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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선의 기원과 발전 – 고대 인도문명과 요가의 기원
2. 禪의 基原과 發展 1)고대 인도문명과 요가의 기원 인도에서 발생한 요가의 기원을 고찰하려 할 때, 꼭 살펴짚고 넘어가야 할 것중의 하나는 요가와 관련된 유물이 인더스문명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9> 실로 요가 선정의 명상법은 기원전 1300년경 아리아인들이 인도를 침입하여 정착하기 1500여년 전 고대 인도의 원주민들의 종교적인 수행법으로 실행된 것이었다. 실례로, 모헨조다로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에는 요가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석제 흉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이러한 고대 인더스문명의 유물을 통해서 인도의 토착민들이 종교적 수행으로 요가를 실천, 수행하였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가 있는 것이다.10> 인도에서의 요가 선정의 정확한 기원을 어디에서 구해야 할 것인지 아직 분명한 정설은 없지만, 아리안 민족이 이룩한 브라만 종교의 문화라기보다는 고대 인더스문명의 유적에서 발굴된 인장 등에 요가의 모습이 새겨진 유물들을 근거로하여 고대 인도인들의 토착문화로 간주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러한 요가의 수행이 점차로 아리아인들의 종교의례와 수행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되어 ꡔ우빠니샤드ꡕ의 시대에는 브라만들이 이러한 요가의 명상법을 수용하여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지(智)와 초자연적인 신통력을 얻기 위한 새로운 수행법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11> 요가는 감각기관을 제어하고 마음의 사란을 제거하는 정신통일의 수행법이었는데, 인도인들은 이러한 요가의 명상을 통하여 범아일여인 그 사실을 아는 지(智)를 체득함과 동시에 초자연적인 신통력을 획득할 것을 열망하였던 것이다. 즉, 요가에 의해서 브라만과 아트만을 알게되고 최고 실재인 신을 알아서 인간적인 일체의 속성을 초월하는 것이 요가의 이상이며 해탈경인 것이다.12> 이렇게 고대 ꡔ우빠니샤드ꡕ에서부터 점차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요가의 수행법과 그 이론은 ꡔ바가바드기타ꡕ를 거쳐 발달하면서 드디어 파탄잘리의 ꡔ요가 수트라ꡕ(A.D 400-450년경 성립)에 이르러 조직적인 체계를 갖춘 경전으로 결집되었다. 그리고 이 요가의 경전에 따른 전문적인 요가의 수행자를 요긴(yogin)이라고 부른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고대 인도에서는 이러한 요가의 수행을 인도의 모든 종교가나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실행한 것이었다. 또한 ꡔ리그베다ꡕ에 보이는 tapas(고행)과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붓다가 출현할 당시에는 sramana(沙門, 정진하는 사람)라고 하는 자유 사상가, 혹은 종교가들 사이에 널리 실행되었다. 붓다도 이러한 사문의 한사람이었고, 처음 출가했을 당시 요가 선정의 대가인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다라고 하는 두 선인에게 나아가 요가 선정을 배웠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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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이해
본 론 1. 禪의 理解 선(禪)은 梵語 드야나(Dhyana)의 음역(音譯)으로 禪那라고도 한다. 禪은 정려 (靜慮),2> 사유수(思惟修), 정정(正定), 공덕업림(功德業林)등으로 譯한다. 禪은, 곧 마음을 고요히 하여 한 곳에 모으고 이를 흩어지지 않게 하여 숙정(淑靜)한 곳에 정지시켜 이에 專念하는 것이다. 一切의 理論, 즉 분별적 思惟를 떠난 직관이 있을 뿐 禪은 학문, 지식이 아닌 바로 實在에 투철(透徹)하는 것으로 究極을 삼는다.3> 그렇기에 禪의 깨달음은 진정한 자기의 참모습에 돌아가는 것이다. 禪은 직관을 중시하기에 형식과 표현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4> 이러한 선의 내용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사구게(四句偈)5>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는 완전히 실체를 드러낼 수 없기에 문자에 집착함이 없어야 함을 의미하는 말로서, 경전적인 문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성(性) 을 보는,즉 견성(見性)하여야함이 중요하다. 흔히 우리가 말하기를 ‘달을 쳐다보아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때에 文字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교외별전(敎外別傳) 경전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통찰을 위한 수단일 뿐, ‘법’‘실재’‘진리’라는 것은 우리 각자가 깨쳐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들을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전달은 가능하지만, 이것도 자기자신의 자성을 봄으로써 전달을 받는 것이다. 3) 직지인심(直指人心) 뜻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직접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 되나 우리가 마음을 파악한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면, 이미 마음은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어 그 본성을 잃고 말기에, 진정한 뜻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듯 자신안에 있는 佛性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4) 견성성불(見性成佛) 혜능에게 있어서 見性이라함은 곧 成佛을 이룸이었다. 그것은 우리 本性이 바로 부처이기 때문이다. 또한 혜능에게 있어서 ‘佛性’은 곧 ‘깨달 음’이다. 그렇기에 자신안에 있는 불성을 본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요, 즉 부처가 되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6> * 공안,화두(公案,話頭) 공안은 見性成佛의 방편으로서 보통 옛 祖師의 문답을 사색하며 그 말의 本意를 깨치려하는데, 이 때 던져주는 말이다. 화두는 臨濟宗때부터 활용되었으며, 화두도 역시 문자로서 문자적 의미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一心으 로 전념한뒤 이르는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다.7> 그러므로 구제자에 대한 신앙이나 귀의를 강조하는 사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일원적인 본래의 자리, 진실한 본성에 돌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8>
선의 이해
본 론 1. 禪의 理解 선(禪)은 梵語 드야나(Dhyana)의 음역(音譯)으로 禪那라고도 한다. 禪은 정려 (靜慮),2> 사유수(思惟修), 정정(正定), 공덕업림(功德業林)등으로 譯한다. 禪은, 곧 마음을 고요히 하여 한 곳에 모으고 이를 흩어지지 않게 하여 숙정(淑靜)한 곳에 정지시켜 이에 專念하는 것이다. 一切의 理論, 즉 분별적 思惟를 떠난 직관이 있을 뿐 禪은 학문, 지식이 아닌 바로 實在에 투철(透徹)하는 것으로 究極을 삼는다.3> 그렇기에 禪의 깨달음은 진정한 자기의 참모습에 돌아가는 것이다. 禪은 직관을 중시하기에 형식과 표현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4> 이러한 선의 내용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사구게(四句偈)5>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는 완전히 실체를 드러낼 수 없기에 문자에 집착함이 없어야 함을 의미하는 말로서, 경전적인 문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성(性) 을 보는,즉 견성(見性)하여야함이 중요하다. 흔히 우리가 말하기를 ‘달을 쳐다보아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때에 文字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교외별전(敎外別傳) 경전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통찰을 위한 수단일 뿐, ‘법’‘실재’‘진리’라는 것은 우리 각자가 깨쳐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들을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전달은 가능하지만, 이것도 자기자신의 자성을 봄으로써 전달을 받는 것이다. 3) 직지인심(直指人心) 뜻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직접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 되나 우리가 마음을 파악한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면, 이미 마음은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어 그 본성을 잃고 말기에, 진정한 뜻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듯 자신안에 있는 佛性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4) 견성성불(見性成佛) 혜능에게 있어서 見性이라함은 곧 成佛을 이룸이었다. 그것은 우리 本性이 바로 부처이기 때문이다. 또한 혜능에게 있어서 ‘佛性’은 곧 ‘깨달 음’이다. 그렇기에 자신안에 있는 불성을 본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요, 즉 부처가 되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6> * 공안,화두(公案,話頭) 공안은 見性成佛의 방편으로서 보통 옛 祖師의 문답을 사색하며 그 말의 本意를 깨치려하는데, 이 때 던져주는 말이다. 화두는 臨濟宗때부터 활용되었으며, 화두도 역시 문자로서 문자적 의미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一心으 로 전념한뒤 이르는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다.7> 그러므로 구제자에 대한 신앙이나 귀의를 강조하는 사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일원적인 본래의 자리, 진실한 본성에 돌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8>
선의 이해
본 론 1. 禪의 理解 선(禪)은 梵語 드야나(Dhyana)의 음역(音譯)으로 禪那라고도 한다. 禪은 정려 (靜慮),2> 사유수(思惟修), 정정(正定), 공덕업림(功德業林)등으로 譯한다. 禪은, 곧 마음을 고요히 하여 한 곳에 모으고 이를 흩어지지 않게 하여 숙정(淑靜)한 곳에 정지시켜 이에 專念하는 것이다. 一切의 理論, 즉 분별적 思惟를 떠난 직관이 있을 뿐 禪은 학문, 지식이 아닌 바로 實在에 투철(透徹)하는 것으로 究極을 삼는다.3> 그렇기에 禪의 깨달음은 진정한 자기의 참모습에 돌아가는 것이다. 禪은 직관을 중시하기에 형식과 표현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4> 이러한 선의 내용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사구게(四句偈)5>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는 완전히 실체를 드러낼 수 없기에 문자에 집착함이 없어야 함을 의미하는 말로서, 경전적인 문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성(性) 을 보는,즉 견성(見性)하여야함이 중요하다. 흔히 우리가 말하기를 ‘달을 쳐다보아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때에 文字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교외별전(敎外別傳) 경전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통찰을 위한 수단일 뿐, ‘법’‘실재’‘진리’라는 것은 우리 각자가 깨쳐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들을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전달은 가능하지만, 이것도 자기자신의 자성을 봄으로써 전달을 받는 것이다. 3) 직지인심(直指人心) 뜻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직접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 되나 우리가 마음을 파악한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면, 이미 마음은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어 그 본성을 잃고 말기에, 진정한 뜻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듯 자신안에 있는 佛性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4) 견성성불(見性成佛) 혜능에게 있어서 見性이라함은 곧 成佛을 이룸이었다. 그것은 우리 本性이 바로 부처이기 때문이다. 또한 혜능에게 있어서 ‘佛性’은 곧 ‘깨달 음’이다. 그렇기에 자신안에 있는 불성을 본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요, 즉 부처가 되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6> * 공안,화두(公案,話頭) 공안은 見性成佛의 방편으로서 보통 옛 祖師의 문답을 사색하며 그 말의 本意를 깨치려하는데, 이 때 던져주는 말이다. 화두는 臨濟宗때부터 활용되었으며, 화두도 역시 문자로서 문자적 의미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一心으 로 전념한뒤 이르는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다.7> 그러므로 구제자에 대한 신앙이나 귀의를 강조하는 사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일원적인 본래의 자리, 진실한 본성에 돌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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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문
서 론 禪은 인도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선사상은 중국에서 형성되었다. 인도에서의 선은 불교뿐만 아니라 종교 및 철학 등 모든 사유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것은 즉, 요가(yoga)라고 불리우는 명상법인 것이다. 또한 선은 불교의 실천적인 입장으로 항상 좌선(坐禪)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좌선의 자세와 외형적인 방법은 고대 인도의 요가와 고금을 통해 전혀 다를 바가 없다.1> 지금 여기서 선 사상이라 하는 것은 인도에서 발생한 선이 중국에 전례되어 독자적인 불교 사상으로 형성되면서 중국인들의 생활종교로 승화된 조사선의 사상을 의미하며 오늘날 새로운 동양의 마음이며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선 불교는 중국 당대의 뛰어난 선승들의 예지로 이루어진 조사선의 불교사상을 가르키느 것이다. 이상과 같이 조사선의 불교는 선 사상의 형성과 전개를 기본과제로 설정하고 그 옛날 인도에서 발생한 명상법으로서 요가(yoga)와 붓다(Buddha)의 깊은 명상을 통하여 자아의 참된 모습을 규명해보는 실천행으로서 각 시대의 선구적인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며 긴 불교의 역사를 꾸며온 역사적 도상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사고와 실천의 결정체인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역사와 더불어 형성되고 전개된 각시대의 독특한 선 사상을 주장하며 또 그러한 선 사상의 실천으로 살다간 인물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조명하면서 각 시대의, 인간의 사상으로서 선사상을 고찰함은 중요하다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시간과 공간에서 살다간 인간의 사고와 역사성을 무시하고 선사상 하나만을 다루게 되면 인류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인간의 사상으로 존립하기가 어려우며, 인류의 역사에서 이룩된 뿌리있고 의미있는 가르침 , 교훈, 사상이라기 보다는 지나친 공상혹은 환상으로 흘러버리고 말 우려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현들의 명상과 지혜로서 이루어진 선 불교사상이 발생한 시대와 장소를 찾아가 그들이 주장하는 생활의 종교로서 실제로 그렇게 살다간 선 사상의 근원과 사상을 재조명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각자각자에게 던져주는 올바른 삶과 인간의 가치관, 자신의 올바른 인격구현이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얻고자 하는 바램으로 이 논문을 시작하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우선 선의 고찰을 위한 간략한 전 이해와 선의 기원과 그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은 선 사상에 대해 깊이 본 후, 그 모든 선적 깨달음의 부단한 노정을 보여주는 십우도에 대하여 조명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