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지오와 펠라지아니즘: 스토이즘과 그리스도교

 

제8장 펠라지오와 펠라지아니즘: 스토이즘과 그리스도교


아우구스티노는 은총에 관하여 그의 논쟁자였던 펠라지오에게 매우 친철하게 대했다. 412년 그는 펠라지오를 ‘성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413년 아우구스티노는 펠라지오의 제자 첼레스티누스가 원죄에 관한 그의 이론이 단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첼레스티노와 그의 학파를 구별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펠라지오에게 매우 친철하였던 것을 그의 편지에서 발견한다. 415년 디오스폴리스의 시노드에서 반영되듯 펠라지아니즘은 당시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렇게 날카롭지 않게 펠라지오를 공격하였다.


        펠라지아니즘은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단죄되고 인노첸시오 1 세 교황에 의하여 단죄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나서 어물쩡 넘기려는 순간 후계자 조시모 교황에 의해 다시 단죄되었다. 그 이론을 고집스럽게 주장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노를 계속 괴롭힌 Eclanum의 젊은 주교 쥴리아노였다. 어떻든 펠라지아니즘은 다시 한번 그리고 결정적으로 거부되었다. 교회는 다시는 은총의 필요성의 교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그런 입장을 장엄하게 선포하였다.


        논쟁 과정 중에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논쟁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하게 정식화하였다. 펠라지안들의 자유의 개념을 깊이 조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직접적으로는 원죄의 교의와 관련되어 단죄된 첼레스티노와 그의 사상들을 볼 필요는 없다. 아우구스티노의 인간의 본질적인 결여와 대조해서 펠라지아니즘의 이론은 인간의 자기 충만의 이론으로 소개되고 있다. Potralie가 지적하는 것처럼 “펠라지아니즘 사고 체계의 핵심은 인간적 자유의 절대적인 독립성이다. 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선을 위해서도 한계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러한 펠라지아니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Da quod jubes et jube quod vis”(네가 명하고 싶은 것을 주어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명하라). 여기에 은총과 자유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모든 이론이 한 통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보게된다. 그러나 이 진술은 5세기 경 초기 투쟁의 출발점에서부터 펠라지오에게 문제되었다. 우리는 이미 아우구스티노가 Enneads의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였다. 펠라지오는 다른 한편으로 평범한 철학자였다. 그는 고행 수도자였다. 그는 자유의 사상을 스토이즘으로부터 얻고 있다. 스토아 철학은 그 당시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어떤 직접적 영향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스토아 윤리철학이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것은 16세기 휴머니스트들에게서 잘 볼 수 있다. 더욱이 이런 관점은 그 나름대로  근거를 갖는 듯이 보인다. 한편 아우구스티노의 은총 이론은 마치 자유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만일 윤리적 선택이 의지에 그 외적 원인을 의존하고 있다면 인간은 그의 선택을 위해 책임질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자유로운 의지를 주시면서 노예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신다고 보았다. “하느님에 의해 자유롭게 된 사람일지라도 의지의 자유는 죄를 지을 가능성이나 죄로부터 멀리할 수 있는 가능성 안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Eclamum의 주교 율리아노가 나중에 설정한 길이다. 그러나 펠라지오 자신은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한다면 그 의지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첼레스티노는 “그 자유 의지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것으로 파괴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앞서 암시하였듯이 그 질문은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것이었다. 예로니모 성인은 철학적 문제들 안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결코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펠라지오의 이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내가 나의 손가락이나 손을 움직이기 위하여, 혹은 앉거나 걸어가기 위하여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하는가? 그와같이 의존되어 있는 어떤 의지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아우구스티노는 더욱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만일 우리가 인간이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의지의 좋은 행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자유 의지는 제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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