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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증산교에 대한 가톨릭적 관점
증산은 동학의 기운이 무르익던 1871년 11월 1일, 동학의 중심지였던 전라도 고부(古阜) 지방에서 태어났다. 혼란한 시대에서 동학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고 볼 수 있는데, 자신의 失調意識의 극복과 억압받는 민중을 구해야겠다는 召命意識에 의해 새로운 종교창립을 시도하였다. 그 방법으로써 그는 모든 종교의 교리와 儀式을 연구하는 한편, 급변하는 시대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全國 遊歷의 길을 떠났다. 유력생활을 통하여 그의 사회적․종교적 체험은 더욱 넓어지고 체계화되었다. 그것은 사회개혁을 이루어 민중을 구제하는 방법은 물리적인 힘이나 기성종교로는 안되고, 神明을 부릴 수 있는 道術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증산은 道의 완성을 보아 자유자재로 신명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31살 되던 해인 1901년에 전주 모악산에 있는 대원사에 들어가 道를 닦기에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해 7월 5일(음력)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도(道)를 깨우쳤다는 그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모든 신명들의 요청에 의해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려온 天․地․人 三界의 대권(大權)을 지닌 主宰者, 彌勒佛, 玉皇上帝이다. 증산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天地公事라는 의식을 사용하였다. 증산교에 의하면 천지공사는 신명계와 인간계, 그리고 자연계의 기존 운행질서를 새롭게 개편하는 작업을 말한다.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에 우주의 주재자가 인간으로 강림하여 相克의 이치가 지배하는 선천시대의 불합리한 운행질서를 바로 잡아 후천선경을 열 수 있는 새로운 질서와 법을 제정한 작업을 일컫는다. 즉 三界大權의 절대적 권능으로 하늘과 땅의 질서를 통일하고 예로부터 인간 가슴속에 맺혀온 원한을 풀어 천지와 인간을 동시에 구원하여 인류의 새시대를 여는 전무후무한 작업을 말한다. ‘후천 소프트 웨어’라고 비유하는 천지공사에서 증산이 하늘과 땅을 뜯어 고쳐 물 샐틈도 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대로 새 기틀이 열린다고 했으니, 지상선경은 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공사는 증산의 카리스마적 권능에 의해 그 도수가 짜여져 있지만, 지상선경은 道通 공부를 통한 엄격한 수련과 기도, 그리고 후천개벽시대에 적절한 새로운 윤리규범의 실천이 병행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증산은 그에 대한 추종자들의 회의가 증가하는 가운데 9년간의 천지공사를 마치고 1909년 8월 9일 39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증산교에서는 이것을 화천(化天)이라고 한다. 증산이 이처럼 억눌려 핍박받는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종교적 구도의 길을 걸었지만, 그러나 이미 살펴본 대로 증산교는 첫째, 時代末的 不安을 克服하려는 宗敎的 試圖이다. 둘째, 韓國 社會의 宗敎混合的 傳統의 延長이다. 셋째, 現世中心的 性格으로 인해 ‘人間의 窮極的인 恨’인 ‘죽음’을 해결하 지 못함으로써 한계점을 드러낸다. 증산이 제시하는 구원은 완전하고 궁극적인 구원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증산교에 대해 그리스도교 복음의 접함점은 해원(解寃)에 있다. ‘한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그리스도는 ’죽음이라는 최대의 恨‘으부터 인간을 구해주시는 “解寃者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결국 신흥종교가 병든 사회, 병든 종교로 인한 사회불안의 산물이고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민중의 몸부림이기도 하다면, 복음선포의 사명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교회는 이러한 민중의 몸부림들을 받아들여 줄 수가 있어야 하고,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의 참 주인이신 하느님께로 그들을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이 아닌 인간을 쫓아가다 스스로 인간소외의 벽에 부딪쳐 버린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께로 방향을 바꿀 때 비로소 참 인간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에 교회는 늘 말씀 안에 깨어 있으며, 스스로의 부단한 자기 쇄신을 기해야 함이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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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가끔 지나가다보면 “도”에 대해서 아십니까? 하고 덤비는 분들이 계십니다. 파수대를 들고 천주교 신자 집만을 찾아 다니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 그러다가 확 빠져 버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왜냐하면… 모르시니까…. 타 종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사실 우리 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다른 것을 … 계속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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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의 시도
(4) 福音化를 위한 試圖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증산교의 모순성을 비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들의 사고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개념으로 구원의 진리를 설명해 내야 한다. 그것이 복음화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진리를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은 역시 증산교 구원관의 출발점이자 핵심인 解寃 즉 ‘恨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 참된 恨은 무엇이며, 限에서의 진정한 해방은 도대체 무엇인가를 제시해 주는 것이 복음화, 나아가 토착화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증산의 구원관에 있어 가장 핵심은 해원(解寃), 곧 ‘한(恨)에서의 해방’이다. 그리고 그 해원(解寃)은 한국인의 현세중심적인 사고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恨이 ‘욕구 또는 갈망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맺혀 있는 것’이라면 증산의 해원은 현세적인 것이다. 그 실천덕목(인간존중, 평화로운 인간관계의 회복)도 현세적인 것이다. 증산의 후천 선경(後天仙境)에 대한 언급에 주목하다 보면 현세 중심적, 현세개혁적인 면을 간과(看過)하기 쉽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증산의 구원은 현세를 중심으로 두고 있다. 현세를 위한 解寃이요, 현세를 위한 相生이다. 증산교를 창립한 것도 당시의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것이다. 증산사상은 인간에게 매력적인 것임은 분명하다. 인간이 神보다 더 존엄하고, 만인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인간관계의 회복으로 아무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그리하여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게 된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행복은 현세안에서의 행복일 뿐이다. 결국 현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증산의 限界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넘어서는 삶을 갈망하고 있는데, 인간존재의 육체적 유한성은 죽음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인간의 모든 노력과 의미추구는 허무로 돌아가고 만다. 인간의 궁극적인 갈망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삶이지만, 영원한 삶에로의 궁극적인 갈망은 죽음으로 인해 허물어지고 만다. 그러기에 인간의 궁극적인 恨은 죽음이다. 현세를 문제삼고 있는 증산은 죽음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리하여 죽음이라는 恨을 풀지 못한 것이다.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죽음이라는 恨을 풀어주는 ‘죽음의 解寃者’이신 것이다. 죽음의 강을 건너게 해주시는 ‘解寃의 뱃사공’, 죽음이라는 根源的인 限을 풀어주시는 ‘풀이의 전문가’이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 인간이 죽음을 넘어서서 영원히 살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의 모든 역사와 삶의 양식, 그리고 개개인의 삶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되었다. 인간과 만물은 원래의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인간의 모든 수고는 죽음으로써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永遠에로 이어져 의미(意味)를 지니는 소중한 것이 되었다. 결국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현세의 삶 자체도 의미를 지니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는 내세(來世)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리고 人間과 함께 하는 모든 現世的 狀況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현세집착적이라고 할만큼 현세를 중요시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소망을 감싸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완성하시는 하느님 뿐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고, 그에 알맞은 것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사랑도 함께 강조하셨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 하느님의 모상이므로 존엄한 존재이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서 이 세상에서부터 당신의 사랑을 실천하기를 명하신 것이다. 결국 이 세상자체도 의미있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제외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현세를 부정하지 않는 총체적이고 완전한 인간구원을 위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시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만민에게 전하게 명하심으로써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할 뿐만 아니라, 전하는 바를 실제로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나아가는 소명을 받은 것이다.