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이가 – 한국

 Ⅲ.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이제까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에 재림하시지 않고, 그들의 유업을 상속하여 열매 맺는 나라에 재림하실 것을, 우리는 알았고, 또 그 열매 맺는 나라는 동방나라 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았다. 예로부터 동방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3국을 말한다. 그런데 그 중의 일본은 대대로 아마데라스오오미가미를 숭배해 온 나라로서, 더구나 전체주의 국가로서 재림기를 당하였었고, 또 아래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 당시 한국의 기독교를 혹독히 박해한 나라였던 것이다(후편 제5장 제4절 Ⅲ.3 참조)  그리고 중국은 공산화해 온 나라이기 때문에, 이 두 나라는 모두 사탄편 국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한국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는 연유를, 원리에 입각하여 다각도로 논증해 보기로 하겠다. 메시아가 강림하시는 나라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1. 이 나라는 탕감복귀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한국이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하여는, 원리적으로 보아 천주적인 가나안 복귀를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그러면 한민족이 이 기대를 세워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신다면, 한국민족은 제3 이스라엘선민이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애급에서 받아나온,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제1 이스라엘이었고, 제1 이스라엘선민에게 이단자로 몰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고 제2차로 복귀섭리를 계승해 나온 기독교 신도들이 제2 이스라엘 선민이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17장 25절 이하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노아 때와 같이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실 것으로 예언하신 것과 같이, 그는 제2 이스라엘 선민된 온 기독교 신도들에게도 이단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말한 바에 의하여 알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마치 하나님이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을 버리셨듯이, 재림하신 예수님을 핍박하는 기독교 신도들도 버리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마태복음 7장 23절). 그렇게 되면 재림주님을 받들고 하나님의 제3차 섭리를 완수해야 할 한국민족은 제3 이스라엘 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1 이스라엘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세계였던 애급에서 400년간을 고역하였다. 그와 같이 제2 이스라엘도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세계였던 로마제국에서 400년간 박해를 받으면서 싸워 이겼다. 따라서 한국민족도 제3 이스라엘선민이 되어, 천주적 가나안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우려면, 사탄편의 어떠한 국가에게서 40수에 해당되는 햇수의 고역을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본제국에 속방되어 박해를 당한 40년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한민족은 어떤 경위로써 일본제국 밑에서 40년간의 고역을 당하게 되었던가 ?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의 손길을 ‘을사보호조약’에 의하여 뻗쳐졌었다.즉 1905년에 일본의 이또오 히로부미와 당시의 한국 학부대신이었던 친일파 이완용 등에 의하여서, 한국의 외교권 일체를 일본제국의 외무성에 일임하는 조약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한국에 그통감을 두고, 필요한 지역마다 이사관들을 두어 일체의 내정을 간섭함으로써, 일본은 사실상 한국으로부터 정치, 외교, 경제등 주요 부문의 권리를 박탈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을사보호조약’이었다.  서기 1910년, 일본이 강제로 한국을 합병한 후로는, 한국민족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투옥 학살하였고, 심지어는 황궁에 침입하여 왕비를 학살하는 등 잔학무도한 일을 마음대로 행하였으며, 1919년 3월 1일 한국독립운동 때에는, 전국의 곳곳에서 수많은 양민을 살육하였다.  더구나 1923년에 일어났던 일본 관동대진재 때에는, 그들이 터무니없는 말들을 꾸며내어 도요꼬에 살고 있던 죄없는 한국인들을 학살하기 부지기수였다. 한편 수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학정을 견디지 못하여 비옥한 고국산천을 일본인들에게 내주고, 자유를 찾아 황막한 만주벌판으로 이민하여 와신상담의 시련을 쌓으며 조국 광복에 진력하였었다. 일본군은 이러한 한민족의 여러 부락을 찾아다니며, 노인에서부터 어린 아기에 이르기까지의 전 동민들을 한 건물 안에 감금하고 방화 몰살하였다. 일본은 이와 같은 학정을 그 제국이 멸망하는 날까지 계속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3․1독립운동에서, 혹은 만주벌판에서 쓰러진 민중은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거니와, 더구나 제정 말기에는 기독교 신도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이에 따르지 않는 수많은 신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었다. 이뿐 아니라 8․15해방 직전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기독교 탄압정책은 실로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천황이 제2차 대전에서의 패전을 선언함으로써 한국민족은 드디어 그 굴레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한국민족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 제1 제2 이스라엘 선민이 애급이나 로마제국에서 당한 것에 못지 않는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독립운동이 주로 국내외의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일어났으므로, 박해를 당한 것이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음을 말할 것도 없다.             2.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일선인 동시에 사탄의 일선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조세계를 주관하라고 축복하셨으므로, 사탄이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을 앞세우고 그 축복형의 비원리세계를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뒤를 따라 이 세계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여 나오셨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 이르면 이 세계는 틀림없이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타락세계를 창조본연의 세계로 복귀하시려고 재림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그가 재림하실 나라를 중심하고 공산세계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실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한국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일선인 동시에 사탄이 가장 미워하는 일선이 되어서, 민주와 공산의 두 세력은 여기에서 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니, 그 부딪치는 선이 바로 삼팔선이다. 즉 한국의 삼팔선은 이러한 복귀섭리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치선에 그 판가리의 조건으로 놓여지는 것이 제물이다. 그런데 한국민족은 천주 복귀를 위하여 이 일선에 놓여진 민족적인 제물이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야 했듯이 이 민족적인 제물도 쪼개야 하므로, 이것을 삼팔선으로 쪼개어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족으로 갈라 세운것이다. 따라서 이 삼팔선은 민주와 공산의 최일선인 동시에, 하나님과 사탄의 최일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팔선에서 일어났던 6․25동란에 유엔의 여러회원 국가들이 동원되었던 것은, 이 동란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한 세계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 섭리의 뜻에 맞추어 조국 광복의 역사에 가담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인간시조가 타락될 때에, 하늘편과 사탄편이 한 점에서 서로 갈렸기 때문에, 생명과 사망, 선과 악,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도 또한 한 점에서 갈라져서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부디쳐 내려왔었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세계의 것으로 각각 분리됨으로써,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결실되었고, 이것들이 다시 한국을 중심하고 세계적인 것으로 부딪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사상, 정치와 경제 등 모든 것이 한국에서 마찰되고 충돌되어 큰 혼란이 일어남으로써, 이것이 세계에로 파급되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영계에서 벌어진 이러한 현상이, 복귀섭리의 주체인 한국을 중심하고 실체적으로 벌어지게 되고, 이것이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것으로 확대해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태복음 24장 32절)라고 말씀하신대로, 이러한 혼란이 오는 것은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올 것을 보여주는 전조임을 알아야 한다.  일찌기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그 재림하실 곳을 물었을 때, 예수님은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대답하셨다(누가복음 17장 37절). 하나님의 일선이요 또한 사탄의 일선인 한국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망이 맞부딪치게 되므로, 사망의 무리를 찾아서 독수리로 상징된 사탄이 이 땅으로 모이는 동시에, 생명의 무리를 찾는 주님도 이 땅으로 오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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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이가 – 한국

 Ⅲ.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이제까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에 재림하시지 않고, 그들의 유업을 상속하여 열매 맺는 나라에 재림하실 것을, 우리는 알았고, 또 그 열매 맺는 나라는 동방나라 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았다. 예로부터 동방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3국을 말한다. 그런데 그 중의 일본은 대대로 아마데라스오오미가미를 숭배해 온 나라로서, 더구나 전체주의 국가로서 재림기를 당하였었고, 또 아래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 당시 한국의 기독교를 혹독히 박해한 나라였던 것이다(후편 제5장 제4절 Ⅲ.3 참조)  그리고 중국은 공산화해 온 나라이기 때문에, 이 두 나라는 모두 사탄편 국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한국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는 연유를, 원리에 입각하여 다각도로 논증해 보기로 하겠다. 메시아가 강림하시는 나라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1. 이 나라는 탕감복귀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한국이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하여는, 원리적으로 보아 천주적인 가나안 복귀를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그러면 한민족이 이 기대를 세워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신다면, 한국민족은 제3 이스라엘선민이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애급에서 받아나온,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제1 이스라엘이었고, 제1 이스라엘선민에게 이단자로 몰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고 제2차로 복귀섭리를 계승해 나온 기독교 신도들이 제2 이스라엘 선민이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17장 25절 이하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노아 때와 같이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실 것으로 예언하신 것과 같이, 그는 제2 이스라엘 선민된 온 기독교 신도들에게도 이단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말한 바에 의하여 알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마치 하나님이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을 버리셨듯이, 재림하신 예수님을 핍박하는 기독교 신도들도 버리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마태복음 7장 23절). 그렇게 되면 재림주님을 받들고 하나님의 제3차 섭리를 완수해야 할 한국민족은 제3 이스라엘 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1 이스라엘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세계였던 애급에서 400년간을 고역하였다. 그와 같이 제2 이스라엘도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세계였던 로마제국에서 400년간 박해를 받으면서 싸워 이겼다. 따라서 한국민족도 제3 이스라엘선민이 되어, 천주적 가나안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우려면, 사탄편의 어떠한 국가에게서 40수에 해당되는 햇수의 고역을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본제국에 속방되어 박해를 당한 40년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한민족은 어떤 경위로써 일본제국 밑에서 40년간의 고역을 당하게 되었던가 ?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의 손길을 ‘을사보호조약’에 의하여 뻗쳐졌었다.즉 1905년에 일본의 이또오 히로부미와 당시의 한국 학부대신이었던 친일파 이완용 등에 의하여서, 한국의 외교권 일체를 일본제국의 외무성에 일임하는 조약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한국에 그통감을 두고, 필요한 지역마다 이사관들을 두어 일체의 내정을 간섭함으로써, 일본은 사실상 한국으로부터 정치, 외교, 경제등 주요 부문의 권리를 박탈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을사보호조약’이었다.  서기 1910년, 일본이 강제로 한국을 합병한 후로는, 한국민족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투옥 학살하였고, 심지어는 황궁에 침입하여 왕비를 학살하는 등 잔학무도한 일을 마음대로 행하였으며, 1919년 3월 1일 한국독립운동 때에는, 전국의 곳곳에서 수많은 양민을 살육하였다.  더구나 1923년에 일어났던 일본 관동대진재 때에는, 그들이 터무니없는 말들을 꾸며내어 도요꼬에 살고 있던 죄없는 한국인들을 학살하기 부지기수였다. 한편 수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학정을 견디지 못하여 비옥한 고국산천을 일본인들에게 내주고, 자유를 찾아 황막한 만주벌판으로 이민하여 와신상담의 시련을 쌓으며 조국 광복에 진력하였었다. 일본군은 이러한 한민족의 여러 부락을 찾아다니며, 노인에서부터 어린 아기에 이르기까지의 전 동민들을 한 건물 안에 감금하고 방화 몰살하였다. 일본은 이와 같은 학정을 그 제국이 멸망하는 날까지 계속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3․1독립운동에서, 혹은 만주벌판에서 쓰러진 민중은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거니와, 더구나 제정 말기에는 기독교 신도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이에 따르지 않는 수많은 신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었다. 이뿐 아니라 8․15해방 직전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기독교 탄압정책은 실로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천황이 제2차 대전에서의 패전을 선언함으로써 한국민족은 드디어 그 굴레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한국민족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 제1 제2 이스라엘 선민이 애급이나 로마제국에서 당한 것에 못지 않는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독립운동이 주로 국내외의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일어났으므로, 박해를 당한 것이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음을 말할 것도 없다.             2.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일선인 동시에 사탄의 일선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조세계를 주관하라고 축복하셨으므로, 사탄이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을 앞세우고 그 축복형의 비원리세계를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뒤를 따라 이 세계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여 나오셨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 이르면 이 세계는 틀림없이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타락세계를 창조본연의 세계로 복귀하시려고 재림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그가 재림하실 나라를 중심하고 공산세계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실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한국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일선인 동시에 사탄이 가장 미워하는 일선이 되어서, 민주와 공산의 두 세력은 여기에서 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니, 그 부딪치는 선이 바로 삼팔선이다. 즉 한국의 삼팔선은 이러한 복귀섭리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치선에 그 판가리의 조건으로 놓여지는 것이 제물이다. 그런데 한국민족은 천주 복귀를 위하여 이 일선에 놓여진 민족적인 제물이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야 했듯이 이 민족적인 제물도 쪼개야 하므로, 이것을 삼팔선으로 쪼개어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족으로 갈라 세운것이다. 따라서 이 삼팔선은 민주와 공산의 최일선인 동시에, 하나님과 사탄의 최일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팔선에서 일어났던 6․25동란에 유엔의 여러회원 국가들이 동원되었던 것은, 이 동란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한 세계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 섭리의 뜻에 맞추어 조국 광복의 역사에 가담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인간시조가 타락될 때에, 하늘편과 사탄편이 한 점에서 서로 갈렸기 때문에, 생명과 사망, 선과 악,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도 또한 한 점에서 갈라져서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부디쳐 내려왔었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세계의 것으로 각각 분리됨으로써,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결실되었고, 이것들이 다시 한국을 중심하고 세계적인 것으로 부딪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사상, 정치와 경제 등 모든 것이 한국에서 마찰되고 충돌되어 큰 혼란이 일어남으로써, 이것이 세계에로 파급되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영계에서 벌어진 이러한 현상이, 복귀섭리의 주체인 한국을 중심하고 실체적으로 벌어지게 되고, 이것이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것으로 확대해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태복음 24장 32절)라고 말씀하신대로, 이러한 혼란이 오는 것은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올 것을 보여주는 전조임을 알아야 한다.  일찌기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그 재림하실 곳을 물었을 때, 예수님은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대답하셨다(누가복음 17장 37절). 하나님의 일선이요 또한 사탄의 일선인 한국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망이 맞부딪치게 되므로, 사망의 무리를 찾아서 독수리로 상징된 사탄이 이 땅으로 모이는 동시에, 생명의 무리를 찾는 주님도 이 땅으로 오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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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제3절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육신을 쓴 인간으로 탄생하신다면, 그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어느 곳의 택함 받은 어떤 민족 가운데서 탄생하실 것이다. 그러면 예정된 그곳은 어디이며, 또 택함을 입은 그 민족은 어느 민족일 것인가 ?             Ⅰ.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인가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중에서, 맨 먼저 구원의 인을 맞을 자가 14만 4천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나,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10장 23절)고 하신 말씀이나, 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살아 있다가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임하는 것을 볼자가 있다(마태복음 16장 28절)고 하신 말씀 등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으로 알고 있는 신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근본섭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33절 내지 434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포도원주인과 농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종의 비유로써, 자기를 살해하는 민족에게는 재림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민족에게 맡겼던 유업까지도 빼앗아, 그의 재림을 위하여 열매 맺는 다른 나라와 그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하나님의 유업을, 또 농부는 이 유업을 맡은 이스라엘선민을, 종은 선지자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그 열매 맺는 다른 나라 백성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후손에게 재림하실 것으로 말슴하셨던가 ?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이스라엘이란 무슨 뜻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기 위하여,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함으로써 ‘승리했다’는 뜻으로 받은 이름이다(창세기 32장 28절). 야곱은 이와같이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후 ‘실체헌제’에 성공함으써,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었었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서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야곱의 혈통적인 후손이라고 해서 그들을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조상이라고 생각치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태복음 3장 9절)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로마서 2장 28~29절)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증언하였다(로마서 9장 6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란 사실만을 가지고서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한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후손들이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인들과 싸우면서 그 땅을 떠날 때는 이스라엘 선민이었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반역할 때에는 이미 이스라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광야에서 쓸어버리고, 모세를 따른 그 후손만을 이스라엘 선민으로 삼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가나안땅에 들어간 후손이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10지파로 된 북조 이스라엘은 벌써 이스라엘 선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2지파로 된 남조 유대만이 이스라엘 선민이 되어 예수님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이스라엘 선민의 자격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위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말씀으로써 선민에 대한 의의를 밝혔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선민은 누구일 것인가 ? 그는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아, 그 후손이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하여 온 기독교 신도들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11절에 “저희(유대인)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중심이 이스라엘 민족에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졌음을 밝혔다(사도행전 13장 46절). 그러므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될 이스라엘선민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기독교 신도들을 이르신 것임을 알 수 있다.             Ⅱ. 예수님은 동방의 나라로 재림하신다  마태복음 21장 33절이하에 예수님이 비유하여 말씀하신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농부의 입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면 유대인들로부터 빼앗은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아 열매 맺을 나라는 어느 나라일 것인가 ? 성서는 그 나라가 동방에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요한계시록 5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안팎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쥐어져 있는데, 하늘 위에서나 땅 위에서나 땅 아래에나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었으므로, 요한은 통곡을 하였다. 그 때에 어린 양(예수님)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여(요한계시록 5장 7절), 그 인을 하나씩 떼기 시작하였다(요한계시록 6장 1절).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예수님이 여섯째 인봉의 개봉을 마치신 것을 기록하고, 최후의 인봉을 떼기 전의 중간 광경으로 제7장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7장 2절 내지 3절을 보면, 해 돋는 곳 즉 동방으로부터부터 천사가 올라와, 최후의 심판에서 택함을 받은 자에게 인을 쳤는데, 그 인 맞은 자의 수가 14만 4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는 그 14만 4천 무리와 함께 어린 양 즉 예수님이 계시더라고 씌여 있다.  우리는 이 성구들로 미루어, 예수님은 해 돋는 곳, 곧 동방나라에 탄생하시어 그 곳에서 먼저 택함 받은 14만 4천 무리의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인을 치신다는 것을(요한계시록 14장 1절)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열매를 맺을 나라는(마태복음 21장 43절) 동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방의 여러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바로 이 나라가 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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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제3절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육신을 쓴 인간으로 탄생하신다면, 그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어느 곳의 택함 받은 어떤 민족 가운데서 탄생하실 것이다. 그러면 예정된 그곳은 어디이며, 또 택함을 입은 그 민족은 어느 민족일 것인가 ?             Ⅰ.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인가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중에서, 맨 먼저 구원의 인을 맞을 자가 14만 4천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나,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10장 23절)고 하신 말씀이나, 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살아 있다가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임하는 것을 볼자가 있다(마태복음 16장 28절)고 하신 말씀 등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으로 알고 있는 신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근본섭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33절 내지 434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포도원주인과 농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종의 비유로써, 자기를 살해하는 민족에게는 재림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민족에게 맡겼던 유업까지도 빼앗아, 그의 재림을 위하여 열매 맺는 다른 나라와 그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하나님의 유업을, 또 농부는 이 유업을 맡은 이스라엘선민을, 종은 선지자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그 열매 맺는 다른 나라 백성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후손에게 재림하실 것으로 말슴하셨던가 ?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이스라엘이란 무슨 뜻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기 위하여,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함으로써 ‘승리했다’는 뜻으로 받은 이름이다(창세기 32장 28절). 야곱은 이와같이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후 ‘실체헌제’에 성공함으써,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었었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서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야곱의 혈통적인 후손이라고 해서 그들을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조상이라고 생각치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태복음 3장 9절)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로마서 2장 28~29절)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증언하였다(로마서 9장 6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란 사실만을 가지고서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한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후손들이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인들과 싸우면서 그 땅을 떠날 때는 이스라엘 선민이었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반역할 때에는 이미 이스라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광야에서 쓸어버리고, 모세를 따른 그 후손만을 이스라엘 선민으로 삼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가나안땅에 들어간 후손이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10지파로 된 북조 이스라엘은 벌써 이스라엘 선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2지파로 된 남조 유대만이 이스라엘 선민이 되어 예수님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이스라엘 선민의 자격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위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말씀으로써 선민에 대한 의의를 밝혔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선민은 누구일 것인가 ? 그는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아, 그 후손이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하여 온 기독교 신도들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11절에 “저희(유대인)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중심이 이스라엘 민족에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졌음을 밝혔다(사도행전 13장 46절). 그러므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될 이스라엘선민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기독교 신도들을 이르신 것임을 알 수 있다.             Ⅱ. 예수님은 동방의 나라로 재림하신다  마태복음 21장 33절이하에 예수님이 비유하여 말씀하신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농부의 입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면 유대인들로부터 빼앗은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아 열매 맺을 나라는 어느 나라일 것인가 ? 성서는 그 나라가 동방에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요한계시록 5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안팎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쥐어져 있는데, 하늘 위에서나 땅 위에서나 땅 아래에나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었으므로, 요한은 통곡을 하였다. 그 때에 어린 양(예수님)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여(요한계시록 5장 7절), 그 인을 하나씩 떼기 시작하였다(요한계시록 6장 1절).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예수님이 여섯째 인봉의 개봉을 마치신 것을 기록하고, 최후의 인봉을 떼기 전의 중간 광경으로 제7장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7장 2절 내지 3절을 보면, 해 돋는 곳 즉 동방으로부터부터 천사가 올라와, 최후의 심판에서 택함을 받은 자에게 인을 쳤는데, 그 인 맞은 자의 수가 14만 4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는 그 14만 4천 무리와 함께 어린 양 즉 예수님이 계시더라고 씌여 있다.  우리는 이 성구들로 미루어, 예수님은 해 돋는 곳, 곧 동방나라에 탄생하시어 그 곳에서 먼저 택함 받은 14만 4천 무리의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인을 치신다는 것을(요한계시록 14장 1절)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열매를 맺을 나라는(마태복음 21장 43절) 동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방의 여러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바로 이 나라가 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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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제3절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육신을 쓴 인간으로 탄생하신다면, 그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어느 곳의 택함 받은 어떤 민족 가운데서 탄생하실 것이다. 그러면 예정된 그곳은 어디이며, 또 택함을 입은 그 민족은 어느 민족일 것인가 ?             Ⅰ.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인가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중에서, 맨 먼저 구원의 인을 맞을 자가 14만 4천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나,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10장 23절)고 하신 말씀이나, 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살아 있다가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임하는 것을 볼자가 있다(마태복음 16장 28절)고 하신 말씀 등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으로 알고 있는 신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근본섭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33절 내지 434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포도원주인과 농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종의 비유로써, 자기를 살해하는 민족에게는 재림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민족에게 맡겼던 유업까지도 빼앗아, 그의 재림을 위하여 열매 맺는 다른 나라와 그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하나님의 유업을, 또 농부는 이 유업을 맡은 이스라엘선민을, 종은 선지자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그 열매 맺는 다른 나라 백성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후손에게 재림하실 것으로 말슴하셨던가 ?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이스라엘이란 무슨 뜻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기 위하여,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함으로써 ‘승리했다’는 뜻으로 받은 이름이다(창세기 32장 28절). 야곱은 이와같이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후 ‘실체헌제’에 성공함으써,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었었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서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야곱의 혈통적인 후손이라고 해서 그들을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조상이라고 생각치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태복음 3장 9절)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로마서 2장 28~29절)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증언하였다(로마서 9장 6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란 사실만을 가지고서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한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후손들이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인들과 싸우면서 그 땅을 떠날 때는 이스라엘 선민이었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반역할 때에는 이미 이스라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광야에서 쓸어버리고, 모세를 따른 그 후손만을 이스라엘 선민으로 삼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가나안땅에 들어간 후손이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10지파로 된 북조 이스라엘은 벌써 이스라엘 선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2지파로 된 남조 유대만이 이스라엘 선민이 되어 예수님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이스라엘 선민의 자격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위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말씀으로써 선민에 대한 의의를 밝혔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선민은 누구일 것인가 ? 그는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아, 그 후손이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하여 온 기독교 신도들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11절에 “저희(유대인)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중심이 이스라엘 민족에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졌음을 밝혔다(사도행전 13장 46절). 그러므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될 이스라엘선민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기독교 신도들을 이르신 것임을 알 수 있다.             Ⅱ. 예수님은 동방의 나라로 재림하신다  마태복음 21장 33절이하에 예수님이 비유하여 말씀하신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농부의 입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면 유대인들로부터 빼앗은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아 열매 맺을 나라는 어느 나라일 것인가 ? 성서는 그 나라가 동방에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요한계시록 5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안팎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쥐어져 있는데, 하늘 위에서나 땅 위에서나 땅 아래에나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었으므로, 요한은 통곡을 하였다. 그 때에 어린 양(예수님)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여(요한계시록 5장 7절), 그 인을 하나씩 떼기 시작하였다(요한계시록 6장 1절).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예수님이 여섯째 인봉의 개봉을 마치신 것을 기록하고, 최후의 인봉을 떼기 전의 중간 광경으로 제7장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7장 2절 내지 3절을 보면, 해 돋는 곳 즉 동방으로부터부터 천사가 올라와, 최후의 심판에서 택함을 받은 자에게 인을 쳤는데, 그 인 맞은 자의 수가 14만 4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는 그 14만 4천 무리와 함께 어린 양 즉 예수님이 계시더라고 씌여 있다.  우리는 이 성구들로 미루어, 예수님은 해 돋는 곳, 곧 동방나라에 탄생하시어 그 곳에서 먼저 택함 받은 14만 4천 무리의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인을 치신다는 것을(요한계시록 14장 1절)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열매를 맺을 나라는(마태복음 21장 43절) 동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방의 여러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바로 이 나라가 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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