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노아가정이 보여준 교훈

   Ⅲ. 노아가정이 보여준 교훈  노아가 120년간이나 걸려서 산 꼭대기에다 배를 지었던 것은, 누구나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비난과 조소를 받은 그 일로 말미암아서, 노아가정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함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 함은 설혹 노아가 알몸으로 누어 있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을 좋게만 볼 수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함은 자기를 중심하고 하늘 앞에 선 노아를 비판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표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1600년이나 지나 40일 홍수심판을 행사하심으로써 찾아 세우셨던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천국가는 길은 겸허와 순종과 인내를 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또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여부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노아가정은 하나님이 1600년이나 걸려 찾아오셨고, 또 노아가 방주를 짓기까지 120년이나 이끌어 오셨으며, 뿐만 아니라 40일의 홍수로써 전 인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세우신 가정이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함은 작은 실수로 말미암아서 사탄이 침범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대상이었던 그 가정 전부를 아낌없이 쓸어버리시어,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노아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려고 오랜 기간을 두고 애써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정이 일단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를 아낌없이 버리시고 그 대신 아브라함을 택하셨던 사실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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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정이 보여준 교훈

   Ⅲ. 노아가정이 보여준 교훈  노아가 120년간이나 걸려서 산 꼭대기에다 배를 지었던 것은, 누구나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비난과 조소를 받은 그 일로 말미암아서, 노아가정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함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 함은 설혹 노아가 알몸으로 누어 있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을 좋게만 볼 수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함은 자기를 중심하고 하늘 앞에 선 노아를 비판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표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1600년이나 지나 40일 홍수심판을 행사하심으로써 찾아 세우셨던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천국가는 길은 겸허와 순종과 인내를 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또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여부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노아가정은 하나님이 1600년이나 걸려 찾아오셨고, 또 노아가 방주를 짓기까지 120년이나 이끌어 오셨으며, 뿐만 아니라 40일의 홍수로써 전 인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세우신 가정이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함은 작은 실수로 말미암아서 사탄이 침범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대상이었던 그 가정 전부를 아낌없이 쓸어버리시어,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노아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려고 오랜 기간을 두고 애써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정이 일단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를 아낌없이 버리시고 그 대신 아브라함을 택하셨던 사실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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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정이 보여준 교훈

   Ⅲ. 노아가정이 보여준 교훈  노아가 120년간이나 걸려서 산 꼭대기에다 배를 지었던 것은, 누구나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비난과 조소를 받은 그 일로 말미암아서, 노아가정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함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 함은 설혹 노아가 알몸으로 누어 있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을 좋게만 볼 수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함은 자기를 중심하고 하늘 앞에 선 노아를 비판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표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1600년이나 지나 40일 홍수심판을 행사하심으로써 찾아 세우셨던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천국가는 길은 겸허와 순종과 인내를 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또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여부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노아가정은 하나님이 1600년이나 걸려 찾아오셨고, 또 노아가 방주를 짓기까지 120년이나 이끌어 오셨으며, 뿐만 아니라 40일의 홍수로써 전 인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세우신 가정이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함은 작은 실수로 말미암아서 사탄이 침범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대상이었던 그 가정 전부를 아낌없이 쓸어버리시어,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노아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려고 오랜 기간을 두고 애써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정이 일단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를 아낌없이 버리시고 그 대신 아브라함을 택하셨던 사실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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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기대

  2. 실체기대  세례요한은 모세와 같은 처지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있어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기 때문에 동시에 자녀의 입자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다(본장 제2절 Ⅰ.2). 따라서 세례요한은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40년간의 탕감기간을 지나고,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운 터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 국가인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지만, 세례요한을 중심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 밑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그 제국을 하늘 것으로 복귀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례요한을 중심한 기사 이적을 보여 주시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잉태에 관한 천사의 놀라운 예고와 또 그 부친이 이것을 믿지 않았을 때 벙어리가 되었던 기사, 그리고 그가 출생할 때에 보여주신 이적 등으로 말미암아,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고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누가복음 1장 65~66절1))고 하신 성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민족은 세례요한의 출생시부터,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목숨을 이어가면서 기도의 생활을 한 그의 빛나는 수도의 생애로 인하여, 제사장들과(요한복음 1장 19절2)) 일반 유대인들(누가복음 3장 15절3)), 그를 메시아로 잘못 알 정도로 그의 신망이 높았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궁중 40년의 탕감기간을 마치고 애급사람으로 죽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믿고 따랐더면, 그들은 홍해를 건너거나 광야를 돌지 않고, 또 석판이나 성막이나 법궤도 필요없이 불레셋의 곧은 길을 통하여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기사 이적으로써 믿음의 대상자로 세워 주신 세례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기대를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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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기대

  2. 실체기대  세례요한은 모세와 같은 처지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있어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기 때문에 동시에 자녀의 입자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다(본장 제2절 Ⅰ.2). 따라서 세례요한은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40년간의 탕감기간을 지나고,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운 터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 국가인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지만, 세례요한을 중심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 밑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그 제국을 하늘 것으로 복귀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례요한을 중심한 기사 이적을 보여 주시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잉태에 관한 천사의 놀라운 예고와 또 그 부친이 이것을 믿지 않았을 때 벙어리가 되었던 기사, 그리고 그가 출생할 때에 보여주신 이적 등으로 말미암아,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고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누가복음 1장 65~66절1))고 하신 성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민족은 세례요한의 출생시부터,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목숨을 이어가면서 기도의 생활을 한 그의 빛나는 수도의 생애로 인하여, 제사장들과(요한복음 1장 19절2)) 일반 유대인들(누가복음 3장 15절3)), 그를 메시아로 잘못 알 정도로 그의 신망이 높았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궁중 40년의 탕감기간을 마치고 애급사람으로 죽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믿고 따랐더면, 그들은 홍해를 건너거나 광야를 돌지 않고, 또 석판이나 성막이나 법궤도 필요없이 불레셋의 곧은 길을 통하여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기사 이적으로써 믿음의 대상자로 세워 주신 세례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기대를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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