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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복귀섭리 연장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 년수
제4절 복귀섭리 연장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 년수 복귀섭리 연장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섭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는 복귀섭리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의 햇수를 그대로 탕감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Ⅰ.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 예수님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뜻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었다. 그러므로 마치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게 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민족적인 것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산 제물로 바치는 헌제에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하게 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기독교 신도들의 앞에도 애급고역시대와 같은 시대가 오게 되었던 것이니, 이 시대가 바로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흑심한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티누스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이 시기 313년이었고,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것이 서기 392년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이스라엘 민족의 애급고역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Ⅱ. 교구장제 기독교시대 400년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섭리시대 중에 사사를 중심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나아가던 사사시대 400년이 있었기 때문에,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섭리연장시대 중에도 이 사사시대 400년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있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후 서기 800년 카알대제가 즉위할 때까지, 사사에 해당하는 교구장에 의하여 영도되었던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 400년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사사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Ⅲ. 기독왕국시대 120년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사울왕을 중심하고 처음으로 왕국을 세운 뒤, 다윗왕을 중심하고 처음으로 왕국을 세운 뒤,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 왕에 이르기까지 120년간 통일왕국시대를 이루었었다. 따라서 이 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서기 800년 카알대제가 즉위한 뒤로부터 나중에 그의 왕통이 끊어지고 선거왕제가 되어 919년 헨리 1세가 독일 왕위에 오를 때까지, 120년간에 걸쳐 기독왕국시대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중, 통일왕국시대 12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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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왕조 분립시대,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Ⅳ. 남북왕조 분립시대 400년 사울왕은 그의 40년 재위기간에 성전 건축의 이상을 이룸으로써, 말씀(석판) 복귀를 위한 모세의 금식 40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그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기간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해야 하였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통일왕국시대를 지나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분립된 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갈 때까지의 400년 기간인 남북왕조 분립시대였던 것이다.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에서로부터 떡과 팥죽으로 장자권을 빼앗는 조건을 세운 뒤, 다시 이삭의 축복을 받아가지고(창세기 28장 13절1)) 하란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북조 이스라엘이 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앗시리아에 포로되어 간 뒤 남조 유대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되어 갔다. 이 때부터 그들은 바빌론에서 70년간 포로되어 있다가 바빌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한 뒤 페르샤왕 고레스의 조서에 의하여 마침내 해방되었다. 유대민족은 그 뒤 오랜 기간을 두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는데, 느헤미아가 남은 유대인들을 이끌고 환국하여 성벽을 재건한 후, 그들은 선지자 말라기를 중심하고 그의 예언에 의하여(말라기 4장 5절2))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기로 들어갔다. 이 때가 그들이 바빌론에 포로된 때로부터 210년이요, 해방되기 시작하고서부터 약 140년된 때였다. 이 시대를 통틀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가 제1차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가지고 가나안 복귀를 하려 했던 21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에 실패하였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의 21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에 대한 축복을 받은 뒤, 그를 죽이려 했던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서 사탄편 인물인 라반의 요구에 의하여 레아를 맞이하기 위한 7년간과, 라헬을 맞이하기 위해 7년간, 그리고 재물을 취해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해까지의 7년간을 합한 21년간(창세기 31장 41절3))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Ⅵ.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귀향한 뒤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에 의하여 메시아를 맞이할 민족으로 선 때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의 400년간을 메시아강림준비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그의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3차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소비한 광야 40년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메시아강림준비시대의 400년기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한 뒤, 팔려간 요셉을 찾아 애급으로 들어가기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남북왕조 분립시대,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Ⅳ. 남북왕조 분립시대 400년 사울왕은 그의 40년 재위기간에 성전 건축의 이상을 이룸으로써, 말씀(석판) 복귀를 위한 모세의 금식 40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그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기간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해야 하였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통일왕국시대를 지나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분립된 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갈 때까지의 400년 기간인 남북왕조 분립시대였던 것이다.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에서로부터 떡과 팥죽으로 장자권을 빼앗는 조건을 세운 뒤, 다시 이삭의 축복을 받아가지고(창세기 28장 13절1)) 하란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북조 이스라엘이 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앗시리아에 포로되어 간 뒤 남조 유대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되어 갔다. 이 때부터 그들은 바빌론에서 70년간 포로되어 있다가 바빌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한 뒤 페르샤왕 고레스의 조서에 의하여 마침내 해방되었다. 유대민족은 그 뒤 오랜 기간을 두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는데, 느헤미아가 남은 유대인들을 이끌고 환국하여 성벽을 재건한 후, 그들은 선지자 말라기를 중심하고 그의 예언에 의하여(말라기 4장 5절2))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기로 들어갔다. 이 때가 그들이 바빌론에 포로된 때로부터 210년이요, 해방되기 시작하고서부터 약 140년된 때였다. 이 시대를 통틀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가 제1차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가지고 가나안 복귀를 하려 했던 21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에 실패하였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의 21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에 대한 축복을 받은 뒤, 그를 죽이려 했던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서 사탄편 인물인 라반의 요구에 의하여 레아를 맞이하기 위한 7년간과, 라헬을 맞이하기 위해 7년간, 그리고 재물을 취해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해까지의 7년간을 합한 21년간(창세기 31장 41절3))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Ⅵ.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귀향한 뒤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에 의하여 메시아를 맞이할 민족으로 선 때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의 400년간을 메시아강림준비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그의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3차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소비한 광야 40년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메시아강림준비시대의 400년기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한 뒤, 팔려간 요셉을 찾아 애급으로 들어가기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남북왕조 분립시대,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Ⅳ. 남북왕조 분립시대 400년 사울왕은 그의 40년 재위기간에 성전 건축의 이상을 이룸으로써, 말씀(석판) 복귀를 위한 모세의 금식 40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그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기간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해야 하였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통일왕국시대를 지나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분립된 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갈 때까지의 400년 기간인 남북왕조 분립시대였던 것이다.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에서로부터 떡과 팥죽으로 장자권을 빼앗는 조건을 세운 뒤, 다시 이삭의 축복을 받아가지고(창세기 28장 13절1)) 하란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북조 이스라엘이 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앗시리아에 포로되어 간 뒤 남조 유대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되어 갔다. 이 때부터 그들은 바빌론에서 70년간 포로되어 있다가 바빌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한 뒤 페르샤왕 고레스의 조서에 의하여 마침내 해방되었다. 유대민족은 그 뒤 오랜 기간을 두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는데, 느헤미아가 남은 유대인들을 이끌고 환국하여 성벽을 재건한 후, 그들은 선지자 말라기를 중심하고 그의 예언에 의하여(말라기 4장 5절2))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기로 들어갔다. 이 때가 그들이 바빌론에 포로된 때로부터 210년이요, 해방되기 시작하고서부터 약 140년된 때였다. 이 시대를 통틀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가 제1차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가지고 가나안 복귀를 하려 했던 21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에 실패하였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의 21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에 대한 축복을 받은 뒤, 그를 죽이려 했던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서 사탄편 인물인 라반의 요구에 의하여 레아를 맞이하기 위한 7년간과, 라헬을 맞이하기 위해 7년간, 그리고 재물을 취해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해까지의 7년간을 합한 21년간(창세기 31장 41절3))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Ⅵ.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귀향한 뒤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에 의하여 메시아를 맞이할 민족으로 선 때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의 400년간을 메시아강림준비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그의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3차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소비한 광야 40년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메시아강림준비시대의 400년기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한 뒤, 팔려간 요셉을 찾아 애급으로 들어가기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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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시대와 통일왕국시대
Ⅱ. 사사시대 400년 열왕기상 6장 1절1)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땅에서 나온지 480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왕이 된지 4년 시월 곧 2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여기에서 사울왕의 재위 40년과 다윗왕의 재위 40년을 지난 후, 솔로몬왕 4년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급땅에서 나온지 480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는 약 400년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노아로부터의 400년 <사탄분립기대> 위에 세워졌던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위에 서야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 대신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이와같이되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사탄에게 잃어버린 이 애급고역 400년 기대를 재탕감복귀하기 위한 사탄 재분립기가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간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로부터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의 사사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인 동시성의 시대 중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Ⅲ. 통일왕국시대 120년 복귀기대섭리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복귀섭리시대가 있게 되었으므로, 이 섭리노정을 출발한 아브라함은 아담의 입장이었고, 모세는 노아의 입장이었으며, 사울왕은 아브라함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복귀기대섭리시대의 종결자인 동시에 복귀섭리시대의 출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운 뒤에,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했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때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려 하시기 제3차로서, 그때에는 그것을 반드시 이루셔야 했던 것과 같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이루시려 던 섭리도 역시 사울왕 때가 그 제3차로서, 그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이루셔야 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노아 때에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 40일, 21일, 40일 등을 ‘상징헌제’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다가 실수하여 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120년, 40년, 21년, 40년으로 다시 찾아 세웠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한 사울왕도 역시 아브라함때와 같이, 모세때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모세의 40년씩 3차의 생애), 40일(금식기간), 21일(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기간), 40년(민족적 가나안복귀의 광야기간) 등을 성전을 지음으로써 그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울왕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사무엘상 15장 11~23절)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브라함 때와 같이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통일왕국시대 120년, 남북왕조분립시대 400년, 이스라엘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찾아 세워가지고, 마침내 메시아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는 모세가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3차에 걸쳐서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120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선 뒤에, 모세는 바로궁중 40년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이스라엘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모세의 미디안광야 40년, 광야 표류기간 40년으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사사시대 400년으로써 애급고역시대 400년을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선 뒤, 사울이 유대민족의 첫 왕으로 즉위하여, 그의 재위 40년으로 모세의 바로 궁중생활 40년을 탕감복귀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성전을 건축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이 불신으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사무엘상 15장 11~23절), 모세 때와 같이 성전건축의 뜻은 다윗왕 40년, 솔로몬왕 40년으로 연장되어, 통일왕국시대 120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뒤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 졌던 것과 같이, 사울왕의 성전이상도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 왕 때에야 이루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