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전라북도 이리시(裡里市)에 창설된 전주교구 소속 본당. 현 본당명은 창인동(昌仁洞)본당. 주보는 예수 성심. 이리 지역은 천주교 불모지대였으나 1926년 경 이농민(離農民)들이 이리로 몰려들게 되었고 그 가운데 김창언(金昌彦, 프란치스코, 이리 지역의 초대 회장), 손덕로(孫德老, 요셉) 등 5, 6인의 교우가 포함되어있고 결국 그들에 의해 이리에서 5리 정도 떨어진 새실[新興里]에 공소가 개설되었다. 그 후 전주 지역을 담당한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의 순방을 받다가 1932년 군산 본당이 창설되자 군산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계속 교세가 발전하여 1934년 이리시 주현동(珠峴洞)에 성당을 건축, 준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이듬해 6월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하한주(河漢珠, 요셉) 신부가 부임, 사제관과 부속건물들을 건축했고, 4대 주임 이기순(李基順, 도미니코) 신부는 1948년 이리시의 중심부인 북창동(北昌洞)에 대지 2,000여평을 매입하고 본당 이전에 착수, 6.25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1955년 성당건축을 완공하고 본당을 이전했으며, 1967년에는 옛 본당자리에는 주현동의 동이리(東裡里)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그 후 1977년 이리 시내의 도로 신설에 따라 성당이 철거되자 현 본당 자리인 창인동으로 본당이 이전되어 성당이 신축되었고 이때 동명(洞名)에 따라 창인동본당으로 개칭되었다. 1983년 말 교우 수는 2,746명, 공소 1개소이며,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있다. 역대 주임 신부 명단은 다음과 같다. 1대(1935∼1939. 3) 하한주, 2대(1939. 3∼1941. 5) 김기봉(金基奉, 필립보), 3대(1941. 5∼1947. 4)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4대(1947. 4∼1956. 4) 이기순, 5대(1956. 4∼1957. 8) 김후생(金後生, 바오로), 6대(1957. 9∼1962. 12) 정재석(鄭在石, 요셉), 7대(1962. 12∼1964. 6) 김영일(金永鎰, 아우구스티노), 8대(1964. 6∼1966. 7) 박영규(朴永圭, 바르나바), 9대(1966. 7∼1969. 12)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10대(1969. 10∼1970. 8) 김영구 재부임, 11대(1970. 8∼1974. 6) 오현택(吳賢澤, 가시미로), 12대(1974. 6∼1976. 5) 박진량(朴鎭亮, 라우렌시오), 13대(1976. 5∼1978년) 김용태(金容泰, 베네딕토), 14대(1978∼1984년) 김영신(金英信, 바오로), 15대(1984∼현재) 고경훈(高暻勳, 프란치스코).
이레네오 [라] Irenaeus
Irenaeus(140?∼202?). 성인. 초기 교부. 리용(Lyons)의 주교. 생애에 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소년 때 폴리카르포(Polycarpus)를 따랐다는 사실로 보아 소아시아의 스미르나(Smyrna) 출신으로 추정된다. 로마에서 수학 후 리용의 장로가 되었으며 소아시아의 몬타니즘 신봉자들에게 관용책을 취할 것을 호소하기 위해 로마로 교황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를 방문했을 때 리용에서 벌어진 잔혹한 박해로 주교가 순교하자(177년경) 178년경 이 교구를 계승하였다. 그의 순교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축일은 6월 28일.
최초의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이자 사상과 행동에 있어서 동서교회의 중요한 연결점이었던 그는 ≪모든 이단을 논박함≫(Adversus Haereses)과 근대에 발견된 ≪사도 연설집≫(Demonstration of the Apostolic Preaching) 등의 작품을 남겼는데 전자는 영지주의(靈知主義)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체계, 몬타니즘 신봉자들에게 인기 있던 천년왕국설에 등에 대한 공격들을 자세히 싣고 있다. 또한 영지주의를 공격함에 있어서도 글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처럼 반대되는 그리스도교의 영지주의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주교의 지위, 성서정전, 현존하는 신학적 · 종교적 전통 등 교회의 전통적 요소를 강조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에 대하여 나름대로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였으며 4개 복음서의 상호보완적인 권위를 깊이 강조하였다.
이란 [원] Iran [관련] 페르시아
서남 아시아의 회교공화국. 원래 페르시아로 불려온 이 나라는 1935년부터 국호를 이란으로 개칭하였다. 이란은 현재 시아파의 회교 지도자 호메이니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엄격한 회교국가인데, 이 나라에 처음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것은 1세기말 시리아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3세기에 사산왕조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정한 뒤 신앙에 철저한 압박이 가하여졌다.
5세기에는 네스토리우스파가 들어와 활기를 띠고, 인도 · 중국 · 몽고에까지 선교사를 보냈다. 17세기에는 네스토리우스파의 자손이 로마교회에 돌아와 칼데아 교회를 이루었다. 164만 8,000Km의 넓은 국토에 4,024백만명(1982년 추계)의 인구를 가진 이 나라에는 1982년 현재 약 1만 9,000명의 가톨릭 교도, 6개 교구가 있다. (⇒) 페르시아
이라크 [원] Iraq
서남 아시아의 공화국. 북쪽은 터키, 서쪽은 시리아, 요르단, 동쪽은 이란,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에 접하고 있으며 아라비아 만에 입하고 있다. 면적은 43만 4,924Km, 인구는 1,400만명(1982년 추계)이다. 인구의 95% 이상이 이슬람교도이며 가톨릭 신자는 약 37만 6000명(1982년 현재)이다. 현재 이라크에는 16개의 교구가 있다.
이디오피아 [원] Ethiopia
아프리카대륙의 북동부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면적 122만 1,900Km, 인구 3,278만명(1982년 추계). 성서는 이 지방을 쿠스(Kus)라고 부르고 있으며, 흑인에다 장신이며 무역에 종사하는 이 지방 주민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유태인과 같은 셈족으로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사도 8:26-40)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이 지방이 유태교와 상당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 후 4세기경에 프루멘티우스와 에데시우스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이 지방에 전해졌고 프루멘티우스는 아타나시오에 의해 이 지방의 주교로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5세기 말경 시리아에서 9인의 로마성인이 방문하여 이 지방의 교회를 굳건히 하였다. 그 뒤 많은 교회가 세워졌지만 7세기경에 침입한 이슬람교도에 의해 교회는 쇠퇴하였다. 15세기경 포르투갈과 무역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교 문화와 다시 접촉하기 시작하여 가톨릭 신자수는 23만 6,000명(1982년 현재)이다. 아비시니아 교회라고도 불리는 이 지방의 교회는 ≪에녹≫, ≪헤르마스 목자≫, ≪이사야 승천≫ 등의 위경을 포함하여 81권의 성서를 갖고 있으며, 교리는 그리스도교의 단성론을 취하며 안식일, 할례, 부정한 고기에 대한 구별 등의 유태교 의식을 지키고 있다. 사제는 전례를 행하는 사제와 학교교육을 담당하는 신도 수도사의 2분류가 있다. 전국민의 약 66%가 콥트교회 신자이고 나머지는 이슬람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