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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통일왕국시대와 기독왕시대
제3절 통일왕국시대와 기독왕국시대 통일왕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사가 제1 이스라엘을 영도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예언자와, 성막이나 성전을 받드는 제사장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이 정립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각자의 지도적인 사명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도, 교구장이 제2 이스라엘을 영도해 나아가던 시대는 지나고, 예언자에 해당되는 수도원과 제사장에 해당되는 교황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제2 이스라엘을 지도해 나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당시의 기독교는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의 5대 교구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위에 있었던 로마 교구장은 다른 교구를 통할하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특히 그를 교황이라고 부르게 되었었다.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때의 모세의 성막이상은, 통일왕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국왕을 중심한 성전이상으로 나타나 왕국을 이루었었는데,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실체성전으로 오셔서 만왕의 왕이 되어 왕국을 건설하실 것의 형상노정이었던 것이다(이사야 9장 6절).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도들이 로마제국에서 해방되었던 때, 성 어거스틴에 의하여 그의 기독이상으로서 저술되었던 ‘신국론’이 이 때에 와서 카알대제에 의하여 기독왕국(카알대제 때부터의 프랑크왕국)으로 나타났던 것인데,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시어 왕국을 건설하실것의 형상노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국왕과 교황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 기독이상을 실현함으로써, 예수님이후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이루어 나왔던 국토 없는 영적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이 기독이상을 중심하고 하나되어야 했던 것이다. 만일 그 때 그렇게 되었더면, 종교와 정치와 경제는 일치되어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었다.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예언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해야 할 국왕이 었다. 예언자나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나서기 때문에, 그 시대에 있어서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그러나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그는 어디까지나 영계를 대신하여 천사장의 입장에 실체세계를 복귀해야 되었기 때문에, 국왕이 설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왕을 축복하여 세운 뒤에는, 그 앞에 가인의 처지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국왕은 예언자의 말슴에 의하여 국가를 통치해야 되고, 예언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국와에게 순종해야 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국와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아브라함으로부터 800년 되던 때에, 예언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받으렁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축복함으로써, 그를 제1 이스라엘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사물엘상 8절 19~22절), 10장 1~24절). 사울왕이 사사 400년 기대 위에서 그의 재위 40년을 탕감복귀한 입장에 설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40일 사탄분립기대> 위에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었를 것이었다. 따라서 사울왕이 이 기대 위에서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을 건축하고 그것을 받들었더면, 그는 모세가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에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그것을 받든 것과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선민들이 사울왕을 중심한 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성전을 받들고 나아가는 이 국왕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였더면, 그들은 <실체기대>를 조성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울왕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내리셨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에(사무엘상 15장 1~23절),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사울왕은, 바로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에 실패한 모세와 같은 자리에 놓여졌었다. 그리하여 사울왕을 중심한 복귀섭리도 모세때와 같이, 다윗왕 40년을 거쳐 솔로몬왕 40년에 이르러서야, 그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져서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었다.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진 것과 같이, 아브라함의 입장이기도 하였던 사울왕의 성전 건축의 뜻은,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 때에 이르러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왕이 음란으로 흘러서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났기 때문에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따라서 통일왕국시대에 이루어져야 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는 통일왕국시대의 모든 것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해야 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수도원이나 교황의 기독이상을 실현시켜야 할 국왕이었다. 따라서 교황은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의 예언자의 뜻을 받드는 제사장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국왕이 기독이상을 실현해 나아갈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그를 죽복하여 왕으로 세운 뒤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해야 되고, 한편 국왕은 교황의 이상을 받들어 국민을 통치해야 될 것이었다. 사실상 이러한 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교황 레오 3세는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여 금관을 씌움으로써, 그를 제2 이스라엘 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 카알대제는 사사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한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 400년 기대 위에 섰었기 때문에, 사울왕과 같이 <40일 사탄분립기대> 위에 서게 되었었다. 따라서 카알대제가 이 기대 위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을어 기독이상을 실천해 나아가면, 이 시대의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상 카알대제는 교황에게 축복을 받고 왕위에 오름으로써, 이 기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제2 이스라엘이 이러한 입장에 있는 국왕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였더면 그 때에 <실체기대>는 세워졌을 것이요, 따라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도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이와같이 되었어야만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세워진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이 하나 되어, 그 터전 위에 예쑤님이 다시 오셔서 메시아왕국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국왕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함으로써 ‘실체헌제’를 하기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났었기 때문에,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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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시대와 교구장제 기독교회 시대
제2절 사사시대와 교구장제 기독교회 시대 모세의 사명을 잉어받은 여소수아가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옷니엘 사사를 위시한 12사사에 이어 삼손 엘리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도합 15사사가 이스라엘을 지도하였던 400년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그들 사사는 다음 시대에 있어 분담된 예언자와 제사장과 국왕의 사명을 겸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봉건사회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신약시대의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역시 교구장들은 기독교 신도들을 영도하는 면에 있어 사사의 그것에 해당하는 직분을 띠고 있었다. 예수 이전의 시대에는 제1 이스라엘을 중심하고 영 육 아울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 나아갔었기 때문에, 정치와 경제와 종교는 하나의 지도자 밑에 통송되어 나아갔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의 노정은 이미 조성된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영적인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영적인 왕국을 건설해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신양시대에 있어서의 제2 이스라엘에 의한 기독교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의 국토없는 영적인 왕국인 것이다. 교구장은 이러한 영적 왕국 건설에 있어서 사사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예언자도 되어야 했고, 때로는 제사장의 구실도 해야 했으며, 때로는 교구를 통치하는 국왕과 같은 사명도 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봉건사회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사시대에 있어서는,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거기에서 출생한 그들의 후손들만이 오직 남아진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뒤에, 각 지파에게 분배된 새 땅에 사사를 중심하고 새로운 선민을 형성하여, 이스라엘 봉건사회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구장제 기독교회 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는 사탄세계인 로마제국에서 해방된 뒤, 4세기에 몽고족의 일파인 훈족의 서침에 의하여 서구로 이동된 게르만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서구의 새 땅에서 게르만 민족을 새로운 선민으로 세워, 기독교봉건사회의 기틀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애급을 떠난 이스라엘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실체기대>를 이루기 위하여 성막을 메시아의 상징체인 동시에 아벨 대신의 조건물로 세웠었다는 사실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자세히 논한 바이다. 그러므로 사사시대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사사들의 지도를 따라 성막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들은 가나안 7족을 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그들로부터 악습을 받아 우상을 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왔었다. 마찬가지로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도들은 교구장의 지도를 따라 메시아의 형상체인 동시에 아벨 대신의 조건물인 교회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은 게르만 민족으로부터 잡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사사시대와 교구장제 기독교회 시대
제2절 사사시대와 교구장제 기독교회 시대 모세의 사명을 잉어받은 여소수아가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옷니엘 사사를 위시한 12사사에 이어 삼손 엘리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도합 15사사가 이스라엘을 지도하였던 400년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그들 사사는 다음 시대에 있어 분담된 예언자와 제사장과 국왕의 사명을 겸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봉건사회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신약시대의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역시 교구장들은 기독교 신도들을 영도하는 면에 있어 사사의 그것에 해당하는 직분을 띠고 있었다. 예수 이전의 시대에는 제1 이스라엘을 중심하고 영 육 아울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 나아갔었기 때문에, 정치와 경제와 종교는 하나의 지도자 밑에 통송되어 나아갔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의 노정은 이미 조성된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영적인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영적인 왕국을 건설해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신양시대에 있어서의 제2 이스라엘에 의한 기독교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의 국토없는 영적인 왕국인 것이다. 교구장은 이러한 영적 왕국 건설에 있어서 사사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예언자도 되어야 했고, 때로는 제사장의 구실도 해야 했으며, 때로는 교구를 통치하는 국왕과 같은 사명도 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봉건사회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사시대에 있어서는,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거기에서 출생한 그들의 후손들만이 오직 남아진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뒤에, 각 지파에게 분배된 새 땅에 사사를 중심하고 새로운 선민을 형성하여, 이스라엘 봉건사회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구장제 기독교회 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는 사탄세계인 로마제국에서 해방된 뒤, 4세기에 몽고족의 일파인 훈족의 서침에 의하여 서구로 이동된 게르만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서구의 새 땅에서 게르만 민족을 새로운 선민으로 세워, 기독교봉건사회의 기틀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애급을 떠난 이스라엘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실체기대>를 이루기 위하여 성막을 메시아의 상징체인 동시에 아벨 대신의 조건물로 세웠었다는 사실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자세히 논한 바이다. 그러므로 사사시대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사사들의 지도를 따라 성막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들은 가나안 7족을 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그들로부터 악습을 받아 우상을 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왔었다. 마찬가지로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도들은 교구장의 지도를 따라 메시아의 형상체인 동시에 아벨 대신의 조건물인 교회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은 게르만 민족으로부터 잡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사사시대와 교구장제 기독교회 시대
제2절 사사시대와 교구장제 기독교회 시대 모세의 사명을 잉어받은 여소수아가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옷니엘 사사를 위시한 12사사에 이어 삼손 엘리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도합 15사사가 이스라엘을 지도하였던 400년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그들 사사는 다음 시대에 있어 분담된 예언자와 제사장과 국왕의 사명을 겸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봉건사회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신약시대의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역시 교구장들은 기독교 신도들을 영도하는 면에 있어 사사의 그것에 해당하는 직분을 띠고 있었다. 예수 이전의 시대에는 제1 이스라엘을 중심하고 영 육 아울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 나아갔었기 때문에, 정치와 경제와 종교는 하나의 지도자 밑에 통송되어 나아갔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의 노정은 이미 조성된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영적인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영적인 왕국을 건설해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신양시대에 있어서의 제2 이스라엘에 의한 기독교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의 국토없는 영적인 왕국인 것이다. 교구장은 이러한 영적 왕국 건설에 있어서 사사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예언자도 되어야 했고, 때로는 제사장의 구실도 해야 했으며, 때로는 교구를 통치하는 국왕과 같은 사명도 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봉건사회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사시대에 있어서는,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거기에서 출생한 그들의 후손들만이 오직 남아진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뒤에, 각 지파에게 분배된 새 땅에 사사를 중심하고 새로운 선민을 형성하여, 이스라엘 봉건사회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구장제 기독교회 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는 사탄세계인 로마제국에서 해방된 뒤, 4세기에 몽고족의 일파인 훈족의 서침에 의하여 서구로 이동된 게르만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서구의 새 땅에서 게르만 민족을 새로운 선민으로 세워, 기독교봉건사회의 기틀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애급을 떠난 이스라엘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실체기대>를 이루기 위하여 성막을 메시아의 상징체인 동시에 아벨 대신의 조건물로 세웠었다는 사실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자세히 논한 바이다. 그러므로 사사시대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사사들의 지도를 따라 성막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들은 가나안 7족을 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그들로부터 악습을 받아 우상을 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왔었다. 마찬가지로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도들은 교구장의 지도를 따라 메시아의 형상체인 동시에 아벨 대신의 조건물인 교회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은 게르만 민족으로부터 잡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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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
제1절 애굽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사탄 분립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으므로, 이 400년 기간을 다시 탕감복귀학기 위한 애굽고역시대에는 야곱과 그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간 이래 그 후손들이 400년 동안 애굽인들에게 처참한 학대를 받았었다.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로마제국 박해시대에 있어서도 이스라엘 선민들이 예수님을 산 제물로 바치는 헌제에 실수하여 그를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된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의 사탄 분립기간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 및 기독교 신도들이 로마제국에서 400년 동안 처참한 박해를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애굽고역시대에 있어서는 제1 이스라엘 선민들이 할례를 하고(출애굽기 4장 25절1)), 희생을 드리며(출애굽기 5장 3절2)), 안식일을 지키면서(출애굽기 16장 23절3))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생활을 하였었다. 그러므로 로마제국 박해시대에도 제2 이스라엘 선민들이 성만찬과 세례를 베풀고, 성도 자신들을 생축의 제물로 드리며,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써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애급고역시대에 있어서 400년의 고역이 끝난 후에, 모세는 3대기적과 10재앙의 권능으로 바로를 굴복시키고, 제1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다. 이와같이 로마제국 박해시대에 있어서도, 제2 이스라엘 선민들에 대한 4세기 동안의 박해가 끝난 뒤에, 예수님은 심령적인 기적과 권능으로써 많은 신도를 불러 일으키셨고, 더 나아가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감화시켜서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게 하셨으며,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서는, 그처럼 극심한 박해를 하던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하게 하셨었다. 이리하여 기독교인들은 사탄세계에서 영적으로 가나안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런데 율법에 의한 외적인 탕감조건으로써 섭리하시던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모세로 하여금 외적인 기사와 권능으로써 바로를 굴복시키셨지만, 신약시대는 말씀에 의한 내적인 탕감조건으로 섭리하시는 시대이기 때문에, 심령적인 감화로써 역사하셨다. 애급고역시대가 끝난 뒤, 모세는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말씀을 받음으로써 구약성서의 중심을 세웠고,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받듦으로써 제1 이스라엘 선민들이 메시아를 맞기 위한 뜻을 세워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2 이스라엘 선민들은 로마제국 박해시대가 끝난 뒤에, 구약시대의 십계명과 성막이상을 영적으로 이루기 위한 ‘말씀’으로서 사도들의 기록을 모아 신약성서를 결정하고, 그 말씀을 중심한 교회를 이룩하여가지고 재림주를 맞기 위한 터전을 넓혀 나오게 된 것이다.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님과 성신이 직접 성도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에, 그 이전 섭리시대와 같이 어느 한 사람을 하늘 대신 전체적인 섭리의 중심인물로 세우지는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