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지오와 펠라지아니즘: 스토이즘과 그리스도교-펠라지오의 고행주의

 

8.1 펠라지오의 고행주의


형이상학적 관점으로부터 펠라지오는 오히려 평범한 철학자였다. 그는 종교적 교육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 오류는 그리스도인의 안목에서 더욱 분명하다. 펠라지안들에게 하느님은 인간에게 윤리적 범과 자유 의지를 주는 데 필요한 분이시다. 선택하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있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 그는 율법을 준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범죄때문에 하느님의 용서를 청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도움을 구걸할 필요는 없다. 펠라지오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한 인간은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면 좋은 양심으로 손을 올려 기도할 수 있다. ‘당신은 아십니다. 주님, 내가 당신께 들어오리는 손들이 얼마나 거룩하고 얼마나 무죄하며 그리고 얼마나 모든 협잡과 불의와 잘못한 일을 얼마나 깨끗하게할지. 당신은 나의 기도로 드리는 이 입술들이 거짓으로부터 정당하고 순수하고 자유로운지 아십니다. 당신의 자비를 구합니다.


        이런 기도는 아우구스티노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우리의 삶 끝에 걸인의 기도가 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걸인입니다”.


        펠라지오는 윤리 도덕가로서 아우구스티노의 사상과 같지 않았으며, 그는 자유의 정도와 한 인간이 더욱 자유롭거나 덜 자유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출발점은 철학적 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서가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하여 자유롭게 된 정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들은 완전을 향하는 다른 지침들을 따르는 임무에서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진지하지 않다. 동정녀 Demetrias는 펠레지오가 그의 지도자였는데 아마도 그녀는 예로니모의 지도를 선호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우구스티노의 조언을 기꺼워했을 것이다. 펠레지오는 그녀의 거룩하고 영적인 삶을 위하여 그 첫걸음으로서 그녀에게 ‘그의 자연적 능력을 인식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그녀가 그녀의 조상들로부터 유산받게된 부를 조롱하는 것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귀족에게 속하는 덕목들이 그녀의 본연의 것임을 조명하고 있다. “네 자신에게 영적 부요함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네 자신이다…. 그러므로 너는 정당하게 이러한 영적 부요함으로 찬양받을만 하다… 그것은 네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너에게만 속한 것이다”.


        펠라지오의 오류가 경고되기 전에 예로니모가 비슷한 충고를 하였다. 그러나 415년에 그가 Demetrias에게 편지를 쓸 때, 금욕주의 시대가 아니었다. 또 그는 금욕주의적 신학자는 아니었다. 어떻든 성 아우구스티노는 펠라지오의 충언을 거슬러서 그녀의 가족에 대해서 표현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사도 바울로의 말씀을 상기하고 있었다( 1 코린 4, 7) “당신이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그것을 받았다면어째서 그것을 마치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하는가?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들은 당신에게 속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네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보물들을 당신은 쉽게 부서질 수 있는, 마치 질그릇같은 지상적 육체 안에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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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8.1 펠라지오의 고행주의

    형이상학적 관점으로부터 펠라지오는 오히려 평범한 철학자였다. 그는 종교적 교육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 오류는 그리스도인의 안목에서 더욱 분명하다. 펠라지안들에게 하느님은 인간에게 윤리적 범과 자유 의지를 주는 데 필요한 분이시다. 선택하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있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 그는 율법을 준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범죄때문에 하느님의 용서를 청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도움을 구걸할 필요는 없다. 펠라지오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한 인간은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면 좋은 양심으로 손을 올려 기도할 수 있다. ‘당신은 아십니다. 주님, 내가 당신께 들어오리는 손들이 얼마나 거룩하고 얼마나 무죄하며 그리고 얼마나 모든 협잡과 불의와 잘못한 일을 얼마나 깨끗하게할지. 당신은 나의 기도로 드리는 이 입술들이 거짓으로부터 정당하고 순수하고 자유로운지 아십니다. 당신의 자비를 구합니다.

            이런 기도는 아우구스티노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우리의 삶 끝에 걸인의 기도가 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걸인입니다”.

            펠라지오는 윤리 도덕가로서 아우구스티노의 사상과 같지 않았으며, 그는 자유의 정도와 한 인간이 더욱 자유롭거나 덜 자유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출발점은 철학적 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서가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하여 자유롭게 된 정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들은 완전을 향하는 다른 지침들을 따르는 임무에서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진지하지 않다. 동정녀 Demetrias는 펠레지오가 그의 지도자였는데 아마도 그녀는 예로니모의 지도를 선호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우구스티노의 조언을 기꺼워했을 것이다. 펠레지오는 그녀의 거룩하고 영적인 삶을 위하여 그 첫걸음으로서 그녀에게 ‘그의 자연적 능력을 인식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그녀가 그녀의 조상들로부터 유산받게된 부를 조롱하는 것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귀족에게 속하는 덕목들이 그녀의 본연의 것임을 조명하고 있다. “네 자신에게 영적 부요함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네 자신이다…. 그러므로 너는 정당하게 이러한 영적 부요함으로 찬양받을만 하다… 그것은 네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너에게만 속한 것이다”.

            펠라지오의 오류가 경고되기 전에 예로니모가 비슷한 충고를 하였다. 그러나 415년에 그가 Demetrias에게 편지를 쓸 때, 금욕주의 시대가 아니었다. 또 그는 금욕주의적 신학자는 아니었다. 어떻든 성 아우구스티노는 펠라지오의 충언을 거슬러서 그녀의 가족에 대해서 표현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사도 바울로의 말씀을 상기하고 있었다( 1 코린 4, 7) “당신이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그것을 받았다면어째서 그것을 마치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하는가?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들은 당신에게 속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네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보물들을 당신은 쉽게 부서질 수 있는, 마치 질그릇같은 지상적 육체 안에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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