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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메시아 재강림 시대- 종교 개혁기
제5장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는 서기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난 때부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400년간을 말한다. 이 시대의 성격에 관한 대강은 동시성으로 본 메시아 강림준비시대와의 대조에서 이미 논술되었으나, 여기에서 좀 더 상세한 것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런데 복귀섭리로 보아 이 기간은 종교개혁기,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 정치와 경제 및 사상의 성수기 등 세 기간으로 구분된다. 제1절 종교개혁기(1517~1648) 서기 1517년 독일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든 때부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구 종파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의 130년 기간을 종교개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기간의 성격은 중세 봉건사회의 소산인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써 형성된다. 하나님이 중세사회를 통하여 이루려 하셨던 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었을 때, 이것을 새로운 섭리역사의 방향으로 전환시켜서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나아가는 중추적인 사명을 한 것이 바로 문예부흥(Renaissance)과 종교개혁이었다. 따라서 이에 관한 것을 알지 못하고는 이 시대에 대한 성격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중세 봉건사회의 소산이라면, 이 사회가 중세 인간들의 본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어서 그것들을 해산하게 하였는가 ? 중세는 봉건제도와 로만 카톨릭의 세속적인 타락으로부터 오는 사회환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이 억압되어 그 자유로운 발전을 기할 수 없게 된 때였다. 원래 신앙은 각자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 직접적으로 맺어지는 종적인 관계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과 승려들의 간섭과,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그 규범은, 당시 인간들의 신앙생활의 자유를 구속하였고, 그 엄격한 봉건계급제도는 인간의 자주적인 신앙활동을 속박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승려의 승관 매매와 인민에 대한 착취로써, 그들의 생활은 한층 더 사치와 향락으로 흘렀었다. 따라서 교황권은 일반사회의 권력기관과 다름없이 비신앙적인 입장에 서게 되어, 그들은 국민의 신앙생활을 지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되어 중세 봉건시대의 사회환경은 인간이 그 창조본성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경 가운데 구속되어 있었던 중세인들은, 본성적으로 그 환경을 타파하고 창조본성을 복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본성은 뚜렷이 내 외 양면의 성향을 가지고 나타났던 것이니, 그의 창조원리적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에 대한 형상적인 실체대상이므로,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닮았다. 그리고 그 성상과 형상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와같이 창조된 인간은 본성도 내 외 양면의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러한 인간에 대한 복귀섭리를 하심에 있어서도, 인간 본성의 양면의 추구에 대응하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래 인간의 외적인 육신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으로 내적인 영인체를 창조하셨기 때문에(창세기 2장 7절1)), 재창조를 위한 복귀섭리도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복귀해 들어가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미 후편 제1장에서 논한 바와같이, 타락인간은 외적인 ‘상징헌제’를 한 터전 위에서야 내적인 ‘실체헌제’를 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성공함으로써만 보다 내적인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지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타락인간을 복귀하심에 있어서도, 구약전 시대에는 헌제에 의하여 ‘종들의 종’의 입장(창세기 9장 25절2))을, 구약시대에는 율법으로써 종의 입장(레우기 25장 55절3))을,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써 양자의 입장(로마서 8장 23절4))을, 성약시대에는 심정으로써 참자녀의 입장을 복귀하는 순서로 해 나오시는 것이다(후편 제2장 제3절 Ⅲ.2). 도 과학에 의하여 먼저 외적인 사회환경을 복귀해가면서, 종교를 세워서 내적인 인간의 심령을 복귀하는 섭리를 해 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천사와 인간이 창조된 순서를 보더라도 외적인 천사장이 먼저였고 내적인 인간이 나중이었다. 따라서 천사와 타락인간을 복귀함 있어서도, 먼저 외적인 천사세계를 세우시어 역사케 하심으로써, 인간의 육신을 중심한 외적인 실체헌제를 복귀하신 다음, 이어서 영인체를 중심한 내적인 무형세계를 복귀하시는 순서로 섭리해 나오시는 것이다.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내적인 사명을 다해야 했던 교황들을 윤락으로 말미암아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고, 창조본성을 되찾으려는 중세 인간들은, 그 본성의 내 외 양면의 추구에 의하여, 중세적 지도정신을 가인 아벨 두 형의 사상에 대한 복고운동등으로 분립하였던 것이니, 먼저는 가인형인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이요, 다음은 아벨형인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이었다. 그리하여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은 신본주의의 부활을 위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면 먼저 헬라사상과 히브리사상의 흐름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교류되어 이 시대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기원전 2,000년대에 에게해의 크레타섬을 중심하고 미노아문명권이 형성되었었다. 이 문명은 그리이스로 흘러 기원전 11세기에 이르러, 인본주의의 헬라사상(Hellenism)을 지도정신으로 하는 가인형의 헬라문명권을 형성하였고, 한편 이와 거의 동시에 서아시아에서는 신본주의의 히브리사상(Hebraism)을 지도정신으로 하는 아벨형의 히브리문명권을 형성하였으니, 이 때가 바로 통일왕국시대였었다. 당시의 이스라엘왕들이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인민들과 함께 성전을 받듦으로써 이루어지는 <실체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서 메시아를 맞았다면, 그 때에 히브리 문명권은 헬라문명권으로 흡수하여 하나의 세계적인 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뜻 가운데 서지 못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바빌론으로 포로 되어 갔다가 돌아온 후, 기원전 333년 그리이스에 속방된 때로부터, 기원전 63년 헬라문명권내에 있었던 로마에 속방되어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기간은, 히브리사상이 헬라사상에 지배를 당하는 입장에 처하였던 시대이다. 앞 장에서 이미 말한 바 있거니와, 이미 말한 바 있거니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신봉하여 그를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면, 당시의 로마제국은 예수님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면, 당시의 로마제국은 예수님을 중심한 메시아왕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써 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히브리사상은 그대로 헬라사상의 지배 밑에 머물러 있게 되었었다. 서기 313년에 이르러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후부터는, 점차 히브리사상이 헬라사상을 극복하기 시작하여, 서기 70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리이스 정교문명권과 서구문명권을 이룩하게 되었었다. 중세사회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이었던 교황과 국왕들이 타락되지 않았다면, 그 때에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히브리사상은 헬라사상을 완전히 흡수 융합하여 세계는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윤락으로 인하여 히브리사상을 중심한 중세적 지도정신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이에서 하나님은 사탄분립의 성립을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치 아담에게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시기 위하여, 그를 가인과 아벨로 갈라 세우셨던 것과 같이, 이 때에도 그 지도정신을 두 사상으로 다시 갈라 세우는 섭리를 하셨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가인형의 헬라사상 복고운동과 아벨형의 히브리사상 복고운동이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마침내 각각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인본주의를 주도 이념으로 하여 문예부흥이 일어남에 따라서, 헬라사상이 히브리사상을 지배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는 메시아강림준비시대에 있어서, 유대민족이 그리이스에 속방됨으로써, 헬라사상이 히브리사상을 지배하던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마치 가인이 아벨에게 굴복함으로써만, 아담에게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하여, 메시아를 맞기 위한 <실체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가인형인 헬라사상이 아벨형인 히브리사상에 완전히 굴복함으로써, 비로소 중세적 지도정신에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하여, 재림 주님을 맞기 위한 <실체기대>가 세계적으로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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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된 이유
Ⅳ.세례「요한」이 「엘리야」가 된 이유 우리는 위에서 말한 바(제2절 Ⅰ)에 의하여, 「엘리야」가 지상에서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 완성하기 위하여 세례「요한」이 왔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누가」복음 1장 17절1)에 기록된 대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슬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기 위하여 출생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명적인 입장에서, 「엘리야」의 재림자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상세한 것은 부활론에서 밝혀질 것이지만, 「엘리야」는 땅에 있는 세례「요한」에게 재림하여 그가 사명을 다할수 있도록 그를 협조함으로써, 자기가 지상의 육신생활에서 다하지 못한 사명을 세례「요한」의 육신을 세워 그를 통하여서 완수하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육신을 대신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사명을 중심하고 보면 그는 「엘리야」와 동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Ⅴ.성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우리는 위에서 성서의 말씀에 의하여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무지와 불신은 「유대」인들의 불신은 마침내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시게 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하늘의 비밀을 밝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세례「요한」을 무조건 위대한 선지자라고 단정하는 견지에서만 성서를 보아왔던 까닭이다. 우리는 인습적인 신앙관념과 구태를 벗어버리기를 두려워하는 고루한 신앙태도를 단연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 세례「요한」의 문제를 중심하고 배웠다. 사명을 다하고 간 세례「요한」의 문제를 중심하고 배웠다. 사명을 다하고 간 세례「요한」을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믿는 것도 부당하겠거니와, 사실상 사명을 다하지 못한 세례「요한」을 잘못 알고, 다한 것으로 믿는 것도 잘못된 신앙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신령 면으로나 진리 면으로나, 항상 바른 신앙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서의 말씀에 의하여 세례「요한」의 진상을 밝혀 왔지만, 누구든지 영통하여서 영계에 있는 세례「요한」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성도들은, 여기에 기록된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된 이유
Ⅳ.세례「요한」이 「엘리야」가 된 이유 우리는 위에서 말한 바(제2절 Ⅰ)에 의하여, 「엘리야」가 지상에서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 완성하기 위하여 세례「요한」이 왔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누가」복음 1장 17절1)에 기록된 대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슬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기 위하여 출생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명적인 입장에서, 「엘리야」의 재림자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상세한 것은 부활론에서 밝혀질 것이지만, 「엘리야」는 땅에 있는 세례「요한」에게 재림하여 그가 사명을 다할수 있도록 그를 협조함으로써, 자기가 지상의 육신생활에서 다하지 못한 사명을 세례「요한」의 육신을 세워 그를 통하여서 완수하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육신을 대신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사명을 중심하고 보면 그는 「엘리야」와 동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Ⅴ.성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우리는 위에서 성서의 말씀에 의하여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무지와 불신은 「유대」인들의 불신은 마침내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시게 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하늘의 비밀을 밝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세례「요한」을 무조건 위대한 선지자라고 단정하는 견지에서만 성서를 보아왔던 까닭이다. 우리는 인습적인 신앙관념과 구태를 벗어버리기를 두려워하는 고루한 신앙태도를 단연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 세례「요한」의 문제를 중심하고 배웠다. 사명을 다하고 간 세례「요한」의 문제를 중심하고 배웠다. 사명을 다하고 간 세례「요한」을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믿는 것도 부당하겠거니와, 사실상 사명을 다하지 못한 세례「요한」을 잘못 알고, 다한 것으로 믿는 것도 잘못된 신앙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신령 면으로나 진리 면으로나, 항상 바른 신앙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서의 말씀에 의하여 세례「요한」의 진상을 밝혀 왔지만, 누구든지 영통하여서 영계에 있는 세례「요한」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성도들은, 여기에 기록된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된 이유
Ⅳ.세례「요한」이 「엘리야」가 된 이유 우리는 위에서 말한 바(제2절 Ⅰ)에 의하여, 「엘리야」가 지상에서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 완성하기 위하여 세례「요한」이 왔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누가」복음 1장 17절1)에 기록된 대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슬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기 위하여 출생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명적인 입장에서, 「엘리야」의 재림자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상세한 것은 부활론에서 밝혀질 것이지만, 「엘리야」는 땅에 있는 세례「요한」에게 재림하여 그가 사명을 다할수 있도록 그를 협조함으로써, 자기가 지상의 육신생활에서 다하지 못한 사명을 세례「요한」의 육신을 세워 그를 통하여서 완수하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육신을 대신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사명을 중심하고 보면 그는 「엘리야」와 동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Ⅴ.성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우리는 위에서 성서의 말씀에 의하여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무지와 불신은 「유대」인들의 불신은 마침내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시게 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하늘의 비밀을 밝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세례「요한」을 무조건 위대한 선지자라고 단정하는 견지에서만 성서를 보아왔던 까닭이다. 우리는 인습적인 신앙관념과 구태를 벗어버리기를 두려워하는 고루한 신앙태도를 단연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 세례「요한」의 문제를 중심하고 배웠다. 사명을 다하고 간 세례「요한」의 문제를 중심하고 배웠다. 사명을 다하고 간 세례「요한」을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믿는 것도 부당하겠거니와, 사실상 사명을 다하지 못한 세례「요한」을 잘못 알고, 다한 것으로 믿는 것도 잘못된 신앙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신령 면으로나 진리 면으로나, 항상 바른 신앙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서의 말씀에 의하여 세례「요한」의 진상을 밝혀 왔지만, 누구든지 영통하여서 영계에 있는 세례「요한」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성도들은, 여기에 기록된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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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불신
Ⅲ.세례「요한」의 불신 위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당시의 제사장이나 전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을 우러르던 마음은, 그를 「메시아」로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누가복음 3장 15절, 요한복음 1장 20절). 따라서 만일 세례「요한」이, 자기가 바로 예수님이 증언하신 그대로의 「엘리야」라는 것을 선포하고 나섰더라면,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엘리야」를 고대하고 있었던 전 「유대」인들은, 이러한 세례「요한」의 증언을 믿게 되어 모두 예수님 앞으로 나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끝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주장한 세례「요한」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무지는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주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일찌기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기 뒤에 오시는 이(예수님)는 불과 성신으로 세례를 주시기 때문에, 자기는 그의 신들 매를 매기에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증거 하였다(마태복음 3장 11절1)). 분만 아니라 「요한」복음 1장 33절을 보면 ꡔ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 이(하나님)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그리스도)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ꡕ고 한 세례「요한」의 고백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세례「요한」에게 직접 교시하셨고, 세례「요한」 자신도 또 그렇게 증거 하였으며, 한편 「요한」복음 1장 23절1)을 보면, 자기는 그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 고까지 말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3장 28절에는, 자신이 「그리스도」에 앞서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언명한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응당 자기가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스스로의 지혜로써도 알았어야 할 것이었다. 설혹 세례「요한」이 그 사실을 미처 지각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이미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거 받아 알고 있는 위에(요한 복음 1장 33 – 34절), 예수님이 친히 자기를 「엘리야」라고 증언하셨으니, 자기도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가 바로 「엘리야」라고 하는 것을 뒤늦게라도 선포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앞에 무지하여(마태복음 11장 19절) 이미 예수님의 증언을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요한복음 1장 21절) 그 후에도 섭리의 방향과 길을 달리하고 있었으니, 이러한 세례「요한」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이나, 또 이렇듯 난처한 입장에 놓인 예수님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서러우셨을 것인가 ? 사실상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고 그를 증거 함으로써, 그의 증거 자로서의 사명은 다 끝난 것이었다. 그러면 그후에 있어서의 그의 사명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의 부친 「사가랴」는 성령에 감동되어 아직 복중에 있었던 세례「요한」을 두고서 ꡔ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ꡕ(누가복음 1장 75절1))고, 그의 사명을 분명히 예언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한 후에는, 그 앞에 하나의 제자의 입장에서 그를 모시고 섬겨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예수님과 분리되어서 따로 세례를 주고 다녔기 때문에, 「누가」복음 3장 15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도리어 세례「요한」을 「메시아」로 혼동하였고, 한편 또 「요한」복음 1장 20절1)을 보면 제사장까지도 그렇게 혼동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과 세례「요한」의 제자가, 서로 자기의 선생이 세례를 많이 준다고, 세례를 중심하고 다툰 일까지 있었다(요한복음 3장 25절). 그리고 「요한」복음 3장 30절1)에, 세례「요한」이 ꡔ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ꡕ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그는 예수님과 흥망성쇠의 운명을 같이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전적으로 예수님과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 처지에 섰었다면, 어찌하여 예수님이 흥할 때에 그가 쇠할 수 있을 것인가 ? 사실상 예수님의 복음은 누구보다도 먼저 세례「요한」 자신이 전해야만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지로 인하여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위하여 바쳐야 할 그의 목숨마저 별로 가치도 없는 일에 희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그 중심이 하늘편에 있었을 때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증거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서 하늘의 역사가 끊어지고 인간 세례「요한」으로 돌아오게 되자, 그의 무지는 더욱 더 예수님에 대한 불신을 자아내게 하였던 것이다. 자기가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세례「요한」은, 특히 옥중에 들어가게 된 후부터 다른 「유대」인들과 같은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인간 세례「요한」의 눈에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비쳐질 뿐이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도 역시 「엘리야」가 오기 전에 나타난 예수를 「메시아」로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ꡔ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ꡕ(마태복음 11장 3절)하고 질문하여 그 의심을 풀어 보려 하였다. 이러한 세례「요한」의 질문을 받게 된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3절 내지 19절1)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분개심에 격한 경고의 내용을 가지고 대답하셨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하여 복중에서부터 택함을 받았고(누가복음 1장 75절1)), 그의 앞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고난 어린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 노정을 출발하실 때에, 하늘은 누구보다도 먼저 그에게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고, 또 그것을 증거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늘의 은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세례「요한」으로부터 그러한 질문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은 새삼스럽게 자기가 바로 「메시아」라는 대답을 하시지는 않았다. 그는 ꡔ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ꡕ(마태복음 11장 4 – 5절)고 완곡한 대답을 하셨다. 물론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이러한 기사와 이적을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와 같이 구구하게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하시는 일을 세례「요한」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상기케 하심으로써, 자기가 누구시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고(마태복음 11장 5절) 하신 말씀에는, 세례「요한」과 「유대」인들의 불신에 대한 예수님의 비감한 심정이 어리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선민으로 부름을 받았던 「유대」민족, 그 중에서도 특히 세례「요한」은 하늘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은 부유한 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예수님은 부득이 「갈릴리」 바닷가를 헤매시고 「사마리아」땅을 두루 도시면서 가난한 자 가운데서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을 찾으셨던 것이다. 무식한 어부들과 세리와 창녀들은 모두 이처럼 가난한 자들이었다. 사실상 예수님이 찾고자 하셨던 제자들은 그러한 자들이 아니었다. 지상천국을 건설하러 오신 예수 님이었으니 그에게는 따라다니는 천명보다도 먼저 천명을 영도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이 예비한 능력 있는 무리들을 찾으시려고, 제일 먼저 성전으로 들어가 제사장과 교법사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나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비한 잔치에 청함을 받은 손님들은 하나도 응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거리에 나가 방황하는 거지 떼를 불러 모아야만 하셨다. 이처럼 불청객들을 맞으러 나선 예수님의 서러운 심정은, 드디어 ꡔ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ꡕ(마태복음 11장 6절)라고 하는 심판의 말씀을 토하시고 말았다. 세례「요한」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혹은 「메시아」, 혹은 「엘리야」, 혹은 「선지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었다(누가복음 3장 15절, 요한복음 1장 20 – 21절)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자기(예수)로 인하여 실족하면 무슨 복이 있겠느냐고 하는 간접적인 표현을 통하여서, 세례「요한」의 운명을 심판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세례「요한」은 어떠한 실족을 하였던가 ?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바와 같이 그는 종신토록 예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질문하러 왔던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떠나간 뒤에 예수님은, 사명적인 면에서 보아, 세례「요한」이 본시 가장 위해한 선지자로 왔으나, 이제 맡겨진 바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시어, ꡔ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ꡕ(마태복음 11장 11절)고 말씀하셨다. 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일찌기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 지상생활을 거쳐 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여인이 낳은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사람일라면, 천국에서도 가장 큰 자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역사상 가장 큰 자로 지상에 태어난 세례「요한」이 어찌하여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만도 못할 것인가 ? 과거에 왔다 간 수 많은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며 시간적인 먼 거리를 두고 간접적으로 이를 증거 하였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메시아」를 직접적으로 증거할 사명을 띠고 왔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직접적으로 증거 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일진대, 증거 적인 처지에서 보아, 「메시아」를 직접적으로 증거 하는 세례「요한」은 간접적으로 증거한 그 어떠한 선지자보다도 위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를 모신다는 점에서 볼 때에는 그는 가장 작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아무리 작은 자라도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모시고 있는데, 누구보다도 「메시아」를 가까이 모셔야 할 자리에 부름을 받은 세례「요한은 (누가복음 1장 75절), 도리어 예수님과 엇갈린 길을 걷고 있었으니, 이로써 그는 천국의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 다음 절에는 ꡔ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ꡕ고 기록되어 있다. 「메시아」를 위하여 복중에서부터 택함을 받았고, 광야에서 그렇게 어려운 수도생활을 하여 온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잘 모시기만 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시는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님의 수제자의 자리는 침노한 「베드로」에게 빼앗긴 바 되었다. 여기에 ꡔ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ꡕ라고 시간적인 한계를 지은 것을 보면, 그 아래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일반인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바로 세례「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ꡔ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ꡕ고 말씀하셨다. 세례「요한」이 지혜가 있어서 지혜롭게 행동하였다면, 예수님의 무릎 밑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요, 따라서 그의 행적은 영원히 의로서 남아질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그는 무지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이어니와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마저 모두 막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로써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 길을 가게 된 큰 요인이 세례「요한」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또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 8절에서, ꡔ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ꡕ고 하여, 세례「요한」을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이 지혜가 없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고 한탄한 사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