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년수의 형성

제2절 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년수의 형성      Ⅰ.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며 또 어떻게 연장되는가  우리는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음으로써,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려는 섭리가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으로 연장되어 예수님 때까지 이르렀고, 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이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다시 그의 재림기까지 연장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논술하였다.  그러면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는가? 이것은 예정론에 의하여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한 번 세우신 뜻은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을 중심한 그 뜻 성사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그 인물의 책임분담이 합해져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뜻 성사의 사명을 띤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시대를 달리하여 다른 사람을 그 대신으로 세워서라도,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되어 복귀섭리는 연장되어 나아간다.  다음으로 우리는 복귀섭리는 어떻게 연장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를 닮은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하는 모양이나 그 운동이나 또는 그 성장과정 등 모두가 3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4위기대를 조성하여 원형운동을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정분합의 3단계의 작용에 의하여 3대상목적을 이룸으로써 3점을 통과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복귀해 나아가는 섭리는 말씀에 의한 재창조의 섭리이기 때문에, 이 복귀섭리가 연장됨에 있어서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3단계까지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실체헌제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이삭을 거쳐 야곱에까지 연장되었으며, 도 모세나 예수님을 중심한 가나안 복귀노정도 각각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전 건축의 이상은 사울왕의 잘못으로 인하여 다윗왕 솔로몬 왕에까지 연장되었고, 또 첫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쳐 그의 재림기까지 3차로 연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격언에 “첫번에 안되면 세 번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현실생활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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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년수의 형성

제2절 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년수의 형성      Ⅰ.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며 또 어떻게 연장되는가  우리는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음으로써,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려는 섭리가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으로 연장되어 예수님 때까지 이르렀고, 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이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다시 그의 재림기까지 연장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논술하였다.  그러면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는가? 이것은 예정론에 의하여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한 번 세우신 뜻은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을 중심한 그 뜻 성사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그 인물의 책임분담이 합해져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뜻 성사의 사명을 띤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시대를 달리하여 다른 사람을 그 대신으로 세워서라도,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되어 복귀섭리는 연장되어 나아간다.  다음으로 우리는 복귀섭리는 어떻게 연장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를 닮은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하는 모양이나 그 운동이나 또는 그 성장과정 등 모두가 3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4위기대를 조성하여 원형운동을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정분합의 3단계의 작용에 의하여 3대상목적을 이룸으로써 3점을 통과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복귀해 나아가는 섭리는 말씀에 의한 재창조의 섭리이기 때문에, 이 복귀섭리가 연장됨에 있어서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3단계까지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실체헌제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이삭을 거쳐 야곱에까지 연장되었으며, 도 모세나 예수님을 중심한 가나안 복귀노정도 각각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전 건축의 이상은 사울왕의 잘못으로 인하여 다윗왕 솔로몬 왕에까지 연장되었고, 또 첫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쳐 그의 재림기까지 3차로 연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격언에 “첫번에 안되면 세 번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현실생활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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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년수의 형성

제2절 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년수의 형성      Ⅰ.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며 또 어떻게 연장되는가  우리는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음으로써,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려는 섭리가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으로 연장되어 예수님 때까지 이르렀고, 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이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다시 그의 재림기까지 연장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논술하였다.  그러면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는가? 이것은 예정론에 의하여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한 번 세우신 뜻은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을 중심한 그 뜻 성사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그 인물의 책임분담이 합해져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뜻 성사의 사명을 띤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시대를 달리하여 다른 사람을 그 대신으로 세워서라도,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되어 복귀섭리는 연장되어 나아간다.  다음으로 우리는 복귀섭리는 어떻게 연장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를 닮은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하는 모양이나 그 운동이나 또는 그 성장과정 등 모두가 3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4위기대를 조성하여 원형운동을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정분합의 3단계의 작용에 의하여 3대상목적을 이룸으로써 3점을 통과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복귀해 나아가는 섭리는 말씀에 의한 재창조의 섭리이기 때문에, 이 복귀섭리가 연장됨에 있어서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3단계까지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실체헌제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이삭을 거쳐 야곱에까지 연장되었으며, 도 모세나 예수님을 중심한 가나안 복귀노정도 각각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전 건축의 이상은 사울왕의 잘못으로 인하여 다윗왕 솔로몬 왕에까지 연장되었고, 또 첫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쳐 그의 재림기까지 3차로 연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격언에 “첫번에 안되면 세 번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현실생활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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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년수의 형성

         제3장 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년수의 형성          제1절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  동시성의 시대란 무엇인가 ? 인류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면 비록 그 정도와 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나간 어느 시대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역사적 과정이 뒷시대에 반복되고 있는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사가들은 이러한 역사적 현상을 보고, 역사조정은 어떠한 동형의 나선상을 돌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시대가 그 전시대의 역사노정과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되는 경우, 그러한 시대들을 말하여 ‘섭리적 동시성이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성의 시대를 일러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겠거니와, 이 현상이 본래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찌하여 생기게 되는가 ? 우리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어 나오는 과정에서 되어진 모든 사실들이 역사를 형성해 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가던 어떠한 중심인물이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할 때는, 그 인물을 중심한 섭리의 한 시대는 끝나고 만다. 그러나 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에(전편 제6장),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그의 대신으로 세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새 시대를 다시 세워 나아가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 새 시대는 그 앞시대의 역사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똑같은 노정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되어 섭리적인 동시성의 시대는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를 담당한 인물들은 그 앞 시대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해야 되므로, 복귀섭리가 연장되어 종적인 탕감조건이 보태어져 갈수록 횡적으로 세워야 할 탕감조건도 점차 더 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도 점차로 그 내용과 범위를 달리하게 된다. 동시성의 시대의 형태가 완전히 같은 모양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성장기간의 3단계를 그 형으로써 분류해 본다면, 소생은 상징형, 장성은 형상형, 그리고 완성은 실체형으로 나누어지게 되므로, 복귀섭리노정에서 이러한 형들을 동시성으로 되풀이해 온 시대들도 역시 그러한 형의 역사를 재현시켜 나왔던 것이다. 즉 복귀섭리역사의 전기간을 형으로 본 동시성의 관점에서 갈라 본다면, 복귀기대섭리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요, 복귀섭리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이며, 복귀섭리연장시대는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인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이처럼 동시성의 시대가 반복되는 이유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세가지의 조건을 들 수 잇는 것이니, 그것은 이 기대를 위한 중심인물과, 조건물과, 수리적인 기간 등이다. 그리고 그 둘째는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이루어지는 섭리적 동시성의시대에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성격의 것이 있다. 그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 탕감기간인 대수나 혹은 햇수를 요인으로 하여 섭리적 동시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복귀섭리역사는 그 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들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연장됨에 따라 상실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끝내 되풀이하여 탕감복귀해 나오신 섭리역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수리적인 ‘믿음의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섭리도 되풀이하게 돔으로써, 결국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떠한 햇수나 혹은 대수의 되풀이에 의하여 같은 모양을 거듭 형성해 나온 것이었다. 본장의 목적은 바로 이에 관한 문제를 다루려는데 있다,.  둘째로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과 그 조건물, 그리고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 등의 섭리적인 사실을 요인으로 하여 동시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데 있으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도 되풀이된다. 그런데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먼저 ‘상징헌제’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고 다음에 ‘실체헌제’로써 <실체기대>를 복귀해야만 비로소 그것이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역사는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를 복귀하려는 섭리를 되풀이하여 왔기 때문에,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결국 이 두 헌제를 복귀하려 했던 섭리역사의 냉용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관한 문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논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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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년수의 형성

         제3장 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년수의 형성          제1절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  동시성의 시대란 무엇인가 ? 인류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면 비록 그 정도와 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나간 어느 시대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역사적 과정이 뒷시대에 반복되고 있는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사가들은 이러한 역사적 현상을 보고, 역사조정은 어떠한 동형의 나선상을 돌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시대가 그 전시대의 역사노정과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되는 경우, 그러한 시대들을 말하여 ‘섭리적 동시성이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성의 시대를 일러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겠거니와, 이 현상이 본래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찌하여 생기게 되는가 ? 우리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어 나오는 과정에서 되어진 모든 사실들이 역사를 형성해 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가던 어떠한 중심인물이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할 때는, 그 인물을 중심한 섭리의 한 시대는 끝나고 만다. 그러나 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에(전편 제6장),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그의 대신으로 세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새 시대를 다시 세워 나아가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 새 시대는 그 앞시대의 역사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똑같은 노정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되어 섭리적인 동시성의 시대는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를 담당한 인물들은 그 앞 시대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해야 되므로, 복귀섭리가 연장되어 종적인 탕감조건이 보태어져 갈수록 횡적으로 세워야 할 탕감조건도 점차 더 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도 점차로 그 내용과 범위를 달리하게 된다. 동시성의 시대의 형태가 완전히 같은 모양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성장기간의 3단계를 그 형으로써 분류해 본다면, 소생은 상징형, 장성은 형상형, 그리고 완성은 실체형으로 나누어지게 되므로, 복귀섭리노정에서 이러한 형들을 동시성으로 되풀이해 온 시대들도 역시 그러한 형의 역사를 재현시켜 나왔던 것이다. 즉 복귀섭리역사의 전기간을 형으로 본 동시성의 관점에서 갈라 본다면, 복귀기대섭리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요, 복귀섭리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이며, 복귀섭리연장시대는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인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이처럼 동시성의 시대가 반복되는 이유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세가지의 조건을 들 수 잇는 것이니, 그것은 이 기대를 위한 중심인물과, 조건물과, 수리적인 기간 등이다. 그리고 그 둘째는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이루어지는 섭리적 동시성의시대에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성격의 것이 있다. 그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 탕감기간인 대수나 혹은 햇수를 요인으로 하여 섭리적 동시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복귀섭리역사는 그 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들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연장됨에 따라 상실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끝내 되풀이하여 탕감복귀해 나오신 섭리역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수리적인 ‘믿음의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섭리도 되풀이하게 돔으로써, 결국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떠한 햇수나 혹은 대수의 되풀이에 의하여 같은 모양을 거듭 형성해 나온 것이었다. 본장의 목적은 바로 이에 관한 문제를 다루려는데 있다,.  둘째로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과 그 조건물, 그리고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 등의 섭리적인 사실을 요인으로 하여 동시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데 있으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도 되풀이된다. 그런데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먼저 ‘상징헌제’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고 다음에 ‘실체헌제’로써 <실체기대>를 복귀해야만 비로소 그것이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역사는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를 복귀하려는 섭리를 되풀이하여 왔기 때문에,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결국 이 두 헌제를 복귀하려 했던 섭리역사의 냉용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관한 문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논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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