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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제3절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천사를 주관해야 할 아담(고린도전서 6장 3절)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탄의 주관을 받아서 지옥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그 자신이 사탄을 굴복시켜 천국을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제1절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같이, 하나님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사탄이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순종굴복할 리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인 책임을 지시고 야곱과 모세를 세워 장차 예수님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본보기노정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적인 노정을 걸었고, 모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형상적인 노정을 걸었으며, 예수님은 그 실체적인 노정을 걸으셔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사탄을 굴보시켜 나아갔던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완수하셔야 했던 것이다. 신명기 18장 18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라”고 하신 말씀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모세와 같은 노정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 보여주신 본보기노정을 그대로 걷고 계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상세한 것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논하였지만, 모세를 중심한 3차의 민족적인 가나안복귀노정과, 예수님을 중심한 3차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전체적인 윤곽을 비교 대조하면서,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노하여 보기로 하자. Ⅰ.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세례요한이었다. 그러면 세례요한은 어떠한 처지에서 그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었던가 ?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가 석판을 깨뜨린 것과 또 반석을 두번 친 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그를 중심한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석판과 반석의 실체인 예수님의 몸도 칠 수 있다는 조건을 사탄에게 허락하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는 데 대해서 이미 모세노정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조건을 피하시게 되려며는, 그의 강림을 위한 터전을 닦아 나아가는 선민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항상 불신의 길을 걷게 되어, 장차 오실 예수님 앞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켜 왔으므로, 이러한 조건을 막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발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를 합하여 850명을 멸하는 등(열왕기상 18장 19절), 사탄분립의 역사를 하고 승천하였던 것이다(열왕기하 2장 11절). 그러나 엘리야의 전체적인 사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는 재림해야 했던 것이다(말라기 4장 5절). 이와같이 엘리야가 다하지 못한 사탄 분립의 사명을 맡아 완수하고, 메시아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요한복음 1장 23절) 엘리야로 왔던 선지자가 바로 세례요한이었다(마태복음 11장 14절, 마태복음 17장 13절). 이스라엘민족은 애급에서 400년 동안,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고역을 당하여 오다가, 그들을 민족적으로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메시아를 맞게 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모세 한 분을 만나게 되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말라기 선지 이후 메시아강림준비시대 400년간,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페르샤, 헬라, 애급(에집트),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들에게 고역을 당하여 오다가, 마침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 앞으로 그들을 인도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세례요한을 만났던 것이다. 애급고역 400년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섰던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충효의 도를 배웠던 것과같이, 메시아강림준비시대 400년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섰던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하늘에 대한 충효의 도를 세웠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을 비롯한(요한복음 1장 19절) 유대인들은 모두 세례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누가복음 3장 15절). 세례요한은 이와같이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세웠으므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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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노정이 보여준 교훈
Ⅲ. 모세 노정이 보여준 교훈 모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뜻을 받드는 수 많은 성도들이 모세에 관한 성서의 기록을 읽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모세의 역사에 관한 기록인줄만 알았고,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복귀섭리에 관한 어떠한 비밀을 가르쳐주시려 하셨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5장 19절1)에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정도로 말씀 하셨을 뿐 모세노정의 근본의의를 밝히지 않고 돌아가셨던 것이다(요한복음 16장 12절2)).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가 어떻게 복귀섭리를 위한 공식적인 또는 전형적인 노정을 걸었는가 하는 것을 밝혔다. 이것이 장차 예수님께서 걸으실 길을 그대로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본장 제3절을 대조함으로써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를 중심한 섭리 하나만을 보아도,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의 절대적인 목적을 지향하여 인류역사를 이끌어 나오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모세 노정은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서, 그 인간을 중심한 하나님의 예정의 성사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예정도 그 예정을 위하여 세워진 인물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 인물을 중심하고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을 예정하시고, 그에게 이것을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책임분담에 대해서는 간섭치 않으시고,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놀라운 이적과 기사로써 이스라엘을 이끌어 주셨으나, 모세가 석판을 받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드는 행동에 대해서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셨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이 독자적으로 걸어야 할 책이분담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의 절대성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뜻을 예정하시고 이루시려는 것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모세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의 대신으로 여호수아를 세워서라도 한 번 예정하신 뜻은 기필코 이루시고야 마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하늘이 세우신 아벨적인 인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가인의 입장에서 충성을 다한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아벨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태복음 11장 12절)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이다. 또 한편 큰 사명을 진 사람일수록 그에게 주어지는 시험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인간시조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배반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은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시고 버리시는 시험을 이기고 나서야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셨던 시험을 이기고 난 후에야(출애굽기 4장 24절),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사탄이 타락을 조건으로 하여 인간을 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조건하고 인간에게 은사를 내리실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참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사를 내시려 할 때에는, 그 은사를 전후하여 사탄의 참소를 막기 위한 시험을 반드시 하시는 것이다. 모세노정에서 그 예를 들어보면, 모세에게는 바로궁중 40년의시련을 거친 후에야 제1차 출애급의 은사가 허락되었던 것이고, 또 미디안광야 40년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 하나님은 제2차 출애급의 은사를 내리셨던 것이다(출애굽기 4장 2~9절).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는 시험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4장 25절) 3대기적과 10재앙의 이적을 내려 주셨고(출애굽기 7장 10절~12장 36절), 삼일노정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10장 22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은사가 있었다(출애굽기 13장 21절). 한편 홍해의 시련을 지난 후에야(출애굽기 14장 21~22절) 만나와 메추리의 은사(출애굽기 16장 13절)가 있었고, 아말렉과의 싸움으로 인한 시련(출애굽기 17장 10절)이 있은 후에야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은사(출애굽기 31장 18절)가 있었다. 그리고 40년간 광야에서 표류한 시련(민수기 14장 33절)이 있은 후에 반석 샘물의 은사(민수기 20장 8절)가 있었고, 불뱀의 시련을 거친 후에야(민수기 21장 6절) 구리뱀의 은사(민수기 21장 9절)가 있었던 것이다. 모세노정은 위와 같이 여러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던 것이다.
모세 노정이 보여준 교훈
Ⅲ. 모세 노정이 보여준 교훈 모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뜻을 받드는 수 많은 성도들이 모세에 관한 성서의 기록을 읽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모세의 역사에 관한 기록인줄만 알았고,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복귀섭리에 관한 어떠한 비밀을 가르쳐주시려 하셨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5장 19절1)에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정도로 말씀 하셨을 뿐 모세노정의 근본의의를 밝히지 않고 돌아가셨던 것이다(요한복음 16장 12절2)).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가 어떻게 복귀섭리를 위한 공식적인 또는 전형적인 노정을 걸었는가 하는 것을 밝혔다. 이것이 장차 예수님께서 걸으실 길을 그대로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본장 제3절을 대조함으로써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를 중심한 섭리 하나만을 보아도,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의 절대적인 목적을 지향하여 인류역사를 이끌어 나오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모세 노정은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서, 그 인간을 중심한 하나님의 예정의 성사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예정도 그 예정을 위하여 세워진 인물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 인물을 중심하고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을 예정하시고, 그에게 이것을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책임분담에 대해서는 간섭치 않으시고,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놀라운 이적과 기사로써 이스라엘을 이끌어 주셨으나, 모세가 석판을 받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드는 행동에 대해서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셨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이 독자적으로 걸어야 할 책이분담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의 절대성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뜻을 예정하시고 이루시려는 것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모세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의 대신으로 여호수아를 세워서라도 한 번 예정하신 뜻은 기필코 이루시고야 마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하늘이 세우신 아벨적인 인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가인의 입장에서 충성을 다한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아벨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태복음 11장 12절)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이다. 또 한편 큰 사명을 진 사람일수록 그에게 주어지는 시험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인간시조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배반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은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시고 버리시는 시험을 이기고 나서야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셨던 시험을 이기고 난 후에야(출애굽기 4장 24절),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사탄이 타락을 조건으로 하여 인간을 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조건하고 인간에게 은사를 내리실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참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사를 내시려 할 때에는, 그 은사를 전후하여 사탄의 참소를 막기 위한 시험을 반드시 하시는 것이다. 모세노정에서 그 예를 들어보면, 모세에게는 바로궁중 40년의시련을 거친 후에야 제1차 출애급의 은사가 허락되었던 것이고, 또 미디안광야 40년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 하나님은 제2차 출애급의 은사를 내리셨던 것이다(출애굽기 4장 2~9절).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는 시험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4장 25절) 3대기적과 10재앙의 이적을 내려 주셨고(출애굽기 7장 10절~12장 36절), 삼일노정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10장 22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은사가 있었다(출애굽기 13장 21절). 한편 홍해의 시련을 지난 후에야(출애굽기 14장 21~22절) 만나와 메추리의 은사(출애굽기 16장 13절)가 있었고, 아말렉과의 싸움으로 인한 시련(출애굽기 17장 10절)이 있은 후에야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은사(출애굽기 31장 18절)가 있었다. 그리고 40년간 광야에서 표류한 시련(민수기 14장 33절)이 있은 후에 반석 샘물의 은사(민수기 20장 8절)가 있었고, 불뱀의 시련을 거친 후에야(민수기 21장 6절) 구리뱀의 은사(민수기 21장 9절)가 있었던 것이다. 모세노정은 위와 같이 여러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던 것이다.
모세 노정이 보여준 교훈
Ⅲ. 모세 노정이 보여준 교훈 모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뜻을 받드는 수 많은 성도들이 모세에 관한 성서의 기록을 읽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모세의 역사에 관한 기록인줄만 알았고,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복귀섭리에 관한 어떠한 비밀을 가르쳐주시려 하셨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5장 19절1)에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정도로 말씀 하셨을 뿐 모세노정의 근본의의를 밝히지 않고 돌아가셨던 것이다(요한복음 16장 12절2)).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가 어떻게 복귀섭리를 위한 공식적인 또는 전형적인 노정을 걸었는가 하는 것을 밝혔다. 이것이 장차 예수님께서 걸으실 길을 그대로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본장 제3절을 대조함으로써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를 중심한 섭리 하나만을 보아도,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의 절대적인 목적을 지향하여 인류역사를 이끌어 나오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모세 노정은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서, 그 인간을 중심한 하나님의 예정의 성사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예정도 그 예정을 위하여 세워진 인물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 인물을 중심하고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을 예정하시고, 그에게 이것을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책임분담에 대해서는 간섭치 않으시고,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놀라운 이적과 기사로써 이스라엘을 이끌어 주셨으나, 모세가 석판을 받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드는 행동에 대해서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셨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이 독자적으로 걸어야 할 책이분담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의 절대성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뜻을 예정하시고 이루시려는 것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모세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의 대신으로 여호수아를 세워서라도 한 번 예정하신 뜻은 기필코 이루시고야 마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하늘이 세우신 아벨적인 인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가인의 입장에서 충성을 다한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아벨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태복음 11장 12절)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이다. 또 한편 큰 사명을 진 사람일수록 그에게 주어지는 시험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인간시조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배반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은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시고 버리시는 시험을 이기고 나서야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셨던 시험을 이기고 난 후에야(출애굽기 4장 24절),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사탄이 타락을 조건으로 하여 인간을 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조건하고 인간에게 은사를 내리실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참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사를 내시려 할 때에는, 그 은사를 전후하여 사탄의 참소를 막기 위한 시험을 반드시 하시는 것이다. 모세노정에서 그 예를 들어보면, 모세에게는 바로궁중 40년의시련을 거친 후에야 제1차 출애급의 은사가 허락되었던 것이고, 또 미디안광야 40년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 하나님은 제2차 출애급의 은사를 내리셨던 것이다(출애굽기 4장 2~9절).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는 시험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4장 25절) 3대기적과 10재앙의 이적을 내려 주셨고(출애굽기 7장 10절~12장 36절), 삼일노정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10장 22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은사가 있었다(출애굽기 13장 21절). 한편 홍해의 시련을 지난 후에야(출애굽기 14장 21~22절) 만나와 메추리의 은사(출애굽기 16장 13절)가 있었고, 아말렉과의 싸움으로 인한 시련(출애굽기 17장 10절)이 있은 후에야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은사(출애굽기 31장 18절)가 있었다. 그리고 40년간 광야에서 표류한 시련(민수기 14장 33절)이 있은 후에 반석 샘물의 은사(민수기 20장 8절)가 있었고, 불뱀의 시련을 거친 후에야(민수기 21장 6절) 구리뱀의 은사(민수기 21장 9절)가 있었던 것이다. 모세노정은 위와 같이 여러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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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위한 기대
ㄷ. 메시아를 위한 기대 이스라엘 민족은 정탐 40일의 사탄분립 기간을 세우지 못하여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실패하고, 이 기간을 재탕감하기 위하여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유리하고 다시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왔다. 이 대의 모세는 제3차 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에 따르는 모세의 반석 2타로 말미암아 이 두 기대는 모두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에서 떠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섬멸되었으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가 세웠던 제2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정탐 40일의 사탄분립기간을 믿은과 충성으로 찾아 세웠기 때문에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으나,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은, 모세를 대신한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충성을 다하여 법궤를 모시고 요단을 건너 여리고성을 무지르고 소망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룩됨으로써, 아브라함 때에 이루어졌던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는 그의 제물 실수로 인하여 400년 애급고영의 탕감노정을 지나서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러나 이미 후편 제1장 제3절 Ⅲ에서 자세히 논한 바와 같이, 그 때는 이미 타락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하고 애급왕국 등의 굳건한 왕국을 건설하여, 하늘편의 복귀섭리에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는 세워졌을 지라도, 그 터전 위에 사탄에 대결할 수 잇는 하늘편의 왕국이 건설되기까지는 메시아가 강림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간 내적 이스라엘도 또다시 불신으로 흘러, 이 섭리는 다시 연장을 거듭하여 예수님 때까지 밀려 나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