닐게 된다.

7. 도가 최대 최고의 것으로서 어디에도 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런 제한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제한을 받게 되면 이 제한 때문에 일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 때문에 도는 천(天) 또는 인(人)으로 규정하여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구별이 생겼다. 그리하여 도가(道家)는 전자에, 유가(儒家)는 후자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① 공자(孔子)의 도 :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논어≫]고 할 정도로 궁극적 진리 탐구에 열성을 가졌다. 그가 그토록 듣기 원하였던 도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공자는 또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었다”(吾道一以貫之)고 하였는데 그 도는 증자(曾子)의 해석에 의하면, 충서(忠恕)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仁)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었다. 맹자(孟子)는 이를 계승하여 인간의 착한 마음[仁心]에 의하여 행위하였을 때 비로소 정도(正道)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도(非道)라고 하였다. 맹자는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까닭은 지극히 적지만[幾希] 그 적은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이루었으며 그것은 인간이 고유하게 가진 것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이다. 이 본성은 인심(仁心)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인(仁)은 사람의 마음(人心)”이라고 하였고, ‘인’이 인간이 독특하게 가지고 있는 본성이기 때문에 이 본성에 의하여 행위하는 것이 인도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인이란 곧 사람됨이다. 합해서 그것을 말하면 도이다”(仁也者人也 合而言之 道也)[≪盡心篇≫]라고 하였고, ≪중용≫(中庸)에서는 “본성에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率性之謂道)고 하였다. 그러니까 공맹(孔孟)이 말한 도는 ‘인도’이다. 그래서 맹자는 “도는 둘이다. 인과 불인(不仁)일 뿐이다”(道二, 仁與不仁)[≪雜婁≫]라고 했으며 이 ‘인도’라는 표준을 세워 놓고 이단(異端)을 배척하였다. 이 ‘인도’가 정치에 응용되면 군신지도(君臣之道)가 되며 가정에 적용되면 자도(慈道), 효도(孝道)가 되며 사회에 활용하면 붕우지도(朋友之道)가 된다.

② 노장(老莊)의 도 : 도는 노자, 장자의 철학 세계의 최고 개념이다. 그 도는 자연(自然)이라는 의미로서의 천도(天道)로서 본체론적, 우주론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노자는 천지만물로서 도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말할 수 있는 도는 상도(常道)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상명(常名)이 아니다. 무명(無名)은 천지(天地)의 시작이요, 유명(有名)은 만물의 모체(母體)이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도덕경≫]. 인간의 언어를 초월해 있는 상도는 자연의 천지만물에 대하여 말한 것이지 인간의 일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 이 도는 천지 만물에 앞서서 존재하는 것이며 만물의 창생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자는 이 도가 “천지에 앞서서 생겨났으며”(先天地生)[≪도덕경≫ 4장] 천하의 모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셋은 만물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42장]고 하였다. 이 도는 아무런 목적 없이 무인위적으로(無爲而無以爲) 천지만물을 창생하지만 만물의 변화는 이 도에 의거한다. 이 도를 일(一), 상(常) 등으로 표현하였다. 도의 움직임은 되돌아오는 것(反者, 道之動)이므로 만물이 극단으로 가면 전화(轉化)되어 원 상태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장자는 노자를 계승하여 도는 깊고도 아득하여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夫道, 窅然難言哉)[≪知比遊≫]고 하였으며, 아무런 형체가 없을 뿐 아니라 무궁한 것으로 그 작용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 그 도는 어디에나 통하여 있다. 그리하여 서까래와 큰 기둥, 미녀와 추녀는 도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로 통하게 되어 상대적인 차별을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도는 있지 않는 곳이 없이 어디에나 통해 있다. 그래서 도가 어디 있는가 라는 동곽자의 물음에 장자(莊子)는 있지 않는 곳이 없다(無所不在)고 대답하였다[≪知比遊≫]. 그러면서 도는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근본이 되어 천지가 있기 전부터 존재해 왔다(夫道…自本自根, 未有天地, 自古以固存)[≪大宗師≫]. 이것은 서양철학의 causa sui와 비슷하다. 이 도는 유일한 덩어리로서 결코 분할할 수가 없다(夫道, 未始有封)[≪물론≫]. 장자는 이것을 혼돈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도의 작용은 아무런 의도나 목적이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의미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할 수 있다. 위진(魏晋)시대에 왕필(王弼)과 곽상(郭象)은 노장의 도를 무(無)라고 해석하였다.

③ 가톨릭의 도 : 예수 그리스도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구절에서 길은 곧 도를 말한다. 이는 보편되고 공번된 교회의 길이며 성교(聖敎)의 길이다. 마테오 리치에 의하면 천주의 정도(正道)는 오직 하나뿐(天主正道惟一)이라고 하여 중국에 기존했던 삼교(三敎), 즉 유(儒) · 불(佛) · 도교(道敎)는 제각기 하나는 ‘무’를 숭상하고, 하나는 공(空)을 숭상하고, 하나는 성유(誠有)를 숭상하는데 삼교가 합일(合一)되기는 마치 물과 불을 합치시키려는 것과 같고 또 가르침마다 본래 계율이 같지 않아 한쪽은 살생을 경계하는데, 한쪽에서는 희생을 사용하여 제사를 지내게 한다. 그렇다면 이 셋을 다 포함한 자는 이것을 지키려면 저것에 어긋난다. 지켰는데 어긋나고, 어긋났는데 지켜지니 어찌 어지러운 가르침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삼교를 따르느니 차라리 아무런 가르침도 따르지 않는 것이 낫겠으며, 쫓을 만한 가르침이 아무 것도 없다면, 반드시 따로 바른 길[正路]을 배우지 않고 남을 따라 죽으며 꿈속에서 도를 말할 것인가? 대체로 참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도가 그 참됨과 일치하였기 때문에 삶을 빛나게 할 수 있으며, 그 하나를 얻지 못하면,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한다. “뿌리가 깊지 못하면 도가 안정되지 못하고 도가 안정되지 못하면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테오 리치는 서문에서 “천주의 도는 인간의 마음에 있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며, 또 반성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다”(天主道在人心 人自不覺 又不欲省 不知天之主宰)고 하였다. (鄭仁在)

[참고문헌] 唐君毅, 原道篇, 中國哲學原論 / 說文解字 / 韋政通, 中國哲學辭典 / 論語 / 孟子 / 老子 / 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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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징거 [원] Denzinger, Heinrich Joseph

Denzinger, Heinrich Joseph(1819~1883).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 벨기에 리에주에서 출생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별세. 1844년에 사제가 되었고 1848년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교의신학 및 역사신학 부문에서 많은 저서를 내어 19세기 신학의 쇄신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Vier Buchere von der religsiosen Erkenntnis≫(Wurzburg 1856~1857), ≪Ritus Orientalium, Coptorum, Syrorum et Armenorum≫(Wurzburg 1863~1864) 등이 있다. 특히 ≪Enchiridion Symbolorum et Definitionum≫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그의 저서이며 모든 신학자들에게 널리 애용되어 왔다. 1854년 뷔르츠부르크에서 초판이 나온 이 책은 32판을 거듭했으며 최신판은 쇈메처(A. Schonmetzer)에 의하여 1963년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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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원] Denmark

유럽 북부의 유틀란트 반도 및 그 동쪽 해상의 셀란, 롤란, 핀 등 다수의 부속 도시로 구성된 입헌 군주국이다. 북해와 발트해 사이에 위치하며 독일(서독), 노르웨이, 스페인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4만 3,069㎢, 인구는 512만 명(1982년 추계)이다. 9세기에 덴마크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으며, 이는 주로 7세기경부터 이 지역에서 활발히 무역 활동을 벌이던 상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536년 이후 ‘루터 복음교회’가 국교로 되었으며, 현재는 헌법으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국민의 0.5%인 약 2만 8,000명(1982년 현재)이 가톨릭 신자이며 코펜하겐에 1개의 교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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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원] Descartes, Rene

1.생애 :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의 라에(Lahay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650년 스톡홀름에서 사망한 수학자(해석기하학의 창시자)이자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이다. 데카르트는 18세까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다는 예수회학원 라 플레시(La Fleche)에서 교육을 받았다. 1613년부터 1617년까지는 파리에서 공부하였다. 그 뒤 얼마 동안 파리의 사교계에 어울렸다. 1619년에는 군에 복무하게 된다. 군 복무 중에도 연구생활을 계속 하였는데, 이 때 명석성 추구와 진리탐구의 싹이 움튼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학문의 연구를 위해 은둔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당시 접촉한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그 중 특기할 사람은 메르센 신부와 오라토리오 수도회의 베를느 추기경이었다. 오라토리오 수도회의 정신은 아우구스티노주의이다. 이런 정신은 데카르트의 사상에서 쉽게 간취된다. 1624년 파리로 돌아와 연구에 몰두하였고, 1628년 이후에는 조용한 홀란드로 가서 자기의 철학체계를 완수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1649년에 그는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의 초청을 받아 스톡홀름으로 갔으나 풍토가 맞지 않아 1650년 2월에 그 곳에서 죽었다.

2. 저서 : 데카르트의 주요 저서는 ≪방법론 서설≫(Discours de la methode, 1637), ≪성찰≫(Meditaliones de prima philosophia, 1641), ≪철학의 원리≫(Principia philosophiae, 1644), ≪정념론≫(情念論, Les passions de l’ ‘ame, 1649) 등이며, 전집으로는 Ch. Adam과 P. Tannery편이 유명하다.

3. 학설 : 데카르트철학의 핵심은 새로운 차원에서의 확실성의 탐구이다.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새로운 확실성, 즉 더 이상 회의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 위에 성립시키는 것이다. 이런 확실성에 도달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회의(懷疑)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① 방법적 회의 : 사실 우리 지식이 의존하고 있는 감각은 절대로 확실한 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감각적 지식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 감각적 지식은 가끔 우리를 속인다.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우리는 전적인 신뢰를 줄 수가 없다. 또 깨어 있다는 사실이 확실성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있을 때도 깨어 있을 때와 같은 확실성을 갖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장(延長), 양(量), 수, 장소, 시간, 더 나아가서는 2+3=5와 같은 수학 등식과 사각형은 네 변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도 절대로 확실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더 회의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신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지각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어떤 능력 있고 교활한 악령의 작용으로 나는 나 자신의 손과 눈, 살과 피 그리고 감각 등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마치 그런 것 들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② 형이상학 : 그러나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 할지라도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과 내가 생각하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서야 한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에 도달한다. 이것은 절대로 확실한 진리이며 철학의 제1의 원리이다. 이것을 데카르트는 “생각하고 있는 내가 있다”(cogitans sum)라고도 표현한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명석 판명한 인식에 도달하려 한다. 또 이런 명석 판명에 도달하는 확실성의 규칙에 대해서도 상세히 논한다. 데카르트는 진리의 규준을 명석 판명한 지각(Perceptio clara et distincta)으로 본다. 여기서 명석 판명이란 말을 좀 더 부연한다면 clara는 그 자체 명백한 것이고, distincta는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이런 명석 판명한 지각의 뒤에는 명석 판명한 관념이 있으며 그것은 더 나아가 존재의 관조인 것이다. 이런 관점은 플라톤에서 플로티노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와 안셀모를 거쳐 데카르트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이다. 이런 사고는 또한 기하학적 사고의 영향이기도 하다.

데카르트는 관념문제에 있어서 생득관념(生得觀念, ideae innatae)을 인정한다. 이런 관념은 무한실체의 관념 즉 신과 유한실체, 즉 생각하는 것(res cogitans)과 연장하는 것(res extensa)이다. 그 외에도 밖에서부터 온 관념(ideae advenientiae)과 내가 만든 관념(ideae a me ipso factae)이 있다. 데카르트는 우리 정신 안에는 만들어질 수도 없고 외부적 대상 세계에서 올 수도 없는 것, 그러나 필연적인 것으로 우리 사고에 속하는 것 즉 생득관념이 있다고 하며 그것은 영원하고 필연적인 존재론적 진리라고 생각한다.

③ 신의 관념 : 우리는 우리 안에 신의 관념 즉, 완전유(完全有), 무한유(無限有)의 관념을 발견한다. 그런데 모든 관념은 그것에 비례하는 원인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관념은 유한한 나로부터 연유될 수가 없다. 이런 신의 관념 즉 완전 유의 개념은 그 자체가 존재를 내포한다. 이런 인식은 사변적 추론이기보다는 직관적인 것이다. 또한 이런 무한자의 관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즉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으로서의 부정적 관념이 아니다. 이 관념은 최고로 적극적인 관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관념은 유한관념에 선재(先在)한다. 사실 최고 완전 유로서의 신의 관념은 그 자체로 존재를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나에게 직접 알려지는 것이다. 물론 데카르트도 후험적 신증명을 인정하나 위에서 말한 본체론[存在論]적 신증명은 그의 신존재 논증의 진수이다. 신의 존재가 그 개념 혹은 그 본성에 필연적으로 속하는 것은 마치 삼각형의 내각의 총화가 2직각을 합친 것이라는 삼각형의 본성에 속하는 것과 같다. 또 그것은 산의 관념에 계곡의 관념이 속하는 것과도 같다. 최고로 완전한 것에 대해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그것에 대해 완전성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기모순이다. 또한 신은 최고로 진실한(summe verax) 존재이니 어떤 것도 계속적으로 속일 수는 없는, 그러므로 나는 나로부터 연유하지 않으나 분명히 그 관념을 갖고 있는 물체적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은 나를 계속 속이는 것이 된다. 이것은 신의 진실성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물체의 세계가 우리 감각의 불완전성을 고려할 때 우리가 감각하는 그대로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연장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며 이런 관념은 명석 판명한 관념이다.

④ 실체(實體) : 실체개념은 데카르트 형이상학의 핵심이다. 사실 데카르트는 그의 방법적 회의와 그의 새로운 실체개념으로 근세철학의 창시자가 된 것이다. 그의 실체(substantia)는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aliquid nullo alio alio indigens ad existendum)이다. 이런 개념은 신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전통적인 실체개념은 모든 사물이 그것으로써 있는 것, 즉 다른 사물을 주체로 하여 그것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도 나름대로의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실체개념은 사물의 성질과 작용에서 파악된다. 이런 성질과 작용은 어떤 것은 우연적(偶然的)인 것이고 어떤 것은 기체적(基體的)인 것이다. 전자는 후자 없이 사고될 수 없으나 후자는 전자 없이도 사고될 수 있다. 예컨대 물체에 있어서 위치, 형상, 운동 등은 우연적인 것이지만 공간적 연장은 기체적인 것이다. 심리적 세계에 있어서도 데카르트는 사랑하는 것, 미워하는 것, 의지하는 것, 판단하는 것 등등을 우연적인 것으로 보나 의식은 기체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기체적 성질을 속성(屬性, attributa)이라 하고 우연적 성질을 양태(樣態, modi)라고 한다.

⑤ 물체의 세계(우주론) : 데카르트는 물체의 세계를 연장의 세계로 보고 있다. 그리고 연장은 그 자체로 동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물체는 결국 같은 본성의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체세계의 다양성은 장소적 운동에 기인한다. 신은 질료(material)에 일정 양의 운동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이런 운동의 양은 증가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다. 데카르트의 물체는 수학적으로 파악되는 연장이다. 그리고 그의 물체의 세계는 기하학적 기계론으로 설명된다. 동물의 세계도 기계의 세계이며 신이 만든 우수한 자동기계이다. 동물의 운동은 결국 우주적 운동의 연장에 불과하다.

⑥ 철학적 인간학(심리학) : 물체는 연장적인 것(res extensiva)이며 타성적인데 반해 정신 즉 혼은 사고하는 것(res cogitans)이다. 그러므로 혼은 활동적인 것이다. 그러나 물체와 혼은 전통적으로 보아 온 바와 같은 실체적 합치(unio substantialis)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주 밀접한 일치관계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배와 사공의 일치보다 더 밀접하다. 혼이 육체에 작용할 뿐만 아니라 육체의 감각이나 정념(情念, passiones)으로 말미암아 육체로부터 작용을 받게 된다. 혼은 전 육체와 결합되어 있으나 특히 뇌에서, 그것도 송과선(松果腺)에서 결합된다. 감각은 혼의 작용이다. 이런 감각은 외부적 사물에서 감관에 어떤 자극이 일어나고 그것이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될 때 생겨난다. 그러므로 감각의 유적(類的), 종적(種的) 다양성은 신경에의 자극의 다양성에 근거한다. 이런 다양성에서 정념의 다양성도 생겨난다. 근본적 정념은 경이, 사랑, 미움, 욕망, 기쁨, 슬픔 등 여섯이다. 혼을 의식으로 이해함으로써 데카르트는 근세심리학의 개념을 형성한다. 의지는 자유롭다. 판단은 의지에 속한다. 즉 긍정도 부정도 의지의 작용이다. 모든 오류는 의지에서 기인된다. 즉 지성이 충분한 빛, 인식을 갖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의지가 동의하는 데에 오류가 성립된다.

⑦ 윤리학 : 데카르트는 윤리학에 대해 깊이 논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윤리학의 경향은 스토아적이다. 최고선(最高善)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선인지를 명백하게 인식해야 하며 또 그것을 강력히 원망(願望)해야 한다. 모든 정념은 좋은 것이며 또 그것을 적당한 한계 안에서 절제할 수 있는 한 유익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즐거움을 인식 안에서 찾아야 하며, 특히 신의 탁월성의 인식과 우리 영혼의 품위의 인식 안에서, 그리고 세계의 광대무변성의 인식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인식은 우리를 이기주의에서 해방시킨다. 참된 사람은 자기 능력을 인식하며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안다. 이런 사람은 섭리에 자기를 종속시킨다. 이렇게 하여 그는 정념을 정화하고 자기를 신의 지성적 사랑에로 질서 짓는다.

4. 데카르트사상의 후대에의 영향 : 데카르트에 의해 중세의 초월적 세계관과 인생관은 내재 (內在)에로 전환하였다. 그 뒤 모든 것은 내재원리에 의해 설명된다. 그것은 대상에서 주체에로, 세계에서 자아에로,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에로의 전환이었다. 데카르트에서 출발한 근세의 내재원리는 근세와 현대 사상의 핵이며 추진 원동력이었다. 데카르트에서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즉 합리주의의 여러 형태에서 영국의 경험현상론(흄), 칸트의 비판주의, 또 여러 형태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서는 마르크스주의, 실존주의, 실용주의 등 현대 철학사조 전반에 걸쳐 내재적 의식은 그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이런 내재원리의 진전은 지난 3세기 동안 긴 여정을 걸어왔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본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한계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단적으로 말해 인간 사유는 그 동안 경험현상론, 의식현상론 등등을 거쳐 존재론에로의 전환기를 맞기에 이른 것이다.

[참고문헌] Ch. Adam et P. Tannery, Oeuvres de Descartes, Paris 1897~1913 / L.J. Beak, The Metaphysics of Descartes, New York, London, Sydney etc. 1967 / A. Del Noce, Rene Descartes, in Enciclopedia Filosofica, II, Roma 1979 / C. Fabro, (cura di), Storia della Filosofia, II, Roma 1959 / H. Gouhier, La pensee metaphysique de Descartes, paris 1962 / J.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II, Freibrug, Basel, Wien 1969 / J.V. Larrain, La metafisica carteziana, Santiago 1971 / J. Morris, Descartes Dictionary, New York 1971 / A. Klement, Descartes und Moral, Menseneim a Glam, 1971 / S.V. Keeling, Descartes, in Encyclopedia Britanica, VII, Chicago, London etc. 1971 / P. Zeny, Brevis Conspectus Historiae Philosophiae, 4판, Roma 1962 / 鄭義采, 存在의 根據問題, 서울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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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 [한] ~人~ [라] Epistola B. Pauli ad Thessalonicenses [영] Letter to

1. 배경과 집필 동기 : 그리스 북부 항구도시인 데살로니카(Thessalonica, 현재 ‘살로니키’)는 고대 로마 제국 마체도니아주(州)의 수도였다. 사도행전(17:1-9)에 의하면, 바울로 사도는 제2차 전도여행(50~52년경)에 이곳에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유태인들의 선동에 의해 바울로는 곧 추방을 당하였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 기본적인 교리는 배웠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교회(1데살3:10)를 걱정하여 곧 아테네에서 디모테오를 데살로니카로 보냈다. 그 뒤 디모테오가 고린토로 간 바울로에게 데살로니카 교회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하자 바울로는 그 곳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다.

① 첫째 편지 : 집필 동기는 교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단지 얼마 전에 떠나 온 신설 교회에 관한 사랑과 배려를 표현하려는 데 있다. 여기서 바울로는 좋은 소식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고 계속 좋은 길로 나아가라고 권고한다. 그래서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는 마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처지에 있는 자녀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자상하고도 정다운 서한과도 같다(특히 2:11~12 참조). 이 편지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의 투쟁과 승리, 그 열성과 긍지, 그리고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경탄의 정감을 엿볼 수 있다. 집필연도는 51년경이며 바울로의 많은 편지들 가운데 제일 먼저 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 가운데 제일 먼저 작성된 문서이기도 하다.

② 둘째 편지 : 첫째 편지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데살로니카 신자들 사이에 두 가지 물의가 일어나자 바울로는 또다시 편지를 쓴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再臨)이 이미 다가왔다고 주장하였다. 바울로는 이러한 주장을 물리치며 주님의 재림은 두 가지 전조가 있은 다음에야 이루어지리라고 말한다. 그 하나는 신앙 배반이며, 또 하나는 반(反) 혹은 가(假)그리스도의 출현이다. 둘째, 일은 하지 않고 남에게 부담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로는 단호히 그들의 개과(改過)를 촉구하면서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멀리하라고 명한다(3:6-14).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를 가명 작품으로 보는 학자도 없지 않다. 그 이유는 둘째 편지에 첫째 편지의 많은 문장들을 그대로 베낀 부분이 많고, 종말에 관한 내용이 상당한 차이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2. 내용 : 첫째 편지에서는 바울로가 데살로니카 교회와의 관계를 회상하면서 우선 복음 선포의 성과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린다(1:2-10). 이어 그는 자기의 순결하고 권위 있는 선교활동(2:1-12)과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신자들의 좋은 태도(2:13-16)에 언급하고 데살로니카 교회를 떠난 다음의 사건들을 돌이켜본다(디모테오의 파견과 귀환, 사도의 안심; 2:17-3:13). 둘째 부분에서 사도는 신입교우들의 성화(聖化), 특히 정결과 형제애를 촉구하고(4:1-12), 주님의 재림에 관한 희망과 기대에 대하여 설명하며(4:13-5:11) 끝으로 교회 공동생활에 관한 권고(5:12-22)와 강복과 인사를 덧붙인다(5:23-28). 둘째 편지에서 바울로는 교회의 상황을 회상한 다음(1:3-12) 주님의 재림에 앞서 이루어질 일들에 대하여 설명한다(2:1-12). 그 다음에 그는 충성과 인내를 권하고(2:13-3:5), 질서는 지키지 않고 일하지 않는 신자들을 책망(“일하기 싫으면 먹지고 말라…”)한다(3:6-15). 편지는 인사와 강복으로 끝난다.

첫째 편지와 둘째 편지에서 재림의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 신자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첫째 편지에서는 바울로가 신자들을 위로하면서 세말에 죽은 이들이 부활하여 산 이들과 함께,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되리라고 설명하고(4:13-18), 갑자기 올 재림의 날을 늘 기대하라고 한다(5:1-11). 둘째 편지에서는 종말(終末)의 임박성이 다소 상대화되어 있다. 여기서 바울로는 열광주의자들을 경계하여 세말의 전조를 설명하고 환난을 당할 각오와 인내를 요구하다. (晋 토마스)

[참고문헌] 진 토마스 역주, 데살로니카 전 · 후서(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9). 분도출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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